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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종묘, 한 번 더 방문하고 싶다

by 실비단안개 2016.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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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거리를 빠져나온 우리는 떡박물관앞을 지나 종묘공원에 도착했습니다.

경복궁에서 인사동거리를 경유하여 종묘까지의 거리는 대략 3~3.2km였는데, 아무 일을 않고 바로 갈 경우 도보로 약 50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고 나왔는데 우리는 높은 건물도 올려다보고 인사동거리를 서성이며 식사를 하다보니 약 2시간 걸렸습니다.

우리동네에서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가려면 도보로 약 20분 정도 걸리는데, 도로 양옆으로 건물이 없을 때는 한참 걸리는 듯 했지만 요즘은 드문드문 점방들이 생겨 구경을 하다보니 거리가 짧아진 듯 한데, 서울은 워낙 많은 건물이 있다보니 구경을 하면서 걷다보니 먼 거리였음에도 먼줄 모르겠더군요.

 

 

종묘는 해설사가 대동하며 관람시간이 정해져 있었기에 관람권을 구입한 후 잠시 주변을 살피니, 타협을 거부한 독립운동가 이상재선생 동상이 있었으며, 많은 노인들이 바둑과 장기를 두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부산 용두산공원에 가면 낮시간에 많은 노인들이 햇볕을 쬐거나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그 풍경과 비슷했는데 대도시다보니 참으로 많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관람시간표를 보니 오후 4시 30분 입장을 했는데 많은 이들이 동행했습니다.

종묘 정전으로 가는 길 삼도에는 거칠고 널찍한 박석(薄石)이 깔려있는데, 그 이유는 왕을 포함하여 제사에 참여하는 제관들이 경박하게 빨리 걸으면 안 되기 때문이랍니다. 박석은 셋으로 왼쪽길(서쪽)은 세자로(世子路), 가운데길은 신이 다니는 신향로(神香路), 오른쪽(동쪽)은 왕이 다니는 어로(御路)인데 가운데길에 조상들의 혼령이 들어오고 나가는 길이므로 보행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가 있습니다.

 

 

종묘는 사적 제125호로 조선 시대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봉안한 사당입니다.

신주란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적어 놓은 작은 나무패를 말하는 것으로 옛날 사람들은 이 신주에 돌아가신 분들의 혼이 깃들어 있으며, 돌아가신 조상의 혼이 쉬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손은 신주를 모시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으며, 전쟁이나 화재 등 재난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구하는 것이 신주였다고 합니다. 신주에 모신 돌아가신 분의 혼은 제사 상을 차릴 때 향을 피우면 현세로 잠시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주 봉안은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전통이 아니고 유학을 기반으로 통치했었던 나라에서는 이러한 종묘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과 베트남에도 있었지만 우리나라만이 종묘에 대한 건물 보전과 의식을 행하는 제례 및 제례악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서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종묘제례(宗廟祭禮)는 1975년 5월 3일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었으며, 2001년 5월 18일 종묘제례악과 함께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어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종묘제례란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셔 놓은 사당(종묘)에서 지내는 제사를 가리키며, '대제(大祭)'라고도 부릅니다. 종묘는 사직과 더불어 국가존립의 근본이 되는 중요한 상징물로 정전(19실)과 영녕전(16실)이 있습니다. 종묘제례는 정시제와 임시제로 나뉘어 정시제는 4계절의 첫번째 달인 1월, 4월, 7월, 10월에 지냈고 임시제는 나라에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을 때 지냈으나, 해방 후부터는 5월 첫 일요일에 한번만 지내고 있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예법이나 예절에 있어서 모범인 의식만큼 순서와 절차는 엄격하고 장엄하게 진행된다고 하는데, 제례는 크게 신을 모셔와 즐겁게 하고 보내드리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절차를 보면 선행절차 →취위(就位) →영신(迎神) →행신나례(行晨裸禮) →진찬(進饌) →초헌례(初獻禮) →아헌례(亞獻禮) →종헌례(終獻禮) →음복례(飮福禮) →철변두(撤籩豆) →망료(望僚) →제후처리(祭後處理)의 순서로 진행되며, 종묘제례가 있기 전 왕은 4일간 근신하고 3일간 몸을 깨끗하게 한다고 하며, 종묘제례는 예(禮)를 소중히 여긴 조상들의 유교 사회에 있어 예술의 기준이 된 귀중한 의식으로 웅장함과 엄숙함이 돋보인다고 하는데 종묘를 방문했지만 때가 아니라 종묘제례 행사를 관람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저처럼 생각없이 여기저기를 방문하기보다는 서울 관람시 코스를 정하여 방문· 관람하면 아쉬움이 덜 할텐데요, 이런 아쉬움을 달래보려면 광화문 세종 이야기 전시관에 가면 종묘제례악 3D 연주체험이 가능하며, 종묘제례악때 사용하는 악기들과 설명이 있습니다.

 

종묘는 정전과 영녕전을 합쳐서 지금은 부른다고 합니다.

종묘는 태조 3년 (1394) 10월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그해 12월에 착공하여 이듬해(1395) 9월에 완공 하였으며, 곧이어 개성으로부터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모셨으며, 현재 정전에는 19실에 49위, 영녕전에는 16실에 34위의 신주가 모셔져 있고, 정전 뜰앞에 있는 공신당에는 정전에 계신 왕들의 공신 83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문화재청 종묘에서 종묘탐방코스 지도를 가지고 왔습니다.

- http://jm.cha.go.kr/n_jm/index.html

 

매표소가 있는 건물이 외대문이며 외삼문이라고도 합니다.

 

 

이제 위의 지도에 나와 있는 탐방코스로 관람을 할 텐데, 입장권을 구입한 대외문부터 종묘 건축물과 지붕의 종류가 문화재청 종묘 탐방코스에 있기에 가지고 왔습니다. 우리나라 가옥의 지붕을 이야기할 때 맞배지붕, 팔작지붕 등을 들어봤을 텐데 사진으로 설명이 되어 있는데, 종묘는 조용하고 단아한 공간이기에  정전 남신문이 맞배지붕으로 간결하면서 웅장함을 드러내는 지붕이라고 합니다.

 

▲ 출처 :  http://jm.cha.go.kr/n_jm/index.html

 

삼도(三道)를 따라 가다가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연못 하나를 만나는데, 중지당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종묘에는 4개의 연못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 남아있는 것은 외대문을 들어서면서 좌측에 있는 작은 못을 비롯해서 3개인데 이곳에서 만난 연못의 모양이 직사각형인 것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사상을 나타낸 것이라고 합니다. 즉 연못의 형태가 네모인 것은 땅을 상징한 것이며, 못 가운데의 둥근 섬은 하늘을 뜻하여 인간의 생성과 소멸이 하늘에 있음을 나타내고, 섬 안의 향나무는 정신을 맑게 하고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는 의미에다 향내를 맡고 조상의 혼이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하여 조상혼의 영신(迎神)을 나타낸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궁궐 등의 연못에는 연꽃을 심고 비단 잉이 등 관상어를 기르는데 반해 종묘안의 연못에는 아무것도 기르지 않는 것은 영혼을 위한 연못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재궁입니다.

재궁은 정전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국왕과 세자가 제사 하루 전에 도착하여 머물며 제사를 준비하던 곳으로 북쪽에 왕이 머물던 어재실이, 동쪽에는 세자재실이, 서쪽에는 어목욕청이 있습니다.


어재실 서쪽 뜰 돌 위에는 높이가 낮고 넓적하게 생긴 독, 주로 물을 담아 놓는 데 쓰는 드므가 하나 놓여있는데 경복궁 근정전편에서 드므이야기를 했는데, 드므는 순우리말로 그 안에 물을 담아놓으면 불귀신(火魔)이 왔다가 물에 비친 제 모습에 놀라 달아난다는 주술적의미가 있으며, 화재가 났을 때 실제로 사용하기도 하였다는 일종의 방화수(防火水)입니다.

왕과 세자가 재궁 정문으로 들어와 머물면서 목욕재계하고 의관을 정제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 후, 서협문으로 나와서 정전의 동문으로 들어가 제례를 올렸다고 합니다.

 

 

 

참 많은 이들이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우리 문화와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다들 관심이 많은 듯 했는데, 서울에서 먼 시골에 있다보니 경복궁과 종묘 방문이 처음이라 죄송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정전(正殿)이 있는 동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건물들이 있는데 진사청입니다.

전사청은 종묘대제 때 쓰는 제물, 제기 외에 여러 가지 기구와 운반구를 보관하던 곳으로 전사청은 'ㅁ'자 모양의 조금 큰 건물로 제사 때 쓸 음식을 준비한 곳입니다.

 

 

진사청과 수복방 앞 뜰에 두 개의 단이 있는데, 찬막단(饌幕壇)과 성생위(省牲位)입니다.

수복방은 제례를 담당하고 종묘를 관리하는 노비와 관원들이 머는 곳입니다.

찬막단은 진사청에서 만든 음식을 제상위에 차리기전에 검사하던 곳이며, 성생위는 제물인 소, 양, 돼지를 검사하던 곳입니다.

 

 

 

종묘제례에 사용하는 제기입니다.

종묘제례 사진을 보면 어마어마한데 제기의 양 또한 그만큼 많습니다.

 

 

전사청 옆에는 제사에 쓰이는 정결한 우물인 제정이 있는데, 제정은 우물을 낮은 담장으로 둘러 싸고 남쪽에 문을 내어 출입하게 하였습니다.

 

 

드디어 정전에 닿았습니다. 정전(正殿)은 종묘의 중심건물로 국보 제227호입니다. 

총 35칸의 긴 선형 건물로 조선 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49위(位) 신주를 19실에 봉안하고 있는데, 한 컷에 모두 담기에는 벅찰 정도로 건축물이 길며 뜰엔 박석이 깔려있고, 정전의 가운데에는 신로(神路)라고 하는 길이 놓여 있는데, 그 신로는 정전의 남문에서 들어 오는데 왕도 이 길로는 출입을 못하여 동문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종묘제례를 지낼때 방문했더라면 제례 모습을 볼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역시 많이 남는 정전입니다.

 

 

 

 

정전과 영녕전 동문으로 이어지는 어로와 세자로입니다.

 

 

영녕전 신위 봉안도가 있었습니다.

 

 

영녕전입니다.

영녕전은 보물 제821호(1985년 1월 8일)로 지정되어 있으며, 영녕전은 정전과 더불어 종묘의 중심 영역을 이룹니다. 세종 때 종묘의 신실이 부족하게 되어 정전 서쪽에 새로 지은 것으로 조종과 자손이 길이 평안하라는 의미로 영녕(永寧)전이라 하였으며, 영녕전 지붕은 가운데 태실 4칸은 높게, 좌우 협실 6칸은 태실에 덧붙이듯이 한 단 낮게 하여 겉모습부터 정전과 다른데, 벽체와 기둥의 관계를 표현하는 데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정전에서 전퇴의 열주(列柱)를 제외한 모든 기둥을 벽 속에 숨긴 데 반하여, 영녕전에서는 원기둥을 노출시켜서 벽을 나누고 있습니다.

 

 

악공청입니다.

종묘는 정전과 영녕전 두 곳에 악공청이 있는데 악공청은 종묘제례 때 음악을 연주하는 악공들이 악기를 준비하고 대기하며 연습도 하던 곳이니 중요한 곳입니다. 악공청은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두벌대 기단 위에 네모전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으며 연주 장소에 드나들기 편리하고 한적한 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관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처음으로 종묘를 방문하다보니 지식이 부족했고 사진찍는 방향도 서툴렀는데 다시 종묘를 방문한다면 보다 세세히 찍어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참고 : 문화재청 종묘http://jm.cha.go.kr/n_jm/index.html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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