경남낙사모의 낙동강 순례가 7월 9일(금요일)에 있었으며, 블로거 이웃 천부인권 님과 7월 16일(금요일)에 임해진과 본포에 다시 다녀왔습니다.
길곡면 함안보(18공구) 다음으로 간 곳은 임해진마을입니다.
부곡면 청암리로 접어들면 13가구가 옹기종기 거주했던 마을의 흐릿한 흔적위에 붉은 접시꽃이 피어 있습니다.
이곳이 임해진 마을과 임해진 나루가 있던 곳었는데, 지금은 모래를 실은 큰트럭만 쉼없이 오가고 있습니다.
▲ 임해진마을 터
정부는 4대강 사업으로 발생하는 대규모 준설토를 처리하기 위해 준설토를 인근 농경지에 메우는 이른바 '농경지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고 는데, 임해진 마을터의 도로너머가 농리리모델링지역인 청암지구입니다.
농지 리모델링 사업은 4대 강 사업으로 발생하는 준설토를 인근 농경지에 성토해 농지를 하천 수위보다 높이는 사업입니다.
즉, 낙동강사업 공사장에서 나오는 모래로 강변의 농지를 높이는데, 기름진땅에 모래를 성토하면 그 논밭이 구실을 하겠습니까.
지주들이야 어느 정도의 보상에 합의를 하겠지만, 대부분의 농촌은 임차농이 많은데, 임차농이 위기를 맞으며 많은 가난한 임차농민들은 그나마 고향이라고 여기며 뿌리를 내리던 강변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 장맛비가 쏟아지던 7월 16일 청암지구
바닷물이 낙동강을 거슬러 40여km 떨어진 이곳까지 들어와 임해진(臨海津)이라는 붙여진 이름이며, 내륙 깊숙이 들어온 바다는 적이기보다 가계와 마을 살림살이였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슬러 내륙을 넘나들었던 바닷물은 1987년 하구둑이 막히면서 바다는 차단되고 강은 갇힌 꼴이 되었고, 웅어 역시 오랜 세월을 오르내리던 강길을 빼앗겼지만 임해진 마을의 삶은 계속 되었습니다.
임해진나루는 임해진배수장 바로 아래쪽에 있으며, 맞은편은 창원시 북면 명촌으로 옛날 창원의 관문인 주물연진이 있었던 곳입니다. 주물연진은 뱃길을 따라 올라오는 일본사신을 맞이하였던 곳으로 창원부사가 직접 그 일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 임해진 나루터
마을의 좌측, 청학로로 접어드는 비룡산 기슭에 근심을 태운다는 정자 소우정(消憂亭)이 있으며, 소우정에 오르면 낙동강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7월 9일 그날은 너무 더웠기에 소우정에 오르지 못했으며, 16일에 소우정에 올랐습니다.
소우정은 관리가 되고 있지 않아 잡풀이 무성했으며,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 또한 옛모습이 아닙니다.
소우정은 벽진(碧珍) 이씨 가문의 소우헌(消憂軒) 이도일(李道一)의 8세손인 이승덕(李承德)이 밀양으로 낙향하여 선조의 호를 따서 소우정을 건립하여 성재(性齋) 허전(許傳)등과 교우(交友)하였고 여러 선비들과 유유자적(悠悠自適)했다고 합니다.
* 이승덕(李承德) : 자(字) 명길(明吉) 호(號) 만회(晩悔) 순조(純祖) 2년 임술(壬戌 1802) 1월 1일생이며 철종(哲宗) 6년 을묘(乙卯 1855)에 식년시 병과 4인에 급제(及第)하였다. 관(官)은 헌납(獻納), 사간(司諫), 집의(執義), 도정(都正)을 역임.
- 참고 : 이택준(李澤俊)
소우정 담장엔 마을을 떠나며 옮겨가는 곳을 알려주는 횟집 현수막이 있으며, 역시 이곳에서 횟집을 운영하던 물망초횟집은 남지에서 횟집을 운영한다고 합니다. 다방도 있었다는 작은 마을 임해진의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궁금합니다.
고기가 뛰어놀고 북면과 임해진을 이어주던 나루가 있던 임해진은 입과 입으로 전해지다 언젠가는 그 누구도 기억을 하지 못하게 될 겁니다.
낙동강 사업은 강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을 파괴하고 그 마을이 간직하고 있는 문화와 역사까지도 함께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우정 역시 언제 헐릴지 알 수 없습니다.
이제 영아지의 개비리길이 아닌 임해진의 개비리길을 따라 갑니다. 2010년 7월 9일,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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