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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야기/진해 풍경

과거로의 여행, 꽁뜨와 김씨박물관

by 실비단안개 2015.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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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 김달진 문학관을 나와 김씨아저씨가 궁금해 꽁뜨에 들렸습니다.

꽁뜨는 처음엔 김씨공작소 간판을 달았다가 꽁뜨간판을 달긴했지만 김씨공작소 간판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지붕까지 담쟁이덩굴이 덮어져 있습니다.

 

 

김씨 아저씨의 작은 따님은 여전히 뜨개질을 하고 있었는데, 휴대폰에서 완성품 사진을 찾아 보여주었습니다.

옷(조끼 혹은 민소매티)을 뜨고 남은 실로 뜨개질을 한답니다.

커피는 여전히 2000원 했으며 평일이라 그런지 손님이 없었습니다.

이 집은 김씨공작소 간판을 달고 김씨 아저씨가 손수 꾸민 쉼터같은 곳입니다.

예전엔 방에 들어 가기도 했는데 커피 등을 팔고 부터는 방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꽁뜨와 김씨박물관엔 종일 음악이 흐르며, 한쪽벽엔 여전히 LP판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출입문 윗쪽에는 옛날 이발소 거울위에 있던 풍경화가 있습니다.

하여 정겹습니다.

 

 

긴 탁자앞에 앉으면 큰창으로 김달진 생가가 보이기에 창은 마치 커다란액자같습니다.

 

 

만화방벽에는 진해의 유명 건축물들이 사진으로 붙어 있으며 설명도 있습니다.

거의가 다 가본 곳입니다.

 

 

김씨박물관은 꽁뜨와 마주하고 있으며 대문을 들어서면 오른편 건물은 김씨박물관이며 맞은편 건물은 살림채입니다.

"계세요~~~"

아이고 실비단 아인교~

"네 반갑습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났기에 악수를 하고, 여기(마루)앉을래 방에 갈까 묻기에 마루에 앉겠다고 했더니, 요새 뭐 하는기요 묻기에 텃밭일 한다고 했더니 그라모 방에 들어가야 겠다 하기에 방으로 들어 갔습니다.

김씨 아저씨는 여전히 아날로그시대를 살기에 손글씨로 기록을 하는데 기록물이 엄청나며 모두 스크랩을 해 두었습니다.

스크랩뭉치를 꺼내더니 뒤적이기 시작했습니다.

텃밭에 대한 생각을 예전부터 했는데 실비단이 딱 그길로 가고 있네 하면서요.

근래에 소사를 방문하는 이들이 많은데 김달진 문학관이 시초가 되긴 했지만 김씨 아저씨의 공도 큽니다.

 

 

김씨 아저씨를 처음 만났을 때가 2006년 가을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유쾌한 분으로 처음엔 자신을 고물쟁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사진의 집은 현재 꽁뜨로, 혼자 힘으로 이런저런 변화를 주고 꾸며 따님이 차와 음료를 팔고 있습니다.

 

처음 김씨아저씨를 만났을 때 김씨 아저씨는 마을입구의 창고 문을 열고 보여 주었는데, 창고안엔 없는게 없을 정도로 옛날 물건들이 꽉 차 있었습니다.김씨 박물관은 개인 소유 박물관으로 근현대사 중심으로 꾸며졌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우표등 귀한 물건·물품들이 많습니다.

 

개인이 몇십년 수집한 물건을 지역과 이웃을 위하여 박물관을 건립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도움이 컸다고 말씀했는데 어릴 때부터 '칭찬'으로 자신감을 준 어머니의 도움으로 고물상을 뒤지며 옛 물건들을 하나씩 수집하기 시작하였고, 객지의 생활을 접고 고향에 그 터를 마련하여 소장중인 우리 근현대사와 함께 한 물건들을 여러 이웃과 함께 공유하고자 개인박물관을 만들었으며, 입장료는 없습니다.

또 개인박물관 개관이 가능하게 한 것 중 하나는 본가에서 (웅천)사진관을 30여년간 운영하였기에 당시로서는 드물게 여러 종류의 많은 사진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김씨가 고물을 모은다고 일없이 전국을 헤맨것만은 아닙니다.

김씨 아저씨는 커피점 Tom & Judy(이대점, 돈암점, 신창점), 8½ Coffee shop, Tom's House(이대점, 신창점)를 운영했으며, 1990년대 부산 신창동 미싱골목에서 커피점 '꽁뜨'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김씨 박물관 입구입니다.

창고에 물건이 넘쳐 마치 밖에 내어놓은 듯 합니다.

 

 

자랑쟁이 김씨 아저씨가 본인 기사가 실린 신문을 출입문에 붙여두었습니다.

작은 박물관 안에는 별의별 물건이 다 있습니다.

1930년대의 일본 나무냉장고와 그 본을 딴 우리나라의 나무냉장고를 비롯, 풍금, 전기곤로, 구닥다리카메라, 온갖 주전자, 벽시계 등을 비롯하여, 소소한 성냥갑, 과자종이까지 있습니다.

 

 

김씨 박물관은 곧 우리 어머니와 우리들의 공간이며, 우리 아이들이 기억해 두어야 하는 공간입니다.

그의 장모는 부산 남일국민학교 교사였으며, 당시의 가정방문, 수업시간 등의 모습이 벽에 있고, 역시 당시의 책가방, 문구, 장난감 등이 가지런히 있으며, 먹을거리 풍경도 있습니다.

빨간책가방을 저는 초등학교때 멨는데 당시엔 귀한 책가방으로 아버지께서 객지일을 하고 오시면서 사 왔습니다.

시골에서 책가방을 처음 메다보니 남자아이들이 책가방을 찬다고 찬게 다리가 올라가지 않아 제 다리쪽을 찼기에 후일 시골보건소에서 수술을 했는데 지금도 큰흉터가 있습니다.

사진 가운데 나무통은 아이스케키통으로 우리 세대가 시골에서 기억하는 첫 번째 아이스크림일 겁니다. 아이스케키통에는 소금주머니도 함께 들어 있었기에 달콤해야 했던 아이스케키가 약간 짬조름함 맛이 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 장난감과 비교하면 많이 조잡스러운 장난감과 딱지, 유리구슬도 있습니다.

겨울이면 동생들과 마당에 구멍을 만들어 유리구슬치기를 했는데 큰동생은 놀이에 능했지만 저는 그러지 못 했으며, 오래된 서랍안에는 딱지가 가득가득 들어 있기도 했습니다. 동생은 유리구슬과 딱지를 제 목숨만큼 소중히 여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멈춘 시계처럼 과거에서 멈춘 공간에는 앉은뱅이 책상, 재봉틀, 전축, 타자기, 선풍기 등 우리나라 공산품은 모두 모아둔 듯 한데, 김씨 아저씨가 가장 아끼는 소장품은 일제 시대의 '징용 포스터'와 1897년의 최초 공산품인 '성냥'이라고 합니다.

 

 

 

한 가정의 역사와 관심이 쌓여 만들어진 김씨 박물관 벽에 안내가 있는데 근처에 소사주막이 있습니다.

소사주막은 토요일만 문을 여는 스토리텔링 박물관으로 간단한 먹을거리를 팔기도 합니다.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한 동네 소사리 한 부분이 김씨 박물관이며 꽁뜨와 김씨 박물관과 그 주변은 마치 영화 세트장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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