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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맑은 사진 - 꽃과 …

배둔지에서 띄우는 들꽃편지

by 실비단안개 2008.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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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은 /  신동엽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 녹이듯 흐물흐물 녹여 버리겠지

 

봄입니다.

땅속부터 하늘 위까지 봄입니다.

오랜만에 배둔지에 갔습니다. 철이 바뀔 때마다 들꽃편지를 전해주겠노라고 하였지만, 깊어가는 지금에야 소식을 전합니다.

 

마을 입구는 도로 공사중입니다. 그 도로가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에서 끝나는지 알 수 없지만, 지난 정월 보름날 그곳에서 달맞이를 하였습니다. 혼자 시위를 한다고 도로공사를 멈출 일이 아니었기에 마음은 썩 내키지 않았지만 다녀오기도 하였습니다.

약간의 황사끼가 있는 날씨지만, 아침시간이라 그렇겠지 마음을 위로하며 팔랑팔랑 걸었습니다.

 

배둔지 입구의 백정화가 향기롭던 그집에 산수유가 피었습니다. 대문을 살짝 밀치니 개가 어찌나 짖던지 사철나무와 백정화 담장에 올라 산수유를 만났습니다. 그래도 개가 짖으니 주인이 나와 웃었습니다.

 

 

배둔지에는 철 잃은 오리 몇마리가 푸드득거렸고 산그림자도 봄이었습니다.

겨우내 발길이 없었던 탓도 있겠지만, 가을 이삭을 줍던 그 길은 자꾸 끊어졌습니다. 늙은 나무사이로 아침햇살이 새소리와 비집고 들어왔으며, 그 아래로 머위와 쑥, 취나물이 돋고 노란 양지꽃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봄이었습니다.

 

 

 

 

 

 

잠시 눈 맞춤을 하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생강나무꽃이 조각햇살에 빛났습니다.

산수유보다 먼저 피어나기에 오래전부터 기다렸는데, 올해는 산수유를 먼저 만났습니다. 그렇다고 생강나무꽃이 반갑지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둘레둘레 몇그루가 있었습니다.

 

낙엽이 소복한 길도 아닌 길을 걸었습니다. 나무의 잔가지들이 뒹굴며 덤불 사이로 찔레의 새순도 다투어 피고 있었습니다. 무덤가를 살폈습니다. 막내딸 만나러 가는 할머니가 어디에 쉬고 계시지않나하구요.

우리 어릴 때는 흔하디 흔했던 할미꽃은 산속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하찮게 여긴 죄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솜나물을 만났는데, 아직 활짝 피우지는 못하였더군요.

 

 

 

 

마른풀을 헤치며 나무 사이를 걸었습니다. 한시간을 걸었습니다. 숲에서 애국가가 울렸습니다.

친구였습니다. 마침 이어폰을 챙겨갔기에 무리없이 두시간을 함께 걸었습니다.

친구가 곁에 있는 듯이 계속 말을 시켜주었지만 조금은 무섬증이 들기도 하였기에 계곡쪽으로 내려왔습니다.

많은 들꽃이 있지만 이곳은 바람꽃, 복수초등은 만난적이 없기에 나름 살폈지만 역시 없었으며, 계곡을 따라 개울에 다다랐을 때 남산제비꽃 한송이를 만났습니다.

봄이었습니다.

 

 

현호색을 만나는 자리에 아직 소식이 없기에 냉이를 캤습니다.

집을 나설 때 큰봉지 두개와 칼을 챙겨갔거든요. 어제 캔 냉이가 남아있지만, 오늘이 이곳 장날이니 낙지나 쭈꾸미가 있음 장만하여 냉이볶음을 하려구요.

냉이는 밭두렁에서 쉽게 만나는데 쑥은 꼭 검불속에 숨어있더라구요. 게으런탓에 냉이를 더 많이 캤습니다.^^

 

 

배둔지를 지나 들판을 보았습니다. 청보리밭처럼 온통 푸른바다입니다. 봄소풍 때면 만나는 자운영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꽃 서너송이를 만났습니다. 자운영도 봄이 궁금하였나 봅니다.

 

 

  

동백보다는 춘백이란 말이 더 잘 어울리는 동백이 골고루 피었습니다. 무리로도 피었으며 돌담장 안에서 바깥 봄 구경하느라 자꾸 까치발을 하였습니다. 담장도 봄입니다.

 

 

 

 

 

매화밭을 걸어보셨나요?

잘 익은 여자가 지나간 듯 합니다.

아무런 주문을 하지않아도 그 향기가 몸에 깊이 감겼습니다. 어쩌면 나도 오늘은 잘 익은 그런 여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을버스 종점을 지나 걸었습니다. 다리 아래로 황새냉이가 동그랗게 떠 있었습니다. 사진은 풍경처럼 이쁘지가 않습니다.

마을버스 승차장 의자 아래로도 봄까치꽃이 피었습니다.

봄입니다.

 

 

 

 

 

 

빠뜨렸습니다.

숲에서 진달래 봉오리 몇 만났습니다.^^

 

    그리운 꽃편지1 / 김용택


    봄이어요.

    바라보는 곳마다 꽃은 피어나며 갈 데 없이 나를 가둡니다.

    숨막혀요.

    내 몸 깊은 데까지 꽃빛이 파고들어 내 몸은 지금 떨려요.

    나 혼자 견디기 힘들어요. 이러다가는 나도 몰래 나 혼자 쓸쓸히 꽃 피겠어요.

    싫어요. 이런 날 나 혼자 꽃 피긴 죽어도 싫어요.

    꽃 지기 전에 올 수 없다면 고개 들어 잠시 먼 산 보셔요.

    꽃 피어나지요.

    꽃 보며 스치는 그 많은 생각 중에서 제 생각에 머무셔요.

    머무는 그곳, 그 순간에 내가 꽃 피겠어요.

    꽃들이 나를 가둬, 갈 수 없어 꽃그늘 아래 앉아 그리운 편지 씁니다.
    소식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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