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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 가는 산새 350년 너와집과 주인

by 실비단안개 2007.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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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집

너와집이란 굵은 소나무를 도끼로 잘라 널판을 만들고 이것들을 지붕에 이어 만든 집을 가리킨다. 지붕 위에는 작은 삼각형 모양의 구멍(까치구멍)을 내어 집 안의 연기를 밖으로 뽑을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이들 집은 안동지방에서 까치구멍집이라 속칭되는 유형의 평면과 비슷하여 그 가치가 높다.

강원도에서는 느에집 또는 능애집이라고도 한다. 너와는 200년 이상 자란 붉은 소나무 토막을 길이로 세워 놓고 쐐기를 박아 쳐서 잘라낸 널쪽으로,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가로 20~30 cm, 세로40~60 cm이며 두께는 4~5 cm이다.
이것을 지붕에 덮을 때는 용마루 쪽에서부터 끝을 조금씩 물려나가며 판판한 나무를 30 cm 쯤의 너비로 가로 놓고 이를 의지해서 잔나무를 촘촘하게 붙여서 천장으로 삼으나, 부엌이나 마구 등에는 이것이 없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굴뚝으로 빠지지 못한 연기가 너와 사이로 나와서 불이 난듯한 모습을 보인다.

너와를 덮은 다음에는 군데군데 냇돌을 얹어서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한다. 너와는 70장이 1동으로,1칸 넓이의 지붕에 1동 반에서 2동이 들어간다. 수명은 5년이며 기와 지붕을 수리할 때처럼 필요에 따라 썩은 것을 들어내고 새 것으로 갈아 끼운다.

너와집은 귀틀집이나 샛집처럼 화전민이나 산간지대의 주민들이 짓고 사는 집으로, 볏짚과 갈대등이 귀한 지역이다보니 붉은 소나무를 자른 널판으로 지어졌지만, 지금은 다양한 건축자제의 개발로 그 자취를 감추며 강원도 도계와 대이리에 남은 너와집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강원도 삼척 대이리 너와집 (중요민속자료제221호)

 

종목 : 중요민속자료 제221호

명칭 : 삼척 대이리 너와집(三陟大耳里너와집)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지정일 : 1989.03.07

소유자 : 월정사

관리자 : 이종옥

 

동서로 길게 뻗은 계곡의 서측 산등성이 아래에 자리잡은 너와집으로, 현 소유주의 11대조가 병자호란(1636)때 이곳으로 피난와서 지은 것이라 한다. 동남향한 너와집의 왼쪽에 굴피로 지붕을 이은 곳간채가 있고 남쪽에 측간이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가운데에 마루와 도장방이 있고, 좌우로 사랑방과 안방이 있다. 안방과 사랑방 구석에는 관솔가지를 태워 난방과 조명의 역할을 하는 코클이 있다. 마루와 부엌 앞쪽에는 흙바닥으로 된 통로 같은 공간이 있고, 대문간 왼쪽으로 외양간채를 붙여 돌출시켰다. 외양간의 위는 다락을 꾸몄다. 부엌문을 열고 나가면 안마당이 있고, 마당에 한데부엌으로 솥 하나를 걸어놓았다. 벽은 흙벽이나 남쪽벽은 판자벽이고, 지붕은 널판으로 이은 너와집이다. 내부의 지붕속은 그대로 개방하여 집안의 연기들이 지붕 양쪽 까치구멍으로 나가도록 되어 있다.

코클·시렁·뒤주 등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설비들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지금 남아 있는 너와집 중 가장 오래되고 보존상태도 양호한 자료이다.

 

너와집은 병자호란(丙子胡亂)(1636년경)시 건축된 것으로 창건연대가 거의 확실하며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화티와 두둥불은 철거되었으나 코클 시렁 뒤주 등 옛 생활모습을 들어내주는 설비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현 대이리 너와집 주인 이종옥씨(당 67세)의 11대 선조가 350여년전인 병자호란(1636)때 경기도 포천에서 이곳으로 피난해와서 현재의 너와집을 짓고 정착하였다 한다. 현주인 이종옥씨는 88년도에 포천에 가서 12대 선조묘소를 참배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것은 사실이라 믿어진다.

특히 이곳은 깊은 산골로서 6.25동란을 모르고 지낼만큼 외부와 두절된 곳이었으나 최근의 도로개통과 더불어 외부세계와 연계된 만큼 너와집의 환경으로 적절한 곳이다. (출처 : 문화재정보센터 -
http://info.cha.go.kr/)

 

 

대이리 너와집의 주인

환선굴 입구에는 산나물과 약재등을 판매하는 할머니들이 계시며, 밥집도 몇곳이 있다. 그 가운데 놓치기 쉬운 낡은 집이 있는데, 굴피집과 너와집이다. (굴피집을 먼저 방문하였으며, 사진은 따로 올림.)

 

굴피집을 나와 몇발자국 걷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화전민의 전통 밭인 비탈 감자밭이 있었으며, 밭으로 가는 길목에 너와집 안내 표지판도 있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할머니께서 손빨래 중이었기에 인사를 드리고 가족들과 집 구조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주인 할머니께서는 정신이 약간 혼미하여 나이와 이름등도 기억하지 못하였으며, 슬하에 아들 셋과 딸이 하나 있다는 건 말씀하여 주었다.

 

이연학 할머니는 문화와 의료 혜택등을 받지 못하다보니 치아가 연세에 비하여 많이 상한 탓에 나이가 들어 보였지만 미소만은 아주 해맑았다.  할머니께 웃는 모습이 해맑아 좋으니 한껏 웃어 달라니 치아가 빠져 웃기 싫다고 하였는데,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너와집과 감자밭등을 담고 너와집 입구의 밥집 아저씨에게 너와집에 대하여 여쭈니, 350년 된 집이며, 할아버지는 정신을 놓고 나가셨으며, 할머니와 4남매가 있지만, 아들 두 분은 함께 기거하며 그 중 한 분은 골피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른 한분은 이웃 일들을 도우며 생활을 한다고 하였다.

할머님은 올헤 63세의 이연학 할머니고, 생활비는 정부의 보조금과 가옥이 민속자료다보니 나오는 지원금으로 생활을 한다고 하였다.

  

 

▲ 수줍음에 고개를 숙이는 이연학 할머니

 

 

너와집의 이모저모 

▲ 대이리 너와집

 사진 오른편의 바지랑대 아래의 문이 �힌 부분이 외양간으로 사용된 곳이지만 지금은 농기구를 보관하는 곳이며, 가운에 문이 열린 곳이 부엌인데, 부엌은 가운데 특별한 칸막이는 없지만 두개의 부엌처럼 보였으며 앞쪽의 부엌에는 쇠죽을 끓이던 솥인지 상당히 큰 가마솥이 있었으며, 안쪽 부엌의 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만나는 가마솥 크기였다.

 

 

▲ 부엌에 있는 마루

 

▲ 부엌 중 한데부엌의 가마솥 - 사진으로 보아 크기가 짐작이 되지 않겠지만 실제 이 가마솥은 아주 크다.

 

▲ 뒤안 - 통풍을 위하여 부엌에는 문이 세개였으며, 방 역시 출입문 외에 따로 문과 봉창이 있다.

 

▲ 지붕 - 지붕 전체가 나무로 되었으며 이음흙은 없다. 그렇지만 비는 새지 않는다니 놀라웠다.

 

▲ 안방문 - 방문과 봉창의 낮이가 같기에 방문을 열어보니 예상처럼 방바닥이 아래로 꺼져 있었다. 봉창의 작은 유리로 집안의 출입객과 날씨 정도를 살핀다.

 

▲ 안채의 외양간 옆의 화장실인데, 비를 맞지 않게 이음이 있다. 

 

▲ 까치구멍 - 집안의 연기가 나가는 구멍이다.

 

 

 

▲ 할머니는 계속 손빨래 중이시다.

 

 

▲ 아랫채 옆으로 비탈 감자밭이 꽃을 피웠다.  

 

▲ 환선굴로 향하는 길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작약꽃 너무 울 안에 쉬어가는 산새처럼 너와집이 살풋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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