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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웠던 무섬 외나무 다리 드디어 건너다

by 실비단안개 2018.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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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무섬마을 마당 넓은 집에 짐을 푼 후 장거리운전으로 지친 얼라아부지는 사랑채에서 쉬고, 작은 아이는 별채에서 샤워후 쉬기로 했으며 큰 아이와 저는 내성천을 가로 지르는 외나무 다리로 갔습니다.

350년 전 반남박씨가 무섬에 자리를 잡았으니 외나무 다리는 지난 350여년간 마을과 뭍을 이어준 통로로 애환 어린 추억의 역사를 지녔지만 지금은 영주의 여행지며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길이기도 합니다.

외나무 다리의 길이는 약 150m로 그 전에 직선이었는데 다리가 'S'자가 된 것은 불과 10년 전이라고 합니다.

30년 전만 해도 마을 사람들은 나무를 이어 다리를 놓고 내성천을 건너 뭍의 밭으로 일하러 갔으며, 장마가 지면 다리는 불어난 물에 휩쓸려 떠내려갔고, 마을사람들은 해마다 다리를 다시 놓았다고 합니다.

책보를 메고 학교 가는 아이, 장가가는 새신랑, 꽃가마 타고 시집오는 새색시, 황천길로 가는 상여도 어김없이 이 외나무다리를 건넜는데, 1979년 현대적 교량(수도교)이 설치되면서 사라지게 된 이 다리는 마을 주민과 출향민들이 힘을 모아 예전 모습으로 재현시켜 놓았으며, 매년 10월 9일~10일 양일간 축제가 펼쳐집니다. 축제는 외나무다리에 얽힌 애환을 기리며 무섬마을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을 외나무다리와 함께 보여주며, 마을대항 씨름대회와 농악한마당, 사또행차, 과객 맞이하기, 참석자 전원 다리 건너기 체험 등이 마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외나무 다리 건너편의 낮은 산이 겨울에 비해 풍성해졌으며, 내성천을 흐르는 수량도 겨울보다 조금 더 풍부해졌습니다. 지난 겨울 무섬증으로 이 다리를 건너지 못 하고 올케가 건너가서 마을쪽의 풍경을 찍어 주기도 했는데 지금은 건널 수 있을까요.

 

 

다리 중간즘에서 아래의 그림처럼 외나무 다리에 앉아 보고 싶습니다.

 

 

큰아이가 앞서 걷습니다. 수량이 지난 겨울보다 풍부하긴 했지만 폭염으로 여름치곤 물이 많지 않았습니다. 여행객들은 내성천에 들어 가서 걷기도 하며 건너편에 야영 천막이 있기도 했습니다. 물은 깊지는 않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물은 무섭습니다. 혹여 빠질까봐서요. 내성천에 빠져 몸이 젖는 건 괜찮지만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져 있으며, 어느해 눈밭에 미끄러져 카메라를 보호하기 위해 오른팔을 들었더니 왼팔이 몸에 눌려져 팔목이 골절되었기에 넘어지는 데 대한 트라우마가 있기에 평지외에는 걷는 게 조심스럽습니다.

경은아 못 가겠다~ 하니 아이가 되돌아 와 손을 잡아줄까 카메라를 대신 들어 줄까 하기에 카메라를 아이에게 건네고 조심조심 걸었습니다. 외나무 다리의 폭은 약 30cm로 통나무를 반으로 갈라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여 만든 다리입니다.

옛날 할머니들은 꽃가마를 타고 이 다리를 건너 무섬마을로 시집을 와서 일생을 무섬에서 살다 죽어서 꽃상여를 타고 무섬을 나갔다고 했습니다. 다리의 폭이 30cm니 가마꾼과 상여꾼은 내성천에 다리를 담그고 걸었을 듯 하기에 겨울이나 여름에 꽃가마나 꽃상여를 메고 이 다리를 건너는 일은 아주 곤혹이었을 듯 합니다.

아마 제가 무섬마을에서 태어 났더라면 다리를 건너는 게 무서워 학교도 못 다녔으며 뭍으로 외출도 하지 못 했을 듯 합니다.

 

 

외나무 다리 중간쯤인가 봅니다. 슬림온을 벗었습니다. 아무래도 맨발이 덜 위험할 것 같아서요. 그래도 걸음걸음 무서웠기에 조심스레 걸었습니다. 그렇지만 외나무 다리 윗쪽도 봤으며 아랫쪽을 보는 여유를 가졌습니다. 우리를 무섬으로 건너오게 한 고마운 수도교가 보이며, 아랫쪽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으며 조금 더 내려가면 또 하나의 외나무 다리가 있는데 그 다리는 왕래가 뜸한지 입구에 수풀이 그득했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리에 걸터앉아 인증샷을 남겼으며 다리를 건너기전과 건너고 있는 컷도 남겼습니다. 큰 아이가 카메라 때문에 못 건너군, 잘 걷네하며 용기를 주었습니다.

 

 

외나무 다리를 건너면서 뒤돌아서 걷는 사람들의 풍경을 찍는 여유도 가졌습니다. 다른 이들도 맨발이군요.

 

 

외나무 다리를 드디어 건넜습니다.

 

 

큰 아이가 돌아 갑시다 하기에 다시 못 건널 것 같다며 다리윗쪽의 둑으로 갔습니다. 그곳으로 가면 수도교로 돌아갈 수 있을 듯 해서요. 무섬마을 건너편의 둑방은 사람의 왕래가 없는지 잡풀이 어른 키만큼 자라 있었으며 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비슷한 시각 다리를 건넌 남자분이 차에서 내리기에 걸어 갈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하고 물어보니 차를 타야 하는데 비잉 둘러서 왔다고 했습니다.

도리없이 우리는 다시 외나무 다리를 건너야 했습니다.

 

 

 

조금은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다시 다리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건너 갈 때 보다는 안정이 되어 있었기에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무사히 외나무 다리를 건너 마을로 왔습니다.

무섬마을 만죽재에서의 어린시절 이야기와 무섬마을 이야기를 다룬 '종갓댁 아씨'를 시청할 때 이미자의 '아씨' 노래가 중간중간 흘렀습니다. 그 노래가 참 잘 어울리는 마을이 무섬마을이며 외나무 다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흑백 텔레비젼 시절 드라마 '아씨', 이 노래를 안다는 건 나이가 많다는 겁니다.

시골인 우리집에 텔레비젼이 있었던 이유는  막내 삼촌(작은아버지)이 월남 파월장병이었었는데 월남에서 돌아올 때 큰나무 상자에 담긴 일제 텔레비젼을 선물로 가지고 왔었습니다. 하여 텔레비젼 드라마는 '여로'때 처음 시청했지만 아씨 노래는 이미자 팬이라 잘 압니다.

'아씨'는 1970년 3월 부터 일년 가까이 방영된 드라마로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고 합니다.

유튜브에 '아씨'노래가 있기에 가지고 왔습니다.

 

옛날에 이 길은 꽃가마 타고 / 말탄님 따라서 시집 가던 길 / 여기던가 저기던가 / 복사꽃 곱게 피어있던 길 / 한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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