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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야기/진해 풍경

일주일만에 달라진 성흥사, 벚꽃 활짝

by 실비단안개 2012.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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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목련만개한 성흥사 풍경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14일 성흥사로 가니 목련은 겨우 몇 송이 남아 있으며, 성흥사 주변은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기에 마치 다른 풍경같았습니다.

신라(新羅)의 고찰(古刹) 성흥사(聖興寺)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 대장동 180번지에 위치하며 대한불교 조계종의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의 말사입니다.

신라시대 무염국사(801~888)가 웅동 지방에 침입한 왜구를 불력으로 물리친 것을 흥덕왕이 보은하는 뜻으로 구천동에 지었다고 전해오는데 한때는 스님이 500여 명이나 되는 큰 사찰이었다고 합니다.

그 뒤 잦은 화재로 몇 차례 이건하였는데 창건한지 276년만에 대장동으로 옮겼고, 다시 322년에는 원래의 구천동으로 옮겼으며, 현종 8년(1667년) 대장동으로, 숙종 39년(1713년)에도 자리를 옮겼는데 정조 13년(1789년)에 비로소 지금의 위치에 이건 하였다고 합니다.

 

무염국사는 신라의 승려로 무열왕의 8대손인데 당나라에 유학하여 명승고적을 주유하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져 동방대보살이라 불렸습니다.

귀국한 뒤에는 충남 보령의 오합사에 있으면서 성주산문의 개조가 되었는데 무염국사가 창건한 사찰들의 이름에 대부분 '성'자가 붙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합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2호인 대웅전은 창건 년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후기에 다시 지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잡석으로 기단을 조성하여 자연석의 주춧돌을 놓아 둥근기둥을 세웠으며, 기둥머리에는 창방을 받치고 그 위에 다시 평방을 걸어서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1구씩 더 짜 올린 다포식 맞배지붕의 건물입니다.

또한 공포의 실미 끝 부분에는 연꽃 장식을 첨가하고 닭 등 동물 모양의 장식이 나타나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된 건물로 조선시대 후기 사찰 건축의 양식적 특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성흥사에는 고종 27년(1890년) 화주스님이 그린 섬세한 필치의 무염국사의 영정과 대불상, 나한상, 나한종관상, 제석상 등과 당간지주가 있고 사찰의 남서쪽 200m 지점에는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도군이 있습니다.(참고 : '우리고장 문화유적)

 

봄날이 참 빠르게 갑니다.

일주일만에 다른 풍경이 되었으니까요.

 

 

 

성흥사 입구의 석탑이며, 주변은 벚꽃과 산복사꽃이 피어 고향의 봄 노래가 절로 나오게 했습니다.

 

 

 

몇 년전 연꽃이 피어난 자리에 관리가 어려운지 연꽃대신 유채꽃이 대신 피었습니다.

유채꽃은 벚꽃과 잘 어울리기에 성흥사가 더 봄 다웠습니다.

 

 

요즘 동백은 춘백인지 진해엔 동백과 연꽃동백이 많이 피어 있는데 성흥사 주차장주변도 색색으로 피었더군요.

 

 

 

 

 

석탑 오른편 산길로 접어드는 곳인데 산복사꽃이 정말 많이 피어 있었습니다.

가차운날 산복사꽃 만나러 가야할까 봅니다.

진해시내 벚꽃지고 일상에 지치걸랑 성흥사로 오셔요.

진해의 봄날은 이렇게 오고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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