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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즐거우면 더 좋지 아니한가!
고향 이야기/진해 풍경

배둔지에서 띄우는 가을편지

by 실비단안개 2008.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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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오랫만에 들렸네요
안부도 함께 여쭈어봅니다
잘 지내시나요?
환절기 ....

고마리꽃이 무리지어 있는 풍경이
소담스럽습니다


답글실비단안개

미안하고 죄송하여라 - ^^
이렇게 계절들이 널뛰기를 합니다.

어떻게 건강하신가요?
배둔지 위의 개울에도 엄청 피어 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결코 잊었다는 것은 아님을 아시지요?

 

새벽부터 설쳤습니다.

걸음 보다 앞서는 건 언제나 마음이거든요.

 

제법 넓은 마을의 도로에는 이미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도 풀섶이 젖었기에 게으름을 위안 받았습니다.

그 길로 가는 길에는 늘 설레임이 있습니다. 깨어났을까? 이질풀은 잠꾸러기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한송이도 만나지를 못하였습니다. 이미 일년의 잠을 청하러 갔나 봅니다.

얼마전에 갔을 때, 누군가가 물봉선을 몽땅 베었더군요. 그래도 여유가 있으니 분명 다시 자라 꽃을 피웠을거야, 고마리도.

 

물봉선과 제법 오래 놀았습니다. 바짓단과 엉덩이가 축축해지도록.

그런데 나비는 한마리도 잡질 못하였습니다.^^

 

사향(思鄕) / 김상옥

눈을 가만 감으면 굽이 잦은 풀밭 길이,
개울물 돌돌돌 길섶으로 흘러가고,
백양 숲 사립을 가린 초집들도 보이구요.

송아지 몰고 오며 바라보던 진달래도
저녁 노을처럼 산을 둘러 퍼질 것을.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러운 꽃지짐.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캐어 오리.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 도로 애젓하오. 

 

 

 

아기나팔꽃이 피어 있으며, 정구지는 하얀꽃을 떨군 후 열글고 있더군요. 하얀꽃까지는 자주 만나는 풍경이지만, 씨앗이 영그는 풍경은 처음이었습니다. 꽃 진 자리는 언제나 또 하나의 꽃인데, 정구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우스 바깥으로 단으로 묶여 씨앗이 말려지고 있었습니다.

 

 

 

 

비가 적어도 김장 배추와 무가 촘촘히 자라고 있습니다. 이 밭 뿐 아니라 대부분의 밭과 텃밭의 풍경이 비슷합니다.

요즘이 쪽파가 가장 맛이 좋을 때입니다. 며칠전에 쪽파를 솎아 양념을 해 보았습니다.

 

 

 

 

이른 시간에 들길을 걷는 일은 축복입니다. 손에 호미를 들거나 카메라를 들거나 그 느낌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 넓은 들판이 아니지만, 혼자 충분히 기분을 내며 걸을 수 있는 들판입니다. 배둔지 너머에서 아침 햇살이 조곤조곤 내려앉습니다.

 

태풍이 피해 간 덕분에 많은 것들이 수확이 좋습니다. 고추와 참깨도 평년에 비하여 좋으며, 벌써 추수를 하여 벼를 말리고 있습니다. 까실한 벼를 손으로 만져보았습니다. 나락을 떠올리면 어릴 때 생각이 납니다. 농약을 치는 아버지를 따라 들로 다녔거든요.

가끔은 내 팔뚝보다 큰 민물장어를 잡기도 하였는데, 요즘은 미꾸라지 구경도 만만치 않은 시대입니다. 우리들의 죄지요.

그래도 들판을 걸으며, 어릴 때를 추억할 수 있다는 건 역시 축복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생활을 하든.

 

배둔지 입구입니다. 보기에는 강렬한 햇살이겠지만, 실은 억새꽃보다 부드럽습니다.

아침에 창으로 햇살이 스밀 때, 아~ 빨리 나가고 싶다 - 를 몇 번이나 되뇌었답니다. 오늘 아침 햇살은 정다운 속삭임으로 안겨왔습니다.

이쯤에서 이질풀을 만나야 했는데, 녀석들은 머리카락 끝도 보이지 않더군요.^^

 

 

 

지난해 그 자리에서 쑥부쟁이를 만났습니다. 핑계지요. 자리가 서툴러 - 그래도 이슬이 보이지요?

발이 이슬에 감기는 기분을 아시나요? 비가 내리는 날과는 다른, 아주 조용히 스미는 물같은 바람같은 그런 감촉입니다.

 

배둔지에 물이 많이 빠졌습니다. 여름철에는 찰랑거리는데, 가물긴 가무나 봅니다. 폴짝 뛰어 마른저수지로 내려갔습니다.

풀이요, 물이 빠져 나간 뒤 - 뭐랄까, 꼭 머리를 감을 때 비누칠을 하여 손으로 빗질을 하며 거울을 보았을 때 풍경, 그랬습니다.

풀들이 비누거품같은 물때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햇살을 받아 빛나는 작은 풀도 있었구요.

 

어쩌나, 나갈 때 배터리를 바꾸었는데 깜빡였습니다. 최대한 아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카메라질을 멈추고 마른 저수지의 풀밭에서 준비해 간 커피를 마셨습니다.

그려지나요?

 

 

 

 

저수지변에는 꼭 그 자리에 여뀌가 일렁입니다. 바람이라도 불면 파도처럼요. 끙~ 저수지 둑을 올라 계곡과 저수지가 만나는 곳으로 갔습니다.

절대 건드리지 않았는데, 물봉선 꽃잎이 저 혼자 떨어져 가을임을 다시 알려주었습니다.

 

오래된 가을 / 천양희

돌아오지 않기 위해 혼자
떠나 본 적이 있는가.

새벽 강에 나가 홀로
울어 본 적이 있는가.

늦은 것이 있다고
후회해 본 적이 있는가.

한 잎 낙엽같이
버림받은 기분에 젖은 적이 있는가.

바람 속에 오래
서 있어 본 적이 있는가.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이 있는가.

증오보다 사랑이
조금 더 아프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그런 날이 있는가.


가을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것.
보라,
추억을 통해 우리는 지나간다.

 

 

 

햇살이 노랗게 일렁입니다. 햇살이 일렁일 때마다 지나간 날들이 뭉텅뭉텅 울렁거렸습니다. 우리가 결코 많은 날을 함께 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에 함께였다는 사실만으로.

 

가을을 걸었습니다. 뒤로뒤로.

 

 

 

햇살은 마당 가득 펼쳐졌습니다. 감나무, 대추나무, 유자나뭇가지를 비집고 늙은 빨래줄에도 걸렸습니다.

할머니~ 아니다, 아줌마 이게 뭐에요?

 

 

 

 

화초사과 열매랍니다. 감나무에서 떨어진 햇살은 엄지손톱만한 사과를 익히고 있었습니다.

 

농협창고에는 담쟁이가 익고 있습니다. 햇살은 세상의 모든 곳을 골고루 비춥니다. 엄마 마음처럼.

 

고무신 / 장순하

눈보라 비껴 나는
─全─群─假─道─

퍼뜩 차창(車窓)으로
스쳐 가는 인정(人情)아!

외딴집 섬돌에 놓인
하나

세 켤례 

 

 

마을버스 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친구네 집앞으로 갔습니다.

감나무가 있는 그곳에 코스모스가 있습니다. 우리 어릴 때는 코스모스가 키가 참 컸는데….

 

가을이 저마치 갈 때쯤 다시 소식 드리겠습니다.

내내 건강하셔요. 

 

고향에서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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