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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야기/진해 풍경

배둔지에서 띄우는 봄맞이 편지

by 실비단안개 2012.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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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동요지에 일이 있어 잠시 들렸다 작은 계곡을 따라 걸었다.

예전에 도요지로 가던 그 길은 분명 아니었건만 낯이 익은 길 같았다. 참나무잎이 소복했으며 나무와 돌의 수가 비슷하다고 할 정도로 돌이 많은 그곳에 어쩌면 눈먼 노루귀가 있을 것 같기도 했는데  이리저리 둘러보고 한참을 걸어도 댓잎만 사우적 거렸다.

 

계곡 건너 돌아 서는 길, 기어코 마른나뭇잎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네.

엉덩이 툴툴 털고 안전하게 가야지 싶어 다시 갔던 그 길로 되돌아 왔다. 마을이 보인다.

잠시 휴대폰을 만지작 거렸다. 어디로 갈까...

마을마다 섬으로 만드는 도로 공사 때문에 언젠가부터 발길을 끊은 배둔지를 향해 이미 걷고 있었다. 배둔지에 그림자를 드리운 산은 여전히 반쪽이고.

 

 

배둔지둑에 산불조심 아저씨가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배둔지 윗쪽으로 난 길을 택해 걸었는데 봄냄새가 피어 오르긴 하지만 봄꽃은 보이지 않았고, 겨우내 땅속에서 얼다 시들어진 무에 새순이 돋는 밭을 지나 잠시 길을 잃었다.

그때 청둥오리 한무리 푸더덕 날더니 밭둑에 쑥이 쑥 올라 왔다.

냉이와 꽃다지가 가냘픈 꽃을 피웠으며 봄까치꽃은 눈을 부빈다.

 

 

다시 배둔지곁을 걷다 금난초 은난초 만났던 그곳을 향해 걸었지만, 춘란이 겨우 기운을 차리고 있으며 역시 댓잎만 사우적 거렸다.

친구에게 전해 주고 싶은 들꽃은 언제나 피려나...

길 끝 쯤에 무덤 두 기가 있는데 할미꽃이 피었을까...

 

무덤가에서 돌아 길이 없는 숲에 드니 이런저런 마른 가지들이 가랑이를 잡았지만, 작정은 아니었지만 튼튼한 운동화와 청바지 차림이었기에 용기를 가지고 나아갈 수 있었다.

저 어디쯤 또 다른 계곡이 있을 건데...

아니나 그 계곡이 나타났다. 계곡이라기엔 약하고 개울이라기엔 좀 강한 그런 것.

아직 멀었다는 걸 빤히 알지만 나는 깽깽이풀이 수줍던 그곳을 찾았지만, 지금쯤 피어 있어야 할 남산제비꽃도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개울같은 계곡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걸었다. 물소리가 난다. 마을이 가까워 오고 있다는 거다.

 

아무것도 심지 않는 그 밭(혹은 논)엔 남산제비꽃이 지천이었는데 아직 텅 비었고 계곡변에 피어야 할 봄맞이꽃도 아직이다. 보고 싶다.

바위에 적당히 앉아 바위틈으로 흐르는 봄소리를 듣는다.

 

 

그냥 이대로 눌러 앉을까...

아~ 지금 생각하니 오싹했던 일이 있다.

그 무덤가 가기전부터 멧돼지 응가같은게 두 무더기 있었으며, 무덤가가 파헤쳐져 있었기에 머리카락이 쭈삣 서기에 뒤를 돌아 보지 않고 잠시 총총 걷기도 했다.

구천동 계곡쪽과 백일마을에서 천자봉 가는 길에 멧돼지가 있으며, 통제부 안에도 멧돼지가 있다고 했으니 보개산에도 멧돼지가 있을 수 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

다시는 혼자 깊은 곳으로 다니지 말아야지.

 

물소리, 새소리, 봄이 오는 소리를 두고 일어 섰다.

언젠가 울을 치며 나무에 못질을 한 것을 봤는데 지금도 그대로 였기에 잠시 진해구와 환경단체를 원망했다.

노루귀 피면 현호색 피는데... 노루귀 피지 않아 그런지 현호색 피던 자리도 아직 소식이 없다.

 

마을이 보인다.

농로가 걷기 좋도록 정비가 된 게 못 마땅하다.

며칠전 이웃이 밀양강옆의 보리밭을 올렸기에 부러웠는데 보리밭 대신 밀밭이다.

왜 밀이지...

 

 

으름꽃도 보고 싶다.

냉이는 언제쯤 밭 전체를 하얗게 만들까...

벌써 배둔지다.

오른쪽이 아닌 왼쪽으로 돌았다.

숲이 아닌 배둔지에 빠질 듯 하며. 저수지에 물결이 인다.

 

지난해 열매를 떨구지도 못하고 새순 피울 준비를 하는, 어릴 때 물개동나무라고 했던 산오리나무가 배둔지에 걸쳐져 있다. 두동에도 흔하지만 우리동네에도 흔한 나무다.

섣달부터 꽃을 피웠던 매화나무밭이 보인다. 두동마을이다.

그 사이 친구는 고향에 다녀 갔을까?

 

봄소풍 갈 때쯤이면 두동의 논밭은 온통 분홍빛인데 자운영보다 새완두가 먼저 자리잡았으니 자운영 어디서 꽃 피울까 걱정이다.

 

 

며칠 새 매화 몇 그루가 꽃을 피웠다.

섣달부터 피운 나무는 온통 벌이 웅웅거리고.

매화나무밭 주인이 거름을 내기에 매화 찍고 싶어 왔다고 하니 그러라고 한다. 여덟살 된 나무라고 하네.

참, 청매도 꽃을 피우기 시작하더라.

 

 

내가 누구네 딸이라고 하면 모두들 알만한 연세인 어르신들의 텃밭이기에 나는 그냥 여기저기 다니며 카메라질만 보통 한다. 언제였나.. 자운영 찍으니 할머니 한 분이 집으로 데려가 점심을 먹여 준 이후 부터 누구네 딸이라는 말도 아끼고.

 

할아버진 눈길도 아니주고 일만 묵묵히 하시는데 젊은할머니께서 기웃거리는 내게 말을 걸어 왔다.

겨울초와 시금치를 다듬으며 매화 이야기를 나누고. 그 대문앞에 광대나물이 제비새끼 입처럼 뽀족하다.

산보다 동네에 봄이 먼저 왔다.

 

 

 

삼일절이라 무궁화 나무에서 태극기가 펄럭이며, 부부는 봄을 낼 준비를 한다.

 

 

안녕하세요?

경화동에서 버스를 타고 쑥을 캐러 왔단다.

시내보다 아무래도 웅동이 공기가 좋을 같 같다나.

주물단지 이야기는 쏙 빼고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했다.

 

 

매 년 6월에 하는 봄 동창회를 당겨 4월에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유월엔 비가 잦으며 더위가 시작되니.

벚꽃 필 때는 식구들과 보내고 화들짝 피어 하롱하롱 봄꽃 질 즈음, 4월말이면 어떨까를 덧붙이며.

한 해 쉬었다고 들꽃 이름이 가물거린다. 들꽃이나 사람이나 만나지 않으면 가물거려지나 보다.

동창 카페에서 기다릴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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