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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즐거우면 더 좋지 아니한가!
마음 나누기/끌리면 읽기

그리우면 만나라!

by 실비단안개 2008.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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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 > 끌리면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 있어도 훤히 보이는 네 속 …

 

 

 

  향수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절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ㅡ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ㅡ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ㅡ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ㅡ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ㅡ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까치설날 / 박해옥

  민들레 풀씨로 날아갔던 자식들이
  꽃 몇 송이 환하게 피워 앞장세우고
  마당귀로 들어서는 까치설날

  아픈 다리 같은 막내딸도 이름자 큼지막한 아들도
  구두를 벗고 고향집 아랫목에 들면 모두 아이가 된다
  마당 쪽에서 어무니 삐삐
  부엌 쪽에서도 어무니 삐삐
  예제서 천세나게 불리니
  하아! 날개가 돋친 구순의 어머니
  놀부가 흥부네 화초장 뺏어지고 가는 걸음새다

  고방채 추녀 끝에 한 풍경 내걸렸다
  명문세도가 조 아무개 후손들이
  대꼬챙이에 아가미가 꿰어서도 꼿꼿한 저 기품
  바람이 지날 적마다 비릿한 파도 소리를 낸다

  현관식구도 대만원이다
  문수가 없는 꼬까신부터
  보트만한 운동화에 구두까지
  몇몇은 모로 눕고  몇몇은 업어져서
  한품의 형제답게 잠든 모양새 정겹다

  청랑한 밤기운에 불려나가
  식혜 한 대접 들고 장간에 서니
  볍씨 같은 밤별이 내려와 밥알로 동동 뜨는
  섣달그믐밤

 

 

 

  어머니와 설날 / 김종해

 

  우리의 설날은 어머니가 빚어주셨다

  밤새도록 자지 않고

  눈 오는 소리를 흰 떡으로 빚으시는

  어머니 곁에서

  나는 애기까치가 되어 날아 올랐다

  빨간 화롯불 가에서

  내 꿈은 달아 오르고

  밖에는 그해의 가장 아름다운 눈이 내렸다

  매화꽃이 눈속에서 날리는

  어머니의 나라

  어머니가 이고 오신 하늘 한자락에

  누이는 동백꽃 수를 놓았다

  섣달 그믐날 어머니의 도마위에

  산은 내려와서 산나물로 엎드리고

  바다는 올라와서 비늘을 털었다

  어머니가 밤새도록 빚어놓은

  새해 아침 하늘위에

  내가 날린 방패연이 날아 오르고

  어머니는 햇살로

  내 연실을 끌어올려 주셨다. 

 

 

 

  어머니 / 정한모

 

  어머니는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그 동그란 광택의 씨를

  아들들의 가슴에

  심어 주신다.

 

  씨앗은

  아들들의 가슴 속에서

  벅찬 자랑

  젖어드는 그리움

  때로는 저린 아픔으로 자라나

  드디어 눈이 부신

  진주가 된다.

  태양이 된다.

 

  검은 손이여

  암흑이 광명을 몰라내듯이

  눈부신 태양을

  빛을 잃은 진주로

  진주를 다시 쓰린 눈물로

  눈물을 아예 맹물로 만들려는

  검은 손이여 사라져라.

 

  어머니는 오늘도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물방울 무덤 - 엄원태


  아그배나무 잔가지마다
  물방울들이 별무리처럼 맺혔다
  맺혀 반짝이다가
  미풍에도 하염없이 글썽인다

  누군가 아그배 밑둥을 툭, 차면
  한꺼번에 쟁강쟁강 소리 내며
  부서져 내릴 것만 같다

  저 글썽이는 것들에는
  여지없는 유리 우주가 들어 있다
  나는 저기서 표면장력처럼 널 만났다
  하지만 너는 저 가지 끝끝마다 매달려
  하염없이 글썽거리고 있다

  언제까지고 글썽일 수밖에 없구나, 너는, 하면서
  물방울에 가까이 다가가보면
  저 안에 이미 알알이
  수많은 내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 시집<물방울 무덤> 창비, 2007.

 

 

 

  겨울 사랑 / 문정희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 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 어린 사랑에게 미래사,1991.

 

 

 

  내 고향에 감사해 / 문정희

 

  내 고항에 감사해

 

  저 많은 나무들을 보내
  초록을 가르쳐 주었고
  저 많은 새들을 보내
  노래를 알게 했으니까
  저 많은 비를 보내
  생명을 키우는 눈물을 알게 했으니까

 

  내 고향에 감사해

 

  저 많은 강물을 보내
  흐르는 시간을 보여 주었고
  저 많은 나비들을 보내
  떠 나간 이들을 그리워하게 했으니까
  저 많은 길들을 보내
  내가 시를 쓰게 했으니까

  - 좋은생각  2007.

 

 

 

  기다림 / 금용 이원구

                                                

  외딴 집 추녀 끝에 저녁놀 물 들이면
  사랑의 곁가지들 발 그림자 아쉬워라
  시린 눈 별빛에 빼앗기고
  하루 해를 달랜다

  툇 마루 걸터앉아 빈 날을 손꼽는다
  바람보다 앞서 오는 날개 단 발자국
  짧은 목 길게 빼보다
  돌아서는 어머니

 

 

 

  고향의 봄 / 이원수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 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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