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15일) 진해선을 타고 다시 경전선으로 달리며, 언제나 달려보나 싶던 보라빛이 도는 분홍철교를 달려 낙동강역을 스쳤습니다.
달리는 기차에서 찍다보니 선명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모습이 나온 것 같아 큰아이에게 저기가 우리가 처음 기차여행때 내렸던 낙동강역이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 10월 15일 낙동강역 - 화장실은 있으나 역사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시 경부선으로 밀양강가를 달리며 가을풍경을 동영상으로 담기도 하고, 청도와 가까워졌을 때는 붉게 익는 감나무를 보며 즐거워했습니다.
16일, 밀양을 다녀오는 길에 외산교에 잠시 멈춰 새낙동철교를 배경으로 억새가 일렁이는 늪도 담았습니다.
▲ 외산교에서 담은 새낙동강철교
▲ 새낙동강철교
낙동강역은 삼랑진역과 마찬가지로 삼랑진읍에 있습니다.
삼랑진읍(三浪津邑)은 경상남도 밀양시의 동남부에 위치하여 밀양, 양산, 김해 등 세 지역이 접경을 이루며, 밀양강(응천강)이 낙동강 본류에 흘러들어 세 갈래(三) 물결(浪)이 일렁이는 나루(津)라 하여 삼랑진(三浪津)이라 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영남대로(嶺南大路)와 접속하는 수운의 요충지로 조선 후기 동안 낙동강의 가장 큰 포구(浦口) 중의 하나로 1765년(영조41년)에는 삼랑창(三浪倉, 후조창 後漕倉)이 설치되어 밀양, 현풍, 창녕, 영산, 김해, 양산 등 여섯 고을의 전세(田稅)와 대동미(大同米)를 수납, 운송하며 물자의 최대 집산처(集散處)로 성장하였으나, 육로교통의 발달로 조창이 없어지면서 읍의 중심이 삼랑(낙동)에서 송지리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삼랑진읍은 경부선과 경전선 철도가 생긴 1905년 이후 번성했는데, 철도부설과 함께 들어온 일본인을 보호하기 위해 헌병대와 파출소가 생겼고, 일본인이 운영하는 과수원, 학교, 상점들이 앞다투어 들어서면서 일찍부터 도시화가 되었습니다.
그러했기에 삼랑진읍에는 지금도 일본가옥의 형태가 남아 있습니다.
낙동강역은 삼랑진역과 마찬가지로 삼랑진읍입니다. 그러기에 거리가 2km이내며 낙동강둑이 바로 보이는 그런 곳에 수줍게 움크리고 있는 무인역이었습니다.
몇 번 낙동강을 찾았을 때 관계자들은 낙동강역은 부산 신항 배후철도가 완공되면 위상을 회복할 것이라고 했으며, 복선공사가 끝나면 낙동강역은 옛활기를 찾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잠시였지만 낙동강역 맞이방은 낙동강역을 다녀간 이들이 남긴 방명록으로 도배되었으며, 그것은 간이역의 추억을 한껏 멋지게 포장해 주기도 했습니다.
삼랑진역에서 분기되는 경전선의 첫번째 간이역이 낙동강역입니다.
간이역다운 역사(驛舍)를 가진 낙동강역의 역사(歷史)는 오래되었습니다. 1906년 12월 12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으며, 당시는 삼랑진나루 인근에 자리했다가 1962년 지금의 자리로 신축이전했는데, 역의 역사는 100년이 넘습니다.
삼랑진까지 왔는데 낙동강역에 가자?
겨우 작은역사 하나 달랑 있는데 애착이 너무 심한거 아이가?
가 보자….
낙동강역에서/ 문희숙
휘슬소리 끊으며
전라행 막차는가고
목이 긴 내 그리움도 그때
창백한 진주로 간다
상좌처럼 기다리던 사람이 개찰을 하면
마가목 우듬지 저녁별 머리 이고
머물던 기억들 하나씩 기차를 타고 떠난다
허물어져 먼 거리의
아름다운 사랑들아
나는 또 눈뜨고 꿈꾸는 사공이 되어
도요새 발자국 찾아 모래강을 저어간다.
이제 시에 나오는 낙동강역은 사라졌습니다.
나루들도 사라졌으니 도요새 발자국을 찾아 모래강을 저어 갈 사공도 없습니다.
강너머는 여전히 4대강공사중이며, 와산교를 지나니 많은 농지들은 강에서 퍼 낸 모래를 뒤집어 쓰고 있었습니다.
낙동강역이 사라졌습니다.
분명히 없어지지 않을 거라도 했었는데… 하며, 사라진 역사를 두리번 거리며 찾았습니다.
혼자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역사는 없었고 화장실 건물은 철망에 싸여 있었으며, 강둑너머와 마찬가지로 역사주변은 어수선했습니다.
17일, 삼랑진역(055-353-8087)에 전화를 했습니다.
낙동강역이 언제 없어졌나요?
담당자는 2009년 하반기에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블로그를 뒤져 가장 최근에 찍은 날짜를 봤습니다. 2010년 9월 23일입니다.
다시 삼랑진역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낙동강역을 찍은 날이 지난해 가을인데 2009년 하반기에 없어졌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기다리라고 하더니 다른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2009년 하반기부터 차츰 없어져 지난해 하반기에 완전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차츰 없어지고 말 것도 없는 작은 간이역이었는데.
사진으로 보면 알겠지만 2009년엔 맞이방이 방명록으로 도배되었기에 참 흡족해 한 기억이 있습니다.
무인역을 옛역장님이 다듬고 가꾸어 낙동강역을 다녀가는 이들에게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주었으니까.
김해시의 낙동강변 경전선 폐선철로 관광상품 개발사업을 코레일측에서 모르지 않을 텐데, 역사 철거는 너무 이른 결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로 진해 경화역사가 철거된 후 벚꽃열차와 관광객을 위해 가건물을 무인역으로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해시는 경전선 직·복선화 사업으로 폐선된 김해시 생림면 마사리 일원에 놓인 기존 경전선 철로에 번지점프 시설과 하늘 레일바이크, 김해 특산물인 산딸기 와인을 구매해 맛볼 수 있는 와인터널을 조성한다고 합니다.
이 사업은 생림면 마사리 일원 낙동철교∼생림터널 1.7㎞ 구간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2009년 철도 개량화 사업으로 폐선되는 철도 시설물을 관광자원화하고자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공모에서 김해시가 선정돼 추진하게 됐다고 합니다.
낙동강역은 낙동철교와 가까운 거리니, 철거보다는 폐선철로 상품과 연계한다면 훌륭한 볼거리가 될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기사참고 : 낙동철교서 레일바이크 타실래요)
사라진 낙동강역 풍경입니다.
▲ 2010년 9월 23일 맞이방
위키백과에서 낙동강역을 검색해 봤습니다.
낙동강역(Nakdonggang Station)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진로 119 (삼랑리 10-15)
낙동강역(洛東江驛)은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에 위치한 경전선의 철도역이다. 미전선이 분기하며, 인근에 낙동강이 있다.
2004년 이후 인근 삼랑진역의 정차 열차 횟수가 증가하면서 여객수요가 흡수됨에 따라 2010년 1월 4일을 끝으로 여객 열차가 더이상 정차하지 않으며, 그 해 11월 12일에 역사가 철거되었다.
1906년 12월 12일 : 보통역으로 영업 개시
1962년 12월 20일 : 현 위치로 이전, 화물취급 중지, 낙동강 철교 준공
1997년 6월 1일 : 배치간이역으로 격하
2003년 : 미전선 복선화로 승강장 전면 개보수 공사
2004년 12월 10일 : 무배치간이역으로 격하
2009년 6월 : 명예역장 배치
2010년 1월 5일 : 여객 열차 취급 중단
2010년 11월 12일 : 역사 철거
2010년 12월 15일 : 경전선 복선 전철화 개통. 밀양, 삼랑진 방면은 전철화만 되어서 삼랑진역을 연결하는 경전선 선로는 여전히 단선으로 남아있다.
(http://ko.wikipedia.org/wiki/낙동강역)
낙동강역에서 / 이기영
낙동강 철교를 지나간다
덜컹거리는 소음과 진동을 느끼며
안개 자욱한 시간을 건너간다
눈앞으로 갑자기 나타나는
일본식 양옥집을 연상시키는
낙동강역
내리려는 이 타려는 이 아무도 없는
간이역으로
기차는 한껏 속도를 줄인 채 천천히 내려선다
안개의 점령지 그곳
언제였나
어 이상 아무런 아쉬움도 남아 있지 않다는 눈빛으로
나를 배웅하던 젊은 날처럼
모호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명령으로
무수한 안개 발자국이
나를 지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차는 다시 떠나고
나를 지워버린 안개만
그곳에는 여전하다
('따로 또 같이' 동인지 「지독한 삶의 자유 」에서)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서성이다 돌아섰습니다.
낙동강 철교위로 해가 집니다.
가을풍경보다 더 나를 쓸쓸하게 한 낙동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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