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2일,
제주 상공에서 이상한 풍경을 목격하였습니다.
뭍은 벼로 황금벌판이거나 추수를 끝 낸 빈 들인데, 아무리 사철 푸른 도시라지만 제주는 이상하더군요.
아이들의 퍼즐판이나 거대한 모자이크 같았습니다. 하나의 모자이크들은 검은선으로 구별이 뚜렷하였는 데, 요즘 뭍의 상공에서 보는 풍경과는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하귀 해안도로를 달리면서 수수께끼는 풀렸습니다.
잠시 애월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 정차를 하여 풍경을 담았습니다.
멈추게 한 풍경은 금송화 길이었는 데, 어쩌면 병든 어머니를 위하여 나이 많은 아들이 꽃길을 조성하였다는 그 마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애월 방문 예정이 없었기에 당시 기사를 읽으면서 정확한 주소를 입력해 두지 않았습니다.
제주를 지키는 돌담
이곳 뭍의 밭은 그저 밭두렁 정도인데 제주의 밭은 높거나 낮은 돌담장이었습니다. 지역에 따라 아주 검은 돌이 있으며, 돌은 흙이나 시멘트를 덧바르지 않고 크고 작은 돌로만 쌓아져 있었습니다.
바람이 돌과 돌 사이의 구멍으로 통과하기에 강풍에도 밭의 담장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아란야님의 설명이었는데, 현지인과 함께 보낸 하루는 수많은 검색보다 알찬 시간이었습니다.
제주도는 바람과 돌이 많은 화산섬이기에 제주사람들의 삶은 바람과 돌과의 싸움 그 자체였습니다. 제주의 토양은 화산회가 쌓여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매우 가볍고 따라서 바람이 한바탕 불면 기름진 흙가루와 애써 뿌린 씨앗이 모두 날아가고 만답니다.
돌담은 제주인들이 바람과 땅을 돌로 다스려온 생활문화의 유산인 것입니다.
돌담의 쓰임은 다양했으며, 그에 따라 돌담의 명칭 또한 다른데, 전통적인 초가의 외벽에 쌓는 돌담을 '축담', 마당과 거릿길을 잇는 '올레'의 돌담은 '올렛담'이며, 밭과 밭의 경계를 짓는 돌담은 '밭담'입니다. 밭의 자갈이나, 땅 겉과 속에 박힌 돌덩이를 캐내며 성처럼 넓고 기다랗게 쌓은 것은 '잣벡(담)'이라고 하며, 무덤을 싼 담을 '산담'이라고 합니다.
이곳이 기사의 그 꽃마을인지 모르겠습니다. 마을의 골목마다 꽃이었으며, 관에서 조성한 듯한 풍경이 아닌 약간 어눌한 꽃길이었는 데, 정겨움이 진하게 우러나더군요.
아란야님에게 꽃길 기사 이야기를 하니, "여기가 애월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노총각이 사는 마을이 맞기를 믿어봅니다.
제주 상공에서 담은 풍경입니다.
흐린 날씨였지만 형태가 뚜렷한, 낯설지만 참 이쁜 모자이크입니다.
줄이 그어진 하얀 건 하우스 같습니다.
밭두렁은 뭍의 것과 판이하게 다릅니다. 바람이 많은 제주도다보니 농작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돌로 담장을 만들었습니다. 검은 돌담장의 돌은 현무암이며, 밭, 무덤, 골목 등 대부분이 검은 담장이었습니다.
산담과 방사탑
제주도의 무덤과 방사탑입니다.
무덤 역시 돌로 담장을 만들었는 데, 방목된 말과 소들의 무덤 훼손을 막는 산담은 칡넝쿨, 산불의 침범도 예방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 무덤의 산담 - 산굼부리에서
▲ 탐라 목석원에서 - 무덤과 방사탑
제주도의 많은 곳에서 만날 수 있는 탑이 있습니다.
봉수대처럼 생겼으며 돌로 쌓은 탑인데, 방사탑입니다.
제주에는 마을의 경계나 허한 곳에 원통형 돌탑을 쌓아 부정과 악을 막고 마을을 편안하게 하는 방사(防邪)의 풍습이 풍수지리와 관련된 민속으로 전해옵니다. 이를'답(탑)'이라고 하는데, 육지의 솟대나 장승에 해당한다고 하네요. 답은 약 50년 전만 해도 제주도 전역에서 쉽게 볼 수 있었으나, 근래엔 제대로 원형을 갖추고 있는 것을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하지만, 유명 관광지 입구에는 어김없이 돌하르방과 방사탑이 있었는 데, 지금은 예전같지 않고 방사의 뜻이 희석된 채, 목석원 또는 산굼부리 같은 관광지 입구에 세워진 조형물처럼 제주를 상징하는 현대 조각품의 모습으로 나타나곤 한답니다.
방사탑은 탑의 역사에 따라 이끼와 담쟁이가 멋드러지기에 제주 여행시에 눈여겨 볼만한 제주의 꽃입니다.
답의 유래 방사탑(防邪塔)은 마을의 인명, 재산, 가축 등을 보호하기 위해 풍수지리적으로 허하거나 약하여 궃은 것이 들어 온다거나, 헛불, 날불, 사각, 살기(殺氣) 등 불길한 징조가 비치는 곳에 집단의 생존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쌓아 올린 것이다. 제주에서 액(厄)맥이 기능을 갖는 속신은 이들 '거오기', '방사탑'에서 발견할 수 있고, 거오기란 거액(去厄)이란 말에서 연유했다고 합니다. 답은 대체로 밑변이 넓은 원통형으로 쌓은 돌무더기 탑 모양이거나, 돌무더기 위에 돌하르방이나 동자석 같은 석상, 또는 새모양의 자연석 또는 석상을 세운 모습입니다.
초가집
제주에 내리면서 정말 궁금하였습니다.
과연 여자가 많으며, 바람이 많을까?
낮 시간대는 바람을 그리 느끼지 못하였는 데, 해가 지니 바람이 일더군요. 어떤 날은 옷길을 여미기도 하였습니다.
바람이 만들어 낸 제주의 풍물 중 하나가 돌담에 이어 초가집입니다.
제주도의 초가는 볏짚이 아닌 띠로 엮어 지붕을 올렸는 데, 바람의 영향을 막기 위하여 매우 낮게 지어져 있으며, 지붕도 새끼를 꼬아 바둑판 모양으로 단단하게 엮어 놓았습니다.
밭에도 들에도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만들어진 돌담과 꼬고 엮어 이은 초가는 억척스레 모진 자연을 이겨내며 살아왔던 제주인들의 눈물과 땀입니다.
초가와 함께 만날 수 있는 지붕이 돌지붕입니다. 많은 돌의 처리도 한몫을 했겠지만, 관광상품으로 개발 된 지붕 같습니다. 돌지붕은 건축물의 역사만큼 이끼가 두터웠으며, 담쟁이넝쿨이 물을 들이고 있더군요.
아래의 돌지붕은 산굼부리 입구의 상가 지붕입니다.
녹색 들판
제주 상공에서 담은 풍경을 보면 대부분 녹색입니다.
제주는 감귤이 많이 나니까 상공에서 보면 감귤빛이 나지 않을까 했던 기대가 무산되었지요. 푸른 모자이크판은 호기심을 낳았고, 아란야님과 함께 해안도로와 들판을 달리면서 수수께끼가 풀렸습니다.
위의 사진은 '양배추'밭입니다. 역시 돌담장이 있으며, 밭 가득 양배추가 자라는 데, 대부분 뭍으로 보내진다고 하더군요.
한림공원 내의 밥집에서 녹두빈대떡을 먹었는 데, 그 속에도 양배추가 있었으며, 다른 음식에도 양배추의 양이 많았습니다.
사진은 아주 작은 부분인 데, 제주를 달려보면 더 넓은 양배추밭의 풍경에 놀랍니다.
양배추와 함께 당근, 브로콜리, 무가 많이 재배되었으며, 지금 감자꽃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제주도입니다.
제주도의 밭농사는 이모작인데, 뭍에서 맛을 보는 겨울 감자가 지금 재배가 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채소는 뭍으로 보내진다고 하였습니다.
제주는 온통 녹색입니다. 넓은 도로도 뭍의 가로수와 비교가 되지 않는 녹색이며, 들판은 억새가 하얗게 빛나지만 녹색입니다.
감귤밭 역시 멀리서 보면 녹색입니다. 녹색 사이사이로 푸르고 노란 열매가 그린 듯이 달려 있더군요.
제주도의 가장 아름다운 꽃 여자
제주도를 삼다(三多)도라고 합니다. 삼다란 석다(石多), 풍다(風多), 여다(女多)라는 말이며, 제주도민들은 먼 옛날부터 땅을 갈아 씨를 뿌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많은 돌의 처리에 땀을 뿌려왔으며, 넓은 바다위에 위치한 섬으로 계절풍의 통과 지역이기에 바람이 많습니다.
또 제주에는 남성과 여성이 다른 지역과 같이 통계적으로 비슷한 수치를 나타내면서도 여성이 많다고 느끼는 데, 이는 나약한 여자의 몸으로 물질을 하거나 농사를 지어서 가정경제를 맡아 왔던 제주 해녀의 기여도 때문일 것입니다.
제주 해녀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존재로 끈질긴 생명력과 강인한 개척정신으로 어려운 작업 환경을 딛고 생업을 영위해 온 제주여성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되어 왔습니다.
역사 속에서 형성된 해녀들만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문화는 향토문화유산으로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중요한 관광문화자원으로 해안가 외 곳곳에서 해녀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해녀는 우리 삶의 현장에서 가정 경제의 핵심적 역할을 했으나 30~40대 해녀가 15%도 되지 않는 현 상황에서 해녀문화의 위기를 느낍니다.
제주에는 비가 많이 와도 그 물을 이용할 수 없어 옛날에는 물이 귀했습니다.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한 물가에는 물항아리를 이고 나르는 풍경이 예사였을 것이며, 그 몫 또한 여자들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제주는 돌이 많아 자칫하면 넘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등에 지고 날랐는 데, 물허벅입니다.물허벅이라는 독특한 항아리는 주둥아리가 작아 물이 흘러 넘칠 염려가 없는 모양입니다.
물허벅과 함께 여자의 전유물이 '애기구덕'입니다.
애기 구덕은 말 그대로 아기를 눕혀 재우는 바구니로 '구덕'은 바구니란 뜻의 제주 방언입니다.
대나무를 주재료로 대나무를 깎아 삼동나무로 테를 잡고 장방형으로 엮어 만들어 밑쪽을 둥그스름하게 만들어 흔들기 좋도록 하였는 데, 아이를 낳아 사흘이 되면 이 구덕에 눕히기 시작하여 대개 세 살 무렵까지 여기에서 흔들며 잠을 재우고 놀리는 요람이었습니다.
과거 제주여인의 고단함과 억척을 보여주는 애기구덕은 제주 여인들이 밭에 나갈 때 등에 지고 나가서 밭 구석 그늘진 곳에 놓아 두고 일을 하거나 집에서 바느질이나 길쌈질을 할 때에도 발로 요람을 흔들며 일을 했는데, 제주 여인의 부지런함을 나타냅니다.
정방폭포 앞에서 만난 해녀의 모습입니다.
제주 여인의 모습이지요.
물질로 수확 한 해산물은 산지에서 직접 판매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녀는 가냘픈 여인들이면서도 창망한 바다를 생업으로 깊숙이 무자맥질을 합니다. 뭍이나 외국 관광객에게는 관광 상품으로 보일 수 있지만, 해녀들은 짙푸른 바다에 생명을 걸고 물질을 합니다. 생명을 건 무자맥질이 오늘의 제주를 있게 한 힘이며 제주의 가장 아름다운 꽃입니다.
▲ 용두암 아래
여미지와 한림 공원, 거리 등 제주에는 이름도 알 수 있는 수많은 꽃이 피어 있습니다.
그러나 제주의 꽃은 오늘 올리는 풍경입니다. 강인하며 아름다워 결코 꺾이지 않는 제주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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