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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거제 지심도 동백숲 부모님과 걷다

by 실비단안개 2013.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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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 일요일

전날 지심도 여객선을 예약했습니다.

오전 8시 30분 선표다보니 집에서 오전 7시에 나가야 했기에 그 어느날 보다 바쁜 아침시간이었습니다.

우리끼리라면 찬물 더운물 구분없이 한 통이면 되지만 어른을 모시고 가기에 뜨거운물과 찬물을 준비했으며, 약간의 간식과 아침 식사대용으로 호박죽을 준비했습니다.

 

동생네는 오전 6시 조금 지나 (마산에서)출발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호박죽 몇 술 뜨고 친정으로 가니 부모님도 준비를 마쳤습니다.

차 트렁크에 실버카를 싣고 지팡이는 들게 했습니다.

 

아침해가 구름속에서 뽀얬지만 공기는 시원했습니다.

옥포를 지나니 동생네가 장승포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언젠가 기웃거리기만 했던 지심도행 선착장입니다.

평일엔 오전 8시 30분이 첫 배인데 일요일이며 성수기다보니 오전 8시 10분부터 10분 단위로 배를 띄운다고 했는데 돌아올 때 역시 수시로 배를 띄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매를 했기에 8시 30분 배를 기다렸습니다.

- 인터넷 예약 http://www.jisimdoticket.com/

 

 

여객선 터미널부터 지심도 지도는 섬 곳곳에 친절하게 있었습니다.

 

 

 ▲ 멀어져 가는 장승포 포구

 

돌아 올 때 찍었지만 지심도에 유람선이 정박하는 풍경입니다.

여행객은 끝없이 밀려왔는데 17일 당일 예약객이 3,500명이라고 하더군요.

 

 

▲ 지심도

 

지심도하면 동백꽃을 먼저 떠 올리는데 섬의  후박나무, 소나무 등 총 37여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있는 지심도에 동백은 3분의2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심도(只心島)는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에 속하는 면적 0.36㎢(약 10만평)의 작은 섬으로 최고점은 97m입니다.

남해안 섬들중 어느 곳보다 동백나무의 숫자나 수령 등이 압도적이어서, '동백섬'이란 이름이 여타 섬들보다 훨씬 잘 어울리는 섬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섬의 생긴 모양이 마음 心자를 닮았다 하여 지심도(只心島)라 불리웠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동백숲에서 떨어진 붉은 동백꽃으로 만든 하트를 여럿 만났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보이는 섬이었습니다.

섬 사람들은 남해안 일대에 산재한 여러 동백나무 군락지 가운데 숲이 조밀하기나 동백나무들의 수령이 많아 원시 동백림으로는 지심도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것이라 한다는데 외지인이 봐도 그렇게 보였습니다.

 

                                        ▶ ebs 한국기행 캡쳐

- 한국기행 바로가기 : http://home.ebs.co.kr/ktravel/main

 

지심도 동백을 만나러 가기로 마음을 먹은 건 ebs한국기행 '동백에 취하다 지심도' 시청이었습니다.

오후 9시 30분에 방송하는 한국기행은 풍경 좋은 곳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동백에 취하다 지심도'편을 보면 동백꽃잎으로 화전을 붙이는 게 나오는데 급하게 휴대폰으로 몇 컷 찍어 보관하고 있습니다.

진달래로 화전을 부치는 건 알지만 동백꽃잎으로 화전을 부치는 건 처음이었거든요.

 

장승포 여객터미널 근처에 신부시장이 있는데 그 시장인가에 가서 동백기름을 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떠나기 전날 아침 뉴스에도 지심도가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동백나무는 우리나라, 중국, 일본이 원산지이나 세계적으로 아주 원예품종이 개발되어 지금은 꽃의 크기나 색 등이 다양해져 약 600여 종이나 된다고 합니다.

붉은 것과 흰것이 있고, 겹꽃과 홑꽃이 있는데 그러나 어디까지나 동백다운 동백은 천엽(千葉)이 아니라 단엽(單葉)이며, 홍화(紅花)를 으뜸으로 칩니다. 꽃들이 대부분 곤충에 의해서 수분(受粉)이 되지만 유독 동백꽃은 동박새에 의해서 수분이 되는 희귀한 꽃이기도 한데 이런 꽃을 조매화(鳥媒花)라고 하며, 겨울에 피니 곤충이 있을 수 없고 곤충이 없으니 새가 대신하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심도의 동백은 홑꽃이었습니다.

 

 

우리는 먹을거리를 엄마의 실버카에 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땐 노인 학대풍경같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뒤에서 밀어 드리기도 하며 동생이 줄을 묶어 끌기도 하며 동백숲속으로 걸어 갔습니다.

- 선착장 - 마끝 - 국방과학연구소 - 활주로 - 서치라이트 보관소 - 방향지시석 - 해안선전망대

 

 

 

1박 2일에서 지심도에 다녀 갔지만 시청을 않았기에 어디서 어떻게 지내다 갔는지 알 수 없지만 작은집에 1박 2일 깃발이 그려져 있습니다.

지심도 안내시에 13가구라고 했지만 현지인 말씀은 15가구가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기행에 나왔던 그 집은 새로 생겼는지 민박집 명단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신식집보다 좀은 허름하며 허술한 아래의 집들이 마음을 끕니다.

아마 혼자였다면 조그리고 앉아 오가는 사람들 구경을 하고 주인을 불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을 겁니다.

 

 

 

 

현지인의 정성인지 여행객의 마음인지 여러 곳에서 붉은동백 하트를 만날 수 있습니다.

혹여 밟을까 가장자리에 하트를 만들어 두기도 했으며 때로는 오솔길 가운데나 숲쪽에 만들어 두기도 했습니다.

지심도 동백 하트를 만나니 입가에 미소가 절로 피었는데, 울고 싶을 땐 7번방의 선물을 보고 웃고 싶을 땐 지심도로 가라고 하고 싶습니다.

 

11월 부터 피는 동백은 많이 피기도 했지만 많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빈화분에도 동백꽃이 피었으며 가난한 어구에도 동백꽃이 순하게 피었습니다.

 

 

 

 

 

지심도에 성당이 있는 건 아닌데 성모마리아의 기도하는 손에도 동백꽃이 피었습니다.

붉은 것은 간절한 것입니다.

 

 

 

 

 

 

절벽 아래엔 낚시꾼이 낚싯대를 드리웠고 오가는 이들이 하나씩 올려둔 돌탑에도 동백꽃이 피었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앞장서 걸었으며 되돌아 나올 때도 1등입니다.

 

 

큰동백분재가 울이 된 집을 지나고 국방과학연구소를 지나 넓은 활주로 한켠에 자리를 잡아 간식을 먹었습니다.

보온도시락의 호박죽은 아직 뜨끈했기에 미쳐 떨치지 못 한 한기를 호박죽과 커피로 떨쳤습니다.

먼바다에 안개가 있으며 흐렸지만 바람이 없었기에 섬을 걷기엔 더없이 좋은 날이었습니다.

 

 

 

동백터널을 지나 전망대쪽으로 가는 길입니다.

흙길이 다져져 반들반들 했습니다.

엄마는 허리가 펴지지 않기에 엉덩이를 쑥 빼고 손을 허리뒤로 둘러 깍지를 끼고 걷습니다.

간혹 바지가 흘러내려 허리 밴드를 다시 매는데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맨살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서치라이트 보관소 맞은편엔 죽순대나무가 싱그러웠는데 일반 대나무 잎보다 잎이 잘았습니다.

한반도 곳곳이 그렇듯이 지심도(只心島)도 역사의 섬입니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지심도는 일본 해군 아까쯔끼부대 기지로 바뀌었습니다. 지심도는 일본 해군 기지화로 바뀌면서 군막사(軍幕舍)발전소, 병원배급소, 포대 방공호 등 다양한 시설들을 만들었는데 현재 섬에는 포대 4곳, 방공호 3곳, 대포를 보관하던 곳도 있으며, 방향지시석도 남아 있습니다.

방향지시석은 대포를 쏘기 위한 장치로, 남쪽(해금강) 북쪽(부산· 진해) 동쪽(대마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탐조등 보관소는 포대나 탄약고처럼 견고한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방향지시석입니다.

이 시설물은 망루나 발전소와 가까이 있는 것으로 지심도의 주변 지역을 표시한 방향지시석이며, 서치라이트를 비추기 위해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총 여섯개의 지시석이 있었으나 현재는 장승포방향, 가덕도 등대(진해), 절영도(영도), 쓰시마남단(대마도) 등 다섯개가 남아 있습니다.

모르는 이들이 하나 둘 놓아 둔 동백꽃으로 방향지시석은 마치 순국비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외국인 여행객이 많았으니 어쩌면 일본 여행객이 놓아 둔 동백일 수도 있을 겁니다.

 

 

 ▲ 방향지시석중 대마 남단

 

높은여쪽에 낚시꾼이 있었는데 사진으로 잘 보이지 않는데 해안절벽과 동섬이 그림같았습니다.

 

 

일본군 욱일기 게양대입니다.

1938년 1월 27일 지심도의 포대가 준공되자 구 일본군의  포대진지임을 알리기 위하여 쿄쿠지쯔키(旭日旗)를 게양했던 곳입니다. 쿄쿠지쯔키는 일본의 국기인 히노마루의 태양문양 주위에 펴져나가는 햇살을 도안한 깃발입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1870년 구 일본육군기로써 1889년 해군군함기로 사용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과 함께 육해군이 함께 해체되면서 사라졌다가 1954년 이후부터 일본 자위대의 군대 깃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게양대에는 태극기를 게양한다고 안내되어 있었는데 게양대 역할을 하기에는 부족해 보였습니다.

 

 

돌아 서야 하는 전망대끝입니다.

그대 발길 돌리는 곳...

지심도의 이정표엔 동백과 동박새가 있습니다.

 

 

선착장 가는 길가에 있는 민박집들이 붐비기 시작했습니다.

단체 여행객이 도착한 모양입니다.

지심도엔 약간의 밭이 있었는데 매화가 피었으며 쪽파와 마늘 등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손바닥만 하단엔 상사화잎이 쑥 솟았으며 원추리 등도 다투어 고개를 내밀고 있었는데 우리집 못난이 꽃밭과 별반 다르지 않은 봄맞이 풍경입니다.

 

 

활주로에서 간식을 먹을 때 만났던 산불조심 할아버지입니다.

그때 캔커피와 과일을 드시라고 하니 쓰레기 흘리지 마소 하며 그냥 가시더니 마을 골목에서 만났습니다.

동백꽃을 따더니 꽃을 떼 받침에 고인 꿀을 주었습니다.

달았습니다.

 

한국기행편을 보고 왔는데 꿀을 먹고 화전 부치자고 꽃을 딸 수 없다고 하니 할아버지께서는 다시 동백 하나를 툭 따 꿀을 또 주었습니다.

휴대폰에 보관중인 한국기행 지심도편 이미지 몇 컷을 보여 드렸더니, 화전을 부치는 분이 형수님이며 촬영 때 옆에 있었는데 할아버지 모습이 없었기에 서운해 하였습니다.

잘못하다 들킨 아이처럼 "휴대폰으로 급하게 찍어 할아버지가 찍히지 않았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외국인 여성에게도 동백꿀을 주니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웃어 주었는데 섬 할아버지의 낙 중 하나가 여행객들에게 동백꿀을 선물하는 일 같았습니다.

 

 

선착장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동백꽃전을 부친 그 집엔 결국 가지 못 하고 식구들이 기다리는 선창작으로 향했습니다.

 

엄마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다음에 합천갈까요... 하니 아버지께서 남해 독일마을을 구경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이태전 우리 딸과 멍게비빔밥을 먹었던 구조라 그 횟집으로 가 멍게와 회덮밥, 물회 등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지세포 '거제 조선해양 문화관' 관람후 다시 거가대교를 달려 돌아 왔습니다.

지세포에서 구조라로 가는 도로변에 수선화가 노랗게 피었기에 공곶이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에게 무리이기에 없었던 일로 했습니다.

개나리, 목련이 활짝 피었으며 벚꽃도 몇 그루 꽃을 피웠더군요.

한반도에 봄이 가장 먼저 오는 곳이 진해라고 했는데 아닌가...

돌아 오는 길 용원에서 벚꽃을 만났으며 만개한 목련도 만났습니다.

그동안 나가지 않았기에 꽃이 피는 줄 몰랐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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