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섬투어3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슬픈섬 소록도小鹿島
3, 강요된 천국 소록도, 치유와 희망의 섬으로
검시실과 감금실에서 나온 우리는 마음을 추스릴새도 없이 소록도의 100년 역사가 보관·전시되어 있는 '소록도 자료관'에 들었습니다.
소록도 한센병자료관에는 소록도병원 100년의 자료가 보관전시되어 있는데, 그들의 생활도구, 생활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으며, 여러 기록물들이 한숨짓게 했지만 이런 기록물이라도 전해지니 다행이이다 싶기도 했습니다.
소록도 병원의 4대 원장 수호(周防正秀)는 1933년부터 1942년까지 재임하며 그들만의 천국건설사업을 끈질기게 독려하며 원생들을 노예부리듯 하였으며, 마침내 소록도의 한복판인 중앙공원 근처에 자신의 동상을 세워 참배토록 강요했습니다. 1942년 6월 20일 수호 원장은 섬의 모든 환자들을 자신의 동상 앞에 집결시켜 놓고 사열을 받던 도중, 이춘상은 "너는 환자에 대해 너무 무례한 짓을 했으니 이 칼을 받아라"라고 소리친 후 앞으로 뛰어나와 수호의 심장에 칼을 꽂았다고 합니다. 재판장에 선 이춘상은 이 소록도의 실상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어서 원장을 죽였다고 했으며 그는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진정한 천국은 그 어떤것도 강요하지 않음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수호의 동상이 철거된 자리에 지금은 구라탑이 들어섰고, 앞쪽엔 시인 한하운의 시비 '보리피리'가 누워있습니다.
그런가하면 2대 하나이 원장은 아직 아무런 기틀도 잡지 못한 소록도에 부임하여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신앙의 자유, 처우개선 등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하다 소록도에서 사망하였으며 그의 은혜를 잊지 못한 환자들의 자발적 모금으로 창덕비를 세웠습니다.
소록도 중앙공원입니다.
원장이 바뀔 때마다 노동과 착취의 강도가 더 심해졌는데 섬 한복판에 거대한 벽돌공장이 세워졌고 6천여명에 달했던 소록도의 한센인들은 그들의 천국 건설을 위해 매일같이 강제노역에 동원되어야 했습니다. 뭉그러진 손으로 벽돌을 찍어 내어 그 벽돌로 예배당, 목욕탕, 회관, 치료실 등 50여 동의 빨간 벽돌 건물을 지었으며, 그 옆자리에 6천여 평의 공원을 만들어 진도, 완도 일대의 기암괴석과 나무, 화초들을 옮겨왔습니다.
현재 우리가 감탄한 잘 자란 나무들은 한센인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거름이 되어 자란 수목들입니다.
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구라탑은 1963년에 제작되었으며, 미카엘 천사가 창으로 한센균을 찌르는데 기단에는 '한센병은 낫는다'는 희망의 문구가 있습니다.
한센병은 한센균(Mycobacterium leprae)에 의하여 발병되는 만성감염성 질환으로 피부와 말초신경에 주 병변을 일으키는 면역학적 질환입니다. 감염경로가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대개 호흡기로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센균의 잠복기는 수년에서 수십 년 정도로 길며 환자의 면역 상태에 따라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센병에 걸리지 않으며 한센균에 대한 면역력이 적은 극히 일부의 사람에서만 발병하는 질환이라고 합니다.
구라탑은 구할求 문둥병라癩 탑塔으로 나병에서 구해낸다는 뜻입니다.
구라탑 뒤 계단 양쪽으로 붉은동백이 아닌 하얀 동백꽃이라 더 처연했습니다.
구라탑 뒤로 세마비라는 애칭을 가진 공적비가 있습니다.
20대 나이로 1960년대에 국립소록도병원에 와서 죽어서 소록도에 묻히고자 70대까지 봉사하다가 기력이 쇠잔하여 일할 수 없게 되자 소록도 식구에게 짐이 된다고 귀국한 오스트리아 간호사인 수녀 마리안, 마가레트, 마리아 송덕비입니다.
한국전쟁때도 그랬지만 우리나라는 외국의 지원을 많이 받았는데 에볼라 의료진 파견이 기사로 나왔을 때 대부분의 국민들이 파견을 반대했으며 저 또한 반대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의료인이 지원했는데 신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세분의 수녀간호사들은 전염병인 나병환자를 보호, 치료, 계몽하기 위해 타국으로 왔으며, 꽃다운 나인인 20대때 한센인들과의 생활이 그들도 두려웠을 텐데 동행하는 용기는 신앙에서 나왔으리라 생각하기에 종교의 힘은 그 어떠한 힘보다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원 제40주년 기념비옆에 수호 원장 동상과 철거에 대한 설명이 있으며 앞으로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가 누워있습니다.
깊은 한숨을 쉬며 아래로 내려오면 예수상있으며 뒤로 마리아상도 있습니다.
이곳은 소록도에서 가장 슬픈 사연을 간직한 곳으로 수호 원장이 한센병 환자를 더 많이 수용하기 위하여 벽돌공장을 짓고 수용되어 있던 한센인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킨 장소로 한센인 수탈의 상징이었던 벽돌공장의 굴뚝이 있던 자리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1984년 5월 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록도 방문을 감행하여 한센병 환자들 머리에 일일이 손을 얹고 "친히 고통을 겪으셨던 예수는 여러분과 함께한다"고 격려하고 축복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 기념비는 예수상 앞쪽에 있습니다.
아래 소나무는 솔송나무로 천연기념물 제50호입니다.
솔송나무는 키가 8m를 조금 넘고, 줄기 둘레는 1.2m 정도로 수령100살 미만의 나무로 전체적으로 둥그스럼한데 솔송나무뿐 아니라, 중앙공원의 모든 나무들에 소록도 사람들의 지극한 정성이 배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인에게 공개된 장소가 더 있긴 했지만 우리는 다음 일정이 있기에 소록도를 떠나야 했습니다.
선물의집 문이 열렸고 우리는 잠시 가게에 들렸으며, 생각보다 훨씬 끔찍한 일들이 행해졌던 소록도를 빠져나온지 한참 지나서까지 우리는 집단 우울증에 걸린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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