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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돌담장 안의 학림리 최씨 종가를 둘러보다

by 실비단안개 2015.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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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 학동 옛 돌담장길, 느리게 걸어야 더 아름답다"에 이어…

 

최씨 종가를 비롯한 마을 고가들과 어울려 세월의 깊이를 더하는 학동 돌담장은 등록문화재 제25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학림리 최씨종가는 마을 가운데 있으며 가옥의 가장 높은 지대에 오르면 제법 먼데까지 보입니다.

돌담장길을 비켜 돌면 대문이 나오는데, 종가에서 분가한 옆집인 최영덕의 고가와 달리 솟을대문이 아니며 그저 평범한 대문을 가진 고성 학림리 최씨 종가는 약 330년전 하일면 학동마을에 정착하면서 축조한 건축물로 토담과 납작한 돌로 축담을 층층이 쌓은 후, 그 위에 건축물을 축조한 형태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하고 독특한 양식으로 안채와 사랑채, 토담으로 잘 쌓은 창고, 집안의 텃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축대위로 토담과 넓은 돌덮개 지붕으로 된 닭장이 있는 종가는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 22호로 지정등록(2011.07.14)되어 있습니다. 

입구에 '학림리 최씨 종가' 안내판이 있습니다.

 

 

고성 학림리 최씨 종가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 22호

 

학동 마을의 중앙부에 자리잡고 있는 이 가옥은 임진왜란(1592~1598)때 의병장 최균의 현손 최형태가 처음 지은 집이다. 넓은 터에 안채, 사랑채, 곡간채, 방앗간채, 가묘 등 다섯 채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으며, 안채는 1908년경, 사랑채는 1917년에 각각 지은 것이다. 여성들의 생활공간은 안채앞에 사랑채를 짓고, 안마당 좌우에 방앗간채와 안사랑채를 둔 튼ㅁ자형이었으나 안사랑채가 헐려 지금은 ㄷ자형을 이루고 있다. 남성들의 공간도 사랑채와 사랑마당 좌우에 곡간채와 행랑채를 지어 튼ㄷ자형을 이루었으나 근년에 행랑채가 헐려 튼ㄱ자형이 되었다. 안채 뒤쪽의 언덕에는 조상 위패를 모신 가묘가 남향하고 있다.

이 집은 조선말기에서 일제초기에 조성된 부농가옥으로 큰 특징은 담과 기단 및 높고 낮은 축대를 모두 점판암계 판석과 점토를 사용하여 쌓은 독특한 조형에 있다. 이밖에 안채와 사랑채를 비롯 다양한 부속채와 우물, 닭장, 텃밭 등이 잘 보존되어 있어 20세기초 고성지방 농촌주택의 공간구성과 주거 생활상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라 하겠다.

 

대문은 열려 있었으며, 댓돌에 고무신과 운동화가 있었고 안에서 라디오소리가 자그마하게 흘렀지만 사생활을 침범하는 것 같아 부르지 않고 조용히 종가를 둘러봤습니다.

사랑채 앞마당엔 우물이 있으며 판석이 깔려있고 사랑채뒤쪽으로 안채가 약간 보이고 언덕위로 오르는 계단이 있으며 그 위에 가묘가 보였으며 대나무가 뒤울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사랑채마당의 헛담장은 담쟁이가 덮고 마당 앞쪽의 텃밭에는 참깨와 취나물, 콩을 재배하고 있었으며, 최영덕 고가와 붙은 담장쪽 텃밭에는 취나물을 재배하고 있었습니다. 취나물은 고성의 특산품이라고 합니다.

 

 

기둥과 마루에서 세월이 느껴졌습니다.

축담과 댓돌도 학동 돌담장처럼 판석과 점토로 쌓았기에 우러러 보였습니다.

 

 

기단앞쪽에는 계절꽃들이 피고지고 있었으며, 사랑채앞 마당끝에 토담채가 있었는데 곳간이었습니다.

안내글에 곡간채라고 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곡간이 아닌 곳간으로 쓰여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곳간문위쪽에 작은 구멍이 여럿있어 다가가니 대나무를 토담에 박았는데 환기와 온도조절용 같았으며, 구멍은 가로로 7개, 세로로 4줄이었는데 숫자에 특별한 뜻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혜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사랑채옆이며 안채앞쪽의 장독대입니다.

 

 

사랑채뒤의 안채입니다.

안채축담 역시 판석으로 쌓아 올렸으며 토담으로 만든 닭장이 있습니다.

이런 닭장을 어디선가 봤기에 단박에 닭장이구나 했지만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외부 동물로 부터 닭을 보호하기 위해 안채 축담위에 닭장을 만들었지 싶습니다.

안채마당에도 텃밭이 있고 절구와 맷돌이 있습니다.

옛날 양반가에서는 담장안에서 많은 것들이 이루어졌는데 최씨 종가 역시 담장안에서 채소도 재배하며 닭도 키우고 방아도 찧고 했던 것 같습니다.

마루위 추녀아래엔 시렁이 있으며 바구니와 소반 등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담장 너머 기와집은 종가에서 분가하여 매사(梅史) 최태순이 지은 집으로 최영덕 고가 담장 아래로 쑥갓꽃이 피었으며 역시 취나물이 재배되고 있었습니다.

가을날 참취꽃이 피면 장관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쯤 한 번 더 방문하고 싶은 최씨 종가입니다.

 

 

안채 마루에 열린 문으로 보면 역시 텃밭이 있는데 판석으로 쌓았으며 취나물이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안채 오른쪽으로 가서 본 안채옆 모습과 돌로 잘 쌓은 축대위의 가묘가 보입니다.

취나물은 언덕을 계단식으로 만들어 재배하고 있었는데, 많은 식솔을 건사하려면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손바닥만한 땅도 허투루 하지 않았습니다.

 

 

가묘로 가기위해 안채옆의 계단을 오르면서 판석을 흔들어 봤지만 전혀 흔들림이 없었는데 그 정교함이 놀라웠습니다.

 

 

최씨 종가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풍경입니다.

최씨 종가에서 분가한 최태순이 지은 최영덕 고가의 지붕과 마당 일부가 보이며 마을도 일부 보이는 전망이 아주 좋은 가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올랐던 계단을 내려와 안채와 사랑채를 다시 한 번 둘러보고 텃밭을 몇 번 기웃거린 후 최씨 종가를 나왔습니다.

 

 

최씨 종가 옆집은 종가에서 분가하여 매사(梅史) 최태순이 지은 집으로 경남문화재자료 178 호로 지정된 최영덕 고가 입니다.

최씨 종가에서 분가했지만 최씨 종가보다 더 유명한 고택입니다.

 

* 다음지도를 첨부하기 위해 학림 최씨종가를 검색하니 없으며, 대문의 주소인 학동돌담길 53을 검색하니 최씨 종가라는 안내없이 검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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