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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맑은 사진 - 꽃과 …

봉선화 - 봉숭아

by 실비단안개 2007.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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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화 

 
봉숭아라고도 함.
봉선화과(鳳仙花科 Balsaminaceae)에 속하는 1년생초.
꽃의 생김새가 마치 봉(鳳)을 닮아 봉선화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책에는 봉선화로 되어 있는데, 이 봉선화가 봉숭아로 발음된 것 같다. 부녀자들이 언제부터 손톱을 물들이는 데 봉선화를 사용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 충선왕 때 손톱에 봉선화를 물들인 궁녀에 대한 전설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 같다. 봉선화꽃을 백반과 함께 짓이겨 손톱에 동여맨 후 하루가 지나면 곱게 물든다.

한국에서 옛날부터 자라던 종류로는 물봉선과 노랑물봉선화가 있는데, 이들은 산이나 들의 습지에서 흔히 자란다.
 

<울 밑에선 봉선화> 노래는 우리 근대가곡 제1호에 해당한다. 홍난파 선생은 최초로 일본에 건너가 서양음악을 공부한 분이다. 그가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어린이들이 부를 수 있는 곡을 만든 것이라한다. 그 첫번째 것이 '울밑에선 봉선화'라는 말이었다. 어린이들이 노래를 불러야한다. 그런데 그네들이 부를 노래가 없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당대의 문인 친구들에게 노랫말을 부탁해서 어린이노래 만들기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1921년의 일이라 하였다. 그 뒤 `반달', `나의 살던 고향'등 수많은 곡들이 만들어졌다. 

 

`울밑에선 봉선화'는 우리아이들에게 노래를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홍난파선생의 애국애족의 간절한 마음 씀에서 생겨난 생명의 나무와 같은 것이었다. 그 생명의 나무는 점점 자라서 온 나라에 번져 나갔는데 나라잃은 설움에 편승하여 망국가처럼 퍼져나갔다한다. 
 

 마침내 일본사람들은 봉선화를 금지곡으로 지정하였다. 성악가 김천애선생은 만주땅 조선족들을 찾아다니며 목이 터져라 봉선화를 불렀다는 것이었다. 나라를 빼앗기고 나라를 등진 이국땅 동포들이 봉선화노래를 부르면서 서로 부등켜 울었다는 말을 듣고는 세월은 흘렀어도 가슴이 찡해지는 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요즈음은 어쩐일인지 아이들의 노래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배우지를 않는 것인지, 부를 노래가 없어서인지, 노래할 여유가 없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최종태(조각가·서울대명예교수)

 

 

봉선화 - 김형준 작사 홍난파 작곡

 

울밑에선 봉숭아야 네모양이 처량하다

길고긴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어언간에 여름가고 가을바람 솔솔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모양이 처량하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영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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