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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귀명리의 가을 이야기

by 실비단안개 2011.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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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의 여행입니다.

하루 코스지만 제대로 즐겨보자며, 밀양 표충사와 주변을 둘러 보자는데 의견을 모았으며, 첫길은 귀명마을로 정했습니다.

 

밀양시 하남읍 귀명마을 입구입니다.

장승 사이에서 소년이 함박미소로 맞이하며 옆에 마을 유래 안내판이 있습니다.

좀 거슬린다면 마을 입구에 냉장창고가 있다는 것인데, 마을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냉장창고를 따라 걷다보면 정자가 나오고 음식점 터줏대감이 있으며, 우회전하면 귀명마을입니다.

 

 

 

여느 시골마을과 마찬가지로 벼가 익고 집집마다 감나무 한 두 그루가 있습니다.

보통의 마을과 다르다면 마을 담장 부분 벽화가 있는데 자극적이지 않은 색이며 풍경 또한 정스런 우리네 풍경입니다.

벽화 아래로 메주콩이 말려지고 있는데, 귀명마을에는 콩과 들깨 농사를 많이 하며, 집집마다 있는 감나무 외에 감나무밭이 따로 있기도 했습니다.

종탑마져 정겨운 작은 교회당의 오전 예배 모습은 골목까지 흘렀습니다.

 

 

 

마을 동편은 귀동마을이며 서편은 귀서마을입니다.

귀서마을 회관겸 경노당 현관 유리문에 귀명리 마을축제와 신문에 나온 소식들이 붙어 있습니다.

부모님의 투박한 손이 생각나 삐뚤하게 붙여진 소식들에 웃기도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알리고는 싶지만 굳어진 손가락은 마음대로 되질 않지요.

마을회관앞은 버스 회차장인데 마을버스가 운영되는 모양이며, 그 앞에 마을입구와 같은 마을 유래 안내판과 귀명  노동 야학회 안내판이 있습니다.

 

 

마침 콩단을 이고 오시는 할머니가 계셔 야학당 위치를 여쭈니 안내판 앞쪽의 밭이라고 하더군요.

야학당이 있던 밭에서도 할머니 한 분이 콩단을 만지고 계셨습니다.

 

 

 

우물은 야학당 시절부터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많은 주민들이 공동우물을 이용했을 테니까요.

또 마을엔 두어개 정도 우물이 더 있었습니다.

 

일제시대에 많은 마을이 그러했듯이 야학당이 운영된 귀명마을 야학회 설명입니다.

 

귀명 노동 야학회

- 취지 : 문앵퇴치와 인륜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으로 마을 유지의 뜻을 모아 설립하게 되었다.

- 시기 : 구한말부터 귀명마을 야학회가 존속하였으나 학당이 없이 재실등의 장소를 옮겨가면서 주경야독하다가 일제 강점기 소화8년(1933년)에 당시 면장 이후택씨의 주선으로 학당을 건립하게 되었다.

- 장소 : 하남읍 귀명리 279-3번지

- 규모 : 약 40평(목조기와 강당형)

- 개요 : 하남공립보통학교(하남 대사초등학교 전신)에서는 일본어를 일본선생으로부터 가르치는 때인지라 일본의 눈총이 따갑기도 했다. 당시 일본이 우리의 글과 말을 말살하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던 때에 우리 마을 유지분께서는 그에 굴하지 않고 우리의 주체성을 지키기 위하여 교육의 장으로 거듭나게 하였다. 해방(1945년) 이후에는 초등학교를 취학 못하는 자녀들의 야간교육장이었다가 1955년 철폐하였다.

- 연의록(기부자 명단) : 비석 뒷면 35인

 

감이 익어도 따 먹을 아이들이 없는지 홍시가 되어 절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텃밭엔 김장 무와 배추가 실하며, 좀 더 양지엔 상추와 시금치가 파릇하며, 호박은 제 무게를 감당못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귀명마을을 살팡살팡 걸어 보겠습니다.

다 같이 돌자 귀명리 한 바퀴~~ ^^

 

귀명리엔 메주콩이 대세입니다.

골목마다 밭두렁에도 콩이 말려지며 마당엔 타작한 콩이 들깨, 팥 등과 말려지고 있습니다.

들깨단이 버려진 곳을 지나니 들깨(가루)냄새가 나기도 했습니다.

들깨가루 넣은 시락국을 좋아 하다보니 흠흠 코를 벌렁거리기도 했네요.

 

 

 

귀서마을 동편으로 걷다보면 들길이 나오고 가까운 들엔 억새가 하얗게 일렁였습니다.

동편으로 걷다 우회전하여 조금 걸으면 재실이 있는데, 재실 마당 뿐 아니라 귀명리엔 은행나무가 여럿 있는데 할머니께서 은행알을 줍고 있었습니다.

100년도 더 되었다는 은행나무 아래엔 은행알을 쏟은 듯이 많은 은행알이 떨어져 있었으며, 할머니는 벌써 한 푸대를 채우고 또 줍고 있었습니다.

시장에 내다 파신다네요.

 

 

대청마루에 오르기전에 굴뚝은 아닌 것 같은 데 굴뚝같은 곳에 누군가 모과를 올려 놨습니다.

재실마당엔 늙은 모과나무도 있는데 무게가 많이 나가다 보니 모과나무가 축 쳐졌으며, 아래엔 실한 모과임에도 여러개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은행잎이 물들고 모과가 노랗게 익을 때면 귀명리는 지금보다 더 아름다울 것이 분명합니다.

 

 

옛야학당 입구 우물외에 마을엔 우물이 더 있다고 했었는데 귀동마을에도 우물이 이렇게 있습니다.

수도를 사용하기에 우물은 옛모습으로 그대로 있는데, 안을 보니 이끼류가 화분에 잘 심어진 화초처럼 자랐습니다.

 

 

야학당 우물가에도 나팔꽃이 정오가 가까웠음에도 활짝 피어 있었는데 귀명리엔 나팔꽃 종류가 참 많습니다. 진분홍, 애기나팔꽃, 청색나팔꽃과 둥근잎유홍초, 새깃유홍초가 때론 담장을 덮기도 했습니다.

담장이와 어우러진 나팔꽃도 이쁘지만 토담을 기어오르는 유홍초는 이늠 어떻게 찍어줘야 이브게 나올까 하며 한참을 머물게 했습니다.

 

 

 

봉창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깃유홍초가 벽을 덮었습니다.

지난 봄 엄마는 새깃유홍초 이름을 몰라 크리스마스(조명같은 꽃)꽃인데 이뿌더라, 니도 키워봐라 하시며 두어포기 장미화분에 심어줘 몇 송이 꽃을 피우긴 했는데 돌볼 새가 없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 새깃유홍초

 

귀명리엔 담장외도 이렇게 벽화가 있습니다.

마을 창고인데 풍악그림입니다.

창고옆으로 저수지가 있으며, 저수지엔 수련이 피어있고 풍악그림이 저수지에 반영되는데 시골에서 흔치 않은 풍경입니다.

 

 

저수지둑을 걸었습니다.

주민들이 쉴 수 있는 정자와 운동기구가 있으며, 저수지둑엔 붉은 칸나와 억새가 날리며, 건너편으로 금송화가 줄을 지어 피어 있습니다.

금송화는 뱀의 접근을 차단하여 심기도 하지만 여름과 가을에 노랗고 붉은 꽃이 오랜기간 피어 있어 봄날 꽃풍경이 그렇게 그립지 않게 하는 요술꽃입니다.

 

 

마을입구 창고 뒷편입니다.

농로임에도 흙과 시멘트길이 아닌 지압길입니다.

시멘트에 자갈을 박아 만든 길로 주민의 건강을 위해 만든 길 같습니다.

창고 뒤 수로를 건너면 허수아비무리가 있는데 다양해 말을 걸게 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정겹지 않은 게 없는 귀명리의 가을입니다.

 

 

 

메주콩을 말리던 가정의 감나무밭입니다.

큰바구니 두 개에 가득 감을 땄기에 판매를 하느냐고 물으니 팔지는 않는다며 큰늠으로 몇 개를 집어 주었기에 큰선물마냥 소중히 가방에 넣으며 고맙다고 했습니다.

바구니에 담아간 사과 대신 단감을 깍아 먹으며 다음 길로 갔습니다.

 

 

다사로워 그런지 귀명리엔 아직 고춧대가 있으며, 메밀꽃이 여물고 있습니다.

음식점 터줏대감이 보입니다.

 

 

두어시간 넘도록 쏘다녔더니 다리가 아프며 배도 출출했습니다.

음식점에 도착하니 미리 준비하라고 한 오리용압탕이 나왔습니다.

오리용압탕은 오리고기에 한약재와 굴을 넣은 오리삼계탕 정도로 생각하면 되는데 지쳐있는 몸에 뜨신 음식이 들어가니 사람이 솔솔 녹더군요.

잘 마시지 않는 커피를 둘이 나눠 마시고 다음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 매생이 오리용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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