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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낙동江과 팸투어·답사

[함안]배롱꽃 하날하날 떨어지는 이수정과 무진장 좋은 무진정

by 실비단안개 2016.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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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30일 경남 함안군 팸투어에 참가했습니다. 주최는 함안군이며, 주관은 유한회사 해딴에(경남도민일보 자회사, 별도법인)였습니다.


7월 30일 아침 식전 마지막 일정은 무진정 답사였습니다. 무진정은 개인적으로 세 번째 방문인데 모두 여름 휴가즘이다보니 늘 비슷한 풍경만 봤는데 무진정 가을 풍경도 좋다고들 하지만, 제가 본 풍경은 여름풍경이니 저는 여름풍경이 가장 좋았습니다.

무진정으로 오르려면 옆의 주차장으로 올라도 되지만 연못인 이수정 가운데를 걸어 돌계단을 오릅니다.

함안천을 안고 있는 3개의 수정이 있었으나 신작로를 만들면서 일수정과 삼수정은 지금 없어지고 이수정만 남게 되었다는 설과 무진 선생의 후손들이 함안천 물길을 돌려 만들었다는 설이 있는데, 함안의 이수정은 낙화놀이로도 유명합니다.

여름날 이수정 수면은 개구리밥이 덮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초록물감은 푼 듯 한 녹색 연못에 반하여 차를 세워 이수정과 무진정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런데 배롱나무의 붉은 꽃까지 피어 장관이더군요.



연못 가운데 작은 섬을 만들어 세운 정자를 '영송루'라 하며, 다시 교각을 세워 무진정으로 오를 수 있도록 조성하였습니다.

영송루(迎送樓)는 이곳에서 사람을 맞이하고 보냈다는 뜻입니다. 무진정은 풍류를 즐기기 위해 언덕 위에 지어진 정자이니 영송루에서 맞아 무진정에서 즐긴 후 영송루에서 작별했겠지요. 사연이야 어쨌거나 이수정의 풍광은 개인적으로 무진정보다 더 운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수정은 초파일에 불꽃낙화놀이를 하는 연못입니다.

불꽃낙화놀이는 조선 선조 때 이 지역 군수였던 정구 선생이 최초로 창시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시대부터 쭉 이어져 오다가 일제 강점기 때 중단됐으나 1985년부터 재현돼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진동 태봉천의 불꽃낙화놀이와 같은 행사입니다.



2012년 진동 불꽃낙화축제때 모습인데 이런 불꽃낙화축제를 연못을 배경으로 한다니 한 번은 가봐야 겠는데 시간이 맞춰지지 않습니다.

대신 진동 태봉천의 불꽃낙화축재때 모습입니다.

낙화불꽃축제는 하늘로 쏘아 올리는 불꽃축제가 아닌 행사명 그대로 불꽃이 낙화하는 불꽃놀이로, 낙화의 원재료는 느티나무(귀목)의 껍질을 벗겨서 숯을 만들어 가루로 빻아 한지를 길이대로 넓적넓적 잘라(30cm가량) 양편을 마주 잡고 빻은 숯을 적당 분량 싸서 꼬아 꽈배기처럼 말았는데 한지새끼줄 같았습니다.




영송루에서 무진정으로 가는 길 끄트머리에서 연못을 보거아 발 아래를 보면 배롱나무꽃이 떨어져 있습니다. 배롱나무꽃이 피는 계절이다보니 가는 곳마다 특별한 배롱나무를 만나게 되며 꽃까지 만나는데 올해가 배롱나무꽃을 많이 본 해가 될 것 같습니다.



배롱나무꽃은 한꺼번에 후루룩 떨어지지 않고 한잎씩 사뿐히 떨어지는데, 제목은 예전의 글에 시인이 적은 댓글과 감성이 풍부한 한 분의 댓글을 합한 겁니다.

"배롱꽃이 하날 하날 떨어져 내린곳 그 길을 욕심없이 걸어보고 싶다...", "무진정... 무진장 좋군여.^^ 참 잘 보았고요, 저는 오늘 밤 꿈길까지 초록으로 물들 것 같습니다.ㅎ"


배롱꽃 하날하날 떨어지는 이수정과 무진장 좋은 무진정!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이웃은 함안에서 가장 좋은 곳이라고도 했으며, 바누아투 교민인 이웃은 "정말 한국의 미가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갑자기 한국이 너무 그립습니다."라고 했고, 역시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다른 이웃은 "우리나라 조경과 한옥, 그리고 곡선들 또 한가지 배롱나무까지 곁들이면 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것 같습니다."라고 극찬했습니다.

배롱나무꽃과 한옥, 연못이 있는 풍경은 저도 최고의 풍경이라고 생각합니다. 배롱나무꽃을 특별히 좋아할 이유가 없는데 능소화와 함께 좋아하는 걸 보니 제가 가야공주(족보 이야기를 할 때면, 농으로 저는 가야공주라하며 얼라아부지는 고려장군이라고 합니다.)가 맞긴 맞는 모양입니다.

팸투어 당시 배롱나무꽃이 활짝 피지 않았기에 떨어지는 일 또한 하날하날 떨어졌습니다. 참 좋은 이수정인데 사진이 빈약합니다. 마음이 바빴나 봅니다.




다리를 건너 언덕을 오르며 계단 위에 동정문(動靜門)이 있고  문 속으로 무진정 현판이 보입니다.

무진정은 조삼(趙參)선생께서 후진양성과 남은 여생을 보내시기 위하여 함안면 괴산리 지금의 자리에 직접 지으신 정자로서 자신의 호를 따라 무진정(無盡亭)이라 명명하였다는 설과 조선 명종 22년(1567)에 무진(無盡) 조삼(趙參)선생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세우고, 선생의 호를 따서 무진정(無盡亭)이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이수정을 무진 선생의 후손들이 함안천 물길을 돌려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보니 어느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동정문 밖에 핀 배롱나무꽃입니다.



동정문에서 이수정을 바라보는 풍경입니다.



무진정의 측면에서도 배롱나무꽃이 보이는데, 무진은 조삼 선생의 호며 무진정은 경남 유형문화재 제158호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무진정은 팔작지붕으로 정자 가운데에 마루방이 있으며 주변에는 모두 누마루를 깔았습니다.

정면을 뺀 삼면과 마루방에 창호를 달았는데, 창호는 모두 열어 위로 올려 달아놓게 되어 있기에 한여름에는 바람을 맞이할 수 있으며, 비바람이 부리는 날에는 창호를 내려 앞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런 문을 들어열개라고 하는데, 평상시 여닫이문으로 사용하다 필요시 창호 윗부분의 삼배목을 회전축으로 들어 올려 걸쇠에 거는 문으로 들문이라고도 합니다. 이 들문은 절간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광화문 양옆과 시골 마을 입구에 해태상이 있습니다.

해태는 사자와 비슷하나 머리에 뿔이 있고 몸 전체는 비늘로 덮여 있는 해치(獬豸)를 이르며 상상속의 동물로, 시비(是非)나 선악(善惡)을 판단하여 안다는 상상의 동물 해태상은 고대 사회 때부터 봉건 군주의 기강과 위엄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자리를 잡았는데, 무진정으로 오르는 계단 한 켠에 해태를 닮은 돌이 있었으니 조삼 선생은 양반의 체면을 한껏 차리고 싶은 게 아니었을 까 조심스레 짐작해봅니다.

 


무진정은 앞면 3칸·옆면 2칸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입니다. 앞면의 가운데 칸에는 온돌방이 아닌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고, 정자 바닥은 모두 바닥에서 띄워 올린 누마루 형식으로 기둥 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어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건물로 조선 전기의 정자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현판과 주련, 내부의 기문은 모두 주세붕 선생의 글씨라 합니다.



주세붕 선생의 무진정 기문 한글본과 원본 편액입니다.



무진정은 모든 들문이 들려 사방이 트여 시원했으며, 오래 된 왕버들이 영송정을 감싸고 있다면 무진정 주변엔 키큰 회화나무가 하얀 꽃잎을 떨어뜨리고 있었고 두런거리는 소리에 담장밖의 굽은 소나무가 안을 기웃거립니다. 크고 아름이 넘는 나무에 이미 세월에 배였습니다.






▲ 회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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