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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낙동江과 팸투어·답사

명량대첩 현장 해남·진도 답사/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

by 실비단안개 2012.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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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http://cafe.daum.net/jjmkssm1545-1598)온라인 카페에서 6월 9일 명량대전의 현장인 해남 ·진도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이하 이배사)카페 가입 동기는 창동오동동 이야기 추억여행시 창원시립 마산박물관 관람시 임진왜란 합포해전지를 진해 합포(합계, 학개, 합포)가 아닌 마산포를 합포로 표시해 뒀기에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싶어 검색으로 가입했습니다.

 

◀ 중완구와 비격진천뢰

 

마산박물관 관람 이전에 진해탐방 공부시간에 합포해전에 대해 배웠으며, 마산박물관 관람 후 충무공리더십센터에서 합포해전지를 확인한 결과 마산포가 아닌 웅천(진해) 합포였기에 정확한 학습이 필요했기에 가입한 카페로, 순수하게 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 모임입니다.

가입하고보니 카페지기인 격군님은 충무공리더십센터에서 진해탐방회원에게 임진왜란에 대해 설명을 해준 제장명 교수님이었습니다.

 

이배사에 가입하면 닉을 정해야 하는데 여느 카페처럼 실비단안개를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현재의 중완구 닉에 길들여지려고 노력합니다.^^

 

중완구는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있는 보물 제 859호로 비격진천뢰를 발사하는 화포인데, 이배사 회원은 임진왜란에 관련된 인명, 지명, 무기 등을 닉으로 합니다.

하여 진해에 거주하니 중완구로 했는데 아직은 낯설기도 합니다.^^

 

이배사카페에선 숙제를 해야 하는데 자신의 닉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합니다.

중완구는 군항제때 해사박물관 관람 후 정리를 해뒀기에 숙제는 가뿐하게 끝냈습니다.

-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풍경과 중완구 : http://blog.daum.net/mylovemay/15533876

 

숙제를 빨리 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숙제를 한 회원에 한해 답사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며 카페 가입을 하니 답사 공지가 있었기에 빨리 했습니다.(저는 언제나 사설이 길어 고민입니다.^^;)

 

그리하여 6월 9일 답사길에 올랐습니다.

전날인 8일 비가 많이 내렸기에 답사날에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으며, 일찍 나서야 했기에 자다 몇 번이나 일어나 시간을 확인했기에 잠을 제대로 못 잤지만 약속시간에 맞추어 잘 도착했습니다.

사천 만남의 광장에서 출발하는데 여긴 진해다보니 진해시내에서 카페지기인 격군님과 가덕첨사님의 차로 사천 만남의 광장으로 가 통영에서 출발한 일행과 만났으며, 강진에서 경남외 지역팀을 픽업하여 해남으로 갔습니다.

키페회원의 닉을 보면 원균, 삼도수군통제사, 김응함, 태인현감, 해남현감 등이기에 남자회원이 많은가 보다 했는데 원균 등 대부분 여자회원이었기에 닉으로 남녀를 구분할 수 없는 카페가 이배사인데 닉뒤에 남녀구분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절체절명 위기 속의 신화, 鳴梁大捷의 현장을 찾아서

 

'절체절명 위기 속의 신화, 鳴梁大捷의 현장을 찾아서', 답사자료집 제목입니다.

올해가 임진년이며 420년전에 임진왜란이 시작되었으며 명량해전(鳴梁海戰) 또는 명량대첩(鳴梁大捷)은 1597년(선조 30년) 음력 9월 16일(양력 10월 25일) 정유재란 때 조선 수군 13척이 명량에서 일본 수군 130여 척을 물리친 해전입니다.

- 명랑해전 : 정유재란기 명량해전에 대하여

 

첫방문지는 전남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안길에 있는 명량대첩비였습니다.

우수영안길 부근엔 동헌과 객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다른 건물이 있으며, 근처에 법정스님 생가가 있더군요.

우수영안길은 시골이었습니다.

집밖으로 계절꽃이 피어 있었으며 여느 시골과 마찬가지로 한산한 마을이었는데 이배사회원들 덕분에 잠깐 들썩거렸습니다.

 

 

보물 제 503호 명랑대첩비는 임진왜란(1592∼1598) 당시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장군의 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로 일제시대에 경복궁에 옮겨졌던 것을 옛 조선시대의 우수영(右水營)이며, 진도를 바라보는 해남의 남쪽 끝 해안지역으로 1947년에 옮겨 세웠고, 2011년 3월 원 설립지인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습니다.

이 석비는 직사각형의 비받침 위에 비몸돌을 꽂고, 그 위로 구름과 용을 장식한 머릿돌을 얹은 형태로 비문에는 선조 30년(1597) 이순신장군이 진도 벽파정에 진을 설치하고 우수영과 진도 사이 바다의 빠른 물살을 이용하여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적함대를 무찌른 상황을 자세히 기록했으며, 비문은 1686년에 쓰여졌으나 비가 세워진 것은 2년 뒤인 1688년으로 전라우도수군절도사 박신주가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 충무사 : 명량대첩비가 있었던 충무사는 1962년 건립되었으며, 1962년 2월 이당 김은호가 그린 충무공 영정이 봉안되었고,

1969년 6월 16일 명량대첩비가 보물 제503호로 지정되면서 1975년 충무사 현판(고 박정희 대통령 친필)이 기증됨.

2011년 전남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안길에 명량대첩비가 이전되었으나 비문이 있던 자리는 정리가 되지 않았음.

 

▲ 명량대첩비

 

먼길이었다보니 명량대첩비를 방문하니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이배사회원은 진도대교와 이순신장군 동상이 보이는 음식점에서 해설을 맡은 해남현감님 등이 준비한 고구마와 울금막걸리를 곁들여 회덮밥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고구마와 울금막걸리외 모시떡을 비롯 몇 가지의 떡과 샌드위치, 음료, 과일 등 먹을거리가 이동시에 주어졌기에 내내 든든한 답사길이었습니다.

 

울돌목인 명량해협은 진도와 해남군의 화원반도사이에 있는 수로로써 길이가 약 2㎞ 내외이고 가장 좁은 곳의 폭 300m 정도로 이곳의 평균 수심은 20〜25미터정도이고, 조류의 속도는 남동류의 경우 최대 11.5노트로 매우 빠르다고 합니다. 

 

아울러 수십 리 밖에서도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물이 울면서 돌아간다고 해서 '울돌목'이라 이름 할 정도로 물살이 빠르고 암초가 많아 항해하기 위험한 협수로인데 밀물때인지 물살이 셌습니다.

 

 

 

식사후 단체사진입니다.

회원과 가족이 함께 했기에 초등학생도 있으며 부부, 모자도 있습니다.

 

▲ 이배사 단체사진

 

점심식사후 명량대첩 공원(우수영관광단지) 답사가 이어졌습니다.

- 우수영 [右水營]조선 시대, 수군절도사 군영의 하나. 해남에 전라 우수영, 통영에 경상 우수영을 각각 두었다.

- 좌수영 (클릭)좌수영 (조선 주진 [主鎭]) [左水營]

 

 

울돌목 물살을 구경하며 진도대교 아래를 걸어 명량대첩공원으로 갔습니다. 진도대교 아래에는 이순신장군 일대기가 쓰인 충무정이 있으며, 성벽아래에 지도를 들고 고뇌하는 이순신장군이 울돌목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 가장 작고 유일하게 평상복(일명 동다리)을 입고 검이 아닌 지도를 들고 있는데  육지부의 기단위가 아닌 밀물시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는 곳입니다.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내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불고 물결 높은 날,

   내 가난한 바다 명량으로 오라.

 

   오라, 내 여기서

   한 줄기 일자진으로 너를 맞으리.

김훈의 장편소설 칼의 노래 서문중에서

- 일자진 :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사용한 해상 전술로 횡렬 일자로 늘어선 진형을 말한다.

 

▲ 명량의 고뇌하는 이순신(조각 이동훈) : "풍전등화와도 같은 조국을 구하기 위해 외롭게 고뇌하는 이순신장군의 모습을

형상화 하였다. 아군의 배 13척으로 왜군의 133척을 무찌르기 위한 치밀한 작전과 나라를 구하기 위한 구국의 결단을 위해

외롭게 깊은 시름에 잠긴 장군의 모습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극대화하기 위한 설정이다"(설명중)

 

명량대첩탑이 있는 명량대첩공원입니다.

이순신장군과 우리 수군의 모습, 신호가 되는 깃발 등이 있으며 하늘엔 연이 띄워져 있었습니다.

통영과는 또 다른 맛이었는데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아무튼 가슴벅찬 현장이었습니다.

 

▲ 쇠사슬감기틀 : 옛부터 전하기를 해남과 진도 해안에 쇠사슬을 매어놓고 일본전선을 유인하여 급한 물살을 이용 쇠사슬을

당겨 모조리 뒤집혀 죽게하고 빠져나온 전선은 제2진에 있는 우리 수군에 의해 섬멸시켰다고 합니다.

 

▲ 명량대첩탑

 

해설사님의 설명을 듣고 실내전시관 관람이 이어졌는데 거북선은 다른곳과 달리 거북선내의 활동을 볼 수 있었으며, 명량대첩비가 풀이 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아래는 초등학교 6학년생으로 해남·진도답사 해설을 맡은 해남현감님의 아드님으로 화차와 신기전을 설명했는데요 전문가 수준이었기에 듣다말고 동영상으로 담았는데 설명을 듣는 회원들 역시 흐뭇한 표정입니다.

 

 

 

▲ 화차와 신기전(진해 충무공리더십센터) : 화차에는 사전총통50정(10개씩 5줄)을 쏠 수 있는 총통기 또는

신기전 100발(15개씩 7줄)을 쏠 수 있는 신기전기를 얹어서 사용했으며, 신기전은 조선시대에 제작된 로켓 화기.

 

글이 길어지네요.. ^^

우수영성지에도 다른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체험공간이 있으며 먹을거리도 있고 특산품 판매점도 있습니다.

시간이 촉박했기에 체험 등은 할 수 없었지만 이순신장군 해전 신호연은 담았습니다.

 

 

통영 세병관옆에서 만날 수 있으며, 진해박물관과 진해 향토사료관에서도 만날 수 있는 신호연입니다.

한점씩 따로 담아 설명을 해야 이해가 쉽겠지만 사정상 통째 올립니다요.^^

 

이순신 장군 신호연은 오늘날과 같이 무전기나 무선통신 등이 없었던 420년 전인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께서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과 함께 왜적을 물리치는데 통신 및 암호 수단으로 사용했던 신호연입니다.

임진왜란 주요 전적지에서 신호연을 만날 수 있으니 방문시 눈여겨 보셔요.

 

 

진도대교를 건너 벽파나루가 있는 벽파진으로 갔습니다.

벽파나루엔 목포를 출발하여 제주도로 가는 여객선이 막 정박했으며, 벽파 버스정류장에서 진도개를 만났고 문닫은 다방에서 가져다 뒀는지 정류소에 고운색의 소파가 있으며, 오래된 양철지붕 방앗간도 만났습니다.

참 시골스러운, 잊혀져가는 방앗간 풍경이 고마워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양철지붕을 만났으니 비가 내려야 하는데.. 하며 중얼거리기도 했네요.

비가 왜 내려야 하는지는 이야기 했을 겁니다.

낯선 시골여행길에 비를 만나고, 양철지붕 여인숙에서 비가 멎기를 기다리며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를 즐기고 싶다는...^^

 

 

벽파진은 명량대첩을 거두기 직전 17일 동안 장군이 머물면서 나라의 미래와 백성의 안위를 고민하고 전열을 가다듬고 작전을 숙고했던 역사의 현장으로 벽파진 전첩비는 커다란 돌거북 등 위에 얹혀 있는 국·한문 혼용비로 "벽파진 푸른 바다여 너는 영광스런 역사를 가졌도다. 민족의 성웅 충무공이 가장 외롭고 어려운 고비에 빛나고 우뚝한 공을 세우신 곳이 여기이더니라."로 시작되며, 노산 이은상이 짓고 이고장 출신 서예가 소전 손재형이 썼습니다.

 

 

벽파진에 이어 진도개사업소와 운림산방 방문을 했으며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명량대첩비가 현재의 장소로 이전되기전에 있었던 충무사입니다.

충무사 입구 계단 우측 편에는 역대 수사 공덕비 30기가 있으며, 충무사 본전 앞에 있었던 명량대첩비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위에서 (명량대첩비 위 사진설명 참고)설명했는데요, 본전 안의 이당 김은호화백이 그린 충무공영정이 도난당했기에 2001년 채수도화가의 새로운 영정이 대신하고 있다고 합니다.

 

 

충무사 주변은 소나무가 그윽한데 충무사입구에 연리지 안내가 있기에 일행은 연리지를 마나고자 가는길에 아카시잎으로 풀피리를 불며 오디를 따 먹기도 했습니다.

 

 

사랑나무라고 하는 연리지입니다.

두 나무 모두 소나무며 나무 중간의 가지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연리지 설명에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백거이가 현종과 양귀비의 애틋한 사랑에 대해 쓴 장한가가 있습니다.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련리지)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하늘에서 나면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 태어난다면 연리지 되리

비록 하늘과 땅이 다한다 해도 우리의 맺힌 한이 끊어질 날 있을까!

 

 

이순신장군과 우리를 이어주는 이배사가 오늘의 연리지가 아닐런지요.

 

진해탐방시간에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명량대첩 현장인 해남·진도 답사시 물음표가 계속 따라다닙니다.

임진왜란 7년동안 웅천(진해)에서 3번의 해전이 있었습니다.

웅포, 안골포, 합포해전인데요, 그 어느곳에도 임진왜란 해전지 안내표지가 없으며 안골의 굴강(경상남도 기념물 제143호)은 문화재이긴 하나 몇 년째 울이 쳐져 있습니다. 또 바로 알아야 할 게 있는데 한산도해전과 안골포해전의 승리를 총칭하여 한산대첩이라고 합니다.(충무공 리더십센터 교재 140페이지)

 

우리 고장이 임진왜란 전적지였음을 알려주는 것으로는 웅천왜성과 안골왜성, 세스빼데스신부의 입국을 알리는 기념공원이 있는데 공통점은 왜놈에 의해 쌓아졌거나 입국한 신부의 흔적입니다.

해군 진해기지사령부가 있으며 해군사관학교와 박물관이 있는 진해며, 임진왜란을 치른 역사적인 고장이니만큼 해전장소에 안내표지판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아울러 해전지역을 중심으로 왜성과 군부대를 연결하는 탐방코스가 있다면 우리지역 역사알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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