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7월 11일) 청도역에서 밀양행 기차표를 구입하고 기차를 기다리는데, 역시 기차를 기다리는 남자분들께서 말씀하셨다.
옷이 왜 그래요?
(난감한데 어째 많은분들이 관심을 가지시나이까 - )
그래도 난 먼길이었기에 밀양행을 접을 수가 없었다. 일찍 다녀오고 싶은 밀양이었는데, 영화 '밀양'이 미디어를 계속 장식하다보니 내가 그 흐름에 동조하는 느낌을 다른분들에게 줄까봐 선뜻 나서지 못하였는데, 청도행과 함께 감행한 것이다.
십사오년전인가, 작은늠이 영남루의 큰 은행나무 아래에서 샛노란 은행잎을 하나 둘 줏었다. 언젠가 나의 블로그 프로필란에 그 사진을 스캔하여 올리기도 하였는데, 그 앙증, 새침한 모습과 무봉사 아래의 낙엽 소복한 길이 그리워 밀양역을 빠져나와 버스편으로 영남루로 갔다. 얼마전에 게시물인가 댓글에서 걷고 싶은 산길이 무봉사 아래의 그 숲속길이다.
남천강(밀양강)을 건너면서 기사아저씨께서 영남루를 가르키며 "알겠지요"하셨다.
내가 그리는건 남천강도 아니고 영남루도 아니다. 비롯 푸른잎이지만 은행나무를 만나야하고 숲속길을 걸어야 하기에 영남루로 가는것이다.
영남루
누(樓)란 건물의 사방을 트고 마루를 높여 지은 집으로 일종에 휴식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밀양도호부 객사에 속했던 곳으로 손님을 맞거나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고려 공민왕 14년(1365)에 밀양군수 김주(金湊)가 통일신라 때 있었던 영남사라는 절터에 지은 누로, 절 이름을 빌어 영남루라 불렀다. 그 뒤 여러 차례 고치고 전쟁으로 불탄 것을 다시 세웠는데, 지금 건물은 조선 헌종 10년(1844) 밀양부사 이인재가 새로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기둥은 높이가 높고 기둥과 기둥 사이를 넓게 잡아 매우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건물 서쪽면에서 침류각으로 내려가는 지붕은 높이차를 조정하여 층을 이루고 있는데 그 구성이 특이하다. 또한 건물 안쪽 윗부분에서 용 조각으로 장식한 건축 부재를 볼 수 있고 천장은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이다.
밀양강 절벽의 아름다운 경관과 조선시대 후반기 화려하고 뛰어난 건축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누각이다.
배롱나무꽃이 아름다운 곳은 부산 시립박물관과 진주의 진주성인데, 영남루를 배경으로 배롱나무의 하얗고 분홍인 꽃잎이 강바람에 한들거린다. 이미 비는 그쳤고 시간이 오후라 나는 지치기 시작하였지만, 배롱나무꽃을 보며 생기를 찾아 웃었다.
▲ 영남루
▲ 사명대사 동상
▲ 음악인 박시춘 님의 흉상과 노래비 - 예전에는 노래가 흘렀는데 어제는 노래가 흐르지않았다. - 애수의 소야곡
▲ 박물관앞의 쉬는 공간
무봉사 아래의 숲길이다. 간혹 모기가 날았지만 걸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 아랑사 - 전설은 모두 알테니 생략.
▲ 아랑사의 대나무숲이 으시시하였다.
아랑사를 내려 남천강(밀양강)가를 걸었다. 도시가 있고 강 위로 기차가 자주 오갔으며, 더러 강가를 거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잠시 강가에 앉았다. 네잎크로바가 있다. 제법 많이.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 정채봉
모래알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풀잎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너를 생각하게 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어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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