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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낙동江과 팸투어·답사

고흥 발포만호성(충무사)과 이순신의 오동나무

by 실비단안개 2014.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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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http://cafe.daum.net/jjmkssm1545-1598)고흥 답사 지붕없는 박물관 고흥과 녹도진 성지(쌍충사)에 이어 씁니다.

 

녹도진 성지 다음은 발포만호성(발포진성)과 충무사, 발포역사전시체험관이었습니다.

회원중 발포만호 님에게 뜻 깊은 답사지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발포만호성의 안내판을 보면 성이름에서 의문을 갖게 되는 데, 만호(萬戶)란 조선시대 때 각 도의 여러 진(鎭)에 파견된 종 4품의 무관직을 말하는 데, 발포진성의 경우 직함이 포함되었기에 마치 성주가 지배하는 지역같은 느낌이 들었는 데 어떤 까닭으로 이렇게 지어졌는지 궁금합니다.(발포만호성의 경우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나 충무사는 비지정, 녹도진성의 쌍충사는 지정이나 진성 자체는 비지정 차이가 있음) 

이하 발포만호성으로 하며, 고흥 발포만호성(高興 鉢浦萬戶城 시도기념물 제 27호, 1977.10.20지정)은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발포리 성촌마을을 중심으로 있는 성으로 조선 성종 21년(1490)에 쌓은 것으로, 둘레 1350척, 높이 13척이라 하나 현재 성의 둘레는 560m, 높이는 4m이고, 서벽이 동벽보다 깊으며, 동서남북 4벽이 거의 남아 있으나 동벽과 남벽은 민가의 담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제 이후에는 각 지방에서 문화재가 될 만 것들을 찾아 복원하곤 하지만, 예전에는 관광사업이 지금처럼 활성화될 줄 몰랐기에 보고도 못 본척 한 경우가 많았으리라 생각하기에 문화재 훼손이 심각한 데 이미 민가의 사유재산으로 된 부분은 나라나 지방에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발포만호성벽 역시 민가의 담장부분으로 포함되어 있었기에 성벽을 따라 걷다 되돌아 오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는 데, 나라와 지자체 모두 예산이 부족하니 복원 또한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앞 글에서 고흥은 섬이 많은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해안에 발포진, 사도진, 녹도진, 여도진 등의 주요 진이 설치되어 있는 군사적 요충지로 전라좌수영 관하 5관 5포 중 1관 4포가 있었던 곳으로 전라좌수군의 핵심 역할을 수행한 곳이라고 했는 데,  발포역사전시체험관에는 아래처럼 지형과 임진왜란 연표, 발포만과 고흥에서의 장군들 활약상 등이 안내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홍양현의 4포는 아래 이미지에서 확인이 가능하며, 발포지역은 이순신 장군이 수군만호로 첫 부임을 받아 18개월 동안 재직한 곳입니다.

 

 

충무사길을 따라 가면 발포만호성과 충무사가 있는 데 입구에 역시 홍살문이 있습니다.

 

 

충무사로 가는 길엔 가을국화가 피어 있지만 겨울꽃인 동백도 피었고 모시풀, 나팔꽃도 피어 있기에 마치 사계절이 함께 있는 듯 한데 그만큼 날씨가 따듯한 지역입니다. 날씨가 따듯한 곳은 식물이 다양하며 사람이 살기좋은 곳이지요.

 

 

 

성벽 가까이 있는 고흥발포만호성 안내판인데 보기 딱할 정도로 남루한 데 이순신 프로젝트도 좋지만, 기존의 문화재와 안내판 관리도 중요하니 고흥군에서 신경을 써주었으면 합니다.

 

 

충무사입니다. 충무사는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사당으로 선조 13년(1580) 7월 이순신 장군이 36세때 이곳 발포만호로 부임하여 18개월간 재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매년 충무공 탄신일인 4월 28일 탄신제를 거행하고 있다는 안내판이 있었지만 우리는 시간관계로 참배를 하지 못 했습니다.

 

 

발포만호성에 오르면 발포리마을과 앞바다가 보이며 뒤로 충무사가 있습니다.

낮은 자세의 자랑스러운 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이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성벽을 따라 걷다보면 민가의 담장과 연결되는 데 주인 아주머니께서 담장 허물어진다고 호통을 하였기에 되돌아 와 처음 올랐던 곳에서 다시 홍살문 아래로 걸어 마을로 들었는 데 사진 가운데 왼쪽 아래부분의 큰나무쪽으로 이동합니다.

 

 

대부분의 어촌마을은 손질하다만 어구가 공터나 선창에 널부러져 있는 데 발포리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적나라한 어촌풍경이 싫지는 않았지만 발포만호성과 충무사가 있는 마을이니만큼 정리가 좀 되었으면 싶었습니다.

 

 

나무의 수령이 오래인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충무공 머무시던 곳이라는 비석과 만호비가 있습니다.

이충무공 머무신 곳이 우리나라 해안에 어디 한둘이겠습니까만 작은 어촌마을임에도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라 좋긴했지만, 마을의 수호신이 되는 성황당나무나 비석 등이 있는 주위는 주차에 신경을 써주면 좋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한고을의 작은마을이긴 하지만 발포지역은 전국민의 걸음이 이어지는 지역이며, 전통사찰의 경우 몇 미터 이내에 주차금지 이런 게 있는 데 전통사찰이 아니더라도 마을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물이나 조형물 근처에 주차금지 팻말이라도 있었으면 합니다.

 

 

성황당나무 아래에서 이순신 장군의 오동나무 이야기가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고흥군 도화면 발포리는 이순신 장군이 수군과 처음 인연을 맺었던 곳으로, 발포만호로 있을 때 직속상관이 되는 전라좌수사(全羅左水使) 성박(成?)이 군관을 시켜 거문고를 만들기 위해 관사에 있는 오동나무를 베어오라는 지시를 내리니, 이순신 장군은 지시가 정도(正道)에 어긋남을 지적하며 단호히 거절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 땅 위에 있는 이 나무는 나라의 물건입니다. 여러 해 동안 길러 온 것을 하루아침에 벨 수 없으며, 더욱이 공용이 아닌 사용으로는 벨 수 없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함부로 공물(公物)을 사용하는 것을 옳지 못하다고 판단하여 거절을 했지만 지금 이 나라에는 네것도 내 것이요, 나라것도 내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수두룩합니다.

 

 

이 충무공 머무시던 곳에서 발포역사전시체험관쪽으로 가다보면 굴강이 있습니다.

1965년에 준공된 내발교가 있어 굴강이라는 안내가 없다면 이곳이 굴강이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 할 듯 한 풍경이었는 데 굴강을 가로질러 다리를 놓은 이유는 주민들의 편리를 위해서였겠지만 꼭 이 자리여야만 했을까 싶었습니다.

현재 굴강은 원래의 지형여건과는 다소 변화가 있긴 하지만 규모와 형태는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조선조 후기에 그려진 발포진 지도에 의하면 이 굴강에는 거북선을 비롯하여 세척의 병선이 정박해 있었다고 하는 데 거북선의 크기 등으로 보면 지도가 과장된 듯 합니다.

이동중에 선소와 굴강의 차이에 대해 알고 싶다는 질문이 있었는 데 배를 만드는 곳이거나 수리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데 격군님은 나중에 정확한 답변을 준다고 했습니다.

근처 안골에 굴강이 있는 데 안골산업단지조성이 발표되었기에 몇 년째 울이 쳐진채 방치하고 있더니 산업단지 조성으로 묻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안골 굴강 설명을 보면, 굴강은 조선시대 배의 수리, 군사 물자의 하역, 특수 목적 선박 등의 정박을 목적으로 세운 중요한 군사시설로, 방파제와 선착장의 역할을 함께 수행하였다고 합니다.

굴강과 비슷한 형태의 사천 대방진굴항을 답사한 적이 있는 데 생김은 비슷했지만 굴항은 상주하던 군인들의 훈련장과 휴식처로 이용되었던 곳이라고 했습니다.

 

 

발포역사전시체험관입니다.

발포역사전시체험관은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와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고흥의 숨은 인물들을 테마로 한 역사전시체험관으로 2011년에 개관했으며, 전시관에는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의 전공(戰功)과 배경, 모형, 유물 등과 함께 영상체험실 등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이름만 들었던 장군들이 발포에서 활약한 사실이 소개되어 있었는 데, 발포가 지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임진왜란 연표인데 마치 잘 짜맞춘 퍼즐같은 사실이 의심스럽기까지 한데요, 1592년 4월 12일 거북선 완성, 다음날인 4월 13일 일본이 조선침략, 1597년 8월 원균 칠천량해전에서 일본에 대패, 9월 이순신 다시 삼도수군통제사 임명, 10월 명량해전 승리, 1598년 9월 토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12월 16일 이순신 장군 노량해전에서 전사. 조일전쟁은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되는 데, 이순신 장군을 빼면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는 전쟁이 임진왜란 조일전쟁입니다.

 

 

정걸 장군의 판옥선을 봤으며, 발포에서 활약한 장군들을 새겨야 했는 데 송심, 송덕일 장군의 경우 처음 들었으니 학습의 길은 멀고 멉니다.

몇 개의 방을 거쳐 마지막 방으로 가니 왜군 격침순간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체험으로 승리의 순간 영상과 함께 우리의 포즈가 함께 프린트 가능하기에 기념으로도 좋을 듯 했습니다.

 

 

하루에 몇 곳을 답사한다는 건 무리지만 우리는 강행군을 해야 했는 데, 지친다거나 그런 뜻이 아니며 시간이 부족하여 머리와 마음에 다 담을 수 없어 아쉽고 안타깝다는 뜻입니다.

발포역사전시체험관을 나오면서 충무사와 발포만호성을 한번 더 봤습니다.

점심식사하러 가며, 정걸 유적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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