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2일
40년만에 이력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취업을 했습니다.
지난해 12월 동네 친구가 신항에 일을 하러 나간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의 아들은 우리나라 최대 재벌 회사에 다니기에 굳이 일을 나가지 않아도 되는데 일을 하러 간다기에 충격이었습니다. 바깥일은 가장이 하는 줄만 알았거든요. 우리 나이대는 가장이 벌어 식구들 모두 먹여 살렸다시피 하기에 굳이 여자가 바깥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요즘 젊은 세대는 거의가 맞벌이며 100세 시대라고 해도 마치 남의 일인양 우리는 여전히 얼라아부지가 벌어 그 월급으로 생활을 했습니다.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일은 어떻노, 쉽나? 할만 하나?
친구 왈, 만고 땡이다. 토, 일요일 쉬며 청소 조금 하고는 뜨신 휴게실에 누워 쉬고 일 마치면 샤워까지 하고 온다고 했습니다.
청소는 주부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대부분의 우리 나이 여자들이 그렇듯이 여자아이때부터 세포마다 배인게 청소하는 일이니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친구가 일자리 구하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벼룩시장에 접속하여 '일반서비스/기타'를 클릭하면 원하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벼룩시장에 접속을 했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지 못 하며, 텃밭일을 해야 하기에 가까우며 겨울에 잠깐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으니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울에 있는 아이에게 이력서를 다운로드 받아 메일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난리가 났습니다. 쉬어야 할 나이에 무슨 일이냐면서요. 이삼일 아이와 큰소리를 내다보니 아이의 목이 다 쉬었습니다. 그렇지만 겨우내 집에서 빈둥거리는 건 고문과 같기에 아이들 몰래 '위크넷'에 이력서를 올렸습니다. 요즘은 옛날과 달리 인터넷에서 이력서 작성이 가능했으며, 이력서를 쓰는 것도 간단했습니다. 사진은 증명사진을 붙였는데, 올해부터는 사진은 지원하지 않는다고 했기에 1월에 다시 썼습니다.
예상급료를 적고 근무환경을 묻기에 '쾌적한 환경'이라고 썼습니다. 신입으로.
이력서는 40년전에 처음 써보곤 이번에 써봤습니다. 그렇게 이력서를 올리고 며칠 있으니 창원시청 일자리 뭐뭐라면서 오후에 연락이 왔었습니다.
일터는 우리집과 가까우며, 근무시간은 오전 8시~오후 3시로 입사를 한다면 텃밭일을 하는데 무리가 가지 않는 시간이었습니다. 토일요일 휴무, 공휴일 휴무니 청소를 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무리가 되지 않을 것 같아 퇴근시간쯤 알려 준 회사를 찾아 나섰습니다.
길을 제대로 안다면 금방인 거리인데, 신축회사다보니 인터넷에 나와 있지 않았기에 번지를 일일이 찾았고, 그래도 못 찾아 연락을 하니 그쪽에서 차를 가지고 나와 직원과 함께 갔습니다. 데리러 온 직원은 친절한 젊은여자분이었습니다.
이어 면접을 봤습니다. 이력서 등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청에서 연락 받고 왔다고 하면서요.
입사지원서를 작성한 후 몇 가지를 물어 보기에 답을 한 후, 병원 정기검진이 걸렸기에 어쩌다 병원에 갈 때는 어떻게 하느냐, 동창회가 있기에 가끔 쉴 때는 어떻게 하느냐 등 저도 몇 가지를 물어 보니, "어무이들 2~3일씩 놀러 가시는 데 봐 드려야지요, 아프면 병원도 가야 하고요"하더군요.
1월 3일 면접을 봤으며, 17일까지 모집기간이었습니다.
면접을 본 다음날 시청에서 다시 전화가 왔으며, 마산 여성일자리센타에서도 연락이 왔었습니다.
그리곤 1월 첫주에 회사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12일부터 출근하라고.
8일 낚시다녀오고, 9일엔 멀미 후유증으로 쉬고, 10일 카메라서비스를 받기 위해 부산 서면에 갔다가 친구와 점심먹고 그렇게 왔는데, 10일 밤에 엄마가 아프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몇 년간 입원않고 잘 견디신 분이 일을 간다니 아프시네요.
10일 밤에 엄마를 입원시키고 11일 필요한 것들을 챙겨 병원으로 갔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병원에 계셨으며 보호자 식사도 병원에 부탁을 했습니다.
12일 첫출근을 했습니다. 보통때보다 10분 빨리 일어나 머리를 감고 녹즙을 내리고 아침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회사는 얼라아부지가 근무하는 일터와 가깝기에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얼라아부지는 추운데 그냥 집에서 쉬소 했지만 한 번 들뜬 마음이다보니 무슨 일이든지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속마음을 숨기지 못 하는 게 큰흠입니다.
얼라아부지는 자전거로 7시 2~30분쯤에 출근을 하는데 저와 함께 가느라 자전거를 끌고 갔습니다. 좀 추웠지만 운동삼아 씩씩하게 걸었습니다. 10~15분정도 걸리니 먼길이 아닙니다.
첫날은 힘이 살짝 들었습니다. 사무실 바닥은 남자직원이 청소기를 돌려 주었으며, 이튿날은 새사무실로 이사를 했기에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오후 3시가 금방 되었습니다. 퇴근시 퇴근 지문찍는 걸 깜빡했습니다.
회사에서 이력서를 출력하여 주고, 들은 건 있기에 근로계약서는 언제 쓰느냐, 필요한 서류는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통장사본과 사진 1매, 주민등록등본 1통이라고 했습니다.
4대보험을 안 들면 안되느냐고 하니 모든 근로자는 4대보험에 다 가입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텃밭농사를 하다보니 농업인이라고 국민연금공단에서 몇 번 연락이 왔지만 국민연금에 가입을 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엄마는 장염이었으며 보호자가 아버지(남자)다보니 다인실이 아닌 1인실 같은 2인실에 입원을 했으며, 얼라아부지가 퇴근하면 함께 병원에 들렸습니다. 토요일에 쉬기에 토요일 오전에 퇴원시켜 드릴테니 병원에 계시라고 했는데 엄마는 금요일에 퇴원을 했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더니 아버지께서 처음으로 퇴원수속을 밟아 짐을 챙겨 엄마를 집으로 모셨습니다. 퇴근후 친정에 가니 엄마는 말짱했습니다.^^
일은 할만하더나, 춥제, 밥은 챙겨묵고 댕기나, 차타고 댕기라...
회사일은 사무동을 청소하는 일입니다. 청소는 집에서도 하는 일이니 어렵지 않은데, 새건물이며 사물실이 여럿이며 화장실이 6개다보니 마치 미로같기에 계단을 몇 번씩 오르내리다보니 다리가 아팠지만, 지금은 어디가 어딘지 알기에 요령껏 다니며 일을 합니다.
회사에서도 걱정이 되는지 한꺼번에 다 하지 말고 나누어 이틀에 한번씩 청소를 하라고 했지만, 새건물이다보니 입주청소를 했지만 신경이 쓰여 이틀은 전체를 청소했습니다.
일을 나가니 가장 좋은 건 점심을 챙겨먹는 일입니다. 집에선 빵 한조각에 커피로 점심을 하거든요. 식당에서 식사를 가지고 오면 자율배식입니다. 식판에 담아 먹는 거지요. 첫날은 공기밥을 다 비웠었는데 이튿날엔 반정도 먹었습니다. 일이 힘이 들었나 봅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제가 어디에 있는지 (사측에서)모르기에 전화를 해 줍니다. 언니 밥 먹으러 가요~ 하면서요. 식사 후 커피도 타 주고.
회사에서 해가 가장 잘 드는 복도 창가를 카페처럼 꾸며 커피와 녹차 등 몇 가지의 차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일을 하다가 쉴때도 볕이 좋은 이곳에 앉아 휴대폰을 켜서 놉니다. 데이터가 살짝 걱정이 되어 와이파이는 안되느냐고 하니 곧 설치한다고 합니다.
1월 17일
하루가 길었습니다. 그러나 규정이 있다보니 퇴근시간까지 뭐든 찾아서 해야 했습니다. 잠시 쉰다고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가만히 있지 못 하는 성격이다보니 복도나 사무실에 앉아 문짝을 닦거나 바닥을 닦고, 심지어 화장실도 바닥에 앉아 닦을 정도로 깨끗하게 합니다. 전직원이 실내화를 신으니 바닥이 일반 가정의 실내같습니다. 근무조건에 "쾌적한 환경'이라고 했으니 저 스스로 깨끗하게 하는 거지요. 그리고 박근혜가 아니지만 화장실을 많이 가리는데 제가 청소를 하는 화장실이다보니 마음 놓고 일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빌딩같은데 가면 청소 후 락스 냄새에 머리가 아픈데 웬만하면 물걸레로 닦고 또 닦지 락스청소는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난 주말에 화분에 물을 주었는데 그날(금요일) 새건물로 옮겼습니다. 화분을 옮기는 이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17일엔 큰화분의 이파리를 한잎한잎 닦았습니다. 우리집에선 베란다의 화초는 물조리개로 물을 주며, 실내의 화분은 욕실에 넣어 샤워기로 물을 주기에 잎이 깨끗한데 회사의 큰화분은 무거워 들수 없기에 바가지로 물을 주었으며 잎은 일일이 닦아야 하는데, 이 또한 마치 집안 일을 하는 듯 재밌습니다.
일을 하다가 힘들면 언제라도 그만둬야지, 농한기에만 해야지 생각하며 입사했는데, 지금 마음은 일이 재밌기에 봄이 되어도 계속 다닐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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