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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 담장과 삼신당의 어마어마한 소원지

by 실비단안개 2018.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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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5일

- (7번 국도 여행 12) 안동 하회마을 담장과 삼신당의 어마어마한 소원지 


안동역에서 약 40분 거리에 있는 하회마을입니다.

주차를 하고 하회마을 (무료)셔틀버스를 타고 하회마을로 갔습니다. 이 버스는 안동역앞에서 만난 버스이기도 합니다. 당시 버스 뒷모습을 보며 버스에 웬 그림했었는데 하회마을 셔틀버스였습니다.



2월달부터 주차요금과 입장료 등에 변화가 있기에 가지고 왔으니 참고 하세요.



하회마을은 2010년 7월 31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역사마을입니다. 하회(河回)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낙동강이 마을을 휘돌아가며 마을을 감싸고 있어 부용대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하회마을의 전경을 볼 수 있습니다. 아침에 다녀 온 무섬마을과 비슷한 형태지요. 

하회마을은 단순한 민속마을이 아니라 하회탈과 하회별신굿탈놀이라는 문화예술적 콘텐츠와 서애 류성룡의 임진왜란 전란사인 '징비록'을 집필한 곳이라는 역사적 콘텐츠도 갖추고 있는 매력적인 곳이지만 저는 처음 방문을 했습니다.

한국의 문화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1999년에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2005년에는 미국 부시 대통령이 방문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하회마을은 아름다운 풍경과 전통문화체험 뿐만 아니라 하회별신굿탈놀이 공연관람, 나룻배 타기, 탈박물관 관람, 안동전통음식 맛보기, 고택 숙박까지 모두 하회마을 안에서 가능하답니다.



버스는 마을앞까지 가지 않았기에 내려서 가루수길을 걸었습니다.



마을에 들어서니 하회마을 안내도가 있었는데, 시간별 여행코스가 있었지만 우리는 무시하고 '하회종가길'을 걸었습니다. 해설사가 안내를 하고 있었는데, 종택을 둘러봐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하회마을은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마을의 고택에는 국보, 보물, 중요민속자료 등 상당한 문화유산이 있지만, 일일이 다 둘러보지 못 하고 아주 부분만 봤습니다.



마을의 전경이나 고택 등은 하회마을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되며, 저는 한옥의 담장이 좋아 담장과 마을 한가운데 있는 삼신당의 목신을 많이 찍었습니다.

- 하회마을 : http://www.hahoe.or.kr/


따스함이 묻어나는 전통가옥의 담장입니다.



주요 전통가옥은 안내표지가 따로 있었습니다.




가마를 타고 출입할 수 있도록 좌우 행랑보다 높게 설치한 솟을대문이 여럿 보였습니다. 이리 오너라 소리가 들리는 듯 하지요.



지붕은 초가지만 담장은 양반가의 담장입니다.



새로 지붕을 이었으며 맞은편엔 솟을대문이 있습니다.



담장입니다. 흙과 들을 켜켜이 쌓은 후 암기와 위에 수기와를 놓은 후 (용)마루로 모양을 냈습니다. 세월도 켜켜이 쌓여 있지요.



이 담장을 돌라가면 삼신당이 있습니다.



헉!

삼신당이라고 하기에 조그마한 사당인 줄 알았는데 목신입니다.

둘레가 엄청나며 더 어마어마한 건 소원지입니다.



나무가 하얀고깔을 썼습니다. 뭐지?



고깔을 쓴 나무는 하회탈 복채함이었으며, 하얀고깔은 소원지였습니다.




하회마을은 우리의 민속신앙이 잘 보존된 곳으로 성황당 국신당과 함께 이곳은 하당인 삼신당입니다.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가 여기서 이루어지며, 하회별신굿 탈놀이의 춤판이 가장 먼저 행하여지는 곳이기도 하고 잉태의 소원을 비는 곳이기도 하답니다.




삼신당을 찾은 여행객들은 소원지에 소원을 적어 새끼줄에 묶거나 끼워둡니다.



한지 띠지와 펜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소원지를 접고 있는 듯 하지요.

마을 주민들의 소원과 여행객들의 소원이 어마어마한 풍경을 만들었습니다.



나무가 워낙 크기에 위를 보니 까치집이 세 개가 있었으며 가지는 하늘을 가렸습니다. 나무는 느티나무며 수령은 600년, 둘레는 54cm, 수고 15m며 관리자는 안동시장입니다.






삼신당 설명입니다.

이곳은 하회마을에서 가장 중앙에 위치해 있다. 류종혜가 입향할 때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수령이 600년이 넘는 나무이며, 마을 사람들이 성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하당으로 불리며, 회산 중턱의 상당서낭당, 중당국사당과 함께 마을 주민들의 소망을 비는 삼당을 이룬다. 정원 대보름 밤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를 상당과 중당에서 지내고, 그 다음 아침에 여기서 제를 올린다.

이곳에서 하회별신굿 탈놀이가 시작된다.


600 여 년간 대대로 주민이 생활의 터전으로 살아온 마을은 현재에도 150여 호가 살아가고 있는 하회마을입니다.

대문이 열려졌으며 여행객들이 유난히 많이 드나드는 고택으로 들어 갔습니다.

우뚝 솟은 솟을대문과 장엄한 분위기가 감도는 보물 제306호인「양진당(養眞堂)」입니다. 양진당은 풍산 류(柳)씨의 대종가(大宗家)로 사랑채에 걸려있는「입암고택(立巖古宅)」현판은 겸암 류운룡(柳雲龍, 1539~1573)선생의 부친인 입암(立巖) 류중영(柳仲영, 1515~1573) 선생을 지칭합니다. 당호인「양진당(養眞堂)」은 겸암 선생의 6대 자손인 류영(柳泳, 1687~1761)공의 아호(雅號)에서 유래하였답니다.

입암(立巖) 류중영 선생의 호를 따서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 부르며, 양진당(養眞堂)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사랑채는 고려 건축양식이며, 안채는 조선 건축양식으로서 고려양식과 공존하는 고택입니다.



임압고택은 실제 거주를 하는지 아궁이에 불이 지펴져 있었습니다.




문충공 서애 류성룡(柳成龍)의 종택 '충효당(忠孝堂 보물 제414호)'입니다. '서애종택'이라고 부르지만, 현재의 충효당은 서애 생존시의 집은 아닙니다. 서애는 현재 충효당이 지어지기 이전의 집에서 소년기와 만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선생이 30여년 몸담은 관직에서 파직당하고 낙향했을 당시의 집은 극히 단출했다고 하며, 선생은 64세 때인 1605년 9월에 하회마을이 수해를 당해 풍산읍 서미동으로 거처를 옮겨 그곳에서 기거하다가 1607년 5월 6일 삼간초옥 농환재에서 타계했습니다.

지금의 충효당은 서애 사후에 지은 집으로 충효당 내에는 영모각이 별도로 건립되어 서애선생의 귀중한 저서와 유품 등이 전시되고 있으며, 바깥마당에 엘리자베스2세의 방문기념식수가 있습니다.





엘리자베스2세의 방문기념식수인 구상나무입니다.




충효당 마당에는 삼층석탑도 있습니다. 이층기단(二層基壇)의 삼층석탑이지만, 3층 몸돌[옥신석(屋身石)]은 새로 만들어 보수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높이는 240㎝ 정도입니다.

중대사 삼층석탑은 본래 풍산읍 서미1리 서미마을의 중대사지(中臺寺址)에 있었던 것입니다. 중대사지의 탑이 이곳에 이건된 이유는 류성룡(柳成龍)선생이 말년에 서미마을에서 여생을 보냈기 때문이며, 류씨 문중에서 이 탑을 이건하였다고 전해집니다.



13대 종부 무안 박씨가 심었다는 충효당 만지송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종택에는 가장 신성한 공간인 불천위 사당과 유물전시관인 영모각이 있는데, 불천위 사당 앞에 있는 가지가 많은 소나무입니다.



다시 담장을 끼고 걸었습니다. 동생네는 보이지 않았으며 얼라아부지가 걱정이 되었는지 주변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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