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 총격사건?
박명숙 씨와 박재형 씨 부부는 남편의 친구들끼리 부부계를 만들어 2006년부터 매달 한 가구당 4만원씩 모았습니다. 남편들이 40세가 되는 해에는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며, 우리도 해외여행 한 번 가보자 한 것이었습니다. 2009년이 바로 신랑들 40세가 되는 해였습니다.
10월까지 곗돈을 모아 비수기인 11월에 사이판으로 출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계원들 중에는 그 흔한 신혼여행 한 번 외국으로 못 간 사람도 많고, 모두 직장생활에 맞벌이도 많고 자녀들도 다들 있어 2009년 11월19일 목요일까지 직장일을 하고, 밤 9시 비행기로 사이판으로 출발했습니다.
주 5일 근무자라면 금요일 하루만 직장에 휴가를 내어 다녀올 수 있도록, 23일 월요일 새벽에 한국에 도착하여 월요일부터 출근할 수 있게 일정을 잡았습니다.
사이판 현지 시간으로 새벽 3시 호텔에 도착한 박재형 씨 일행은 20일 오전 10시 여행사 가이드의 안내로 첫 관광지인 만세절벽이라는 곳에 도착하여 40분경이 지난 10시 45분경 총격사건을 겪었습니다.
박재형 씨 일행은 전쟁유적지이니 특별한 폭죽이벤트라 생각했고, 뜨거운 것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고 땅에서 튕겨 오를 때도 그것들을 피하며, ‘참 리얼하게도 하네. 위험할텐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총알이었으며, 그 총탄에 박재형 씨를 포함 5명의 한국 관광객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현지 경찰 조사결과 무장괴한은 사이판 실탄사격장 종업원으로 일하던 중국계 30대였으며, 1년간 임금을 받지 못하자 사격장에서 탈취한 총기와 실탄으로 주인부부를 살해한 후 총기를 난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이판 총격 그 후… 그리고 퇴원
당시 언론사의 인터넷 뉴스는 단신으로 처리되었으며, 12월 11일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의 '사이판 총기난사 피해자의 안타까운 사연' 이후 국민과 네티즌들이 사이판 총격사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방송 몇 곳에 나오긴 했지만 만족할만한 결과로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성금 모금을 한다며 호들갑을 떨며 최선을 다 하겠다던 사이판 당국과 우리 정부는 이제 사이판 총격사건을 잊었습니다.
2천만원으로 입을 다물게 하려던 여행사 역시 더는 피해자 박재형 씨를 찾지 않으며, 박재형 씨를 비롯하여 사이판 총격 피해자들은 차마 잊히지않는 그날의 악몽을 다독이며 현재 각자의 터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고통이 이어지지만 병원 생활에 지친 박재형 씨는 약8개월간의 병원생활을 접고 7월 1일 퇴원했습니다.
작은 아파트는 병원비로 들어 갔으며, 통영외가에 맡겼던 자녀들과 다시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제야 겨우 이삿짐 정리가 조금씩 되어갑니다.
정리함이나 공간박스 등등 필요한 물건들을 거의 인터넷으로 사서 배송되길 기다리느라 정말 목이 조금은 길어진 듯 합니다. ㅜㅜ
5살 3살 아이들과 함께이다보니 금방 치워도 돌아서면 또 어지러워지고… 정신이 없네요.
그동안 떨어져 있던 시간들이 미안하고 아까워 조금이라도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안그래야지하면서도 하루에 한두번은 꼭 큰소리로 야단을 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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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는 그를 보면서도 정말 아무것도 해줄게 없다는게 힘들고 또 힘듭니다.
애들이나 저에겐 아픈 기색을 잘 보이지 않으려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한눈에도 알 수 있을 정도라 더욱 안쓰럽습니다.
병원에 있을 땐 심하게 아플때마다 진통제 주사를 맞을수나 있었는데 지금은…
처음보다 통증이 많이 나아졌음에 희망을 걸고 정말 하루라도 빨리 통증이 줄어들기를, 없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생각보다 빨리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이사를 마치고.. 7월 20일)
엊그제 늦은 저녁 아이들도 데리고 고갯길을 올라 학교 운동장으로 운동하러 나섰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는사이 휠체어로 운동장을 돌며 운동하던 사람이 갑자기 보이질 않는 겁니다.
그날따라 안경을 쓰고 나서질 않아 어둠에 운동장 저편까지 보이지도 않고 어디에도 그이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덜컹 내려앉은 가슴으로 애들아빠를 부르며 뛰어다니며 찾다보니 저쪽어딘가에서 손을 들어 부르는 듯한 모습이 보여 갔더니 턱을 내려가는데도 쓰이는 기술인 '휠라이'를 했음에도 조그만 턱에 휠체어와 함께 굴러 쓰러져 있는 그이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운동장에 제법 운동하시는 분들이 많았음에도 그사람이 있는 쪽까진 시선이 가진 않았는지 쓰러지고 꽤 오랜 시간동안 혼자 일어서려 애써보다가 포기하고 저를 기다렸다는 말에 어찌나 속이 상한지 휠체어를 바로세우고 끌어올려 앉히는 내내 너무나도 화가나 저보다도 더 놀랬을 거라는걸 알면서도 한마디도 하지않은체 집으로와 목욕의자 대신으로 산, 보통것보다 폭이 조금은 넓은 낚시의자에 그를 앉혀 씻겨 침대에 눕힌 뒤 생각보다 심하게 굴렀는지 온 몸이 쓸리고 피멍에 상처투성이인 사람에게 약 바르라고 내주곤 욕실에서 혼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매일 밤을 뜬 눈으로 보내며.. 7월 25일)
박재형 씨의 부인 박명숙 씨는 다시 직장에 나가며, 지난주에는 출발! 모닝 와이드에 방송이 되었지만, 다른 방송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희망적인 내용은 아니었기에 씁쓸했지만 전국방송을 탓다는 것 만으로도 박명숙 씨는 감사해 합니다.
모닝와이드 방송이 있었던 7월 30일 경남도민일보에도 박재형 씨 퇴원 후의 생활이 보도되었습니다.
▲ 출처 : 경남도민일보 '사이판 총기난사' 피해자 박재형씨, 그 후...
해외여행 성수기입니다.
삼성만큼 이벤트를 좋아하는 여행사 하나투어는 상품 기획전 이벤트도 있군요.
휴가와 방학을 맞은 직장인과 학생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사이판 등 유명 휴가지로 떠납니다.
갱블회원도 사이판을 다녀왔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휴가철에 유명 관광지를 찾는 이웃을 탓할 수는 없지만, 또 다른 이웃이 사이판에서 안고 온 상처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몇 개월간 온라인에서 만났지만, 우리는 그동안 한번도 만난적이 없기에 박재형 씨의 마산 생활 소식이 전해질 때 두 분과의 만남을 생각했습니다.
혼자 훌쩍 만나고 오느니, 몇 개월간 함께 했던 사이판 총격사건 피해자 모임 회원들과 함께 하고 싶어 카페에 모임 의향을 물어 오늘 최종 안내를 했습니다.
예정된 자리에는 박재형 씨 부부와 박재형 씨의 친구며 함께 피해를 입은 울산의 김만수 씨 부부가 함께하며, 회원이 아니더라도 박재형 씨와 푸른희망 님과 함께 하고 싶은 분은 누구라도 좋으니 오세요.
또 다른 피해자인 부산의 이수경 씨 가족이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날짜 : 8월 7일(토요일)
시간 : 낮 12시 30분
장소 : 신마산 울릉도횟집(055-223-0666)
- 롯데마트 바로 뒤 '신마산 서울아동병원 1층'(지하주차장 있음)
- 네비게이션에 신마산 서울아동병원 검색
- 경남대 정류장에서 오시는 분은 롯데마트건물 뒤로 바로 보임
회비 :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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