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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집 '시인과 농부', 멋과 맛의 정체

by 실비단안개 2012.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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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처음 열었을 때 꽃을 찍어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다보니 면(面) 전체를 헤집고 다닐 정도였기에 지금도 어느집에 어떤 꽃이 핀다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중 밥집은 좋은 놀이터이긴 하지만, 밥집마다 화단이 있거나 꽃이 있는게 아니다보니 김달진 문학관 가는 길, 돌아 오는 길 자연스레 기웃거린 집이 '시인과 농부'였습니다.

때론 영업을 시작하기 전에 들리기도 했으며, 한창 바쁜 시간에 들려 눈인사와 목례를 하고 마당 이리저리 다니며 허접한 카메라질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단 한 번도 타박을 하지 않았으며 때로는 커피를 주기도 했습니다.

 

도시의 영업집이라면 영업시간 전에 밥집에 와 꽃 사진 찍는다고 소금 한바가지 뒤집어 쓰고도 남았을 텐데 시인과 농부의 주인은 언제나 웃는 낯이었습니다.

고마움과 미안함은 지금도 말과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꽃을 찍을 때면 언제가는 나도 시인과 농부 밥을 팔려줘야지를 다짐했지만, 밥을 팔려주는 기회는 한참 후에야 왔으며, 요즘은 친구나 누군가를 만나면 먼저 생각나는 집이 시인과 농부가 될 정도로 아주 가끔 밥을 먹어 줍니다.

밥을 먹고 나오거나 후에 함께 한 이들이 묻습니다.

'시인과 농부' 주인이 시인이냐고.

단 한번도 주인의 직업에 대해 물어 본적이 없었기에 답은 언제나 "몰라~(요)"였습니다.

 

얼마전 김달진 문학관 학예사님과 시인과 농부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봄이 오는 이맘때면 울타리가 되는 동백꽃을 꺽어 꽂고, 풀꽃이 필때면 풀꽃을 뚝배기에 심어 놓기도 하며, 때로는 꽃잎을 독 뚜껑에 띄워 놓기도 하는, 정말 마음에 쏙 드는 풍경을 만들어 놓는 주인에게 언제 시간 좀 내 주십사하니 궁금한게 있으면 물어 보라고 하더군요.

 

학예사님과의 식사 시중을 들어주며, 생각보다 사진이 안 나오니 얼굴은 찍지 말라고 했지만 주인 이야기를 쓰면서 올리지 않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하니 허락을 했는데 생각보다 사진이 안 나와 죄송합니다.^^;

 

"밥집 이름이 시인과 농부인데 혹 바깥어른이 시인이세요?"

 

예전에 언론사에 근무할 때 글을 쓰긴 했지만 등단한 시인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말씀을 술술 하시더군요.

 

부산서 생활을 하다 군부대와 가장 가까운 이곳으로 이사와 약간의 들농사를 지었지만, 밥집을 운영하다보니 손이 미치지 않아 요즘은 채소만 조금 거룬다고 합니다.

이사하여 3년쯤 지내다 차린 시인과 농부는 열한살쯤 된 것 같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혼자 보기 아까워 찻집을 하고 싶었지만 옆 '고가'에서 차를 팔다보니 밥집을 하게 되었는데  주변 풍경이 아름답기에 이곳에서 밥을 먹는다면, 꼭 먹지 않더라도 누구나 시인이 될것 같지 않느냐고 물었으며, 나물류는 주변의 텃밭채소로 하니 농부의 마음으로 운영한다고 했습니다.

마천장날 우리는 맨얼굴로 만나기도 했고 농협마트에서도 시인과 농부 주인이 장 보는 걸 볼 수 있으며, 해초류는 용원에서 장만한다고 합니다.

우리 고장에서 생산되는 채소와 해초류로 밥상을 차려 손님께 대접하니 행복하다고 했는데 일일이 이야기하지 않으니 손님들은 이 사실을 모를 겁니다.

 

풍경과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밥집은 음식이 맛 있어야 합니다.

요즘 쑥이 제철이다보니 쑥떡이 나오며, 김장철엔 배뚱구리(배추뿌리)가 나오기도 하고 장마철엔 매끈한 옥수수가 아닌 못생긴 강냉이가 찬과 함께 나오기도 하는데 계절의 멋과 맛을 진짜 시인보다 더 잘 읽는 주인같습니다.

 

무 같은 하얀건 배뚱구리며 오른쪽은 파전과 더덕동동주입니다.

향긋한 더덕향이 좋아 취하는 줄 모르고 마셨던 적도 있으며, 향에 반해 동행이 누구든 더덕동동주 마실 것을 권합니다.

시인과 농부엔 장어구이, 해물파전, 볶은 김치를 곁들인 두부김치, 논고동회무침 등 안주류와 민물매운탕과 장어구이와 오리훈제 코스 등 식사류가 있습니다.

쓰다보니 시인과 농부에서 거의 다 먹어 봤는데요, 음식 사진을 다 갖추지 못했지만 시인과 농부의 소박하며 건강한 밥상입니다.

 

▲ 배뚱구리, 파전, 더덕동동주

 

▲ 쑥떡과 강냉이

 

 ▲ 민물매운탕

 

텃밭채소 찬만큼 중요한 정본데요, 시인과 농부에선 김장김치를 독에 보관 합니다.

장독은 앞마당 한켠, 치자나무가 있는 곳에 있으며 김장독은 온돌방 앞쪽에 있습니다.

독이 좋다는 건 모두 알지만 장도 아닌 김치를 독에 보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배추김치와 넓적한 무김치를 꺼내더니 좀 싸줄까요 했습니다만, 귀한 김치였기에 감히 싸 달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시인과 농부 주변 풍경입니다.

나락이 패는 가운데 시인과 농부가 있으며, 맨 아래 사진은 장마철에 밥숟갈 들고 만난 풍경입니다.

고개 돌리는 곳마다 풍경이 되어 마음이 맑아지니 어찌 시인이 되지 않겠습니까.

 

 

 

시인과 농부 주변을 워낙 많이 걸었기에 소사 들판풍경이 많다보니 사진 선정하는데도 시간이 걸리네요.

 

시인과 농부의 여러것들이 마음에 들지만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불을 떼는 아궁이입니다.

어릴때 엄마를 돕는다고 일찍 일어나 아궁이에 불을 뗀 후 부지깽이를 물에 담그면 쉬시식하며 불이 꺼졌고, 부지깽이가 매 식기전에 아궁이 주변 벽에 검정그림을 그렸던 일이 이곳에 가면 생각납니다.

 

온돌방과 아궁이에 불 떼는 풍경이 좋기에 때로 온돌방을 예약하기도 하는데 학예사님과 함께 했던 날 온돌방은 아니었지만, 비가 내려 날씨가 꿉꿉한 오늘같은 날은 뜨뜻한 온돌이 좋은데요, 아궁이옆, 국민학교 교실에서 가져왔음직한 의자마져 마음을 포근하게 하는 시인과 농부입니다.

 

시인과 농부

경남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 165-10번지
055-551-0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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