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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해지자^^

by 실비단안개 2008.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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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4일입니다.

밤새 비가 지나갔고 또 내릴듯이 하늘은 잔뜩 찌푸려있습니다.

지난달에 다녀온 거제 산방산 비원의 풍경 중 '폴리아나레스토랑' 풍경인데, 이제야 올립니다.

 

폴리아나에 도착했을 때 비가 많이 내렸으며, 커피 한잔 내려주셔요 - 부탁을 하고 뒷문으로 나갔다가 여러 풍경을 담고 다시 폴리아나에 들렸습니다.

오늘도 꼭 그날같습니다. 비가 내렸어도 비가 고프고, 커피도 고프고, 가버린 11월도 고프고…….

 

거제 산방산 비원(秘園)에 비가 내리고 

 

 

11월 / 나희덕

바람은 마지막 잎새마저 뜯어 달아난다
그러나 세상에 남겨진 자비에 대하여
나무는 눈물 흘리며 감사한다

길가의 풀들을 더럽히며 빗줄기가 지나간다
희미한 햇살이라도 잠시 들면
거리마다 풀들이 상처를 널어 말리고 있다

낮도 저녁도 아닌 시간에,
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절에,
모든 것은 예고에 불과한 고통일 뿐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모든 것은 겨울을 이길 만한 눈동자들이다
 

 

 

세상의 등뼈 / 정끝별-

누군가는 내게 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입술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어께를 대주고

대준다는 것, 그것은
무작정 내 전부를 들이밀며
무주공산 떨고 있는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져
더 높은 곳으로 너를 올려준다는 것
혈혈단신 땅에 묻힌 너의 뿌리 끝을 일깨우며
배를 대고 내려앉아 너를 기다려준다는 것

논에 물을 대주듯
상처에 눈물을 대주듯
끝모를 바닥에 밑을 대주듯
한생을 뿌리고 거두어
벌린 입에
거룩한 밥이 되어준다는 것, 그것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

 

 

 

가을의 시  / 김초혜

묵은 그리움이
나를 흔든다

망망하게
허둥대던 세월이
다가선다

적막에 길들으니
안 보이던
내가 보이고

마음까지도 가릴 수 있는
무상이 나부낀다

 

 

 

와락 / 정끝별-

반 평도 채 못되는 네 살갗
차라리 빨려들고만 싶던
막막한 나락

영혼에 푸른 불꽃을 불어넣던
불후의 입술
천번을 내리치던 이 생의 벼락

헐거워지는 너의 팔 안에서
너로 가득 찬 나는 텅 빈,

허공을 키질하는
바야흐로 바람 한자락 
 

 

 

비  / 천 양 희


쏟아지고 싶은 것이
비를 아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
누구에겐가 쏟아지고 싶다
퍼붓고 싶다

 

퍼붓고 싶은 것이
비를 아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
누구에겐가 퍼붓고 싶다
쏟아지고 싶다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 나희덕

 

살았을 때의 어떤 말보다
아름다웠던 한마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잎을 노랗게 물들였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잎을 스쳤을 뿐인데
때로는 여름에도 낙엽이 진다.
온통 물든 것들은 어디로 가나.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말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말이 아니어도, 잦아지는 숨소리,
일그러진 표정과 차마 감지 못한 두 눈까지도
더이상 아프지 않은 그 순간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땀처럼
낙엽이 진다.

 

낙엽이 내 젖은 신발창에 따라와
문턱을 넘는다, 아직은 여름인데.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 조병화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입술, 아름다운 목
아름다운 손목

서로 다하지 못하고 시간이 되려니
인생이 그러하거니와
세상에 와서 알아야 할 일은
'떠나는 일'일세

실로 스스로의 쓸쓸한 투쟁이었으며
스스로의 쓸쓸한 노래였으나

작별을 하는 절차를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방법을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말을 배우며 사세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인생
아름다운 정, 아름다운 말

두고 가는 걸 배우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인생은 인간들의 옛집
아, 우리 서로 마지막 할
말을 배우며 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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