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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없는 웅천왜성의 표지판

by 실비단안개 2006.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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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왜성 : 경남 진해시 남문동 남산 정상

           진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군항도시로 임진왜란 때의 명장인 이순신장군과 관련된
           문화유적이 많다. 반면 왜군이 만든 유적도 있으니 그것이 웅천왜성이다.
           웅천왜성은 남문동의 남산(해발184m) 산봉우리에서 능선을 따라 산기슭까지 뻗친 석
           성으로  임진왜란 때인 1593년 소서행장이 구축하여 수비하던 곳으로 정유재란에 재
           침하여 다시 구축하였다고 한다.
           성내의 넓이는 약 5,000여평 정도이고 성벽의 둘레는 1,250m, 높이는 3~8m에 이른다. 
          

지정번호 : 경남기념물 제79호
지정연도 : 1985년 1월 14일
소재지 : 경남 진해시 남문동 산211-1번지
시대 : 조선 중기
면적 : 17,930㎡
분류 : 성지(성곽)

1985년 1월 14일 경상남도기념물 제79호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 남해안에 왜군들이 축조한 18개 왜성 가운데 하나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진을 치고 왜군의 제2기지로 활용하던 곳이다. 남산왜성(南山倭城)이라고도 하며 그 동안 증, 개축은 없었다.

구조는 일본식으로 복잡하게 축조되었고 정상부에 본성(本城)을 두고 점차 산록을 따라 이지성(二地城)·삼지성(三地城)이 질서있게 배치되었다. 육지로의 방비를 철저히 하기 위해 남쪽으로 긴 나성(羅城)을 두었고, 성내 면적은 1만 7,930㎡이고 성벽 높이는 3∼8m에 이른다. 현무암과 청석을 써서 쌓았는데 큰 것은 1.5m×1.5m×2m에 이르는 것도 있고, 현재 남은 성벽 길이는 700∼800m이다. 해안의 선박과 연락하기 위한 통로가 있으며 양 측면에 외호(外壕)가 남아 있다.

 

                                         오른편으로 오름

 

진해는 일본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지역이다. 안골리왜성, 제덕토성, 웅천왜성등이 있는데 웅천왜성을 다녀왔다.

해발 184m의 남산을 통신탑의 공사로 황토흙이 좋은 넓은 길을 따라 올랐다.

 

중간쯤 오르면 다시 이정표가 있으며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지역의 역사 한페이지를 답사하는 마음으로 올랐다.

 

웅천왜성에 도착하였다.

신항 공사중인 수도는 뱃길 대신 도로가 생겼고 깊은 바다는 소금밭이 되어 빛났다.

개발이란 명목으로 사라져야 하는 자연에 마음 한구석이 그늘이 지는데 성벽 안쪽을 보니 두개의 무덤이 있었으며 놀랍게도 시눗대가 성벽 양쪽으로 아주 많았다.

 

이름없는 조선 처녀의 무덤일까, 부모 계시지 않는 왜군의 무덤일까, 무덤에도 시눗대는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백산 기념관을 다녀오고, 코스프레를 취재하고, 막사발을 찾아 웅천요를 방문하고 군항제를 맞아 벚꽃을 담으면서 나는 가까운 나라 일본을 많이 생각하였다.

우리땅 독도가 왜 외교 협상에 올라야 하는가...... .

 

성벽 양쪽의 많은 시눗대들은 화살로 만들어져 우리 선조들의 가슴을 뚫었겠지.

우리도 시눗대로 화살을 만들어 일본인들 가슴에 꽂을까.

이 지역의 얼마나 많은 처녀들이 그들에게 희생되었으며 도공들이 수난을 당했을까.

 

지금 일본인 그들은  선조들의 만행을 알까?

 

마음에 바람이 쉼없이 들락거렸다.

 

                                            무덤과 주위의 시눗대

                                       성벽 양쪽으로 심어진 시눗대

 정상으로 오르는 벽은 높기에  나는 돌계단으로 내려 다른길로 올랐다.

 

아픈 역사가 있는 정상이다.

그런데 디카를 아무리 조절하여도 제대로 맞춰지지 않아 가까이 다가가 표지판들을 확인하였다.

부모님이 몇년생인지는 계산을 하여야 답이 나오지만 임진왜란이 1592년에 일어 났다는 것은 국사를 배운 우리나라 국민이면 저절로 년도가 나온다.

1985년에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어 표지판이 세워졌으면 겨우 20여년 조금 지났는데 바람 많은 바닷가 산 정상의 표지판은 시멘트가 떨어져 들려졌다.(실제 들어짐)

 

역시 표지판은 돌 위에 올려져 있었으며 흔들렸다.

쓰러져 없어지기전에 한번 읽어 보기나 하자.

16세기 왜성 연구에 좋은 자료?

                                                              흔드는 모습

표지판 주위에는 무엇을 측량하였는지 풍향계인지가 쓰러지는 중이다.

윗쪽의 비스듬한 세개의 쇠기둥 역시 흔들렸는데 어디에 사용하였으며 누가 사용하였는지 궁금하다.

아래의 통모양 기둥은 흔들리지도 뽑히지도 않았다.

경상남도 기념물이라면 경상남도와 진해시가 공동으로 관리하여야 하는게 아닐까?

 

오를때와는 반대 방향으로 내려 오는데 흔적 남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성벽에 이름을 새겨 두었다.

좋은 일을 하고 이름을 남기면 좋을텐데.

 

왜성은 부분 허물어졌지만 생각외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일본인들이 웅천왜성을 다녀가면 일본의 역사책이나 그 외의 책에 그들은 어쩌면 이렇게 기록하지 않을까?

"한국의 진해에 있는 웅천왜성은 우리 선조들의 빛나는 역사 현장이다. 우리 선조가 축조한 돌성은 몇백년이 지나도 잘 보존 되어 있었지만 한국에서 세운 기념물 표지판은 30년이 되지 않았는데 흔들리며 관리가 엉망이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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