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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마 타고 건너 와 꽃상여 타고 나간 무섬마을 여름풍경

by 실비단안개 2018.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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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우준아빠의 찜이야'에서 영주 무섬마을까지는 11.2km였으며, 자동차로 약 20여분 걸렸습니다.

지난해 12월 7번 국도여행시 영주에서 하루 묵고 오전에 무섬마을을 구경하며 걸었는데, 당시 거두지 않은 꽃대들이 골목에 있었기에 봄이나 여름에 무섬마을을 한 번 방문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생각이 아이들 덕분에 옮겨졌습니다.

우리는 고택에 짐을 풀고 무섬마을 외나무 다리와 마을 골목을 걸었습니다.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낙동강 줄기에는 강물이 산에 막혀 물돌이동을 만들어 낸 곳이 여럿 있는데,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 하여 무섬마을이라 불리는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무섬 마을은 중요민속문화재 제278호(2013.08.23 지정)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물돌이마을입니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과 영주천이 합수되어 태백산과 소백산 줄기를 끼고 마을의 삼면을 감싸듯 휘감아 돌아 마치 섬처럼 육지속의 섬마을로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채 살아가고 있는 마을입니다. 강변에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그 건너편으로는 울창한 숲이 있어 경관이 아름다운 이 무섬마을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중반으로 반남박씨인 박수가 처음으로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이후 조선 영조때 그의 증손녀 사위인 예안(성선)김씨인 김대가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반남박씨와 예안김씨 두 집안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약 48가구에 1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데, 가옥중 38동이 전통가옥이고, 16동은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으로 여러 가옥이 민박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영주 무섬마을은 오래전 드라마 추노의 촬영장소이기도 하며 옥중화를 촬영하기도 했고, 시골경찰을 이곳에서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2월 설특집 타큐로 KBS에서 '종갓집 아씨'를 방영했는데 얼마후 재방송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채널을 돌리다보니 어' 무섬이네하며 고정을 하여 (본방송)시청을 했는데, 오래전 드라마 주제곡인 아씨가 흐르며, 삼대에 걸쳐 만죽재에서 태어난 여섯 딸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사연을 통해 가족의 정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조명했습니다.

 

만죽재는 무섬마을에 처음 뿌리를 내린 집으로, 지금은 안동의 의성 김씨 종가에서 태어나 스무 살에 꽃가마 타고 외나무다리를 건너 시집온 11대 종부 김시해(80) 할머니가 홀로 지키고 있는데, 모두 한 방에서 태어났다는 만죽재의 여섯 딸들, 할머니의 시누이와 딸, 손녀들이 만죽재를 방문하여 무섬마을과 어린시절 만죽재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했습니다.

한 정지에서 8촌까지 난다고 했으며 예전에는 대가족이었으니 한 방에서 3대가 태어났다고 하여 이상할게 전혀 없지만 독신가정이 많은 요즘은 아주 옛이야기로 들릴겁니다. 

무섬마을은 물도리마을이다보니 마을로 드는 길과 나가는 길이 외나무다리 하나였던 시절,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은 무섬마을로 시집올 때 꽃가마를 타고 와서 일생을 무섬에서 살다가 죽어서야 꽃상여를 타고 무섬마을을 떠날 수 있었으니 자신의 인생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세상이 변하여 지금은 다리가 놓여 버스가 무섬마을까지 들어가며, 여행지가 되어 하루에도 수많은 차들이 무섬마을을 찾지만, 그 옛날 무섬마을의 상징인 외나무 다리는 지금도 놓여 있는데 이제 무섬마을 출입을 위한 다리가 아닌 여행상품이 되었습니다.

 

 

영주 무섬마을 여름풍경입니다.

수도교를 건너면 마을입구에는 이정표가 있으며 이정표 아래의 집이 낮시간에 방문한 선비촌에서 만난 해우당입니다.

 

 

우리가 하루 묵기로 한 마당넓은 집입니다. 넓은 마당에는 주차가 가능하며 천일홍이 가득 피어 있었습니다.

 

 

참깨밭에 싸인 무섬자료전시관입니다.

 

 

참깨밭 옆에는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있었기에 마치 어린시절로 돌아 가 동네를 한 바퀴도는 듯 했습니다.

 

 

지난해 겨울 우리가 밤중에 무섬마을로 가서 하루 묵을 수 있을까 하며 본 민박인데, 8월 방문시에는 폭염이었지만 그때는 영하의 기온이었기에 방문을 열어보니 도저히 묵을 수 없어 영주시내 모텔에서 하루 묵었습니다. 마을을 돌아 다니다보니 그 집이 이 집이었습니다.

 

 

무섬마을의 가정과 골목길에는 그 옛날 시골처럼 다양한 꽃들이 피어 있었습니다. 겨울 그때 거두지 않은 꽃대를 보고 다시 오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방문하니 역시 잘 왔구나 싶었습니다.

 

 

 

폭염의 날씨였다보니 골목의 꽃을 만나기에는 다소 늦은 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알뜰히 골목골목을 돌았습니다.

해바라기, 봉숭아, 접시꽃, 설악초, 맨드라미, 낮달맞이꽃, 백일홍 등 다양한 꽃을 만났으며 마당에 있는 텃밭을 기웃거리기도 했습니다.

 

 

 

 

 

 

만죽재도 선비촌에 있지만 낮시간 너무 더웠기에 해우당만 확인했었는데 무섬마을의 해우당입니다.

해우당 고택은 김씨 입향조 김대의 셋째집 손자 영각에 의해 건립되었는데, 경북 민속문화재 9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해우당은 무섬마을로 들어가는 수도교를 건너자 마자 바로 왼편으로 보이는 가옥입니다. 해우당 고택에 있는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글씨라고 합니다. 안채에는 역시 흥성대원군이 쓴 '대은정'이라는 현판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무섬마을의 전통 기와가옥은 'ㅁ'자형으로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전형적인 양반집 구조를 띠는데, 대문을 들어서면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 등이 사방을 둘러싸듯 배치되어 있어 대문 밖에서는 집안의 생활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무섬마을 전통가옥은 사랑채와 안채로 드나드는 문이 따로 있고, 안채를 사랑채보다 높게 지어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 되게 하는 것이 특징인데, 유교적 격식을 엄격하게 거주환경에도 적용한 결과라고 합니다.

안채와 달리 사랑채는 밖에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무섬마을 전통가옥들은 그 집 주인의 신분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사랑채의 기둥을 차별화하였는데, 같은 양반이라도 벼슬한 사람이 거처하는 집의 사랑채에는 원기둥을, 벼슬을 못한 사람은 각진 기둥을 세웠습니다.

집주인의 신분에 따라 사랑채 모양을 달리한 무섬마을의 고가(古家)는 대부분 서남향으로 북동쪽에서 서남쪽으로 흐르는 산맥의 정기를 고스란히 이어받기 위해 가옥을 배치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해우당은 수도리에서 규모가 가장 큰 집입니다.

 

 

 

관광안내소도 전통마을답게 기와입니다.

 

 

마을지도가 있어야 할 정도로 이 골목도 저 골목같고, 또 다른 골목으로 들어 가더라도 마치 방금 돌아온 그 골목길 같습니다.

 

 

 

 

무섬 전통 메주, 된장, 청국장을 담그는 집의 12월과 8월 풍경입니다. 마당의 장독대에는 잎이 넓은 토란이 조금은 시원하게 했습니다.

 

 

오후 7시, 무섬마을에 불이 들어 왔으며 하루 종일 날개짓을 한 까치도 쉬고 있으니 우리도 쉬어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들린 가옥은 '종갓집 아씨'의 무대였던 만죽재입니다.

무섬마을의 대부분의 고택에서는 한옥체험이 가능합니다. 겨울이면 군불을 지펴 고구마 등을 구워 먹을 수 있고, 너른 마당에서 뛰어 놀수도 있어 어릴적 추억을 소환할 수 있으며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입니다.

만죽재 역시 옛 가옥 체험이 가능한 공간인데, 지난 겨울에 툇마루 아래에 장작이 그득했었는데 많이 비워졌기에 다시 정면 풍경을 찍었습니다.

 

 

만죽재의 겨울과 여름 풍경입니다. 겨울에 닫혔던 문들이 열려 있습니다.

 

 

만죽재의 화장실입니다. 무섬마을의 화장실은 독으로 있었는데 화장실 지붕도 양반가답게 기와입니다.

 

 

외나무 다리로 가는 둑방에서 본 무섬마을입니다.

 

 

해가져도 여행객들은 외나무 다리에서 떠날 줄 몰랐으며 둑방에는 자전거를 타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쉬었다 가게'

우리가 하루 쉴 공간이 있는 가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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