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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봄비 내리던 날 가천 다랭이마을 봄 풍경

by 실비단안개 2018.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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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일

남해에 도착하여 처음 만난 풍경은 '독일마을'표지석이었지만 비가 많이 내려 정차도 못 하고 원예예술촌으로 갔습니다.

봄비치곤 많이 내렸지만 원예예술촌을 한 바퀴 둘러본 후 유채꽃을 보기 위해 두모마을로 갔습니다. 그런데 유채꽃 축제가 끝난지라 유채밭을 대부분 갈아 엎었으며 비까지 많이 내렸기에 그 누구도 내리자는 말을 하지 않았기에 차창에 서린 김을 손으로 닦아 유채가 조금 남은 다랭이밭을 구경하고 두모마을도 통과했습니다. 예전엔 두모마을이 겨울초로 유명했었는데 이제는 유채꽃 축제를 할 정도로 유채꽃이 유명한 마을입니다.

해안도로를 달려 '미국마을'로 갔는데 역시 내리는 비로 인해 통과했습니다. 독일마을과 미국마을에 비가 내렸으니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비가 내리는 날이라고 말하며 모두 웃었습니다.

평탄치 않은 해안도로를 계속 달려 예정에 없었던 가천 다랭이마을(경남 남해군 남면 홍현리 남면로 679번길 21) 주차장에 주차를 했습니다. 빗줄기가 조금 약해지긴 했지만 비는 여전히 내렸습니다. 가천 다랭이마을도 유채밭을 대부분 갈아 엎었습니다. 유채꽃이 만발할 때 진해는 벚꽃이 만발하기에 남해 다랭이마을의 유채꽃은 영영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천 다랭이마을을 제대로 찍으려면 멀리서 찍거나 하늘에서 찍어야 하는데 단체로 움직이다보니 마음대로 다닐수가 없었기에 오래전 사진을 가지고 왔습니다. 5년전 풍경인데 바다와 다랭이밭 풍경만 같으며 마을의 골목이며 길, 집들은 많이 변했습디다. 이제 유명관광지다보니 정겨웠던 옛모습 대신 상업적으로 변한거지요. 상업적으로 변했다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행객이나 관광객의 편의상 필요한 변화이기도 하니까요.


남해의 가천 다랭이마을은 바다를 끼고 있지만 배 한척 없는 마을입니다. 마을이 해안절벽을 끼고 있는 탓에 방파제는 고사하고 선착장 하나도 만들 수 없다보니 마을주민들은 척박한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지요. 한 층 한 층 석축을 쌓아 만든 다랭이 논(명승 제15호)은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가천다랭이마을 체험은 남해인의 억척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다랭이 논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들쭉날쭉 제 멋대로 생긴 논들이지만 그 사이사이로 산뜻한 산책로와 전망대가 마련돼 있어 편안히 돌아볼 수 있습니다. 다랭이마을의 명물인 암수바위(경남민속자료 제13호)와 밥무덤, 구름다리, 몽돌해변 등을 돌아보는 데 1시간 남짓 시간이 소요되는데, 마을을 돌아보는 동안 안내를 맡은 마을주민에게서 마을 유래에 얽힌 재밌고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습니다.



아주 조금 남은 유채밭에도 비가 내리며, 바다(앵강만)는 하늘과 구분이 거의 되지 않을 정도로 해무가 짙었습니다.



단장된 마을 입구에는 삿갓배미 안내가 허수아비와 함께 있었습니다.

다랭이는 협소한 농지를 뜻하는 순 우리말로, 이 마을 사람들은 '삿갓배미'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다랭이마을은 이름부터 마을의 독특한 유래까지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이지요.

하루는 어떤 농부가 종일 논을 갈다 해가 저물어 집으로 돌아가기 전 자기의 논을 세어 보니 한 배미가 없어졌더랍니다. 몇 번을 세어 보았지만 찾을 수 없어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벗어둔 삿갓을 들었더니 삿갓 아래 한 배미가 있었다는 다랭이논의 일화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작은 땅의 우스갯 표현을 우회적으로 나타냈습니다.

다랭이마을은 2012년 CNN 선정 대한민국 관광명소 3위에 랭크될 만큼 관광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보물섬 내 숨겨져 있던 원석처럼, 아름답지만 알려지지 않았던 다랭이마을은 TV와 인터넷 매체를 타고 소개되면서 사람들이 한 번쯤 가고픈 관광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마을 골목에는 안내표지판이 있으며 00집 이런식으로 문패가 있는데, 통영 연대도의 문패처럼 그 집의 특징을 담은 문패입니다.




다랭이마을에도 박원숙의 커피 & 스토리가 있는데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설 정도였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커피가 더 당기지요.




골목을 돌아돌아 암수바위로 갔습니다. 부녀회원들에게 가천 다랭이마을에서 암수바위 안 보면 다랭이마을 방문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지만, 다들 걷는 게 싫은지 비가 내려서 귀찮아 그런지 저 혼자 갔습니다.

빗소리에 춘백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동백나무 아래에는 붉은 꽃이 소담스레 떨어져 있었습니다. 왼쪽의 긴 바위가 남근석입니다.



가천암수바위는 일명 '가천미륵'이라고도 불리며, 조선 영조27년(1751)에 발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이 고을의 현령인 조광진의 꿈에 한노인이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가천에 묻혀 있는데 소와 말이 자주 밟고 지나가서 견디기 어렵다, 나를 일으켜주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에 현령이 관원들을 이끌고 가천으로 달려가 보니 과연 꿈에서 본 지세와 똑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꿈속의 노인이 가르쳐준 자리를 파보니 지금의 암수바위가 누운채 묻혀 있었는데 바위를 일으켜 세우고 논 다섯 마지기를 헌납하여 제사를 처음 올리게 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바위에 제를 올리고 치성을 드리면 천재지변을 피하고 풍어를 맞이한다고 전해옵니다.

숫바위는 높이 5.8m에 둘레가 2.5m, 암바위는 높이 3.9m에 둘레 2.3m입니다. 선돌(立石)같은 숫바위는 남근 형상이며, 암바위는 아이를 밴 임산부 형상인데 이 가천암수바위는 경상남도민속자료 제1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암수바위 사이의 복전함이 거슬렸습니다.



혼자 타박타박 걸어 주차장으로 갔습니다. 이때 한무리의 구름이 바다에서 올라와 바다와 마을이 사라질뻔 했습니다.

즐겁긴 했지만 비가 내리는 날에는 관광보다 여행이 더 어울리는 날인 듯 합니다. 우산들고 카메라와 렌즈닦이, 렌즈캡을 들고 사진 찍느라 혼났거든요.



늦은 점심입니다. 총무가 어디가 좋겠느냐고 하기에 지족(삼동면 지족리)의 우리식당을 추천했습니다. 우리 부부가 남해에 가서 점심식사를 한다면 가는 그 멸치쌈밥집입니다.

차가 이동할 때 피곤하여 잠시 잠이 들었는데 깨우기에 일어나니 이미 창선대교를 지났기에 다시 돌려 삼동면의 파출소앞으로 가자고 하여 무사히 우리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총 12명이었는데 멸치쌈밥과 갈치찌개를 반반 주문하니 식당에서 알아서 차려주었습니다. 주문을 할 때 지난번엔 짰으니 간을 삼삼하게 해 달라고 했더니 간이 잘 맞았으며, 부녀회회원들 모두 맛있게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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