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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망한 탐인 메일 인터뷰

by 실비단안개 2009.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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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죠, 댓글란에 정운현 님이 댓글을 남겼습니다.

 

정운현이라고 합니다.
님에게 이메일을 하나 보내드리려고 하는데요,
님의 이메일 주소를 제게 보내주시면 감사하겟습니다.
제 블로그 글에 비밀댓글로 남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만...

 

정운현 님은 젊은영 님과 함께 태터앤미디어(http://tattermedia.com/) 공동대표입니다.

태터앤미디어를 다음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는 뷰 기자가 아니라면 모를 겁니다.

태터앤미디어를 방문하면 소개글이 있는데 아래와 같습니다.

 

회사소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블로고스피어의 바다에는 수많은 보석들이 존재합니다. 태터앤미디어(TNM)는 그 보석들을 찾아내 갈고 다듬어 블로그 미디어 네트워크로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TNM은 다각도로 파트너들의 블로그 활동을 격려하고 또 지원합니다. 기술지원, 광고수주 대행, 컨텐츠 유통, 마케팅 기획 등 수익사업은 물론 파트너 개개인의 브랜드를 위한 다양한 취재활동을 지원하고, 더불어 교육 및 법률지원등을 진행합니다. TNM은 파트너와 더불어 새로운 미디어 세상을 개척하는 프론티어입니다.

 

뷰 기자가 아니며, 태터앤미디어의 파트너 블로그가 아니니 따로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는 곳이며, 파트너 블로그는 알고 있는 이웃만 방문하는데, 뜬금없이 메일을 보내겠다니 무슨 일일까하며 긴장이 되더군요. 그래도 궁금하여 메일 주소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많은(몇 개인지 모름) 질문이 있더군요. 메일 인터뷰였습니다.

저는 인기 블로그도 아니며 우수 블로그도 아니고 뷰 기자도 아닙니다. 해서 의아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탐인 블로그를 방문한 후 1 시간 작성의 답을 날린 후 다시 작성하여 메일로 보냈는데, 오늘 오후에 뷰에 송고를 했더군요.
맘소사! 귓말까지 그대로 - 이런 ~

답답한 노릇이지만 도리가 없지요.ㅡ.ㅡ;;

그런데 답답한 것 보다 더 한건 뷰 기사인데 추천이 아예 없다시피하더라고요. 우짜나 -
메일 인터뷰 대상을 잘못 선정한 것 같아 죄송하데요, 그래도 엎질러진 물이니 이것도 도리가 없지요.


정운현 님, 수고하셨고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죄송하고요.^^

포스트를 긁어왔습니다.

 

아래의 글이 메일 인터뷰 내용입니다.

 

[탐인 인터뷰-15] 행동하는 시골아줌마 '실비단 안개'(출처 : http://tamin.kr/media)

 

국내 블로그 수가 3천만 개를 이미 넘어섰다고 합니다. 블로그가 소개된 지 그리 길지 않은 기간임을 감안하면 그 확산 속도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젊은이들이 시작하였으나 지금은 계층도, 분야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초등학생에서부터 최고 전문가들도 참여하고 있으며, 심지어 현직 장관, 대기업 CEO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여성의 블로그 참여는 미미한 편입니다. 그리고 분야도 그리 다양하지 않은
편입니다. 와이프로거(와이프+블로거) 가운데는 요리 분야에 밀집된 경향도 없지 않습니다. 시사문제나 전문분야에서는 여성을 찾기가 어려운 형편이며, 특히 중년 여성층에서라면 눈을 닦고 찾아봐도 찾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중년여성 여러분, 분발하세요^^)

20여 년의 객지생활을 접고 고향, 경남 진해로 남편과 함께 귀향한지 14년째 접어드는 실비단 안개님. 이제는 다 큰 두 딸아이와 함께 부부가 시골사람이 다 돼버린 그녀는 “아이들에게 고향을 갖게 해 주고 싶어서” 귀향했다고 합니다. 운전면허가 없어 출타할 때는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그녀는, 고향에서 자신의 삶을 가꾸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녀의 블로그
[실비단 안개-사진으로 읽는 고향이야기]에는 고향의 진한 향수와 사람냄새가 안온히 녹아 있습니다. 자그만 시골학교와 시골역의 정취는 물론 사시사철 변신하는 산천경개와 농촌의 삶도 담겨 있습니다. 중년세대에겐 추억과 향수를, 젊은 세대들에겐 꿈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눈에 보이는 소소한 일상만을 담아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향 진해 알리기(김달진문학관 포함), 언론소비자운동과 바른언론 키우기, 한글 사랑, 저작권법 피해자 돕기, 그리고 일본 우토로마을돕기 등등... 시골(서울서 보면 진해도 시골이지요^^)에 사는 중년여성이 하기에는 그리 썩 어울려 보이지 않는, 다소 까탈스런 일들을 그녀는 이미 수 년 째 해오고 있습니다. 이런 그녀를 전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부르렵니다. 이견 있는 사람 습니까?


* '탐인'이란 '블로거'의 대체용어로 제가 지어낸 것입니다.


-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가족관계, 관심사, 일상생활 등을 자유롭게 써주십시오.
“경남 진해시 변두리에 거주하는 50대 초의 평범한 주부며, 식구는 남편과 20대의 딸아이 둘이 있습니다. 남편 역시 평범한 직장인이며, 큰아이는 직장인이고 작은아이는 공무원시험 준비 중입니다. 요즘 관심사는 아무래도 시국이 아닐까 합니다. 전 국민의 관심사겠지요.

개인적으로 책을 심도(띄어쓰기 등 한글공부)있게 읽어야겠다는 계획을 세워 책읽기를 매일 합니다. 시골생활이지만 저희 가족의 일상은 도시인이 생각하는 그런 생활이 아닙니다. 우리 동네에서 불이 가장 늦게 꺼지는 집이 저희('우리'라고 해야 하나요?)집이라고 할 만큼 도시의 생활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의 일상은 이렇습니다. 여느 주부들처럼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하며, 국을 끓이는 시간(저희는 아침에 국이 꼭 있어야 합니다.)에 잠시 인터넷에 접속을 하여 뉴스를 읽고 블로그는 열어만 보는 정도입니다. 그리곤 식구들이 출근을 한 후 편안하게 인터넷에 접속합니다.

블로그를 관리하고, 포스트를 작성하는데, 포스트는 사진이 삽입이 되다보니 편집한 사진을 내용에 따라 배치하고, 글을 적다가 애매하거나 궁금한 부분은 검색을 하는데, 이때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검색은 계속 검색을 요하거든요. 포스트 작성과 뉴스읽기 차례가 바뀔 수 있지만, 뉴스(다음 뷰 포함)를 읽고, 특별한 댓글의 주인이나, 안부가 궁금한 이웃 블로그를 방문합니다. 이 시간이 보통 2시간 이상인데, 어떤 포스트는 작성 시간이 5시간 이상 걸릴 때가 있는데, 중간에 커피를 두 잔 이상 마시기도 합니다.^^

여름에는 한낮에 바깥생활이 불편하지만 다른 계절은 시간에 관계없이 가고 싶은 곳, 가야 하는 곳 등을 찾아 꺼리를 만들거나 꼭 필요한 것을 사진으로 담아오는데,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가까운 들에 나가면 2~4시간 정도 걸리며, 시내로 나갈 경우에는 왕복 시간을 포함하여 3~5시간 정도 걸립니다.

저는 면허증이 없으며 제 명의의 차도 당연히 없습니다. 해서 시내나 먼 곳으로 나갈 때 마을버스(한 시간에 1회 운행)를 타고 시내버스를 타거나 시외버스를 타야합니다. 예전에는 면소재지로 나가는 길이 걸을만 했는데, 요즘은 도로확장 등의 공사관계로 위험이 높아 마을버스를 이용합니다. 마을버스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때는 콜을 하는데, 도시와 달리 교통비 지출이 많습니다.

그리고 아주 가끔 친정의 텃밭에서 노는데, 채소와 식물의 꽃과 열매 등을 만나고 생김을 보고, 자람 정도를 보고, 따라서는 카메라에 담기도 합니다. '텃밭에서 논다'라고 했는데, 부모님은 아주 많이 바쁘지 않는 한 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 분입니다. 부모님은 70대 중반으로 아직 청춘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세요. 해서 들일은 당연히 당신들께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며, 함께 들에 가더라도 저는 들일은 잠시며 제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합니다. 그 일은 카메라질입니다. 대강의 일상이 이렇습니다.^^”

- 현재 사시는 곳은 경남 진해 같은데, 혹 고향은 다른 곳인가요?
“여기가 부모님과 저의 고향이며, 부모님과 저, 아이들, 이렇게 3대가 초등학교 동창입니다. 20여년의 객지생활을 접고 고향에 온지 14년째 접어드는데, 아이들에게 고향을 가지게 해 주고 싶어서였습니다. 친정 부모님께서는 결사반대를 하셨지만, 저희가 왔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러시더군요.

"얼라들 공부 때문에 모두 나가는데 너그는 우째 거꾸로고…."

어쩌면, 아주 단순하며 억지 같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산부인과가 고향이라는 아이들에게 내가 뛰어놀며 자랐던 그런 고향을 아이들에게도 가지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아~ 내 고향은 경남 진해의 시골인데, 우리가 이사를 했을 때는 마을버스가 없었는데, 몇 년 지나니 마을버스가 운행되더라고, 봄밤에 개울가로 나가면 개울물이 돌돌 흐르고 개구리 소리가….',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가슴으로 안아 느낄 수 있는 그런 고향…."

- 님에게 ‘고향’의 의미는 한 마디로 무엇인가요?
“모두에게 그러하듯이 고향은 부모님입니다. 나는 자람(생각) 정도에 따라 변했(하)지만 고향과 부모님은 언제나, 늘 한 모습입니다. 고향과 부모님이 나를 키우고 지켜주었으니 이제 제가 고향과 부모님을 지켜야겠지요.”

- 중년세대에게 가장 귀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개인마다 다르겠지요. 이웃을 돌아보고 나누어야 하는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은 늦어질수록 실천이 어려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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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단안개'님의 블로그 상단 이미지


- 블로그는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습니까?
"
2005년 9월 23일에 태어난 블로그인데, 블로그의 의미도 모르고 만들었습니다. 블로그를 만든 날, '트랙백'이 무엇인지 검색을 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다음 카페 '사진저작권토론방(현재, 아름다운 사진 나눔방)'에서 운영진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지금이야 저작권이 홍보되어 많은 네티즌들이 대처를 하지만, 당시에는 저작권 위배로 고소를 당한 이들만 알고 있을 정도로 포스트들이 위험하게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싸이트의 친구가 사진작가의 사진 두 컷을 미니홈피에 불펌을 하여 고소를 당했는데, 컷 당 150만원의 합의금을 내라는 거에요. 평범한 주부가 인터넷에서 사진을 불펌했다고 합의금을 요구하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으며 무서웠겠습니까. 그 친구가 도움을 좀 달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도와줄까하니, 사진저작권 카페가 있으니 회원으로 가입을 하여 댓글로나마 힘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오지랖이 좀 넓습니다. 그러기에 누가 부탁을 하면 쉬이 스치지를 못합니다.)

가입을 하니, 우리가 쉽게 접속하여 노는 인터넷 세상의 한쪽에 저작권 위배로 고소를 당한 이들이 상당수더군요. 어쩌나…, 댓글만으로는 부족한데 무얼하지…. 그래, 내가 사진을 찍는거야, 그리곤 상업적인 목적 외에는 무한공유로 하는 거야…. 디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이에게 사 준, 그 디카를 들고 들로 나갔습니다. 접사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꽃 사진을 찍었습니다. 흔들리고 촛점이 맞지 않고…. 참으로 난감했지만, 내가 100장을 찍다보면 한 장 정도는 건질 수 있겠지, 그 한 장을 누군가가 가져가면 그 사람은 저작권을 위배 않고….

카페는 카페대로 방송에 몇 번 노출이 되었고, 변호사를 비롯 사진과 저작권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회원 가입을 하여 저작권에 대한 홍보를 계속함과 동시에 고소를 당한 이들에게 필요한 서류와 (무료)대행 등을 운영진에서 맡아 주었으며, 우리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다 보니 고소를 하던 사진작가들이 주춤했습니다. (요즘은 아마 작가의 사진 불펌으로 고소를 당하는 이들이 없을 겁니다. 물론 마음을 놓을 수는 없지만.)

그렇게 몇 달을 보내다보니 카메라가 어느 정도 손에 감겼지만 서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중에 부산의 고등학교 선생님 한 분이 카페 대화창으로 대화를 청하더군요. 그분은 사진을 찍어 공유방에 올리는 분이었는데 모든 것이 서툰 저였기에 대화를 거부하고 싶었지만, 계속되는 대화 요청에 응했습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블로그를 운영해 보라는 거에요. 블로그요? 네이버 블로그요? 다음에도 블로그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저작권 때문에 싫다고 하니, 블로그는 혼자 운영하기에 불펌만 아니면 저작권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빠르게 계산을 했습니다. 서툴지만, 사진을 카페에 올리고 블로그에도 올리고, 저작권 홍보도 병행하고….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네…. 대화중에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다른 싸이트에서 길드(카페와 비슷) 운영 경험이 있었으니 블로그를 생성하고 카테고리를 만들고-이런 일은 일도 아니거든요.^^ 블로그 운영 몇 달 후 사진저작권토론방 카페를 탈퇴(당시는 무혐의 판결이 이어졌기에 작가들의 고소가 주춤)하고 블로그만 운영했습니다. 이후 사진저작권토론방카페는 작가들이 더 이상 고소를 하지 않아 카페이름을 '아름다운 사진 나눔방'으로 바꾸어 뜻 있는 분들의 사진공유 카페가 되었습니다.

현재 다음 검색창에 '실비단안개'를 검색하면, 블로그 소개에 '저작권 정보, 김달진 문학관 소개'라고 나올텐데요, 블로그를 만들고 그날 만든 카테고리가 '저작권 정보'였지만, 이제 나라에서 저작권을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며 저도 예전만큼 기력이 없으니 저작권 정보 카테고리는 비공개로 전환했습니다. (길어서 죄송합니다.^^/)

- ‘실비단 안개’라는 닉네임이 참 정겹습니다. 어떤 뜻이며, 이 이름을 지은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으신가요?
“우리는 아이디 내지 닉네임을 지으면서 고민을 합니다. 다음은 한글 아이디가 불가능한데요, 제 아이디는 ivy로 보통(한글이 불가한 싸이트) 사용하며, 한글이 가능(사람사는 세상, 한글학회, 한게임 등)한 싸이트에는 '실비단안개'가 아이디입니다.

ivy는 사철 푸른 식물이며, 실비단안개는 부슬부슬 내리는 비보다 약하며 안개보다는 굵은, '는개'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나무 숲이 있는 산골이니 보통의 안개보다는 분명 짙게 보일테니까요. 시를 읽었습니다. 나태주의 '대숲 아래서'.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

실비단안개, 안개는 안개야, 그냥 안개가 아닌 실비단안개, 몸이 촉촉해지며 사방이 신비롭고, 부드러운, 모든 것을 감쌀 수 있고, 조용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실비단안개…! 당시 저는 게임싸이트 '한게임'만 알던 때였으며, 한게임은 한글 아이디(1인 3개)가 가능했기에, 실비단안개 아이디를 만들었습니다.

저의 부아이디는 '시월에 내린 눈(初雪보다 좋지요?)'인데, 제가 시월에 태어났기 때문인데요, 아이들과 남편이 놀리더군요. "지금 영화 찍는기요?"하며.ㅡ,.ㅡ;; 그리고 다음 아이디가 ivy지만, 닉네임은 '실비단안개'로 했습니다. 지금은 집에서도 실비단안개로 불리며, 우편물도 제 이름보다 실비단안개 우편물이 더 많습니다.”

대숲 아래서
/ 나태주

1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2

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
그슬린 등피에 네 얼굴이 어리고
밤깊어 대숲에는 후둑이다 가는 밤소나기소리.
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소리.

3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자고 나니 눈두덩이엔 메마른 눈물자죽,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

4
모두가 내것만은 아닌 가을
해지는 서녘구름만이 내 차지다.
동구 밖에 떠드는 애들의
소리만이 내 차지다.
또한 동구 밖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밤안개만이 내 차지다.

모두 내것만은 아닌 것도 아닌
이 가을
저녁밥 일찌기 먹고
우물가 산보 나온
달님만이 내 차지다.
물에 빠져 머리칼을 헹구는
달님만이 내 차지다.

- 혹시 가족 중에 블로그를 하는 분이 있으신가요?
“큰아이가 네이버 블로그를 하며, 남편은 제 블로그의 팬입니다. 해서, 저작권 등 민감한 부분은 생각을 나누며, 운영에 대해서 서로 악담(?)을 아끼지 않습니다.^^”

- 주변의 ‘아줌마’들 가운데 블로그를 하는 분은 없습니까? (별로 없다면 왜 없을까요?)
“여기는 시골이며, 반농반어에서 개발에 밀려 많은 이들이 직장(단순 노무 내지 식당 도우미)에 나갑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볼 수 있는 세상은 한계가 있기에 블로그의 중요성을 그다니 느끼지 못하는지 우리 마을에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가 없으며, 제 친구 중에도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친구(동창)들이 제 블로그를 방문은 합니다.

이태 전에 제가 마을부녀회 카페를 만들었는데, 부녀회원은 많지만, 카페회원은 5명 정도였습니다. 자녀들에게는 컴퓨터 학원에 가라 - 컴퓨터를 알아야 한다 - 라고 말을 하지만, 실제 본인들은 인터넷이 왜 중요한지를 모릅니다. 그렇다고 종이신문으로 정보를 구하는 것도 아니고, 잠시잠시 시청하는 텔레비전 방송이 외부로 향하는 출구쯤이 되겠는데요, 미디어법(방송)이 이래서 더 중요합니다. 조중동이 방송에 진출하면 시골 사람들은 분명이 세뇌당합니다.

그런 의미를 포함해서 아래의 란에 서명을 부탁합니다.
미디어법 청원 링크입니다. 한 번만 클릭하여 주세요.

헌법재판소 할아버지! 대한민국을 지켜주세요!!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77354

또, 제가 몇 분에게 블로그를 만들어 주었지만, 운영과 관리가 서툴렀기에 현재 놀고 있는 블로그가 되었는데, 제가 지속적인 관심(거리 상)을 가지지 못하여 그 분들게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실비단안개 님이 주남저수지 연꽃단지에서 촬영한 만개한 연꽃의 모습.


- 혹시 블로그를 통해 수입이 있습니까? (있다면 월 액수는 얼마나 되십니까?)
“현재 수입이 없지만, 그저께(7월 27일) 애드클릭스를 달았기에 앞으로는 적지만 수입이 있을 겁니다. 예전에 블로거 기자(현재 ‘뷰’이며, 지금은 뷰 기자가 아님)때는 재수 좋게 몇 번의 수입이 있었고, 어쩌다 경남도민일보 종이신문에 글이 실리면 수입이 있지만, 그건 아주 어쩌다이니, 블로그를 통한 수입이라고 말하기는 그렇지요? 제가 좀 억지입니다. 지혜, 지식, 권력, 명예, 재능-어느 것도 가지지 못했지만, 경제에 초연하다는 겁니다. 남편의 수입이 일반인과 비교하면 나은 것이 절대 아닌데도 말입니다.

난 광고는 싫어~ 이러면서 스팸블로그(특히 광고)를 블랙리스트에 올립니다. 현재 900명이 넘는데, 그러다보니 제가 애드클릭스를 달지 못했고, 지난해 블로거 간담회에서 고준성 님의 강의를 듣고 큰맘 먹고 애드클릭스를 달았다가 '대출'광고 때문에 꼭 한 달을 달았다가 버렸는데, 지난 주, 경남도민일보 블로거 강좌에서 김주완 기자의 강의를 듣고-블로그가 상속이 가능하다-저작권(꾸준히 글을 생산해야겠지만)이 있기에 포스트가 계속 노출이 될 것이기에 블로그 광고 수입이 짭짤해질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애드클릭스, 달까 말까 - 다시 달아 봐? 해서 그저께 부터 애드클릭스가 노출됩니다.^^"

- 블로그를 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블로그 운영 동기는 위에서 이야기를 했고요, 사진을 찍어 나누자-기왕이면 내 고향의 산하와 오늘 이야기, 나눔에서 이제는 진해의 역사 부분을 기록하는 일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진해 시민으로서의 사명감이랄까, 너무 거창한가요?) 물론 기록되는 이야기들은 아주 주관적입니다.”

- 만약 무슨 보람 같은 게 있다면 구체적으로 그건 뭘까요?
“가끔 유입경로를 확인합니다. 비록 적은 수일지라도, 다음 이미지와 네이버에서 유입이 될 때-그 수가 나날이 증가할 때(요즘), 이제 (불특정인이지만)우리가 통하기 시작했구나-그래, 마음껏 가져가라, 출처를 남겨주면 좋고 아니라도 좋고-저작권에서 해방되고 우리 진해를 알려다오-이런 마음입니다. 특히 그가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네이버 유저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그렇다고 다음의 골수팬은 아닙니다.^^

또, 우리 아이들이 검색으로 찾아 접속한 블로그가 제가 운영하는 블로그일 때입니다. "엄마~ 기차여행 찾았는데 엄마 블로그야~, 엄마~ 미역국 검색했는데, 엄마 블로그야~!"이럴 때요. (검색으로 방문하는)많은 이들에게 만족스런 답을 줄 수 있는 블로그가 되고자 합니다.“

- 제 때, 혹은 자주 포스팅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같은 걸 느끼진 않습니까?
“하하, 포스팅 할 시간이 부족하지 압박은 별로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일주일 중에 이틀 정도는 '쉬어 주자'인데, 그 약속을 못 지킬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매일은 새로운 경험이며, 어제와 같은 풍경은 없습니다. 한 자리에서 매일 그 풍경을 담아도 색다른 경험이며 재미있는 포스트가 될 겁니다.”

- 혹 중도에 블로그를 그만둘 생각을 하신 적은 없습니까?
“평범한 블로거인데 왜 그런 생각이 없었겠습니까. 단, 운영은 않더라도 블로그는 닫지 않는다 -입니다. 블로그 친구 중에 한 분이 그랬습니다. 열린 블로그는 개인이 운영과 관리를 하지만 절대 개인의 것이 아니라고요. 해서, 초기와는 달리 며칠 쉬더라도 비공개로 전환하지 않습니다.(후에는 모르겠습니다.^^)”

- 그간 적잖은 포스팅을 하셨는데, 소재 빈곤으로 고민하신 적은 없나요?
“시골생활이 단순합니다. 저처럼 외부인과 만남이 적다면 더 그런데요, 소설에는 사람이 가운데 있어야 하지만, 블로그의 포스트에는 사람이 '꼭' 있어야 하는 게 아닙니다. 무한한 자연이 있으니, 소재는 널려있습니다. 열정이 문제겠지요?”

- 평소 즐겨 찾는 블로그는 어떤 곳들인가요?
“'즐겨 찾는'이 아니고, '즐겨 찾아야 하는' 블로그인데요, 저의 모델이 되는 블로그는 경남도민일보의 김주완·김훤주 기자가 운영하는 '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입니다. 그들의 정신세계에 동감하며, 우리말과 글을 배우는 블로그고, 소박한 이웃인 옹달샘, 박규화, 팔방미인 이래 님의 블로그가 있는데, 4개의 블로그 바탕에는 '나눔'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의 욕심을 앞세우는 블로그(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 혹 오프에서의 번개모임 같은 덴 자주 참석하시나요?
“여건상(시골이니 교통문제) 번개모임은 불가하며, 경남도민일보의 블로그 강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진해를 찾는 이웃 블로거가 있다(으)면 안내를 기꺼이 하며, 계속 그럴 생각입니다.”

- 그들과의 만남은 특별한 그 무엇이 있나요?
“블로그 강좌(그외 만남도)의 백미는 뒤풀이일 텐 데, 제가 거리가 있다 보니 그 자리에 함께 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강좌가 아닌 만남(개인이 대부분이지만)은, 이웃이기에, 함께니까, 그냥 좋은 겁니다. 만남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통하고자하는 이웃이지 거래를 하는 사이가 아니거든요.”

- 사진, 동영상 솜씨가 수준급인데요, 특별히 어디서 배우셨나요?
“동영상은 전혀 그렇지 않으며, 사진도 그렇지 않습니다. 위에서 말씀을 드렸다시피, 저작권토론방에서 작가의 사진 불펌으로 고소를 당한 이들과 나누려고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또 게을러 사진에 관한 책을 보거나 이러지도 못하는 실정이고요, 카메라창으로 보아, 아~ 지금이다 - 이거다~ 하는 걸 담습니다. 저는 기계치라 카메라 작동이 아주 서툽니다. 그저 열심히, 세상의 풍경을 제 방식대로 담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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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마산제일여중고에서 열린 김달진문학관 행사 '시야 놀자'에서 유안진 시인(가운데)과 김달진문학관 학예사님과 실비단안개님(왼쪽)


- 카테고리 가운데 <김달진 문학관>이 있는데요, 김달진 시인과는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으신가요?
“면소재지의 작은 마을에 문학관이 있습니다. 내 고장의 시인이며, 우리 모교의 교가를 지은 분입니다. 학교를 다닐 때는 김달진 시인이 누구인지 몰랐으며, 관심을 갖지 못했는데, 블로그를 연 얼마 후 김달진문학관 개관식이 있더군요. 당시의 글에 썼지만, 카메라를 들고 느즈막히 갔습니다. 그런데 신달자 시인 등 많은 문인들이 참석을 했으며, 노래, 춤, 시가 어우러진 그 시간이 꿈결 같았습니다.

개관식 이전에 생가(문학관과 마주함)에 한 번 다녀오긴 했지만, 개관식에서 제가 느낀 행복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런 행복이었으며, 김달진 시인의 대표시 '열무꽃' 노래 CD와 '경건한 정열'등을 문학관과 참석을 한 문인에게 선물로 받았습니다. 후에 다른 이에게 모두 선물로 주었지만.
그리곤 김달진문학관을 찾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내게 행복을 주는 놀이터니까, 벚꽃만 기억하는 이들에게 우리(저는 우리문학관이라고 합니다.)문학관을 알려야지, 김달진 시인의 시를 꽃씨로 퍼뜨려야지…. 제가 많이 단순합니다.^^”

- 문학 관련 포스팅이 적잖은데, 젊은 시절 ‘문학소녀’였나요? (혹 요즘도 시를 쓰시나요?)
“문학소녀도 아니었으며, 글을 쓰는 재주가 없기에 책 리뷰도 기록을 못합니다. 가끔 시를 포스트에 삽입을 하는데, 포스트에 삽입하는 시로 말할 것 같으면, 꽃이나 풍경을 올리고 - (주관적이지만)보기 좋고 먹기 좋은 떡에 茶가 곁들여 진다면 맛이 배가 되겠지요. 해서, 그 꽃, 그 풍경에 어울리는 시를 검색하여 함께 올리는데, 가끔은 그 시의 주인이라면서 저작권 이야기를 하더군요. 해서, "내릴까요?"하면, "그냥 두세요." 합니다. 저는 저입니다. 그 시를 내립니다.

어떤 시인은 통하기(친구)신청을 하기도 했으며, 어떤 시인은 따로 시를 보내주고, 시집을 선물로 주기도 했습니다. 저작권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시를 저의 포스트에 삽입한다고 그 시가 저의 시가 되는 건 아니니 일부 시인들의 생각이 좀 넓어졌으면 합니다."

- 김달진 시인에 대해 나름으로 평을 해보신다면요?
“김달진 시인은 사후 더 알려질 만큼 은둔시인이었습니다. 시인이자 승려였고, 한학자이며 교사였던 시인은 세속의 명성을 버리고 정신의 자유를 향유하였으며, 부처의 가르침을 깊이 생각한 시인으로, 시인의 유품을 보면 두 개 이상인 것은 도장과 붓일만큼 어떠한 욕심도 찾을 수 없습니다. 소유로부터의 자유를 체득한 어른이라고 해야겠지요. 김달진 시인의 대표시 중 한 편입니다.

그리는 세계 있기에
/ 김달진

그리는 세계 있기에 그 세계 위하여
生의 나무의 뿌리로 살자
넓게, 굳세게, 또 깊게
어둠의 고뇌속을 파고 들어
모든 재기와 현명 앞에 하나 어리섞은 침묵으로...
그 어느 劫外의 하늘 아래 찬란히 피어나는 꽃과
익어가는 열매 멀리 바라보면서

- 진알시, 언소주, 민언련 등이 ‘즐겨찾기’에 들어 있는데요, 이런 단체의 회원이세요?
“민언련은 가끔 방문하는 블로그이며, 진알시와 언소주는 회원입니다. 언소주에 가입하여 응원과 후원금 좀 내시고, 진알시에 가입하여 이 시대의 진실이 무엇인지 좀 퍼뜨려 주세요.^^ 그리고 '즐겨찾기'는 블로그 방문자 모두를 안내하는 길입니다."

- 님이 생각하시기로 제도권 언론의 가장 큰 병폐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참 어려운데요, 답이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종이신문을 구독하지 않습니다. 해서 인터넷에서 접하는 소식이 전부인데요, (보수와 진보가)같은 방향을 볼 때, 원하는 것만 본다는 겁니다. 그만큼 언론권력이 강해졌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오연호의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에서 읽었는데, 제가 풀기에는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 한겨레나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같은 진보성향의 매체에 대해서는 불만 없나요?
“'할말은 한다'와 '해야 하는 말은 한다'는 다릅니다. 노무현 대통령 소환 당시에는 모두 한통속이었습니다. 소신을 가지길 바랍니다. 국민들이 오냐오냐 한다고 모든 것에서 잘났(한)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 ‘실비단 안개’라는 닉네임도 그렇지만 우리말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주로 우리말의 어떤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신가요?
“우리말은 아름다우며 부드럽고 정감이 있습니다. 어릴 때 할머니와 엄마의 평상어가 그리우며, 경상도 사투리가 (억양을 떠나)살갑습니다. 글로 표현하기에는 무리이기에 블로그 기록에는 제대로 사용을 못하고 있습니다.”

- ‘우토로 마을 살리기’ 운동에도 동참하셨던데요, 그 의미와 성과에 대해 한 마디 논평해주시길...
“우토로 마을은 블로그에서 이슈가 되기 전에 언론 등에서 먼저 다루어졌었는데, 그게 지속적이지 못했기에 큰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블로그 심샛별 님께서 꺼냈으며, 블로거 기자(현재 뷰)와 네티즌이 동참하여 이룬 성과중 하나입니다.

당시 저도 블로거 기자였지만, 글을 쓰는 재주가 없기에 그들의 기사를 읽고 추천(당시에는 에디터제가 있었기에 베스트 블로거는 추천 한 번이 일반 네티즌에 비해 '10'이었습니다. 해서 노출이 빨랐습니다.)하고, 더 알려야 하는 일이었기에 영상을 만드는 친구에게 우토로 배너를 부탁해서 배포했으며, 참가 블로그(거)명단을 작성했습니다. 그만큼 관심과 연대가 필요했었는데, 참가한 블로그는 연대감을 깊이 느꼈지요. 또 일반 네티즌과 블로거 뉴스 편집팀에서도 많은 응원을 해 주었습니다.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열성적이었지만, 바누아투의 블루팡오 님의 열성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웃이라면 블루팡오 님의 열성에 감복해서라도 기사로 송고하거나 배너를 달았습니다. 당시의 친구 중에 알마, 산골소년님은 요즘 소식이 없는데 여름을 잘 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네티즌들의 모금과 함께 정부에서도 지원을 해 주기로 했지만, 현재 흐지부지한 상태인데, 정부에서 약속한 지원금이 하루 빨리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프고 슬픈 역사의 한 페이지지만, 블로그(거)의 연대를 깊이 느낀 시간이었기에 한편으로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우토로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하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해 11월 하순부터 12월 초까지의 마을 집회에 참석한 모습.


-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배너가 아직도 달려 있군요. 최근엔 봉하마을엘 다녀오셨던데요, 부엉이바위와 묘역의 너럭바위(작은 비석)를 마주친 소감이 어땠습니까?
“제 블로그 이미지는 선명한 꽃분홍색의 목단꽃잎에서 작은 벌레가 기어 나오는 것이었는데, 대통령의 추모 배너를 다니, 블로그의 선명한 이미지 때문에 배너가 묻히더군요. 해서, 저의 초등학교 3학년 때 봄소풍 사진(흑백)으로 바꿨습니다. 추모 배너-영원히 함께 하자-이런 뜻이 되겠지요. 그동안 봉하마을을 여러번 다녀왔지만, 부엉이바위 아래는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분이 대통령이었을 때, 나는 왜 언제나 반대편에만 있었을까….

저는 권력을 가진 이(집단 포함)에게 비록 작은 힘일지라도 보태주지 않습니다. 그 권력을 추락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견제하자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야 그(개인 혹은 집단)가 권력을 남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생각이 어리석을 수도 있으며, 가지지 못한 자의 자존심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부모가 그 자리에 있더라도 생각은 같아질 겁니다. 나리꽃 보다가 부엉이바위 정상을 보다가, 땅을 보다가… 그랬습니다.

부엉이바위로 가기 전에 작은 비석을 찾았지요. 보는 이에 따라 초라하다고 표현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주위가 휑합니다. 도로와 가까워 시끄럽습니다. 그러나, 작은 너럭바위는 이미 성지며, 우리의 고향이 되었고, 누구나 울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울어도 흉볼 사람이 없는, 청와대보다 더 크고 편안한, 국민들의 안식처였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아팠음을 고백합니다.”

- 끝으로 질문지에는 없지만, 꼭 보태고 싶은 얘기가 있으시면 보태셔도 좋습니다.
“이렇게 긴 설문지를 받을 줄 몰랐습니다. 더군다나 메일 인터뷰라니. 저는 유명 블로도 아니며, 우수 블로그도 아니고 뷰 기자도 아니거든요. 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왜 실비단 안개였나요? 제가 이렇게 용감합니다. 원하는 답에 근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질문을 읽고 답을 기록하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다만, 어젯밤에 비공개 카페에서 1시간 이상 작성한 글이 날아갔기에 오늘 처음부터 다시 기록했습니다. 블로그는 다운이 될 경우 저장이 되는데 카페는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이에게, 날아간 거 찾아 줘~ 하다가 혼만 났습니다. 지가 바쁘다나요. 칫, 그럼 다시 기록하지 뭐 - (* 내용이 부족하다고 느끼시면 올리지 마셔요! 절대 서운해 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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