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 모임에서 우리끼리 진해탐방을 해 보면 어떠하겠느냐는 의견이 나왔으며, 의견을 낸 乃而浦板屋船님에게서 며칠전에 연락이 왔었습니다. 탐방자료를 준비하니 진해 군항마을 역사관앞에서 수능날인 11월 12일 오전 9시에 만나자고.
오전 9시까지 시내까지 나가기엔 빠듯했지만 빠르게빠르게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8시 마을버스를 놓쳤기에 걸어서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갔는데, 몇 미터 앞에서 버스가 떠났기에 20여분을 기다려서야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잘 하면 9시 이전에 중앙동에 도착할 수 있을 듯 했는데, 신호등마다 걸리다보니 9시 넘어 진해공설운동장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중간에 乃而浦板屋船님에게 자은동 지나는 중이라고 문자를 보내긴 했습니다.
우리동네와 달리 진해 시내는 그 골목이 이 골목같고 저 골목도 이 골목같기에 문화의 거리에서 두리번 거리다 내이포판옥선님에게 전화를 하니 탐방자료를 놓고 왔기에 가지러 간다면서 주변에 군항마을 역사관이 있을거라고 하기에 다시 두리번 거리니 맞은편에 군항마을 역사관이 있었고, 사진 몇 컷을 찍는데 여자분이 다가와 군항탐방을 위해 왔느냐고 하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자신을 소개했으며 또 다른 여자분도 소개를 했습니다.
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 회원들이 모두 바쁜지 내이포판옥선님과 중완구 둘만 참석했으며 판옥선님 지인 두 분 하여 모두 4명이 군항탐방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 방문지는 진해 군항마을 역사관이었는데 역사관이 오전 10시에 문을 연다기에 제황산공원 진해탑으로 가기로 하고 중원로타리를 지났습니다.
모노레일카가 생기기전에는 1년 계단으로 제황산공원을 오르거나 제황산초등학교나 남산초등학교쪽으로 제황산공원과 진해탑으로 오를 수 있었는데, 절대 모노레일카는 타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사정상 또 모노레일카를 타고 제황산공원으로 갔습니다.
모노레일카가 몇 시에 출발하며, 정상까지 몇 분 걸리고 첫 차와 막 차 시간 정도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대합실엔 진해를 대표하는 풍경들이 여럿 걸려 있었고 곧 모노레일카가 출발했습니다.
모노레일카를 타고 제황산공원을 오르면서 계속 찍은 중원로타리와 군항입니다.
일행 한 분이 중앙아파트를 소개했는데, 연세가 60대인 그분은 이 아파트에서 태어났다고 했는데, 당시로선 대단한 일이었기에 더 여쭈니 지금은 아파트지만 태어날 당시에는 경찰관 관사였다고 했습니다.
저를 제외한 세 분이 중원로타리 근처에서 태어나고 자란 분들이었기에 이야기가 참으로 풍성한 탐방시간이었기에 지금도 감사합니다.
제가 모노레일카를 타기전에 사진을 찍느라고 늦었었는데, 그때 진해탑이 리모델링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는데 저는 진해탑 아래에서 진해탑이 리모델링중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공사를 마치는 지점이 내년 4월 20일이기에 내년 군항제 기간이 포함되었기에 은근히 걱정이 되는 걸 보니 저도 진해시민은 시민인 모양입니다.
진해탑은 중원로타리 근처에 있으며 모노레일카가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 장소거든요.
진해탑은 높이 28m의 9층탑이며, 면적 3,068㎡으로 전망대에 오르면 진해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고 꼭대기에 오르는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으며, 중원로타리 방향에서 탑산에 오르는 계단이 365개로 되어 있어 1년계단이라고도 합니다.
탑내부 1, 2층에는 진해구에서 발굴된 각종유물과 문화재등을 전시한 구립박물관이 있어 진해의 문화유물을 감상할 수 있고 탑 외부에 경관조명시설을 갖추어 야간에도 아름다움을 자아낸다고 설명되어 있는데, 우리는 진해탑 야경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조명이 색이 변하는게 마치 모텔같다고. 하하
진해탑 입구에는 현시학 해군 소장의 흉상이 있으며 제황산공원에 대한 설명이 세워져 있고 진해탑 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입니다.
제황산은 마치 부엉이가 앉은 것과 같다하여 부엉산이라 하였고, 봉우리는 두엄봉으로 불리었으나, 해방후 제황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해방후가 아닌 일제강점기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역주민들 이야기로는 제황산공원 이전에는 두산공원, 제왕산공원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해발 90m 산 정상에는 1927년 일본이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이긴 노일전쟁의 전승기념탑을 전함의 마스터를 본따 세웠으나 해방 후 이를 헐고 1967년에 해군군함을 상징하는 탑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발틱함대 마스터 모양의 진해탑입니다.
이 탑 공사중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사실 그렇게 큰믿음은 가지 않았습니다.
사고야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더군다나 산 정상에 세우는 탑이다보니 안전사고가 평지의 공사보다 더 많이 일어났을 수 있고, 다른 사고까지 진해탑 공사와 연결한다는 건 좀 억지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런 말을 한다고 제가 친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뼛속까지 반일인 진해시민입니다.^^
1929년 진해탑 준공 행사사진입니다.(진해 군항마을 역사관에서 찍음)
탑 근처에 건물이 보이며, 일본 씨름인 스모를 하는 모습도 보이며 어린학생들도 상당한데 아마 대부분 일본군인의 자녀들이지 싶습니다.
그리고 당시 준공기념품이 주어졌는데, 기념품은 진해탑 모형으로 군항마을 역사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진해탑에서 내려오는 길 중 하나인 남산초등학교에 세워졌던 진해신사사진으로 지금은 계단의 아래부분만 남아 있다고 하는데, 일제강점기때 진해는 마치 일본의 한 도시쯤으로 생각하고 개발한 모양입니다.
제황산초등학교와 남산초등학교로 내려가는 계단인데 지금은 공사차량진입으로 흙길이 되었으며, 모노레일카가 개통되기전에 탑산까지 휠체어 이동이 가능한 시설이 있었습니다.
진해탑 주변을 한바퀴 걸었는데 벚나무에 번호가 붙어 있었습니다.
리모델링공사를 하고 나무를 옮기려나 생각하며 모노레일카를 타고 내려와 사무실에 물어보니 나무의 일련번호라고 했습니다.
옛건물을 보권할 때 큰돌 등에 일련번호를 적어 복원시 다시 쓰이기도 하거든요.(- 웅천읍성, 책임 연대 위해 공사 실명제城)
하여 번호가 있는데 올해 다시 번호를 붙였더라고 하니, 인구조사처럼 다시 나무에 일련번호를 붙인거라고 했습니다.
모노레일카를 타고 내려오면서 아래 1년계단을 찍었습니다.
큰나무 사이의 잡목이 단풍이 들었으며, 단풍나무도 붉게 단풍이 들었기에 1년계단을 걷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습다.
진해탑 아래에 가면 확인하는 점방입니다.
살며시 엿보니 여전히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일이 잘 해결되었는지 여쭙지는 못 했습니다.
- 모노레일카에 깔린 노부부(老夫婦)의 생업 2009.06.
진해탑에 올라 진해시가지의 단풍 정도를 확인하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이번 리모델링은 진해탑 건립 48년 만에 새롭게 단장된다고 하는데요, 이번 리모델링 공사에서 군함 상징성을 강화하는 외관 정비와 경관조명 공사, 내부 박물관 업그레이드 등 지역의 대표적 거점으로 자리 잡기 위한 정비를 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현재의 야경대신 조명을 탑 아래에 설치하여 탑만을 지속적으로 비춰주면 좋을 듯 한데 어떻게 변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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