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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의 등록문화재(근대문화유산) 검시실과 감금실

by 실비단안개 2014.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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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섬투어3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슬픈섬 소록도小鹿島

2, 소록도의 등록문화재(근대문화유산) 검시실과 감금실

 

우리는 수탄장이 아닌 테크로드를 따라 중앙공원쪽으로 가야 했는데 테크로드 입구에 우체국과 매점이 있었으며, 매점앞에는 나병 시인인 한하운의 보리피리가 있으며, 수호원장의 철거된 동상자리 앞에도 보리피리가 있었습니다.

 

보리 피리 / 한하운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ㅡ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 ㅡ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人還)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ㅡ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ㅡ ㄹ 닐니리 『보리피리 1955

* 한하운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61487&cid=40942&categoryId=33385

 

바다를 끼고 테크로드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 길이 꼭 필요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차라리 설치를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며 혼자 느리게 앞서간 이들을 따라 걸었습니다.

10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무는 고목이 되었습니다.

 

 

 

중앙공원으로 가는 길에는 소록도에 대한 안내판이 여럿 있는데 소록도 문화재 전체안내와 등록번호 안내가 따로 있었습니다.

전국 350여 점 가운데 우리 진해에는 6점의 등록문화재가 있는데 진해는 일제강점기때 만들어진 계획도시로서의 도시구조와 해군 통제부 시설, 일식주거와 흔적 등 다양한 양식의 근대건축물이 있으며, 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등록문화재는 2점이며, 군항제 기간 근처에서 접할 수 있는 등록문화재 2점, 민간인 접근금지구역에 있는 등록문화재가 2점 있습니다.

- 진해 숨은 볼거리, 근대문화유산 6점

 

 

다른 도시에 비해 등록문화재가 많다보니 스칠수 없어 안내판 하나하나를 찍었는데, 소록도 전체는 국립소록도병원으로 민간인 출입이 제한되어 있으며 건물 대부분이 일제강점기때 건축되었기에 다른 시도보다 등록문화재가 많은 듯 했습니다.

 

문화재는 국가가 지정하는 '국가 지정 문화재',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하는 '시,도 지정 문화재', 그리고 문화재 자료, 등록 문화재, 비지정 문화재로 나눠집니다. 그 중 '비지정 문화재'는 국가든 지방자치단체든 그 어느 곳으로부터도 지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말하며, 문화재 중에서는 가장 등급이 낮은 것들입니다.

등급이 가장 높은 것은 국가지정 문화재로 최고 등급인 '국보'가 있고, 그 외에 '보물',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무형문화재, 중요민속자료들이 있습니다.

국가지정 문화재보다 낮은 등급의 문화재는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자료 들로 지방자치단체의 지정을 받은 것들이며, 시도 지정 문화재 아래 등급의 문화재들에는 '문화재 자료'라는 이름이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등록문화재는 무엇인가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는데요, 지정문화재가 아니면서 근대와 현대에 만들어진  것들로 보존할 가치가 큰 것들에게 주어지는 이름으로 문화재청장이 지정합니다. '등록문화재'라는 말과 '근대문화유산'이라는 말은 거의 동의어로 보면 됩니다.

 

등록문화재(근대문화유산)란 우리 근대사(1876년 개항 - 6.25전쟁까지)에서 지역 역사와 문화의 뿌리가 되고 한 시대의 조형의 모범이 되며, 학술적 가치가 큰 건축물 중 보존해야 할 필요가 있는 문화재를 등록 관리하는 것으로 2001년 도입되어 현재 전국적으로 350여 점이 지정되어 있으며, 소록도에는 11점의 등록문화재가 있었습니다. 

 

 

사무본관 및 강당(구 소록도갱생원 사무본관 및 강당)

등록문화재 제 6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등록번호는 문화재의 중요성이 아닌 지정번호입니다.

즉 남대문이 국보 1호라고 하여 남대문이 우리나라 문화재중에 최고가 아니라 처음으로 국보로 지정되었다는 뜻이며, 사무본관 및 강당이 소록도 문화재중에서 으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문화재 등록일은 2004년 6월 8일이며, 사무본관은 1935년 소록도갱생원의 확장기 때 지어진 대표적인 건축물 중의 하나로서 1937년 강당을 덧붙인 “ㄴ”자형 평면의 벽돌조 2층 건축물로 계단, 창문 등의 형태가 1930년대의 건축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신사(구 소록도갱생원 신사)

소록도국립병원은 일제강점기인 1916년 5월 17일 한센병 환자를 보호, 치료하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는데 일제는 소록도에도 신사를 건립했군요.

지정번호 제71호로  2004년 2월 6일 지정되었으며, 1935년 소록도갱생원에 설치된 일본의 신사건축의 형식과 배치를 취하고 있는 이 신사는 목조건축양식을 철근콘크리트와 벽돌조로 모방하여 건축하였으며, 당시 일제강점기 때 환자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받기도 한 민족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검시실(구 소록도갱생원 검시실 )과 감금실(구 소록도갱생원 감금실)

우리가 유일하게 확인을 할 수 있는 공간이 검시실과 감금실이었습니다.

검시실은 등록문화재 제66호며 감금실은 제67호로 등록일은 신사와 같은날인 2004년 2월 6일 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소록도갱생원에서 치료를 받다 사망한 환자를 해부하고 환자의 단종수술(斷種手術)을 집행하던 곳으로 추정되는 이 검시실은 1935년에 건축된 박공지붕을 얹은 붉은 벽돌조 단층 건축물로서 소록도갱생원에 수용된 한센병환자의 사인규명을 위한 부당한 검시와 억울하게 강제로 단종을 당한 인간으로서의 아픈 슬픔을 느낄 수 있는 곳인데 우리는 숙연해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 단두대'를 확대해 규제혁명을 이루겠다고 밝혔는데 단두대나 단종대에 오르면 구실을 못하는 끔찍한 일이 발생하는데 한나라의 대통령이 섬뜩한 발언을 하여 공포심을 조장하는 일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옳은 발언이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대통령의 단두대에 비하면 단종대가 차라리 나은듯 합니다만 우리는 단종대 시를 읽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장래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 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

 

시신을 해부했던 검시실에서는 피가 흐르면 하수도로 흘러가게 구조화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단종대에서는 강제로 마취없이 정관수술을 당해야 했습니다.

1916년 5월 17일 한센병 환자를 보호, 치료하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는데 일제는 우리나라 한센인을 마루타다루듯이 했는데 후손이 이런 광경을 본다면 마음이 얼마나 아프며 사무칠까 하는 생각에 머무니 우리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소록도에서 마음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감금실(구 소록도갱생원 감금실)은 등록문화재 제67호로 1935년에 지어진 H자형 평면의 박공형 지붕을 얹은 붉은 벽돌조 단층 건축물로써 형무소와 유사한 구조로 된 일제강점기 때 소록도갱생원에 수용된 한센병환자 중 원내 내규를 위반한 자를 격리ㆍ감금하던 곳으로 일제하에 환자들이 부당하게 구금ㆍ감시처분 또는 체형 등을 받았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곳입니다.

 

 

 

어느 조직이나 규정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규정을 위반했다고 하여 성치않은 그들을 구금하고 감시한 일은 옳은 처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일제는 우리국민인 한센인을 변기하나 달랑있는 녹슨 철망이 있는 작은 방에 감금했는데, 작은 방에서 철창밖의 세상을 동경하듯 보아야 했던, 본적없는 그들의 눈빛이 앞에서 아른거리는 듯 했습니다.

그들에게 힘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으며 소록도 자체가 이미 감금장인데 철망이 꼭 필요했을까 싶었습니다.

붉은벽돌 담장엔 담쟁이가 또 하나의 감금시설같았기에 평소에 좋아했던 담쟁이마져 저주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만령당, 식량창고(구 소록도갱생원 만령당)

등록문화재 제69호며 지정일은 역시 2004년 2월 6입니다.

만령당은 1937년에 일본의 목조탑을 모방하여 건축한 원통형 시멘트 벽돌조에 갓 씌운 형태의 동판지붕을 얹은 건축물로 한센병 환자로 소록도에 강제수용을 당하여 한 많은 생을 살다 마감한 환자의 납골당이라는 기념비적 의미와 조형성을 갖춘 건축물입니다.

국립소록도병원에서는 매년 10월 15일 이곳에서 합동추모제를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식량창고(구 소록도갱생원 식량창고)

등록문화재 제70호로 1940년에 바닷가 선착장에 인접하여 건축한 박공형 지붕을 얹은 붉은 벽돌조 건축물로써 육지로부터 환자에게 보급되는 식량을 보관하던 곳으로 바닷물 속에 잠기는 부분의 기초는 교각모양의 콘크리트 주초에 벽돌로 아치를 틀어 건축한 국내에서 보기 드문 형태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외에 순천교도소 소록지도소(구 순천교도소 소록도지소 여사동. 등록문화재 제469호. 지정일 2010. 8. 28)는 1935년 벽돌조로 건립된 '구 순천교도소 소록도지소 여사동'은 한센병 女감수감자들을 수용하기 위한 건축물로 일제강점기 한센병 환자들의 인권유린 현장을 간직하고 있는데 특히, 건립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국내에서 가장 오래 보존된 행형시설로 사동 및 거실을 가지고 있는 등 희소성ㆍ역사성ㆍ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합니다.

 

등대(구 소록도갱생원 등대)는 등록문화재 제72호로 지정일은 2004년 2월 6일입니다.

1937년 환자들의 자금과 노동력을 착취하여 쌓아올린 소록도 남단 북위 34도 30분, 동경 127도 6분에 위치한 높이 7.5미터의 백색의 원통형 형태의 등대는 한센병환자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소록도갱생원의 역사적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성실중고등성경학교(소록도 구 성실중고등성경학교 교사)는 등록문화재 제74호로 지정일은 2004년 2월 6일이며, 성실중고등학교는 1957년 대한예수장로회 소록교회 연합당회에서 교역자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한 학교로 목재판벽 ㅡ자형 맞배지붕으로 전면에는 포오치영 현관을 달았고 양측면 복도출입문에 눈썹지붕을 붙인 일본식 판장집으로 중앙 현관 박공 비붕위에 작은 십자가를 세워 종교시설의 학교임을 나타내고 있다고 합니다.

 

녹산초등학교교사(소록도 구 녹산초등학교 교사)는 등록문화재 제73호로 지정일은 2004년 2월 6일입니다.

1935년경 건축한 붉은 벽돌조 맞배지붕으로 된 사설 보통학교로 건립한 초등학교 교사로서 1930년대 조적조 건축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 학교는 한센병환자를 대상으로 자체적으로 설립한 초등학교라는 소록도병원의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원장관사(구 소록도갱생원 원장관사)는 등록문화재 제75호로 지정일은 2004년 2월 6일입니다.

1934년에 건축된 원장관사는 붉은 벽돌조 우진각지붕의 건축물로 본채, 별채와 부속채 등 3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응접실과 주현관을 중심으로 한 방문객을 위한 곳과 부현관을 중심으로 한 가족을 위한 공간구성 등 일본 전통주택의 요소들과 함께 일제강점기 때 전형적인 기관장 관사로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238호인 자혜의원(고흥 소록도 자혜의원 본관)은 등록문화재가 아닌 전남문화재로 지정일은 2003년 5월 27일입니다.

자혜의원은 소록도 내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치료와 사무가 이루어진 초기 소록도 자혜의원의 모태로 벽체 내부를 붉은 벽돌로 쌓고 증축된 부분은 시멘트 블록들을 사용하여 목조로 마감한 점이 본 건물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당시에 광주, 부산, 대구에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사립 한센요양원이 있었으나 소록도 자혜의원은 일제시대에 건립된 한센병 치료병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따라서 본 건물은 건축적 특성 뿐 아니라 1900년대 초 소록도 한센병환자병원의 모태로서 근대건축물(기념물)로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됩니다.

 

* 자료참고와 자혜의원 사진출처 : http://sorokdo.go.kr/sorokdo/board/sorokdoHtmlView.jsp?menu_cd=030501

 

▲ 자혜의원

 

등록문화재 등 안내판을 살피며 걷다보니 늦었는데 애환의 추모비앞에서 일행을 만났습니다.

새벽에 그쳤던 비가 눈물처럼 한방울씩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소록도병원은 1916년 일본 총독부 영에 의해 개원되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아 원생들은 자치권을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는 자들에 의해 협상 대표자 84명이 처참하게 학살을 당했습니다. 그 날이 바로 1945년 8월 22일이었습니다.

참사 56년 만인 지난 2001년 12월 8일에 화장, 매몰된 현장에 전원생 및 언론기관과 관심있는 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골발굴 작업을 실시하여 다수의 유골을 발굴하였습니다.

우리는 학살당했던 현장에 추모비를 세워 84명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음과 지구상에 있는 한센 가족에 대한 이해와 온전한 인권 회복을 소원하는 상징적인 기념비를 2002년 8월 22일에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소록도를 아끼시고 한센병에 대하여 깊은 이해를 가지신 여러분께 다시는 이 세상에서 이 같은 죄악이 저질러지지 않기를 기도해 주시고 숙연한 마음으로 추모해 주시기 바랍니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소록대교가 보입니다.

길이 1,160m, 왕복 2차로의 다리로 연결도로를 포함하면 3,460m에 이르며, 전라남도가 2001년 6월 착공해 2008년 6월 완공하였으나 섬 안의 연결도로 공사가 지연되어 2009년 3월에야 완전 개통되었습니다. 자정 모노케이블 현수교로, 12개 교각이 있고 중앙부분에 주탑 2개가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으며, 교량 상판을 매단 케이블을 지탱하는 높이 87.5m의 주탑 2개는 두 손을 모으고 있는 형상이라고 합니다.

 

 

이른 시간이었기에 선물의집이 문을 열지 않았는데 나환자로 보이는 두 분이 자판기쪽에 있었기에 몇 시에 문을 여느냐고 물으니 그건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소록도 선물의 집은 한센인이 직접 운영하며 일반인과의 교류의 장으로 수익금은 이분들의 복지증진을 위해 쓰여진다고 합니다.

선물의 집옆으로 검시실과 감금실이 있으며, 건너편으로 '소록의 꿈'이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을 맞아 옹벽에는 소록도의 과거과 현재 미래를 표현한 희망의 벽화가 인물과 사슴의 모습이 모자이크되어 있습니다.

 

 

 

 

감금실 위쪽에는 소록도의 많은 자료가 보관전시되어 있는 '소록도 자료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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