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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같은 휴가, 하동 '백련리 도요지(白蓮里 陶窯址)'에 가다.

by 실비단안개 2008.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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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는 특별해야 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휴가라고 특별하지 않다.

주남저수지 연꽃 만나기에 이어 하동 진교 백련리의 백련과 가마터를 만나러 갔다.

향기로운 휴가니 특별한가?

 

남해에 갈 때 대부분 진교를 경유하였다. 진교를 지날때면 '백련리도요지'가 수없이 유혹을 하였지만, 따로 시간을 낼 수 없어 너머너머로 풍경 소식만 두어번 들었다.

'경남 하동군 진교면 백련리', 백련리는 마을 이름이며, 백련을 재배한지는 3년째다. 

백련리 도요지는 백련보다 가마터로 유명하며, 영화 '취화선'이 유명도를 더 보태어 주었는데, 다른 촬영지와는 달리 흔적들은 요란하지 않았다.

 

취화선 촬영지와 가마

 

 

 

 

  ▲ ▼ 새미골 가마터 내의 우물

 

 

  ▲ 새미골

처음 찾은 곳이 새미골이었는데, 관리자와 사기장 등 누구도 만날 수가 없어 풍경 몇 컷만 담았다.

부분적으로 내부의 풍경 담기가 가능하였지만, 허락을 받지 않았기에 내부는 담지않았다.

 

 

 

 

 

 

 새미골 가마터 입구에는 '백련리 도요지' 설명이 있으며, 그 설명을 사진으로 담아왔지만 Daum 지도에서 검색을 하였다.

 

"요지는 자기나 기와, 그릇들을 만들어 굽던 가마터를 말한다. 백련리 사기마을과 마을 뒷산에 4개의 가마터가 있는데, 이중 1개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이며, 나머지 3개는 분청사기와 백자를 굽던 조선시대의 것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인들이 이곳의 가마를 파괴하고 도공들을 납치해 갔다고 전해진다. 이곳에서 출토되는 그릇의 종류는 대접, 접시, 사발, 병, 항아리, 장군, 잔 등 다양하며, 주로 생활용 그릇들을 굽던 곳으로 보인다. 도자기를 만드는 바탕흙인 태토는 회색인데 모래 같은 불순물들이 많이 섞여 있으며, 거칠고 어두운 회청색을 띤 유약을 두껍게 칠하였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일본에서 찻잔으로 유명한 정호다완(井戶茶碗)의 특징과 비슷한 도자기 조각이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백련리 가마터는 16세기말이나 17세기초의 것으로 추정되며, 창원 두둥리 가마터와 함께 임진왜란 때 우리 도공들을 납치하여 생산한 정호다완의 기원을 밝히는데 중요한 유적이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하얀 연꽃이 어우르진 이곳 백련리 도요지에서 투박하면서도 새의 붉은 혓바닥과 이슬을 머금은 듯한 독특한 문양으로 누구도 흉내낼 수 없었던 눈박이 사발과 도공을 강탈해 가 자기네 국보로 둔갑시켜 숭앙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1974년 경상남도기념물 제24호로 지정되어 옛 도공의 후손들이 조선 막사발의 명성을 재현하고 있으며 2002년 국내 영화사상 최초로 칸느 영화제 본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영화 취화선의 촬영장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위의 설명 중 붉은 글씨, '창원 두둥리'는 지역명이 잘못 표기가 되었는데, 진해 웅동1동의 두동, '웅천도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창원이 태어난지 600년이다. 이곳은 오래전에 창원부 웅천현이었기에 요의 이름이 웅천도요지다.

그동안 이 블로그를 눈여겨 본 이라면, '웅천요', '찻사발', '웅천도요지'를 알 것이다.

그 웅천도요지를 다음 지도에서 '창원 두둥리'로 잘못 기록하였는데, 빠른 시간에 바로 잡아주기를 바란다.

 

지난해 4월에 다녀 온 웅천도요지(熊川陶窯址) : http://blog.daum.net/mylovemay/11572822

올 4월에 담은 웅천요(熊川窯)의 봄2 : http://blog.daum.net/mylovemay/14448037

 

잠시 웅천요의 설명을 보면, "웅천차사발을 탄생시킨 웅천도요지는 조선시대(15~16세기)분청사기를 생산하던 곳으로 진해시 웅천 보개산(점골)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500여년전 웅천 제포항을 개항하여 일본에 수출한 차사발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진웅천, 귀웅천, 후웅천으로 구분되며 우리의 분청사기인 차사발이 일본으로 건너가 차그릇으로 사용되면서 고려차완이라고도 불리우고있다."

이 블로그를 지켜 본 이라면, '보배산'이라고 하였는데 할 수 있다. 보배산의 다른 이름이 보개산이다.

*  보개산 -> 보배산

 

잠시 백련지 풍경부터 보고 차사발에 관하여 다시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새미골에서 백련지로 향하는 길이 있으나, 백련은 끝물이었다. 그러나 더 넓은 백련지를 포함한 주위의 시원한 정다움이 이 계절에 맛 볼 수 있는 별미다.

걸으면서, "참 편안하다. 자꾸 걷고 싶다."고 되뇌었다.

 

 

주인없는 새미골의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아무도 만나지 못함에 아쉬워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앉아 함께 여름날 풍경이 되었다.

이때의 시간은 오후로 넘어 갔으며, 어느 풍경 앞에서건 허기는 큰 걱정꺼리가 아니기에 연밭을 둘러 마을 입구(주차장)까지 걷기로 하였다.

 

백련리 연밭

 

 

연지의 연은 끝물이었지만 많은 수생식물과 오리를 만났으며, 걸음걸음이 풍경이다.

 

  ▲ 부들

 

 

연지는 마을의 큰길을 따라 길게 펼쳐져 있다. 샛길에서 나와 큰길을 걷는데 남자 한분이 백련을 살짝 쥐고 걷는다.

시비조로 남자를 불러 세웠다. 감히 연꽃을 따다니 -

"아저씨, 왜 연꽃을 따요?" 

 

 

백련꽃차를 만들기 위하여 백련을 땄다기에 "그럼 저도 한송이 따 주세요" 하니, 연지둑을 걷기에 따라 걸었다.

백련꽃차용의 백련은 많이 피어서도 안되며 덜 피어서도 안되고, 꽃잎이 벙글거릴 때가 가장 좋고 아침 시간이 좋다고 하였다.

백련이 그리 그리운 시간이 아니었기에 자연히 새미골과 다른 도요지에 대하여 이야기가 이어졌다.

 

 

박종환 씨는 흙을 찾아 경기도 광주에서 백련리를 찾았으며, 가마를 운영한다고 하였다.

위의 설명 표지판에 보면 다음 지도 검색에서와는 달리 '웅천 도요지'가 나온다.

나는 어슬픈 나의 지식으로 그에게 많은 질문을 하였으며, 그는 친절히 더 많은 것들을 답해 주었다.

 

그동안 그랬다. 임진왜란 당시 막연히 많은 도공이 일본으로 납치가 되었다라고.

웅천도요지에서 40 여명, 김해에서 40 여명, 그리고 백련리와 남해에서도 납치가 되었다고 한다.

다른 기록에 보면 진주찻사발이 일본으로 건너가 국보가 되었다고 하는데, 웅천도요지인지 하동의 백련리도요지인지 정확한 판단은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우리의 기록은 미흡하여 어디에 어떤 가마터가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지만, 일본인들이 자신의 선조들의 기록을 들고 찾아 와 여기쯤에 가마터가 있었다라고 알려 주어 재현이 가능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위안부, 독도 문제 등 많은 부분에서 그들은 치밀하며 작은 부분까지 기록으로 남겨 자료로 활용을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뀌면 과거를 심판대에 올리며, 불리한 부분은 폐기까지 하는데, 우리가 조금 유명해졌다고 고향과 부모를 바꿀 수 없듯이 역사는 진실하게 기록되어 남겨져야 한다.

 

그의 가마터 방문은 숙제로 남겨두었다.

 

 

 

 

백련리의 '연꽃과 찻사발 축제'는 매년 7월 중하순 경 있는데, 그 시기는 현지의 사정으로 달라지며, 올 해 3회 째였다.

연지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며, 백련꽃차, 잎차 등을 판매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사기마을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된다.


백련리 사기아름마을 : http://www.whitelot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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