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이맘때 청도 신거역에 다녀왔습니다.
신거역이라기보다 새마을발상지라고 더 알려진 그곳은 입구부터 새마을기가 쭉 게양되어 있었기에 어느 한사람을 우상화시킨다는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어쩌면 자료로 필요로 할 수 있을거야 하며, 펄럭이던 새마을기 등 신거역 풍경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얼마전 포맷을 하면서 따로 저장되어 있던 2년전 사진은 옮기는 걸 깜빡하여 모두 날렸습니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내그림의 신거역 풍경 한 장은 블로그 배경으로 쓸 요량으로 저장해 둔 풍경으로 기차가 있는 풍경과 간이역을 좋아 하다보니 훌쩍 떠나고 싶은 날 블로그 배경으로 하면 좋겠다 싶어 약간 뿌옇게 해 두었습니다.
▲ 2009년 10월, 신거역을 통과하는 화물열차
2년전 그때 온김에 둘러나 보자며 새마을발상지 기념관을 둘러 봤으며, 인터넷 초기페이지가 네이버였기에 다음으로 바꿨으며, 4대강 홍보책자가 있었기에 여러개를 챙겨왔습니다.
4대강 사업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가져가면 누군가는 가져갈 수 없겠지 하는 생각이었지요.
새마을발상지 기념관만 없었더라면 마을 풍경과 사연에 대해 포스팅을 했을 텐데 기념관 때문에 포스팅하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습니다.
그후 이웃에게 퍽럭이는 새마을기가 있는 사진을 자료로 보내긴 했지만 그 친구는 사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자료로 사용하지 않았고, 보낸메일을 뒤적이니 오래되어 자동 삭제되었습니다.
지금도 새마을 발상지임에는 변화가 없지만 청도군의 새마을발상지 성역화에 대해 한쪽으로 기운 내 생각과 여러분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 포스팅 합니다.
새마을발상지 광장 한켠에 기차와 신거역이 있었습니다.
그 앞엔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도 있었고요.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입니다.
청도 소싸움경기장의 가로등 이미지가 소싸움이었으며, 많은 지역의 가로등은 그 지역의 상징을 가로등 이미지로 하는데 기념관의 가로등 역시 새마을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기념관 내부를 볼 이유는 없었습니다.
새마을 운동은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청도 팸투어 당시 운강고택, 임당리 김씨고택 등을 설명하며,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처럼 한국의 역사마을로 대접받을 수 있을 텐데 새마을 운동으로 많은 지붕과 담장이 현대식으로 바뀌며 옛모습이 사라졌다고 해설사는 안타까워 했습니다.
새마을 운동으로 농촌이 살기 좋아졌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우리는 새마을 운동으로 우리것을 너무 많이 잃었습니다.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우리는 매일 마을 스피커에서 울려퍼지는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마을 우리힘으로 만드세,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 를 들어야 했으며, 노래에 쇄뇌되어 초가집은 가난한 집인줄 알았습니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할아버지는 동네 할아버지들과 이엉을 엮어 새지붕을 만들었으며, 그날 저녁은 다른날보다 푸짐했으며 밥상엔 막걸리가 올랐고 어린 동생은 할아버지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해 우리집도 기와집이 되었으며, 부엌은 비록 시멘트를 바르긴 했지만 입식이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아침에 내가 하는 일 중의 하나인 정지벽과 아궁이옆에 부지깽이로 그림을 그리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지금처럼 흐리거나 비가 내리는 날 저녁녘에 나는 연기냄새와 밥 뜸들여지는 냄새가 그리워진 건 철이 든 후였습니다.
▲ 새마을 발상지 기념관
간이역을 찾는 여행객이 늘어나며, 코레일은 철거된 역을 복원하거나 폐철로를 이용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청도군은 2009년부터 신도마을을 새마을 발상지로 위상을 정립하고 새마을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사업의 하나로 철거된 신거역을 건립했으며, 역전 광장에는 실물 크기의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이 원형 좌대 위에 세워졌고 손가락은 당시 시찰 상황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역에서 말하는 맞이방입니다.
일반역의 맞이방처럼 승차권을 구입 할 수 있는 듯이 해 두었으며 안내직원이 있으며, 당시 열차요금과 시간표가 있지만 열차가 운행되거나 정차하지는 않습니다.
다른벽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새마을 운동과 신거역의 관계 등이 나와 있었습니다.
8월 27일 준공식에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등이 방문했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이 세워진 다음날인 28일엔 하루동안 수백명이 이곳을 찾았다고 하며, 비 그친 휴일인 어제 오후 시간에도 여러명의 관광객이 대통령 전용객차 내부를 구경하며 처음 보는 전용객차에 신기해 했습니다.
대통령 전용객차는 1926년 덕혜옹주가 이용한 1등 전망차를 1955년 대통령 전용으로 리모델링하여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방순시때 특별열차로 이용되었던 등록문화재 제419호 귀빈차로 철도박물관에 보존 전시된 대통령전용 귀빈객차를 청도군에서 복제한 차량입니다.
대통령 전용열차는 신도마을 앞 경부선 신거역 철로 위에 재현돼 멈춰 서 있으며, 열차 안은 대통령 집무실, 침실, 식당 등이 재현돼 관람객이 언제든 둘러볼 수 있지만, 재현 전시된 침실, 식기 등으 모두 "앉지 마세요, 손대지 마세요"가 친절하게 쓰여 있습니다.
▲ 대통령 전용객차 내부
8월에 완공된 역전 광장은 신거역 광장이 아닌 '새마을발상지 광장'으로 명명됐으며, 동상 앞의 돌로 만든 큰 책은 75년 대통령 비서실이 펴낸 새마을화보집입니다.
조형물은 이 책 중 '새마을 태동기'편을 보여 주고 있으며, 신거역사 오른쪽에는 신도정미소가 복원돼 있는데 69년 건립돼 박정희 전 대통령 방문 때도 있던 건물이어서 당시 정미소 기계 등을 그대로 보존한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의 물레방아가 있는 곳이 정미소며, 마을을 둘러 보고 주차장으로 가는데 60대쯤으로 보이는 여행객이 박정희 대통령 동상과 악수를 하며, 부인인 듯 한 분에게 그 모습을 찍어 달라고 했습니다.
찍힌 후 이미지 검색을 하더니 잘못 찍혔는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다시 정중하게 동상의 손가락과 악수를 하더군요.
완전 빵 터진 풍경이었습니다.
간이역을 사랑하는 많은 여행객들이 보고 싶은 풍경은 아래 사진처럼 기차가 지나가고 잠시 정차하며, 하루에 겨우 몇 번 정차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더 마음에 담고 싶은 시골풍경을 포기하며 뛰는 그런 역입니다.
신거역은 역의 역할을 못하다보니 기차가 여러 차례 지나는 것을 은행나무 아래에서 지켜봤으며, 기차가 멀리서 오는 소리가 들리면 얼라아부지가 곧 기차가 지나갈 것이다라고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나는 카메라에 신경 썼기에 기차소리를 들을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다시는 새마을발상지 광장을 찾을 일이 없을 것 같아 우리는 붉은색 기차가 지날 때 까지 은행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습니다. 붉은색 기차가 어느 풍경이나 더 잘 어울리기에요.
기차를 몇 번 보내고 우리는 일어서 광장과 신도마을을 둘러 봤습니다.
문이 굳게 닫힌 이동도서관이 있었는데 굳게 닫힌 문과 함께 창문도 검어 안을 볼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주말과 휴일엔 운영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너무 폐쇄적인 듯 해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신도마을은 새마을 발상지 마을답게 잘 정비되었으며, 정보화마을이기에 계절에 맞추어 농촌체험 등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차가 떠난 듯 하는 이 쓸쓸함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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