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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동피랑에 가면 천사가 된다

by 실비단안개 2011.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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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항과 중앙시장은 변함없이 활기찹니다.

이태쯤 되었나, 하룻밤 묵은 낡은 숙박업소를 지나 통새미 골목을 걸어 동피랑으로 갑니다.

새해 첫날이지만 까꾸막에 줄줄이 주차가 된 걸로 봐 동피랑 벽화마을을 찾은 이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까망길에 접어드니 여전히 사투리가 쌔기오시소 하며 반기고 해맞이후 방문한 듯한 가족단위의 방문객과 처녀들은 처녀들끼리, 남녀 혹은 여학생들끼리 벽화골목을 향해 걷습니다.

 

▲ 동피랑 마을

 

피랑은 벼랑(비랑)의 통영 방언으로 낭떠러지의 험하고 가파른 언덕을 뜻하며, 동피랑은 동쪽에 있는 벼랑으로 통영의 심장 강구안이 한눈에 조망되는 중앙활어시장 뒤편의 언덕 마을이며 맞은편의 서문고개쪽 위는 서피랑입니다.

 

동피랑은 달동네였으며 마을이 옮겨가지 못했으니 지금도 마찬가진데, 통영시에서 동피랑 정상(배꾸마당)에 있던 조선시대 수군통제영의 망루를 복원하고 재개발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2007년 '푸른통영21 추진협의회'가 달동네도 가꾸면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서민의 삶이 녹아 있는 통영의 골목문화로 재조명 해보자는 데 의견을 모아 '동피랑 색칠하기 전국공모전'을 열고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에 그려진 동피랑 골목벽화는 동피랑 벽화를 그렸던 작가, 대학생들이 다시 동피랑에 '꿈'을 덧칠하는 동피랑 초대전이 2008년에 있었으며, 지난해 봄 골목벽화는 새단장 됐습니다.

 

 

근 1년만인데 까망길 끄트머리에 붕어빵과 어묵을 파는 작은 포장마차가 생겨 태인카페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시장통에서 산 국화방이 남았기에 붕어빵을 갈아 주지 못해 미안했습니다.

 

 

적막같던 몬당은 벽화로 활기가 돌고 황두리 할머니와 태인카페 할아버지는 동피랑의 스타가 되었습니다.

동피랑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소문으로 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어하며, 태인카페 출입문엔 여행객과 함께 찍은 할아버지의 사진이 줄줄이 사탕처럼 늘어져 있습니다.

 

다른 여행객들처럼 할아버지와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물론 다음에 인화하여 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황두리 할머니는 지난번 방문때 만나지 못했는데 또 열쇠를 채워두었더군요.

 

 

 골목벽화가 변했음이 금방 들어 왔습니다.

이웃 시인이 그랬습니다.

 

"어릴적 연 싸움하면 바람이 동피랑쪽으로 많이 불지요. 그래서 종일 그 동피랑에서 싸움에 떨어진 연을 주울려고 겨울바람에 귀가 떨어져 나가는 줄도 모르고^^*"

 

또, "겨울에 鳶줏으러 많이 다녔지요^^*

남의 집 지붕에 올랐다가 변소로 왕창 내려 앉기도… 담장위에 올랐다가 장독대 왕창 깨어 먹기도….

동피랑 까꾸막에 오르면 겨우 비켜설 골목길 그 길 양쪽으로 말소리 다 들리는 슬레트집들, 그래도 情하나는 끝내줬지요."

동피랑 위에는 아무것도 없기에 연은 높이높이 올랐을 것이며, 먼바다까지도 날아 갔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동피랑에는 연을 띄울 기력이 있는 아이와 젊은이가 귀해 그런지 연이 오르지 않지만 새해 첫날이나 설날에 연날리기 행사를 하면 어릴적 추억을 더듬으며 누군가는 또 동피랑을 찾겠지요.

 

이웃 시인은 동피랑을 또 이렇게 추억했습니다.

"겨울날 손수레가 올라가지 못해 들통에 연탄 몇장 담아서 그 골목 언덕길을 바닷바람 맞으며 오르는 어머님의 마음에는 '에~~고 힘들다'보다는, 이 연탄 몇 장으로 우리 새끼들이 따뜻한 방구석에서 단잠을 잘 수 있어 더운 겨울날 그곳이었다"고.

 

여러 곳을 다니며 풍경을 담다보면 한참 지난 후에 느닷없이 그곳의 옛소식을 전해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얼굴을 맞댄적 없지만 그럴 때는 마치 오래전에 헤어진 친구를 만난듯이 수다스러워지곤 합니다.

 

 

골목으로 접어 듭니다.

김반석선생님의 '동피랑에 꿈이 살고 있습니다'가 있던 자리에 날개가 펼쳐져 있습니다. 

여행객은 서로 천사가 되고 싶어 했는데 날개는 꿈이며 희망이고 우리 모두는 줄을 서 나의 날개로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낯선 여행객을 찍은 후 사진으로 담았는데 인터넷에 올려도 되겠느냐고 하니, 잠시 망설이더니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말고 그냥 올리라고 했으며, 저를 찍어준 후 함께 올려 달라고 했습니다.

덕분에 저도 천사가 되었습니다.

당시 새해 인사를 드리지 못한 것 같은데, "이쁜 이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벽화 골목을 걷습니다.

동피랑 지킴이 동;미르가 있으며 동피랑 마을전체가 벽화가 되기도 했고, 윤이상 선생이 오가는 여행객을 맞이하며 고사목이 동백도 피웠습니다.

통영을 대표하는 것은 동피랑에 모두 있습니다.

 

▲ 동피랑 지킴이 동;미르

 

 

 

황두리 할머니집을 지나 동피랑 폐가를 리모델링해 완공한 RCE 동피랑 센터는 통영의 쌈지 교육장으로 활용중이지만 새해 첫날이라 쉬었는데, 마당에 큰우체통이 있었습니다.

동피랑 UCC 우체통은 동피랑을 배경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우체통으로 사진을 전자우편으로 보낼 수 있는 데, 사진출력은 유료(1000원)며 수익금 일부는 동피랑 발전기금으로 사용됩니다.

추억을 만들면 동피랑 발전에 함께하는 일이니 UCC우체통을 많이 이용해 주세요.^^

 

 

우체통 앞은 벼랑이며 동피랑의 인기모델 개(犬)가 있던 그집으로 가는 길에 동피랑구판장도 문을 열었더군요.

간단한 음료와 비옷 등을 파는 가겐데 겨울이라 출입문에 바람막이용 비닐을 늘어뜨려 두었습니다.

친절하게 차림표도 담아 왔습니다.^^

 

 

벼랑 아래로 호수같은 바다가 펼쳐져 있으며 중앙시장이 보입니다.

동피랑 골목벽화 사업을 주관한 푸른통영21(위원장 김형진)이 한국민관협력 포럼에서 주최한 '2008 민관협력 우수사례 발표대회 및 시상'에서 최우수상인 행정안전부장관상을 수상하면서 받은 상금을 동피랑 주민들과 방문객들에게 돌려주자는 취지로 의자를 설치했는데, 이 골목은 전망대같기에 동네 할머니들과 지친 방문객의 다리들 잠시 쉬게 하며 강구안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가 됩니다.

 

 

연대도 할머니들과 한글공부를 하는 추인호 씨가 동피랑에 둥지를 틀었다고 했습니다.

얼라가 그려진 집이라고 했지만 당시와 달라진 벽화긴 해도 추인호 씨가 거주하는 집입니다.

문패대신 출입문 위에 '삼촌집'이라고 쓰여 있으며, 우편물이 쌓였고 문이 잠긴걸로 봐 인호 삼촌이 없는 게 분명하지만 그냥 돌아서면 서운할 것 같아 "인호 삼촌~"하며 몇 번 불렀습니다. 

한 사람 건너면 연락처를 알 수 있지만 김형진 위원장님과 정희씨께 연락처를 묻지 않았습니다.

또 인호 삼촌 만나러 동피랑에 가야지 하는 혼자만의 약속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벽화를 배경으로 함께 풍경이 되며 꼭 그자리에서  찍고 싶어 기다리기도 합니다.

동피랑 골목은 화수분입니다.

 

▲ 삼촌집, 첫 벽화와 비교하기

 

나팔꽃이 피었던 자리에 복사꽃이 피었습니다.

벚꽃보다 붉은기가 도니 복사꽃이 맞을 겁니다.

덩그렇던 나무에 무지개가 걸렸습니다.

인호 삼촌 출입문을 사이에 두고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하며 사방치기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골목에 가득한 친구들의 이름이 쓰여진 벽이 마치 진짜 모퉁이를 돌면 나오는 벽 같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사방치기를 하지 않겠지만 별다른 장난감이 없던 우리 어린 시절은 흙과 나무, 돌 등이 장난감이었으며 사방치기는 납작한 돌로 하는 놀이로 혼자 놀 수 있으며 친구와도 놀 수 있는 놀입니다.

 

▲ 골목벽화속의 골목

 

인호 삼촌집앞에는 어린왕자가 있습니다.

어린왕자도 숨바꼭질하는 아이들만큼 인기가 좋습니다.

숨바꼭질은 담벼락에 살짝 기대 숨으면 되지만 어린왕자와는 모두 손을 잡고 싶어 합니다.

아저씨 한 분이 아주머니에게 어린왕자 따라 가지 말라고 하여 골목이 잠시 왁짜했는데 동피랑 골목에선 모두 동심이며 천사가 되는 모양입니다.

어린왕자가 손을 씻어야 할 정도로 때가 묻었습니다.^^

 

 

골목을 돌면 보아뱀이 삼킨 코끼리가 있고 인호 삼촌집 옥상에는 하늘을 날고 싶은 자전거도 벽화와 한 풍경이 되어 있습니다.

그 사이로 끝없이 나아갈 수 있는 듯한 배꾸마당 하늘과 바다가 있습니다.

 

 

 

삶이 진부하게 우리를 속일지라도 항남 우짜 한그릇 먹고 '오늘두 우짜, 웃자, 라구요' 하는 '항남우짜' 시를 쓴 이명윤 시인이 동피랑 시를 썼습니다.

 

동피랑 / 이명윤


어느 천사가 가난한 날의 등에 무수한 키스를 남겨놓고 떠났을까

 

골목담장마다 추억의 나무가 자라고 나뭇가지마다
천 개의 손이 열려 있는 동네
철부지 아이들이 시간 속으로 뛰어다니고 오색물고기가
언덕을 타고 오르는 동네
집채만 한 꽃이 주인마냥 피어있고 큰 무지개가
온종일 걸려 있는 꿈 같은 동네

 

무서운 용역대신 눈빛 선한 화가들이 다녀간 동네
망치대신 붓을 들고 세월의 고단함을 철거해 버린 동네
최루탄 대신 푸른 물감이 웃음으로 번져나가는 아름다운 하늘 동네
친구야, 오늘은 동피랑 가자

 

포크레인으로 밀어붙이고 망치로 두들겨
사람도 울음도 그림자도 흔적 없이 사라져야
다시 동전 같은 눈을 뜨는 도시에서 누가 느닷없이
세월을 떠올렸을까
당신의 수많은 발자국을 품고 있는 골목과
이웃들의 왁자한 목소리를 기억하는 담장과
구멍가게 유리창에 껌처럼 붙어있을 유년의 눈빛과
가로등 밑에서 아직도 뒹굴고 있을 당신의 젊음을
누가 살짝
귀띔하였을까

 

담장에 수놓은 그림과 사투리와 낙서들이
노파의 고단한 무릎을 응원하며
영차영차 언덕을 오르는 하늘동네 동피랑 가자
왜 가난은 비탈길에 모여 사는지 철없이 묻지도 말고
어릴 적 꿈들이 별빛처럼 내려와 소곤거리고
오래된 골목이 해지는 줄도 모르고 뛰어다니는 곳
가난도 나이도 잊고 신혼의 꿈에 젖어 있는
우리 할머니 동네 동피랑 가자
삼십 년 혹은 사십 년 전 두고 온 당신의 시간을 찾아
바람도 웃으며 언덕을 오르는
벽화마을 동피랑 가자.


- 동피랑 홈페이지 : http://www.dongpirang.org/

 

이 글은 경상남도 홍보블로그 따옥따옥(http://blog.naver.com/gnfeel)에 실린 글입니다.

톱 할아버지 詩에 날개를 달아 주세요 - 톱 할아버지의 시 - 3편을 어제(1월 11일) 고승하(경남 민예총 지회장) 선생님께 전해 드렸습니다.

할아버지의 시가 노래가 되면 알려드리지요.

그리고 어제 날짜 경남도민일보에 실렸는데(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37344), 통영 방문시 할아버지께 드릴겁니다.

 

여러분들의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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