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방으로 뜻 있는 방학과 휴가를
학기중 공부에 매달린 자녀들과 방학기간을 이용하여 역사 ·문화 탐방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아 700년 아라홍련을 피운 함안 아라가야를 소개합니다.
아라가야는 삼국 시대 육 가야(六伽倻) 가운데 하나로 경상남도 함안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나라로 아야(阿耶)·안라(安羅) 등으로도 표기되고 있는데, 이는 우리말을 한자식으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고 같은 대상을 말합니다.
철기문화를 주도했던 아라가야의 찬란한 역사가 숨쉬는 함안박물관은 관내 주민과 외래 관광객의 역사 문화체험 탐방지 겸 쉼터로 각광받고 있는데, 요즘은 아라홍련이 몫을 더 하고 있습니다.
7월에 아라홍련을 만나기 위해 함안박물관을 두 번 방문했지만, 개화기를 못맞춰 꽃잎을 살짝 연 아라홍련만 만났습니다. 넘어진김에 쉬어 간다고, 아라홍련 덕분에 배롱나무꽃 피면 다시 방문하고 싶었던 고려동과 마애불을 만나고 왔는데, 오늘은 아라가야의 흔적을 소개합니다.
함안 군청 소재지는 가야읍이며, 도항·말산리 고분군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설립한 함안박물관은 2003년 10월에 가야읍 도항리에 건립되었습니다.
도심의 박물관과는 달리 함안박물관은 고분군에 싸여 들판을 내다보고 있으며, 박물관앞으로 고인돌전시장이 있습니다.
박물관은 1992년 가야읍 도항리 아파트 신축공사시 출토된 4∼5세기때 수장층의 말갑옷, 환두 대도, 옥재목걸이와 같은 지배계급의 유물과 수레바퀴모양토기, 화염형투창고배 등의 토기류를 비롯해 도항·말산리 고분군 일원에서 출토된 안라국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불꽃무늬토기의 함안박물관
함안박물관입니다.
박물관은 대표적인 아라가야 유물인 불꽃무늬토기를 형상화했으며, 박물관 조형물이 비치는 수변공간에는 물보라를 만드는 디딜방아, 연자방아 모양의 물레방아가 좌우에 설치되어 있고, 박물관 전시실 입구에 아라홍련이 있으며 박물관 내부는 넓은 전시실과 체험실, 휴식공간이 있습니다.
외부 역시 또 하나의 전시장이며, 물레방아가 있는 수변공간과 함께 굴렁쇠, 널뛰기, 투호놀이, 제기차기 등 전통 체험거리가 있습니다.
박물관 입구 아라홍련과 함께 수반에는 여러 종류의 수련과 연꽃이 있는데, 박물관측이 연꽃단지를 계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연꽃과는 달리 수련은 9월에도 만날 수 있으며, 아라홍련은 꽃대를 계속 올리고 있으니 한동안 아라홍련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 아라홍련과 수련
박물관의 전시품은 후레쉬 사용없이 찍었습니다.
동굴이나 박물관, 기타 전시실 등에서 촬영을 금지하거나 후레쉬 사용을 금지하는데, 이는 생태환경과 전시품에 손상을 줄 수 있기에 그러하니, 관계자의 지시를 따르기 바랍니다.
전시실에서 역시 궁금한 것은 아라홍련의 씨앗이 발굴된 성산산성으로,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목간이 전시되어 있는데, 요즘 '종이는 숲입니다'라는 환경캠페인이 진행중인데,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목간은 종이의 역할을 했습니다.
목간(木簡)은 문자를 기록하기 위해 일정한 모양으로 깎아 만든 나무 또는 대나무 조각입니다. 주로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 또는 널리 쓰이기 이전에 사용되었으며, '목독'(木牘) 또는 '목첩'(木牒)으로도 불리었고, 대나무로 만든 죽간(竹簡)과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목간과 죽간을 총칭하여 '간독'(簡牘)이라고 합니다.
목간은 1975년 경주 안압지 발굴 조사에서 처음 출토된 이후 현재까지 약 500여 점이 출토되었습니다. 신라권(경주, 함안, 창녕, 김해)에서 출토되었고, 백제권의 부여, 익산 지역 등에서도 출토되었습니다.
성산산성에서는 1992년 이후 2007년 현재까지 모두 116점의 목간이 발견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목간자료임은 물론 그 양이 방대하여 문헌기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목간이 만들어진 시대는 안라국(=아라가야) 멸망 직후인 6세기 중 ·후엽으로 추정합니다.
목간의 성격에 대해서는 성(城)과 관련된 사람들의 신분증이라는 설도 있지만, 대부분의 목간이 물품에 붙이는 꼬리표, 즉 하찰목간입니다.
고인돌과 도항·말살리 고분군
함안박물관 앞에는 고인돌 전시장이 있습니다.
박물관 및 도항.말산리 고분군과 연계한 고인돌 야외 전시장은 고대사회 이 땅을 지배했던 조상들은 한반도 남부와 강화도 지역에 집중적으로 남겨 놓았는데 바로 고인돌무덤입니다. 고인돌이란 이름은 말 그대로 돌을 고였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며, 고인돌은 크게 덮개돌과 받침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받침돌은 고임돌, 굄돌이라고도 하는데 덮개 돌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며, 받침돌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고인돌의 종류가 달라집니다. 그 외에도 한가지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죽은 사람이 쉴 수 있는 무덤 방을 보호해줍니다.
고인돌은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 세 가지 종류로 나누어지며, 가장 쉽게 고인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탁자식 고인돌입니다. 받침돌이 길게 솟아 있고 덮개 돌이 편편해서 탁자모양이기 때문이며, 바둑판 식은 덮개 돌이 두껍고 받침돌은 아주 작습니다. 개석식은 고인돌인지 아닌지 알기 힘들 정도로 특징이 없는 고인돌이며, 야외 전시장에는 여러 종류의 고인돌과 고인돌의 이동 방법과 설명이 있습니다.
아라가야를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이 고분입니다.
도항· 말살리 고분은 함안박물관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아라가야는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한 전기가야연맹의 구성원으로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낙랑·왜 등과의 교류를 독자적으로 전개하기도 했는데, 6세기 이후 가야사회의 중심지가 경상도 내륙인 고령지역(대가야)으로 옮겨가면서 후기 가야연맹이 성립되자 아라가야도 새로운 연맹의 일원으로 편입해 들어갔으나, 대가야가 쇠퇴함에 따라 백제와 신라의 갈등관계를 이용해 가야의 새로운 맹주국으로서 지위상승을 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531년 백제의 침공을 받아 크게 타격받은 후로 서서히 소멸되어갔으며, 함안지역의 말이산(末伊山)에 남아 있는 가야시대 무덤들은 그들의 세력이 강대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가야는 신라 때 멸망당했으므로 이 고분군들은 가야 국왕들의 묘로 본다고 합니다.
함안군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분지로 북과 서는 낙동강과 남강으로 남과 동은 600m가 넘는 산으로 둘러 있습니다. 이 고분군은 아라가야의 도읍지였던 가야읍 도항 · 말산리 일원에 위치하며 찬란한 가야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적입니다.
아라가야 왕들의 무덤으로 생각되는 100여기의 대형고분들은 높은 곳에 열을 지어 위치하고, 그 아래로 1,000여기나 되는 중소형의 고분들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 고분군은 일제시대에 처음 조사되었는데, 당시 제34호분은 봉토(封土)의 지름이 39.3m, 높이가 9.7m나 되는 최대 규모의 왕릉이었습니다.
고분군을 오르는 길에 눈여겨 볼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에 두 그루 밖에 없는 금송(황금색 소나무)입니다.
금송은 보호울이 있지만, 쉬이 스치기 쉬우니 두리번 거리며 꼭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시공을 초월한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박물관을 포함한 주변 고분군은 함안의 자존심과 얼이 흐르는 공간으로, 함안을 방문하는 여러분에게도 큰만족을 드리리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박물관, 도서관, 문학관 등 전시실이 있는 공간은 월요일이 보통 휴일이며, 함안장날은 5일과 10일로 함안장은 상설시장인 가야시장과 함께 가야읍에 있으니 함안을 방문하면 함안장 구경도 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경상남도 홍보블로그 따옥따옥(http://blog.naver.com/gnfeel)에 실린 글을 다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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