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토요일, 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http://cafe.daum.net/jjmkssm1545-1598)의 임진왜란 전적지인 가덕도와 진해 웅천 일대 답사가 있었습니다.
가덕도 연대봉 하산후 천성보에서 학습후 창원부사(팬저)님이 기다리는 안골왜성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동안 몇 번 블로그에 안골왜성에 대해 올렸는데 복습하는 의미로 다시 올립니다.)
안골왜성은 웅천 안골왜성(熊川 安骨倭城)으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75호(1998년 11월 13일 지정)로,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안골동 산27외에 있는 일본식 성곽(왜성)입니다.
제작시기는 1593년이라고 합니다.
안골왜성은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구키 요시타카[九鬼嘉隆] 등이 구축했으며, 안골왜성의 둘레는 594m, 성벽의 높이는 4~7m 정도이며, 전체 면적은 약 5,000평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망산(東望山, 해발 100m)을 3등분하여 부분적으로 정상부를 삭평한 뒤 본환(本丸)[本城], 이지환(二之丸)[第1外郭], 삼지환(三之丸)[第2外郭]을 나누어서 따로 석축하였다고 합니다.
외곽으로 각 부분을 연결하였는데, 외곽의 일부는 토축성입니다.
이 성곽의 축조에는 5만 명 가량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성의 남쪽과 서쪽은 만을 끼고 있는데, 이는 바닷길을 운용하기 쉽도록 해변까지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성의 출입은 육지 쪽을 막고 바닷길을 이용하기 위하여 바닷가에 이르도록 해자를 파서 교통로로 이용하였는데, 해안으로 드나들기 위한 통로가 만들어진 것도 왜성이 가지는 특징입니다.(참고 : 팬저의 국방여행과 위키백과)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왜성의 용어
천수 - 덴슈[天守] 일본의 성에서 상징적인 건물.본환 - 혼마루[ほんまる(本丸)] 성의 중심이 되는 건물. 주성(主城).
이지환 - 니노마루[にのまる(二之丸)] 성(城)의 외곽(外廓). 본성(本城)의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
삼지환 - 산노마루[さんのまる(三の丸)] 2지환을 둘러싼 외성.
호구 - 고구치[虎口](こぐち)] 일본의 성에서의 출입구를 말함. 좁은 길, 좁은 입구라는 뜻도 있어 소구(小口)라고 쓰기도 하며 고구치의 종류 중 히라이리 고구치, 구이치가이 고구치, 마스가타 고구치가 있다.
성문-오테 문[おおてもん(大手門)]일본의 성에 있어서 니노마루 또는 산노마루 등의 구역과 구역이 연결되는 성의 입구에 설치한 문. 일반적으로 성의 정문.
성벽-이시가기 [いしがき(石垣)] 석벽(石壁).석축. 2. 돌담.
나성(羅城)-노보리이시가키[いしがき(登り石垣)]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쌓은 왜성에서 볼 수 있는 석벽의 형태이다. 중국대륙의 만리장성에서 볼 수 있는 성벽축조 방식으로 산허리를 따라 성벽을 쌓은 것이 특징.
외호(해자) - 소토보리[そとぼり(外壕)] 이중으로 두른 해자 중 바깥쪽의 해자.
내호(해자) - 우치보리(內堀) 이중으로 두른 해자 중 안쪽의 해자.
정문(대수구) - 오테구치[バスセンタ(大手口)] 후문(익수구)-(溺手口)
평지성-히라지로[ひらじろ (平城)] 산성-야마지로[やまじろ(山城)](제공 : 팬저의 국방여행http://panzercho.egloos.com)
그동안 안골마을로 안골왜성을 올랐지만 요즘은 용원쪽에서 안골왜성을 오르는데 안내도가 잘 되어 있긴 하지만, 성에 오르면 자란 풀로 성곽구분이 어려우며, 안내도가 주차장 근처인 성으로 오르는 계단쪽에 있는 안내도를 성곽근처에 설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스마트폰 등으로 안내도를 찍어 답사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안내도는 대중의 입장이 되어 설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웅천 안골왜성 안내도 : 1. 본성 2.본성의 성곽 3. 외성 4. 내성 5. 내성 6. 성곽의 외곽선 7. 성곽 8. 성곽 9. 성곽 10. 장대상(長帶狀)
아래 사진은 5번 내성쪽으로 가는 길이며, 전체적으로 풀이 많이 자라 걷기에 무섭고 어려웠으니 창원시나 진해구청에서 관리를 해 주었으면 합니다.
안골왜성뿐 아니라 진해의 겨우 웅천왜성과 석빙고로 가는 길 등이 전혀 관리가 되고 있지 않습니다.
봄과 여름, 가을에는 뱀이 나올까 무섭기까지 한 길이 진해의 왜성과 석빙고 가는 길입니다. 더군다나 요즘 성폭행으로 나라가 어수선 한데, 풀숲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지경인 풍경입니다.
예전에 찍어 둔 내성에 있는 안내와 문화재표지석입니다.
자란 풀로 성곽근처에 못 갈 형편이었기에 비까지 내리는 날씨에 성도 아니고 길도 아닌 곳에서 참으로 엉거주춤한 자세로 학습했습니다.
그날 굴강답사로 이어지지 못 했는데 안골왜성에 오르면 굴강이 보이는데, 그날은 자란 수풀로 굴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안골포굴강은 도지정기념물 14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안골동 517-8, 9, 10번지 일대입니다.
몇 년째 울이 쳐진 상태이기에 접근할 수 없는데 이 부분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이니 경상남도와 창원시, 진해구에서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합니다.
문화재는 지정하기는 쉬우나 관리 보존은 어려운데 진해의 이런 부분이 참 안타깝습니다.
안골포굴강은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함대의 거북선을 정박시킨 적이 있는 조선시대 군선의 정박처로서 선박의 수리 및 보수, 군수물자의 수송, 선박의 계류와 정박을 목적으로 축조한 방파제와 선착장의 역할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한 시설물로, 안골포진성의 북서편 지척의 거리에 축조되어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굴강유적이 5-6개소에 이르고 있으나 대부분 흔적만 남아있을 따름인데, 안골포굴강은 상부의 서축이 일부 허물어지기는 하였으나 하부는 매몰되어 온전히 남아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또한 드러나 있는 굴강의 유구가 협소하여 제기능을 다할수 없을 것으로 판단되므로 매립되어 육지로 변해버린 기존 도로에도 굴강이 연결되어 있거나 굴강과 관련된 유구(遺構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가 매몰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굴강의 목은 동편에 내만을 바라보고 위치하여 외만의 파도를 막을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목의 폭은 약 20M 정도이고 현재 드러나 있는 궁형 석축의 길이는 75M정도입니다. 굴강의 내부에는 갯벌이 퇴적되어 있으나 축조할 당시에도 굴강의 목이 입퇴수구가 되어 썰물 때는 물이 빠져나가 바닥까지 드러나고 밀물 때는 바다와 동일한 수면을 유지하였을 것으로 보며, 안골포는 남해연안의 해안방어처 역할을 담당하여 왔는데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일시적으로 함몰되기는 했으나, 신문진과 청청진을 지척에 두고 있었으며 안골포진성의 기초가 남아 있었지만 지금 신항공사로 굴강까지 위험한 처지입니다.
아래 지도는 팬저의 포스트에서 가져왔는데, 신문진과 청청진 설명입니다.
"지승지도에서 본 웅천계의 모습으로 해동지도와 비슷하나 우측에 있는 청천진과 신문진이 나오는데 해동지도에서는 청천보와 신문보로 나왔는데 지승지도에서는 청천진과 신문진으로 나온다. 다만 진자가 한문으로 陣으로 진칠진이다. 안골진의 진자인 鎭(진압할 진)자와 다릅니다.
지승지도의 제작시기는 17세기 중엽이라고만 해서 이 웅천현지도의 제작시기를 알 수가 없네요. 지승지도의 기준으로 본다면 청천진의 경우 지금의 마천주물단지 앞에 있다가 현재의 청천마을로 옮긴것 같습니다만 해동지도에는 청천진이 현재의 청천마을에 그대로 있습니다. 어디가 진짜인지 알 수가 없네요."
▲ 지승지도(출처 :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cafe.daum.net/masan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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