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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끌리면 읽기

이채구 시인의 시를 만났다

by 실비단안개 2009.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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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앞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앉았다. 아마 한 달이 넘었겠지.

 

포토웍스와 포토스케이프를 다운로드 받고, 이니셜을 입력하고 -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정리되지 않은 사진들이 많아, 올릴 사진이 많아,  너무 할 일이 많아 정말 나 없다 - 하고 싶은 날이었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일,

문학관으로 이병주 문학관의 풍경을 보내고, 동창 카페에 동창회 날의 우리 모습을 올리고 -

블로그에 글 올리고 -

 

부재중 한 통화를 확인하니 이채구 시인이다.

반가움에 통화를 길게 눌렀다.

15분 후에 집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시인이 동인지를 내민다. 처음이다. 시를 모르니 앞에서 펼칠 수 없어 가방에 넣었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러 김달진문학관으로 갔다. 2년만이라고 했다.

 

나는 커피를 마시고 이채구 시인은 메밀차를 마셨다.

우리는 자유를 찾은 사람처럼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생가의 뜰에 바람이 많았다. 은행잎은 아직 푸른빛이 더 많고 담장에는 계요등이 오물거리는데.

 

집에 와서 생각하니 우리가 만나 건 세 번이 아니라 네 번이다.

거제 공고지를 둘 다 깜빡했다.

문학관과 성흥사 간 날, 흑백다방 음악회, 공고지, 문학관 - 이렇게.

다음에 이야기 해야지.

 

'따로 또 같이'의 동인지 2호 '지독한 삶의 자유'를 펼쳤다.

시인의 시를 정식으로 처음 만났다.

읽기 어려운 사람의 마음같은 시를 읽는다. 

'공고지에서'가 있고, 산다화에 부분 댓글로 준 시 '애기동백 필 때'가 있다.

 

지금 밖에는 애기동백이 피었는데.

공고지에도 애기동백이 피었을 텐데.

 

- 巨濟島, 詩人과 함께 가다.

- 종려나무숲이 있는 거제 공고지의 풍경

 

공고지에서 / 이채구

 

때 묻지 않은 몽돌 궁둥이 걸쳐 놓고

오순도순 밤 이야기 들릴 것 같은

내도의 작은 선착장 끄트머리에서

애간장 태우며 속삭이는 앳된 여인의

몸짓 같은 파도

건너왔다 건너갔다

밤새 달빛에 물길을 밝혀도

쉬이 해가 뜨지 않을

쉬이 별이 뜨지 않을

팔손이의 이파리가 열 잎이 되어도

한겨울 빠듯이 삐져나온 수선화 혓바닥이

다시 거름이 되어 제 뿌리에 노란 심장을 맡길 때까지

그렇게 함께하고픈 공고지의 품속

애기동백의 배냇저고리 내음이 번져가는

바짓가랑이 사이로 붉디붉은 노을 쓰러져 있는 그 길

돌아가고 싶지 않다

차라리 한 그루 종려나무가 되어

우두커니 바다를 바라보다

허울을 벗고 얼어 죽을지언정

두 눈 꼬옥 감고 서 있고 싶다

 

종려나무가 어떻게 생겼지요?

아마 보면 알 겁니다.

 

종려나무를 만나 아~ 우리 해안도로에 있는 나무네 - 했던 공고지.

 

        ▲ 공고지의 애기동백 

 

애기동백 필 때 / 이채구

 

애기동백 뒷산에 붉게 필 때

큰 집 아래채 아궁이는

붉은 눈물 뚝뚝 흘리며 벌건 혀를 내민다

재 너머 애기동백 초장 초장 누님 모시러 오면

동백기름 머리 올린 우리 누님 함박꽃처럼 활짝 웃다

뒷간 모퉁이 처마 밑에서

초가지붕 빗물 같은 눈물 줄줄 흘린다

손잡고 베개 베고 호롱불 끄면

벽에 발린 낡은 신문의 이야기들이

누님 따라 갈세라

봄눈 녹듯 녹아서 밤새 소곤거린다

이 밤이 가고

누님 마지막 밥쌀 씻는 소리에

새벽 첫닭 서럽게 울고

혼자서 흐느끼는 눈물 자국에

애기동백 꽃송이 뚝뚝 떨어진다

 

지난주 어느날 혼자 훌쩍 배에 올라 거제를 다녀왔는데.

그날은 누구도 생각이 나지않았고.

갈매기와 바다를 폰으로 찍었지만 누구에게도 보내지 않았고.

몽돌밭에서 말갛게 바란 조가비만 주머니 가득 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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