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토요일, 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http://cafe.daum.net/jjmkssm1545-1598)의 임진왜란 전적지인 가덕도와 진해 웅천 일대 답사가 있었습니다.
가덕도는 1500년대 중반에는 수군진인 가덕진과 천성보가 설치되어 왜구들을 방어한 곳이기도 하며, 정유년(1597) 7월 15일(음력)에는 가덕도에서 우리 수군 장졸 400여 명이 전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에 올해 음력 7월 15일이 양력으로 9월 1일이므로 이 날짜를 택해 가덕도 답사를 했습니다.
다른 지역 회원들에 비해 답사지와 가까운 곳에 있긴 하지만, 마음이 바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개별 도시락을 준비해야 했기에 큰늠이 샌드위치를 준비했는데, 이늠 그만 양상추를 빼먹었기에 다시 양상추를 넣어야 하는 조그만 사건이 있기도 했지만 지희네에 부탁한 전어회는 시간에 맞춰 왔습니다.
차가 없다보니 답사때나 기타 여행시에 이웃에 신세를 지게 되는데, 이날도 진해회원인 신호님이 우리집앞까지 오는 수고를 했습니다.
신호님과 동자갑선님과 함께 가덕 녹봉민속박물관(舊 천성초등학교)으로 가니 부산좌수사님이 이미 도착해 있었으며, 이어 진해·창원·서울과 중부 회원들이 도착하였기에 지체않고 연대봉으로 향했습니다.
가덕도 가까이 살기는 하지만, 가덕도에 갈 일이 자주 있지 않다보니 여기가 거긴가, 거기가 이곳인가 할 정도로 가물거리기도 했지만, 일행이 있으니 몸을 차에 맡기고 뒤따랐습니다.
연대봉은 해발 459.4M로 부산의 둘레길인 갈맷길이 잘 조성되어 있었기에 길은 좋았지만, 나이탓인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연대봉 허리에 주차를 해야 했는데 주차장 공사중이었기에 잠시 지체가 되었으며, 그나마 차가 없다보니 일행보다 빨리 나서긴 시작했지만 여느 답사때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날수록 쳐져 결국 또 골찌로 정상을 밟았습니다.
그나마 경블공 회원인 남해 충렬사(선비)님이 보조를 맞춰줬지만, 정상을 밟는데 약 50분이 걸렸습니다.
늦은 이유중 하나는 연대봉에 핀 가을 들꽃과의 만남이었는데, 이제 언제 연대봉을 오르겠느냐 싶어 작고 흔한 들꽃이지만 연대봉에 이런 들꽃이 있다 정도는 남겨둬야 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무릇과 비슷한 맥문동이 꽃을 피웠으며, 가덕도 등대로 가는 길에 만났던 며느리밥풀이 많음이 확인되었는데, 며느리밥풀은 우리 지역에서는 만날 수 없는 꽃이기에 몇 컷 따로 담아 보기도 했습니다. 며느리밥풀은 애기며느리밥풀, 꽃며느리밥풀 등 여러종류가 있는 데, 며리느밥풀중에 가장 꽃같이 생긴 꽃에 붙여진 이름으로 꽃잎 안쪽 아래에 볼록 튀어나온 돌기부분이 하얗게 되는데 모양이 마치 밥알같이 생겼습니다.
▲ 아래 맨 오른편이 며느리밥풀
중간에 두어번 쉬었으며, 20M 남았다고 하니 이제 정상이 코앞입니다.
그런데 그 아래에 '사실은 200M 남았습니다'라는 작은 글씨가 있었기에 속은 듯 했지만 200M를 남겨두고 되돌아 갈 수는 없는 일이니 앞으로 앞으로 나아 갔습니다.
200M지점부터 약간 가파르긴 했지만 예전에 길이 험했던 시루봉에 오른적이 있기에 그길만 하랴 하며 걷다보니 정상입니다.
처음 맞아준건 아스케키 아저씨였는데 아저씨의 수고만큼 아스케키를 시원하게 먹어 주었으며, 점심시간이었기에 점심식사부터 했습니다.
정상이다보니 약 30명이 한자리에 먹기에는 그늘이 부족하여 남의 식구들 처럼 자리를 따로 마련하여 점심식사를 했습니다만, 음식이 오간 이상 회원간의 정도 오갔습니다.
회원만큼 다양한 음식들이 차려졌는데, 동자갑선님은 바쁜 아침시간에 쌈을 준비했으며, 통영회원들은 충무김밥을 준비하기도 했고, 간단하게 김밥집 김밥을 준비해 온 회원, 호박죽, 단호박 등 참으로 다양했으며, 골고루 맛을 보기에는 위가 한계를 느꼈습니다.
충무김밥의 양념오징어와 어묵은 꼬지에 끼웠는데 이게 또 별미였습니다.
식사 후 봉수대와 가덕도를 싸고 있는 바다를 보며, 임진왜란 당시 설명을 들었습니다.
봉수대는 조선시대 군사통신 수단을 대표하는 것으로 낮에는 연기를 피워 올렸으며, 밤에는 횃불을 올린 통신수단입니다.
현재 한반도 남부지역에는 약 500여 기 내외의 봉수터가 동·남·서해 연안의 만이나 곶뿐만 아니라 도서 혹은 육지내륙의 산정이나 산중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봉수대는 5기가 기본인데 김해나 가덕도 등 대부분의 지역에 복원된 봉수대는 1기입니다.
하나가 오를 때는 아무일 없음, 두개를 피우면 적이 쳐들어 올것 같음, 세개를 피우면 적이 쳐들어 올 기세임, 네개를 피우면 적이 조금 쳐들어 옴, 다섯개를 피우면 적이 많이 쳐들어 왔음을 봉화의 수로 알립니다.
가덕도 봉수대로 오르는 계단에 아궁이에 그을린 흔적이 있는 돌을 이용했으며, 주변에 기와가 흩어져 있기도 했는데, 복원시 이런 부분은 따로 보관 전시하여 설명을 곁들인다면 가덕도 봉수대 답사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덕도의 봉수대는 김해와 달리 볼을 지피는 입구가 막혀 있었으며, 가덕도에서 부산과 김해를 이어 한양까지 소식이 전달되는 시간은 약 12시간이라고 하니, 앞의 '김해 분산성에서 가락국(駕洛國)을 더듬다'의 오류 내용은 이글로 잡습니다.
▲ 봉수대 전면과 후면
봉수대 아래 연대봉 표지석 근처서 자료집을 펼쳐 학습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은 부산포해전 때 가덕도에서 3일 밤을 새웠으며, 가덕첨사님의 가덕도 사랑은 깊이를 재지 못 할 정도로 전후 사정을 계속 학습중이며, 부산포해전은 부산포대첩이라고 명명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격군님의 학습이 병행되었는데, 가덕도 수군진의 설치과정과 임진왜란 당시 가덕도를 이용한 수군활동과 위에 언급한 봉수대의 존재에 대해서 였습니다.
연대봉에 오르지 않았다면 가덕도에 갔다는 말을 말라고 할 정도로 연대봉에 오르면 김해, 부산, 거제, 진해가 한눈에 들어 오며, 가덕도를 통해야 부산으로 갈 수 있기에 임진왜란 시 가덕도는 지금의 휴전선부근과 같은 위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날씨가 좋을 때는 대마도가 보인다는 연대봉이지만 가시거리가 짧아 사진이 맑지 못 하지만, 거제도 회원들은 섬 하나하나를 짚어 주기도 했습니다.
▲ 낙동강 하구
▲ 새바지마을과 대항·외양포마을
▲ 일행이 출발한 천성마을과 가덕도 휴게소, 거가대교
마지막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하산했습니다.
오를 때와는 달리 내려오는 걸음은 가볍긴 했지만 여전히 골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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