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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모산 장유사에서 진정한 힐링을

by 실비단안개 2016.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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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황후가 첫날밤을 보낸 명월산 흥국사

 

2월 21일

흥국사를 나와 장유계곡에서 노루귀를 만난 후 산길을 20여분 달려 장유사에 닿았습니다.

몇 해전 장유사를 방문했을 때 아담한 사찰은 공사중이었는데, 어떤 공사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장유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단정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장유사는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2동 대청동 불모산(佛母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梵魚寺)의 말사입니다.

불모산을 풀어보면 '부처님의 어머니[佛母]'인데 성불한 일곱 왕자의 어머니(허황옥)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불모산(801.7m)은 경상남도 창원시 성주동과 진해구 웅동1동 일원,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창원의 성주사와 웅동의 성흥사가 불모산 자락에 있습니다.

- 지리산 칠불사 아자방, 장작지게지고 화실(火室)로

 

사찰측의 기록에 따르면 48년에 인도 아유타국의 태자이자 승려인 장유화상(長遊和尙)이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후가 된 누이 허씨를 따라 이곳으로 와서 최초로 창건한 사찰이라고 합니다.

장유사는 종각이 일주문이며, 주차장 맞은편에 비석군이 있고, 종각을 지나 오른편으로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용지봉 입구)금동반가좌불상이 장유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대웅전 뜰에서 본 종각으로 대북과 범종이 있습니다.

 

 

절 마당이 넓습니다.

소각장이 마당에 있으며 마당은 낭떠러지위에 있는데, 앉아 쉴 수 있는 여러모양의 돌의자가 있고 사찰방문객은 대부분 절 아래를 바라보는데, 장유신도시가 펼쳐져 있으며 먼데있는 부산도 보입니다.

앞의 산과 먼데 산들이 봄처럼 참으로 부드럽습니다.

 

 

 

 

깊은 산속의 절에 가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건축을 한 이들이 고생이 많았겠다입니다.

그 옛날 도로는 지금보다 분명 좁았을 테고, 짐(건축자재) 또한 사람의 손을 빌어 산속으로 옮겨 공사를 했을테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 절 대웅전 아래쪽에는 장유스님이 수행했다고 하는 토굴터가 남아있는데, 이 토굴의 축대는 허황옥을 따라 가야에 온 아유타국 사람들이 쌓은 것이라 합니다. 아유타국 사람이건 가야인이건간에 해발 578m의 절터까지 혼자몸으로 걷기도 힘이 든데 짐까지 이고 지고 했을테니 얼마나 힘이 들었으며, 건축기간 또한 길었을 겁니다. 절에 가면 부처님보다 건축을 한 이들에게 먼저 감사의 절을 해야 할 듯 합니다.

 

장유사 대웅전과 뜰이며, 왼편의 건물은 행선실과 요사채며 요사채 뒤 높은 곳의 건물은 삼성각입니다.

공양간은 삼성각으로 오르는 계단옆에 있었습니다.

- 삼성각 : 사찰에서 산신(山神)ㆍ칠성(七星)ㆍ독성(獨聖)을 함께 모시는 건물. 삼성 신앙은 불교가 한국 사회에 토착화하면서 고유의 토속신앙이 불교와 합쳐져 생긴 신앙 형태이다. 전각은 보통 사찰 뒤쪽에 자리하며, 각 신앙의 존상과 탱화를 모신다.

 

 

범종각에서 대웅전으로 가는 뜰 귀퉁이에 장유사 연혁과 법회 안내판이 있으며 안내판에는 장유화상사리탑 사진이 있습니다.

장유화상 사리탑은 안내판과 대웅전 사이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면 있습니다.

 

 

장유화상 사리탑 안내와 팔각사리탑입니다.

1500년 전에 만들어진 이 절의 가장 오래된 장유화상 사리탑은 경남 문화재 자료 3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탑은 허황후의 오빠이자 김수로왕의 처남인 황보옥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귀중한 역사적 사료로 평가되어 보존되고 있는데, 축적연대는 A.D 5세기(451~492)경 가락국 8대 질지왕때 장유암을 재건하면서 세워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탑은 주위의 장유화상기적비와 두 개의 비석과 한 곳에 있으며 팔각기단위 연화모양의 대위에 세워져 단순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사리탑에서 내려와 대웅전앞으로 갔습니다.

그동안 사찰에 다니면서 꽃살문을 많이 봤지만 사군자가 새겨진 문은 처음입니다.

 

 

신도들이 드나드는 문의 꽃살문은 단순하며 대웅전 정면의 꽃살문은 흥국사의 꽃살문과 비슷한데 거북등처럼 육각형태로 만들어진 '귀갑살' 형태의 구조의 꽃문살으로 장수와 복덕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 귀갑살 꽃살문 양쪽에 사군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공양간이 있는 대웅전옆 벽엔 메주가 지는 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공양간에서는 나물냄새가 났는데 늦은 시간까지 점심을 먹지 못 했기에 배가 고팠지만 공양시간도 아니고 하여 삼성각으로 올랐습니다.

 

 

삼성각은 계단을 올라 갈 수도 있지만 옆의 자연스런 산길로도 오를 수 있습니다.

 

 

옆에서 본 삼성각입니다.

겨울과 봄 사이의 나뭇가지가 섬세합니다.

 

 

삼성각에서 내려다 본 장유사 뜰과 장유신도시입니다.

 

 

용지봉으로 오르는 길이기도 한 이 길 입구에는 작은돌들이 탑을 이루고 있으며, 산행을 하는 이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좁은 산길은 나무뿌리가 튀어 나오기도 했으며 참나무잎으로 미끄럽기도 했지만 호젓해서 좋았습니다.

 

 

용지봉으로 오르는 산길에서 만나는 겨울과 봄 사이입니다.

참나무잎이 푹신할 정도로 쌓였으며 얼음이 언 가운데도 이끼가 파릇했고, 녹은 얼음은 낙숫물처럼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는데 봄을 깨우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진달래는 마른가지 끝마다 꽃눈을 달았고 지난해 타올랐던 단풍은 미쳐 잎을 떨구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마른잎 사이에서 새순이 돋고 노루발풀은 겨울부터 계속 잎을 달고 있는데 5~6월이면 대롱대롱 꽃을 피울 겁니다.

 

 

혼자 조금 깊이 걸었습니다.

이끼류가 많다보니 이름을 모르는데 동정을 구하니 깃털나무이끼라고 하는데 정확한지 모르겠습니다.

이끼는 돌틈에서도 초록색이며 얼음속에서도 초록색이었고, 얼음이 녹은 곳에서도 초록색이었습니다.

장유사의 하루 해는 깁니다.

 

 

이렇게 많이 언 얼음은 처음입니다.

날씨가 많이 춥지않았음에도 흘러내리던 물이 얼었는데, 산이 높아 밤엔 기온이 많이 내려가나 봅니다.

나뭇가지를 헤치고 낙엽에 발이 빠졌지만 바위를 얼린 얼음을 한참 만났습니다.

더러는 길이 아닌 곳을 다니며 이 계절을 제대로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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