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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즐거우면 더 좋지 아니한가!
고향 이야기/김달진 문학관

그리운 골목과 사람들, 그리고 특별한 시애(詩愛)

by 실비단안개 2011.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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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습니다.

학예사님을 두 번 만났으며, 웅천도요지 전시관 개관식 후 함께 김달진 문학관으로 갔습니다.

학예사님은 마산에서 출퇴근을 하기에 불편한 교통이 늘 걱정이었는데 작은 차가 생겨 운전을 쌩쌩하여 고마웠습니다.

수협앞에서 하차하여 문학관까지 걷는 거리가 제법되기에 추울 때나 비가 많이 내릴 때는 더 걱정이 되기도 했거든요.

 

웅천도요지에서 유장근 교수님과 일행처럼 다녀 따로이긴 했지만 문학관에서 다시 만나 또 좋았습니다.

 

시인의 집 텃밭에서 무를 뽑았답니다.

무청맛을 아는 이는 무에서 무청을 싹둑잘라 데쳐 말리거나 그대로 말리는데, 이웃에서 무청을 데친다기에 텃밭에서 거둔 무청을 함께 데쳐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데쳐주었기에 점심으로 텃밭에서 솎은 상추에 삼겹살을 이웃과 함께 싸 먹었는데, 도요지에 다녀오니 고구마를 갖고 오셨다며 커피와 함께 내 놓습니다.

김달진 문학관 근처에는 커피 자판기가 없기에 학예사님은 골목마담처럼 커피를 타 줍니다.

 

셋이서 한풍경이 되고 싶었지만 그렇게 찍는 재주가 없다보니 학예사님과 유장근 교수님만 담았습니다.

다른 이들은 유장근 교수님을 "교수님"이라 부르지만 나는 그냥 선생님이라고 합니다. 선생님이 교수님보다 더 다정하니까요.^^

 

 

선생님 내 카메라와 선생님 카메라를 비교합니다.

더 좋다네요.

전자제품은 새모델이 나올 때마다 기능이 다양하며 편해지고 값은 내려가는데 선생님은 550이며 내껀 600이니 좀 더 좋게 보였나 봅니다.

물론 좋긴 더 좋았습니다. 창이 회전하니까요. 동영상 지원도 가능해요 하니, 550도 동영상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퇴원 후 커피를 아주 가끔 - 1주일에 한 잔 정도 - 마시는데 학예사님이 타 준 커피기에 홀랑 다 마셨으며, 선생님은 마산으로 돌아 가셨습니다.

헤어지는 인사는 당연히 악수였지요. 하하

 

학예사님께 일을 하시라하고 나는 시인의 집으로 갔습니다.

오전에 얌전했던 바람이 성난듯이 불어댔는데 문학제 시화가 빨래줄에 널린 빨래처럼 막 날렸습니다.

시화 두 개 사이마다 대나무막대기를 세워뒀는데 동네 꼬마들이 칼싸움 한다고 대부분 빼 갔다고 했습니다.

 

인구조사를 지난해 했으며, 인구조사 후의 포스트가 문학관 방문 마지막 포스트였습니다.

그 사이 두 번인가 방문을 했었는데 꼬박꼬박 포스팅을 하지 않았으며, 2월 눈밭에 미끄러졌고 병원생활이 이어졌으며, 또 이런저런 사정으로 문학관을 정식으로 방문할 시간이 나지 않았습니다.

늘 그리웠지만, 문학제 초대에도 응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제7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는  김이듬 시인이었습니다.

시야 놀자 때 뵌 시인이었기에 마음으로 축하를 드렸었는데 김이듬 시인과 그이 시가 텃밭위에 걸렸습니다.

유채꽃밭 사이를 걷던 시인의 모습을 기억했습니다.

 

 말 할 수 없는 애인 / 김이듬

 물이 없어도 표류하고 싶어서
 외롭거나 괴롭지 않아도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곳으로 떠났다 돌아오거나 영 돌아오지 않겠지
 가까운 곳에서 찾았어
 우리는 모였지 인도 아프리카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사람들과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인 학생들
 지난해 여름부터 나는 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었어
 불한당 청년들의 표류처럼 불규칙적이었지만
 무서운 속도로 어휘와 문법을 습득하는 그들이 참 신기하더라
 말이 무색해서 팔다리를 브이자로 벌렸지
 매일매일 뱃멀미가 났어
 멀리서 돈 벌러 온 한 이방인에게 나는 미약했지만
 그의 까만 손가락이 내 얼굴을 두드렸지
 장난스럽게 단지 두드리는 시늉만 했는지 몰라
 전혀 두드리지 않았는지 몰라
 적절한 문장을 못 찾겠어 도무지 사랑할 수밖에
 그는 자신의 긴 이야기를 음악소리로 듣는 마을에 가서
 내 갈색 귀에 다 털어버렸지 코고는 소리도 뭔가 이상했어
 외국인 남자는 어떨까 상상하지 않았다면
 말 못 할 관계로 가지 않았다면 나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어
 생면부지의 것들을 만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사귀지 않는다면
 위험하지 않다면 살아 있는 게 아닌 건 아니지만
 끝없이 문제를 만들어야 했어
 시험문항을 만들고
 혼혈의 아이들을 낳아 식탁에 둘러앉아 각자의 모국어를 섞어 말할지도
 몰라
 콩밥을 나누고 에이즈 환자 모임에 가야 한다 해도
 사랑한다면 사랑할 수밖에
 너와 헤어진 다음날 그를 사랑했어

 

 

감나무는 잎을 떨구고 가지에 까치밥 하나를 달고 있으며, 마당에 붉은 감 하나가 떨어져 있습니다.

뒤안과 지붕에 떨어진 은행잎은 그리 고운색이 아님에도 날씨와 잘 어울렸습니다.

옛날 집사님이 생각났습니다.

하루종일 비질을 하시는 듯 말갛던 마당. 건강은 어떠신지.

 

 

대문을 나서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정가네도자기가 있습니다.

해가 짧기에 정가네도자기까지는 갈 수 없을 듯 합니다.

내가 소사에 가면 가는 차례가 정해져 있거든요.

 

진짜 겨울이 오고 있나 봅니다.

나무는 가지가 더 선명하며 담쟁이는 씨앗만 담장에 흔적으로 남겨뒀습니다.

 

 

 

대문을 나서니 누구를 배웅했는지 학예사님이 주차장쪽에서 오고 있었기에 함께 꽁뜨로 갔습니다.

기름내가 약간 나긴 했지만 바람이 심하다보니 뜨신게 좋았습니다.

주연양 겨울 단장중입니다.

외할머니께 물려 받았다는 뜨게책을 놓고 완성된 모자를 써 봅니다. 그냥저냥 이뻤기에 나도 썼었는데 거울이 없어 학예사님이 휴대폰으로 거울을 만들어 주며 어울린다고 했지만 요리조리 볼 수 없어 바로 벗어 주었습니다.

주연양은 해마다 이렇게 뜨게질을 하며, 혼자만의 욕심을 우리에게 깨알처럼 쏟아 냅니다.

아빠는요?

머리싸매고 생각중이에요.

 

 

문학관으로 건너오니 김씨 꼬리처럼 뒤에서 실비단~ 합니다.

아직 1년은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수염탓인지 김씨아저씨가 늙은 것 같습니다.

커피를 놓고 그간의 이갸기들을 풀어 놓습니다.

잡히지 않는 무지개. 내게는 아직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김씨아저씨와 갤러리 마당으로 갔습니다.

지난해 이맘때의 풍경 그대로 같은데 그간 손을 놓고 있었을 박배덕선생님이 아니지만, 두리번 거리며 새로운 것을 찾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의 카메라질로 많이 지쳤으며, 선생님은 실내에서 작업중이었거든요.

 

의자가 비었기에 냉큼 앉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차를 내 줍니다.

무슨 차에요?

헛개나무.

아~ 남자에게 좋다는요?

여자에게도 좋아요, 간에 좋다고 하니.

이건 무슨 차고, 요건 뭐고... 아무리 이야기 해도 나는 커피맛만 기억합니다.

 

보자, 집에서 코코아 한 잔, 우유 한 잔, 도요지 개관식에서 이름 모르는 차 두 잔, 문학관에서 커피 한 잔과 녹차 한 잔... 오늘 차를 너무 마셨네... 그래도 선생님께서 손수 내 주시는 차니 마셔야지.

 

선생님은 여전히 화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사모님은 소사로 이사를 한 후 갤러리보다는 댁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기영 선생님께서 치마 들추듯 들췄던 나팔꽃잎은 얼음녹는 듯이 흘러내려져 있습니다.

고개 빳빳이 들고 얼굴 붉히지 못하는 국화는 바보.

 

 

솟대는 변함없이 골목의 안녕을 빌며, 담장에 액자 그림이 걸렸습니다.

그 사이의 변화이며 이 골목 조금 못 미쳐 솜씨가 다른 솟대가 솟은 집이 있었기에 여쭈니, 사진작가인데 갤러리를 만드는 중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의 꺼리가 이 골목에 생기니 다음엔 궁금증을 풀어야 하기에 새집을 방문 할 겁니다.

 

 

우리집 화초들은 실내에 있기에 아직 얼지 않았는데, 문학관과 갤러리 마당의 화초들은 대부분 얼었습니다.

문학관 입구의 커다란 국화화분을 해가 지기에 안으로 들였는데 김달진 시인과 잘 어울렸습니다.

아~ 좋다, 이쁘다, 해가 나더라도 밖에 내 놓지말고 이대로 두셔요. 문학관이 다 환하네.

학예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문학제 기념집 '시애'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한 권 주세요.

못 받았어요?

문학제 후 처음인데...

 

 

얌전하게 넣어 집에 와 시애를 펼쳤습니다.

맞다, 아버지 병원 계실때 조재영쌤이 전화하셨지. 시에 실비단안개 넣어도 되느냐곤가 넣었단가라고.

그러셔요. 우리는 아주 짧은 통화를 했고, 김달진 문학제 후 유입키워드에 어느날은 '실비단안개'가 200개가 넘는 날이 있기도 했습니다.

뭐지? 실비단안개가 뭔지 많이들 궁금한 모양이네... 그래도 시애를 생각지 못했습니다.

 

시애 초대시인의 신작시

소사동이라는 곳 조재영 시애詩愛 286페이지.

 

소사동이라는 곳
- 백석풍으로  / 조재영

 몇 자루의 연필과 붓과 돋보기와 토시와 검정색 다이얼 전화기와 발우와 또 어느 계절엔가 수줍게 두 손을 무릎에 올리고 장형의 옆에서 맨발로 셔터를 응시하는 시인의 어릴 적 흑백 사진이 전시관에는 있는 곳

 청록 문양의 일제시대 벽지와 추억의 책가방과 낡은 축음기와 남양분유 소표분유와 사단법인 대한자전거상공조합의 뽐푸 사용료금함이 전시된 김씨박물관과 또 '미스 코리어에 얽힌 야릇한 소문'을 실은 선데이 서울을 소장하고 있는 동그란 안경의 김씨와 물새 같은 딸이 찻집에는 있는 곳

 여름이면 고둥 가득한 논에선 밤새 개구리 소리가 까알까알 들리고 텃밭의 열무꽃 소담하던 시절에는 하얀 박꽃이 별빛 따라 떠오르거나 아낙네들이 앞개울로 멱을 감으러 가기도 했던 것인데 늘 모자를 쓰고 대학생 딸을 애기라 부르는 실비단 안개라는 이가 사진을 찍으러 사계절 방문하는 곳

 나는 오래도 전에 이루지 못한 여인의 사랑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 유서 깊은 마을의 한적한 길과 오래된 저수지 그리고 전설같이 날아다니던 하얀 백로를 하염없이 그리워하였다.

 

조재영 시인은 잠시 김달진문학관 학예사였습니다.

처음으로 만난 날 비가 왔으며, 시인은 나에게 사다리를 타고 옥상에 오르면 생가 풍경을 하나에 가득 담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욕심에 무서워서 못 올라가요, 이런 말을 할 줄 몰랐고 태어나 가장 높은 곳으로 조심스레 올랐습니다. 휴! 햐~

시인의 마당도 한 눈에, 텃밭, 비파나무, 태산목, 대나무 - 모두가 한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렇다고 좋은 사진을 만든 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이긴 했지만 둘이나 셋이서 카메라를 들고 가차운 곳으로 봄바람처럼 다녔으며, 아주 가끔은 밥을 먹기도 했고, 논고랑에서 고동을 줍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시인은 훌쩍 떠났으며, 어느날 부인과 흑백 연주회에 오셨습니다.

몰래 찍어주는 내 모습. 꼭 가시나같은 모습들이었습니다.

 

지난해인가 지지난해인가... 진해시내에서 마산행 버스를 기다리는데 시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방금 차가 스쳤는데 나 같다고. 하여 맞다고.

그리고 문학제를 앞두고 연락이 왔었네요. 그리고 오늘.

 

소사에 오실 때 연락하라고, 시에 나왔으니 밥을 사야 하지 않겠느냐는 감사의 문자를 보냈습니다.
시인이 소개해 준 어린소녀 수아가 있었습니다.

내가 병원에 있을 땐가, 소식없이 떠났던 수아가 댓글을 주었지만, 나는 그때 겨를이 없었고 (마음과는 달리)이제 댓글을 알뜰히 찾는 정성이 없어졌습니다.

(소사)나만 그리웠던 게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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