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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 나비축제]청보리밭에서 보리피리를 불었다

by 실비단안개 2009.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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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 나비축제 안내도의 끝없는 청보리밭 풍경은 이 계절에 꼭 걸어야 할 풍경이었습니다.

나비축제이니 나비와 꽃은 만났는데, 함평천변을 걸어도 청보리밭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 함평 나비 대축제 http://www.inabi.or.kr/

* 축제의 유래 http://hampyeong.jeonnam.kr/2008_hpm/hpm01/hpm0101/hpm010101/shpm010101.php

* 행사 안내도 http://hampyeong.jeonnam.kr/2008_hpm/hpm01/hpm0102/hpm010204/2031_shpm010204.php

 

 ▲ (클릭 - 확대)9번이 청보리밭(http://hampyeong.jeonnam.kr/2008_hpm/hpm01/hpm0102/hpm010204/2031_shpm010204.php#) 나비열차는 5번과 8번 사이에서 탑니다.

 

앞 글에서 나비열차 이야기를 했는데, 나비열차 도우미가 나비열차의 코스를 이야기해 주는데, 청보리밭을 둘러 온다고 했습니다. 표를 구입하면서, "청보리밭에 내려주나요?"이런 말을 못했는데, 청보리밭이 가까워오니 기사님이 안내를 했습니다.

잠시 후 청보리밭에 하차하여 다음 나비열차를 타면 된다고 하더군요.

 

이 사실을 몰랐기에 둑을 달리면서 청보리밭을 찍는 도시스러운 짓을 했습니다.^^/

 

        ▲ 나비열차에서 담은 청보리밭입니다. 이 아까운 풍경 앞에서 나비열차가 그냥 달렸다면, 함평 나비축제는 최악의 축제장이었다고 하지않았을까 - 하며 미소지어 봅니다.^^

 

         ▲ 보리밭 탐방로 입구에 관계자 두 분이 안내와 보리피리를 만들어 나들이객들에게 주었는데, 그냥 스칠 제가 아니지요.

보리밭에서 불고, 열차에서도 불고, 엄마와 걸으며 불어 놀래켰고…. 소중하게 보관하여 아기에게 선물하려고 집에 가져왔는데, 흑 - 보릿대가 시들어 소리가 나지않았습니다.^^/

 

 

          ▲ 관계자 두 분이 보리피리를 만듭니다.

 

          ▲ 나비열차에서 내리지 않아도 보리피리가 배달이 가능합니다. 낯선 아빠가 아기보다 더 신이 났습니다. 도시의 자라는 아기들은 보리피리가 무언지 모르기에 신기하다 정도로만….

 

          ▲ 보리밭 사잇길을 달리는 아기의 손에 보리피리가 쥐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보리밭에 보리만 패어 있는 게 아닙니다. 자운영보다 색이 짙으며, 덩굴로 잎이 자운영과 닮았기에 관계자에게 여쭈니, 갑짜기 물으니 이름이 생각이 나지않는다고 했기에 어제 검색을하니, 농촌진흥청의 '쵸니(http://blog.daum.net/rda2448)님의 블로그로 안내가 되었으며, 식물의 이름은 자운영과 함께 녹비가 되는 '헤어리베치'였습니다.

쵸니님 블로그에 추가 질문을 댓글로 올렸더니, '쌀사랑'님께서 설명과 안내를 해 주셨네요.

쌀사랑님에게 감사드립니다.()

 

* 헤어리베치 : 국립식량과학원 http://search1.rda.go.kr/RSA/front/Search_Nics.jsp?adv=1&menu_id=106&menu=%C5%EB%C7%D5%B0%CB%BB%F6_%B1%B9%B8%B3%BD%C4%B7%AE%B0%FA%C7%D0%BF%F8&searchchk=T&qt=%C7%EC%BE%EE%B8%AE%BA%A3%C4%A1

 

          ▲ 헤어리베치가 핀 보리밭

 

길 건너편의 보리밭엔 보리만 패어 있었습니다. 친숙한 풍경이지만, 우리 마을엔 보리를 재배하지 않기에 귀한 풍경이기도 합니다.

 

 

 

아래의 풍경은 나비열차를 타고 돌아 오는 길에 담은 보리밭인데, 많이 익었습니다. 그슬려 먹으면 좋겠지요?

어릴 때는 보리와 밀을 그슬려 먹었는데 요즘 아이들이 그 풍경을 봤다면 틀림없이 원시인이라고 했을 겁니다.

* 그슬다 [동사] 불에 겉만 약간 타게 하다.

 

 

 보기에 따라 청보리밭은 별 풍경이 아닐 수 있지만, 어머니 세대에게는 목숨같은 풍경일 수 있습니다.

2 년전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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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리를 구경하고 싶다는 친구가 있어 청보리를 담으러 가다보니 어머니께서 전설인양 들려주신 보릿고개 생각이 났다. 나의 유년시절은 대부분 어려운 생활이었다보니 모두가 그렇게 먹고 사는줄 알았고, 그것이 가난인줄도 몰랐으며, 우리 아이들은 '보릿고개'란 단어조차 모르는 세대이다.

학교가 파하면 친구들과 들로 다니며 삐비(삘기)와, 찔레순, 진달래꽃등을 먹었으며, 밀을 오래오래 씹어 찰기없는 껌을 만들기도 하였는데, 어린아이들이 들으면 비위생적이며 엽기적인 생활이고, 요즘 유행어로 말하면 '참살이'였던 시절이었다.

 

묵은 곡식이 떨어지고 보리가 아직 여물지 않아 농가의 식생활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음력 4~5월경을 이르던 말이며, 춘궁기(春窮期)·맥령기(麥嶺期)라고도 한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추수 때 걷은 농작물 가운데 소작료·빚·이자·세금 등 여러 종류의 비용을 뗀 다음, 남은 식량을 가지고 초여름 보리수확 때까지 견뎌야 했다. 이때는 대개 풀뿌리나 나무껍질로 끼니를 때우기도 하였다. (다음 사전에서) 

 

 

                         어머니의 보릿고개

 

시인 황금찬 님의 시에 보면, 에레베스트산, 몽블랑(60년대의 詩며, 지금처럼 전문 산악인이 없었는듯)등에는 우리의 누구도 뼈를 묻지 않았지만, 보릿고개에는 소년(동생, 친구, 이웃)이 묻혔으며, 속담에 '보릿고개는 태산보다 높다.'고 하였다. 개인과 나라전체가 가난했던 시절이며, 우리가 끼니 걱정없이(물론 아직도 끼니 걱정을 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생활하게 된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 어머니들은 보릿고개를 생각하며 지금도 자식들 끼니 걱정을 하신다.

김은희 님의 두줄 짧은 시에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 그대로 있다.

 

보릿고래 / 김은희

 

마른가슴 젖물리던 막내가 장성해도

넘기힘든 고개에 아직도 서 계시는 어머니!

 

가끔 혼잣말처럼, 동무와 이야기하듯이 들려 주시는 어머니의 보릿고개를 자목련이 잎을 떨구는 마당에 앉아 다시 들었다.

"무슨 비가 그리도 내리든지 말도마라, 묵을게 있어야지, 배는 고푸고. 콩누룩찌꺼래기와 보리와 쌀로 밥을했다. 머리는 와 그래 안돌아갔는지 콩을 내서 쌀을 팔모되낀데. 니는 배고푸다꼬 종일 우는데 젖이 나와야 맥이지. 판선 엄마 젖을 제일 마이 얻어 묵고, 죽을 안묵을라캐서 창호집에 가서 밥을 말아 매깃다. 그래도 콩누룩 찌꺼래기가 구수해서 좋더라. 너그 외할배는 미역죽을 끓이데, 큰솥에 미역국을 끓이서…… ."

집집마다 아이들은 풍년인 시절이었지만, 어머니는 자식들 배 굶게할 수는 없다면서 시골에서 드물게 삼남매만 두었지만, 지금도 내 어머니의 가장 큰 걱정은 자식들 끼니다.

 

청보리를 담으러 가면서 버스 정류소에서 새터의 할머니와 보릿고개 이야기를 하였다.

"청보리를 비다가 국을 끓였제, 쑥도 넣고. 그라고 밀 찌꺼래기로 밀개떡을 부쳐 묵었다. 우야노, 묵으야 살지. 비도 징글맞게 오더라."

밀개떡에 대하여 궁금하였지만 지나치는 버스를 따라 뛰느라 더 이상은 여쭙지 못한게 아쉽지만, 50대 초반의 친구가 청보리 된장국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할머니께서 쑥과 청보리로 국을 끓였다는 말씀과 일치한다. 청보리와 쑥이나 냉이를 함께 끓인 된장국 내지 국이다. 지금이야 별미로 청보리된장국을 먹겠지만, 그 시절엔 청보리 반 눈물이 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유채꽃이 까르르 웃으며 청보리가 사운대는 풍경 앞에서 버스를 정차시켰다. 언젠가 한번은 방문하고 싶었던 낯선 댁 담장 밖에서 자목련이 청아하기에 정신없이 담고 있으니, 하얗고 고운 할머니께서 다가오셨다. "집 안에도 목련이 있네."

할머니를 따라 마당의 자목련과 옥매등을 담고 할머니와 커피를 마시며, 보릿고개 때의 기억을 듣고 싶다고 부탁을 드렸다.

"일본에 살다가 아홉살 때 한국에 와서 마산에서 살았는데, 큰 아가 오십넷(쉰넷)인데, 학교 댕길 땐갑다. 옥수수죽을 묵고  오줌시끼(오줌잦기)가 걸린기라 그래서 고생을 마이했지."

그래, 국민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이 빈도시락을 들고 등교를 하면 바가지만큼 큰 국자로 옥수수죽을 도시락에 퍼 주었었다. 노르스름한 옥수수죽을 얻어 먹고 싶었지만, 우리는 도시락을 들고 다닐 형편은 되었는지 한번도 옥수수죽을 먹어보진 않았다.

 

자운영꽃밭에서 만난 할머니는 자운영을 뜯어 먹고 자운영 나물을 드셨으며, 역시 비가 많이 내려 보리를 베어두면 비에 싹이 나고 썩기도 하였다고 말씀하였다. 지지리도 가난했던 내 어머니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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