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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화가 이중섭의 흔적

by 실비단안개 2008.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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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

우리, 정확하게 나는 사진으로 한번 스친 이중섭미술관의 뜰(?)을 보고 싶어 서귀포에 숙소를 정했습니다.

사진으로 만난 그 뜰은 도시의 전시회장과 다르게 숨을 쉬는 풍경이었거든요.

 

10월 24일

"8시 전에 오셔요~" 

 

물어물어 이중섭 미술관으로 갔습니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표지판이 쉬운 안내가 아니더군요.

새깃유홍초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것도 많은 무리를요. 한곳에 열중하면 시간이 가는지 오는지를 모릅니다.

"안녕하세요?"

텃밭을 가꾸는 이에게 인사를 하였더니 자신을 소개하며 이중섭 거주지의 문을 열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분은 관광해설사였으며, 미술관은 오전 9시에 입장이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이 건물은 뭘까 - 온통 담쟁이를 뒤집어 쓴 낡은 건물이 궁금하여 여쭈니 오래전의 영화관이라고 하였습니다.

제주도 여행 간다고 곰국 끓이지 않는다 중에서 - 

 

이중섭(李仲燮, 호 대향(大鄕), 1916년 4월 10일~1956년 9월 6일)은 한국의 서양화가이다.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문화학원을 다녔다. 1937년 재학 중인 신분으로 일본의 제7회 자유미협전에 출품해서 태양상을 받았다. 1939년 자유미술협회의 회원이 되었다.

1945년 북조선으로 귀국했다. 원산에서 일본 여자 이남덕(李南德, 본명 山本方子)과 결혼했다. 한국 전쟁 때 월남해서 부산, 통영, 제주도 등을 다니면서 살았다.

이중섭은 그림재료를 살 돈이 없어서, 은박지에 그림을 그릴 정도로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는데, 이때문에 1952년 부인이 두 아들과 함께 일본으로 넘어갔다. 이후 그들의 만남은 이중섭이 부두노동으로 번 돈으로 일본의 처가집을 방문하여 한 차례 더 있었을 뿐이다. 정부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부산, 대구, 통영, 진주, 서울 등을 떠돌며 가난 속에서도 창작에 매달렸다. 1955년 친구들의 도움으로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인 전시회를 미도파 백화점에서 열었다. 하지만, 정신분열증 증세를 보이다가 1956년 간염으로 적십자 병원에서 죽었는데, 친구들이 수소문해서 찾아오니 이미 시체와 밀린 병원비 청구서만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제주도 서귀포시에서는 1951년 이중섭 가족이 살던 집을 개조해 이중섭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2007년 3월 6일 이중섭을 추모하는 <그 사내 이중섭> 음반이 발매 되었다.(출처 : 위키백과)

 

* 이중섭의 일생 : http://k.daum.net/qna/view.html?qid=2fqL5&q=이중섭미술관

 

 

이중섭화가에게는 죄송하지만, 화가의 작품과 미술관 보다는 이중섭 거리와 공원의 풍경이 좋아 걷다가 돌아보다가, 멈췄다가 또 걷다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데 방금전까지 보이지 않던 어른 한분이 삽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 이중섭미술관과 해설사 강치균씨

 

"선생님의 텃밭이세요?"

"아닙니다. 그저 이중섭 미술관과 거리가 좋아 일을 합니다."

이중섭미술관 문화유산해설사 강치균씨였습니다.

 

이중섭화가가 서귀포시에서 1년여의 피난생활을 하는 동안 잠깐 이웃으로 지낸 인연으로 이중섭매니아이며, 화가와 관련된 것이라면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자료로 보관한다고 하며, 2003년 미술관이 건립되었는데, 2004년 7월부터 해설사로서 미술관에서 근무를 한다고 합니다.

 

맞은편의 초가를 둘러 보라고 하더군요.

'이중섭 거주지'였습니다.

기웃거리며 마당을 걸으니 다가와 닫힌 골방의 문을 열어주며 설명을 주셨는데, 이중섭 화가가 머물 당시부터 현재까지의 주인인 할머니가 안에 계시니 다른 방문은 열지 말라고 하였으며, 골방의 백열등을 밝혀주었습니다.

 

 

  ▲ 거주지의 마당

 

 한 평 반짜리 방에서 화가 이중섭(1916~1956)의 네 명 가족은 1951년 한 해를 보냈는데, 겹겹이 발라진 벽지위에 '소의 말'이 색이 바랜 그대로 있으며, 누가 놓아 둔 꽃(꽃잎)인지 화가의 사진앞에 꽃잎이 말라있었습니다.

 

이중섭 가족들이 서귀포를 떠나던 날, 부인 이씨는 방을 내준 동갑내기 집주인 김순복(88) 할머니에게 "이 집에서 보낸 1년이 평생 가장 행복했다"고 허리를 숙였다고 하며, 제주도를 떠난지 10여년만에 거주지를 찾은 화가의 아내는 자신들의 가족이 잠시 살았던 골방을 그대로 보존해 준 김할머니께 큰 감동을 받고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 이중섭 미술관 - 오전 9시가 되어야 입장이 가능하다기에 내부 풍경은 물음표만 남기고 왔습니다.

미술관 관람은 하지 못하였지만, 고향같은 주변 풍경과 해설사님과의 만남으로 충분히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11월 8일

'푸른통영21'의 초대로 11월 7일에 통영으로 가서 8일에 블로거 바다里님의 안내로 함께 걷는 통영문화기행을 했습니다.

항남동의 문화마당에서 시작되며, 첫 번째 도착지는 초정거리인데, '초정(草汀)'은 시조 시인 김상옥(1920~2004)의 호며, 시인의 생가터가 있는 일명 '오행당 골목'이 초정거리로, 초정거리의 길이는 대략 180m로 바닥에는 시인의 시와 그림이 담긴 아트타일이 깔려 있습니다.

보도블럭 사이사이의 아트타일에는 김상옥 시인 뿐 아니라 이중섭 화가의 그림도 있으며, 버스정류소의 부스에도 지역의 예술인의 사진이 있습니다.

 

함께 걷는 문화기행은 초정거리 - 청마거리 - 중앙동우체국 - 문화동 벅수 - 통영향토역사관 - 세병관 - 간창골새미 - 서문고개 - 박경리 생가 - 공덕귀(윤보선 전대통령의 부인) 살았던 곳 - 함안 조씨 정문 - 통영충렬사 - 정당샘 - 전기불터 -이중섭 살았던 곳으로 이어지는데, 중앙우체국 건너편의 이영도가 운영했던 수예점 윗층이 이중섭 화가가 첫 전시회를 열었던 효심다방이었습니다.

통영은 부산·제주·통영 등지를 전전하며 재료가 없어 담뱃갑 은박지를 화폭 대신 쓰기도 했던 이중섭의 짧은 생애동안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 고장입니다.

 

  ▲ 시선집중은 이영도가 운영하던 수예점이었으며, 법무사 사무소가 이중섭이 첫 전시회를 한 효심다방

  ▲ 이중섭의 거주지

 

 

  ▲ 도로의 아트타일과 버스정류소의 이중섭 흔적

  ▲ 문화회관이 보이는 항남동의 문화마당에 있는 이중섭의 흔적

 

이중섭 화가를 제대로 모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다른 지역에서 만난 흔적들을 정리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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