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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즐거우면 더 좋지 아니한가!
다락방/우야든둥 잘 묵자

식구가 함께 준비하는 추석(음식)

by 실비단안개 2016.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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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2~14일

추석이 정말 코밑입니다.

추석은 가배·가위·한가위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합니다. 이 때는 농경민족인 우리 조상들에 있어 봄에서 여름 동안 가꾼 곡식과 과일들이 익어 수확을 거둘 계절이 되었고, 1년 중 가장 큰 만월 날을 맞이하였으니 즐겁고 마음이 풍족하여 속담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큼만"이라는 말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저런 일들로 모두 스트레스만 가득한 나날들일 겁니다. 분명 옛날보다 물질이 풍부한데 말입니다. 이는 우리 마음에 욕심이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욕심없는 사람이 어딨노 할 수 있겠지만, 식구들 말을 빌리면 저는 욕심이 없다고 합니다. 매일 바보처럼 산다고 합니다. 저라고 왜 욕심이 없겠습니까. 건강한 먹을거리로 밥상차리기와 텃밭 작물 거둬 나누기가 제일 큰 욕심입니다. 많은 꽃을 보고 싶은 것도 욕심이고요. 이 욕심은 제가 조금만 부지런하면 이룰 수 있는 일들이기에 저는 욕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식구들은 제가 자신의 것 챙기는 건 뒷전이며 무조건 나누기를 고집한다고 바보라고 합니다.


어린날 명절이면 엄마는 긴옥양목 앞치마를 두르고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아~ 엄마는 앞치마를 하는거구나. 엄마가 되어 어느 날 부터 저도 눈만 뜨면 앞치마를 입었으며 종일 앞치마를 입고 있었습니다. 올케가 선물로 앞치마를 해 줄 정도였고, 아이가 인사동에서 엄마 앞치마 사려니 너무 비싸더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텃밭일을 하면서 앞치마를 입을 시간이 없다시피하여 요즘은 큰일을 할 때만 앞치마를 입습니다.

엄마는 어린 우리에게 절대 큰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하여 제 어릴 때 꿈은 우리 엄마처럼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자주 제게 묻습니다. 지금 잘 하고 있나. 좋은 엄마가? 아이들 아빠는 아이들에게 너거 엄마같은 사람 세상에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마음은 아닌데 물질적인 면에서요. 그렇다고 얼라아부지에게 어디 가서 사기쳐서 돈 좀 가지고 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시댁 형제는 3남 1녀이며 우리는 셋째 아들이고 아래로 시누이 한 분이 있습니다. 집안마다 사정이 있듯이 저희도 사정상 몇 해전부터 저희가 기제사와 명절 차례를 지냅니다. 그러나 불만 한 번 한적없으며 행사때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합니다. 행사때 만든 음식은 결국 우리 아이들 입으로 들어가는데, 요즘은 먹을거리가 흔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엄마밥만 하겠습니까. 그리고 아이들이 음식을 입에 맞아 합니다.

일년에 두 번인 명절에 우리나라의 많은 주부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며 '미즈넷'은 추석 한참 아래부터 난리입니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그러셨습니다. 너거 엄마가 단감을 따면서 우리 딸은 왜 이리 안 오노 하더라.

하여 아버지께서 며느리에게 미안하더라고 했습니다. 너거 엄마도 역시 친정엄마더라. 엄마와 저는 사랑한다, 좋아한다, 엄마 없으면 나는 못 산다 이런 말을 한적이 없습니다. 옆에 계시는 동안 최선을 다하자입니다.


주부들이 그러지요, 명절엔 부부가 각자의 친가에서 명절을 쇠자고.

언젠가 설날이었습니다. 남해에서 출발하여 친정인 진해에 왔는데 집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엄마는 친정에, 아버지는 처가에, 동생들도 처가에 올케들은 친정에 갔습니다. 저는 여자 형제가 없습니다. 엄마도 친정이 있었지. 이 땅의 많은 딸들이 친정에서 명절을 보내고 싶어 하는 데 그 딸들의 어머니가 친정에 가시고 친정이 텅 비었다면 그 딸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명절에 (시)어머니는 며칠전부터 전화를 하셨습니다. 언제 올래? 물론 가시방석이었습니다. 빨리 가야 하는데. 그러나 얼라아부지의 일에 따라 갈 때도 있었고 못 갈 때도 있었습니다. 못 가면 그 죄송함은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고 싶을 정도였으며 다음 명절때까지 죄책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어머니 떠나신지 10년이며 아버지 가신지 4년입니다. 아버지 가시기전부터 우리집에서 차례를 모셨으니 기제사나 차례를 모시는 일은 이제 시댁일이 아닌 우리집일입니다.


우리는 기제사와 명절 상차림 시장을 얼라아부지와 함께 봅니다. 돈 쓰기 좋아하는 저다보니 이때다 싶어 대책없이 시장을 봅니다. 기제사나 명절 상차림 지출은 다 용서가 될 듯 했으며 지금도 그렇습니다. 처음엔 좀 째째하게 굴던 얼라아부지도 말은 조금만 하소 하면서도 시장 보는 일을 크게 탓하지 않습니다. 대신 어딜가나 저를 데리고 다닙니다. 하다못해 이발소가 아닌 제 단골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기까지 하며 목욕을 가면 일찍 하고 나와 기다리고 있을 정도입니다.

며칠전이었습니다. 둘이 내과에 갔습니다. 얼라아부지는 혈압약을 다달이 타며 저는 감기로 갔는데 간 김에 혈당을 쟀습니다. 104.

좋네, 여주 먹어서 그런갑다고 하니 매일 사과만 줬지 언제 여주줬는기요 하기에, 옴마야 아침마다 녹즙내려 줬는데 지금 머라카노. 독약을 줘도 먹겠네.

독약을 줘도 먹지, 밥 얻어 먹은지가 30년이 넘었는데.

우리는 진짜 우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라아부지는 집안일엔 손을 놓고 사는 사람이며 저도 전등 불이 나갔을 때 외는 얼라아부지에게 집안일을 부탁하지 않습니다. 무거운 것을 들어도 집에서 드는 건 제 몫이며 현관문을 나서면 얼라아부지 몫입니다. 그러나 불만을 가지지 않습니다. 제가 고지식하다보니 남녀의 일을 유별나게 구분 합니다.

11일 일요일, 좀 늦게까지 자고 식사 후 텃밭으로 가서 토란대 캐고 고추따고 이런저런 잔일들을 했습니다. 그 중에는 도라지 캐기와 고구마 캐기도 있었습니다. 힘을 쓰는 일이라 얼라아부지가 다 했습니다.


▲ 대추와 단감도 땄습니다.


▲ 호박전은 풋호박전이 더 맛있소.


9월 12일

제사상에 꼭 오르는 도라지입니다. 명절 차례는 간단하게 예를 올릴 정도면 된다고 하지만 저희는 기제사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준비합니다.


도라지 뿌리는 제사때 삼색나물에 들어가는데, 뿌리채소인 도라지는 조상, 줄기채소인 고사리는 현세를 사는 우리, 잎 채소인 시금치는 후손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좋은 게 좋다고 옛날에 했듯이 그대로 삼색나물을 합니다.

도라지는 흔한 식물로 도라지 뿌리는 식용하고, 한방에서는 신경통과 편도선염 등의 약재로 사용하는데, 도라지의 주요 약리성분은 트리테르페노이드 (triterpenoid)계 사포닌(saponin)으로 기관지분비를 항진시켜 가래를 삭히고 기침을 가라앉히는 효능이 있는데, 도라지에 들어있는 사포닌 성분은 진정, 해열, 진통, 진해, 거담, 혈당 강하, 콜레스테롤 대사개선,  항암작용 및 위산분배 억제효과 등 여러 약리효과가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도라지는 약용과 일반 일반식용이 있는데 저희 밭의 도라지는 식용도라지입니다.


도라지가 깊이 박혀 겨우겨우 캤습니다. 캔다기보다 팠습니다.

도라지는 흙을 씻은 후 물기가 어느 정도 가시면 작은 칼을 이용하여 껍질을 벗겨줍니다. 제 손은 머슴손같습니다.

엄마는 손 좀 가꿔라고 하시지만 부끄럽지 않습니다. 내가 농사일 하는 거 다~ 아는데 엄마는.

머리를 하기 위해 미용실가서 머리 말고 보내는 시간이 아주 아까우며 얼굴에 팩하여 누워 있는 시간이 아깝다보니 일년 365일 콜드맛사지나 팩 한 번 하지 않습니다. 눈을 뜨고 있으면 계속 꼼지락 거리는 아주 못 된 성격입니다. 제 손이 부모님 손 앞에선 곱습니다. 하여 부모님 앞에선 언제나 죄송한 손이기에 매니큐어 바르는 일도 이제 잊은 듯 합니다. 부모님앞에 손을 내밀기가 죄송하더니 텃밭일 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손을 보여 주게 됩니다. 함께 하는 일이 많다보니 그런 모양입니다.



껍질을 벗긴 도라지는 씻어 물기가 어느 정도 가시면 작은 칼로 잘게 뜯다시피 잘라줍니다. 다른 집이나 밥집에서 음식을 먹을 때 도라지를 구입한 그대로 볶은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고사리도 억세며 큰(긴)걸 좋아하지 않으며 미역국의 미역이 미친년 치맛자락처럼 너풀거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고사리를 물에 담갔습니다. 아버지께서 봄에 동생네밭에서 시시때때 꺾었으며 엄마는 삶아 말려 우리 삼남매집에 나누어 주었습니다. 고사리를 이삼일마다 꺾었다보니 아주 연합니다.

고사리를 불에 불려 뜨물에 삶으면 부드러워 진다고 했는데 저는 맹물에 삶습니다. 고사리가 연하다보니 금방 익습니다.



시금치입니다. 텃밭에 겨울초를 파종했는데 날씨가 연일 흐렸다보나 자라지 않아 시금치를 마트에서 구입했는데 5980원이었습니다. 추석물가가 폭염과 가뭄으로 비싸다고 하더니 정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값이 모두 농민에게 가지 않기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모두 농민에게 간다면 비싸면 어떻습니까.



아이들이 오후 6시 30분 비행기인데 20분 늦게 출발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6시 50분 김포발 김해공항 도착입니다.

추석장볼 때 수육용 돼지고기를 사뒀기에 수육을 하기 위해 낮에 약재를 고아 두었다가 아이들 도착 시간에 맞춰 삶을 예정이었습니다.

얼라아부지가 함께 마중을 가자고 했는데 고기 삶고 밥 해야 하니 혼자 다녀오소 했습니다. 그리곤 혼자 남아 밥을 하고 수육을 준비하는데 갑짜기 쿵쿵하며 개가 막 짖었습니다. 뭐지, 지진이다.

검색을 했습니다. 지진이라는 뉴스가 없었습니다. 분명 지진인데. 7시 55분 국가안전처의 재난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다시 뉴스에 접속하니 댓글이 무수히 달렸기에 저도 "진해 쿠~~ㅇ, 지진 짐작"이라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수육냄새가 났습니다. 소쿠리에 건져 비닐팩을 덮어두고 아이들에게 연락하니 폰이 꺼져 있었으며 얼라아부지는 대합실이라고 하며 지진 방송을 하더라고 했습니다. 얼마후 주민센타에서 창원시 방송이 흘렀습니다.

집으로 오고 있다는 연락을 받도 수육을 썰고 있는데 시누이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언니, 돈 보냈으니 오빠 뭐 하나 해 주고 언니 옷 한 벌 사 입어라, 추석 지나고 갈게요. ------ 통화중 두두두두 ~ 정수기 큰물통이 사정없이 흔들렸으며 동네 개들이 다시 짖기 시작했습니다.

고모 또 지진이다. 정수기물통이 막 흔들린다 우짜노, 거는 어떻노. 아까 부터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네.

우리도 흔들리네요.

생에 처음으로 지진을 느낀 날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왔습니다. 여름 휴가때 다녀갔으니 한 달 조금 지났는데 마음이 왜 그렇게 들떴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엄마와 시어머니도 명절에 제가 우리 아이들을 기다리듯이 우리를 기다렸겠지요.

아이들이 온다고 쥐취포를 무쳤으며 가지나물을 했고 오이나물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즐기지 않지만 그래도 뭔가 성의는 보여야 할 것 같아서요. 우리 아이들은 다섯살 터울로 30대 초반과 20대 후반입니다. 보통 가정의 아이들이라면 혼인을 할 나이인데 아이들은 혼인을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우리 부부도 등을 떠밀 생각은 없고요. 만약 혼인을 했더라면 추석에 우리 부부만 준비하여 차례를 모셔야 합니다. 쓸쓸한 풍경입니다.

아이들이 혼인을 하지 않는 일이 당장은 우리 부부에게 좋은 일인 듯 하나 우리가 세상을 떠난 후 아이들에게 식구가 없을 수 있습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아이들이 혼인을 하여 가정을 꾸렸으면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긴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은 가는데 차례가 없다고 했으며 막연한 미래보다 현재에 충실하면 된다고  도리질을 합니다.

윤아, 된장찌개 억수로 맛있다. 수육도. 와~ 6인분은 되겠다.

수육 상추에 싸 먹어라, 비 맞고 엄마가 텃밭에서 따 왔다. 두부 방금 데쳐서 따뜻하니 싸 먹고.

말이 떨어지자마자 큰아이가 상추에 수육을 싸 먹었습니다. 참 착합니다.



11일 고구마를 솎았습니다. 큰건 튀김용으로 골라두고 자잘한 고구마는 쪘습니다. 우리는 고구마에 물린 세대지만 요즘 아이들은 고구마를 즐기기에 아이들 먹이려고 쪘더니 밤에 야식으로 먹어야 겠답니다.

키엘 화장품 샀거든. 수분크림 젤이 언니에게 맞다고 해서 엄마는 그냥 수분크림 하고 젤은 니꺼로 뒀다. 할머니도 수분크림 사 드렸는데 샘플을 주기에 받아 왔다. 선물 또 있다. 양말.

엄마 우리 종로에서 1000원짜리 양말 10켤레 샀는데 이 비싼 걸 왜 사요, 윤아 우리 추석에 신고 벗어두고 가자.

그럼 엄마가 세탁하여 택배로 보낼 걸. 쫑알쫑알...



9월 13일

아이들이 늦잠을 자고 싶어 했습니다. 엄마 텃밭에 다녀올게.

정구지와 쪽파를 캤습니다. 정구지는 부침개와 김치를 담글 것이며 쪽파는 회양전용입니다. 시댁에서 처음 맞은 명절 상차림에 회양전이 있었습니다. 듣도보도 못 한 음식이었습니다. 맛을 보니 입에 딱 맞았습니다.



단호박식혜를 만들기 위해 12일 떡방앗간에서 엿기름 한 봉지를 사고 송편 한 되를 주문했습니다. 아이들이 우리는 송편 안 만드요 하기에 집에서 만들걸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추석이라고 손님이 올 것도 아니며 우리끼리 소박하게 보낼것이며, 전을 부치려면 손이 바빠야 하니 송편을 만들 손이 없을 것 같아 방앗간에 주문을 했는데 내년 추석엔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결정해야 겠습니다.



단호박 식혜를 삭혀 끓이느라 자정이 넘었습니다.



9월 14일

식구들 일어나기 전에 나물을 했습니다. 집집마다 나물을 만드는 방식이 다를 텐데 정답은 없습니다. 저희는 데치기, 맑은 색 순으로 나물을 만듭니다. 식구들 비빔밥 해서 먹을 수 있도록 가지나물과 숙주나물도 만들었습니다.



아침 식사후 얼라아부지는 텃밭으로 갔습니다. 상추, 청경채 등 채소 씨앗을 들고요. 집에 있으면 눈치꾸러기 된다나요.

본격적인 추석 준비입니다. 명절음식은 튀김과 전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먼저 치자를 물에 우려두고 고구마는 살짝 데치고 한치, 동태, 새우는 자연해동하여 손질을 하여 튀겼습니다.



이제 큰아이 몫입니다. 전입니다. 부추전, 동태전, 서대전, 호박전, 회양전을 부쳤습니다. 큰아이는 웬만한 주부보다 전을 더 잘 부칩니다.

호박전이 너무 밋밋한 것 같아 붉은땡초와 로즈마리로 모양을 냈습니다. 작은 아이 몫은 시식입니다. 내일 모레면 서른이지만 아직 아기로 보이다보니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몸도 약하고요.



명절의 하이라이트인 회양전입니다. 남해에서 첫 명절을 맞이 했을 때 회양전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입이 많다보니 손이 자꾸 오그라 들었습니다. 작은 아이는 회양전만큼은 책임지고 꼬지에 꽂아 줍니다. 작은 아이의 회양전 찬사입니다.

"이 보다 더 맛있을 순 없다, 고기에 김치에 쪽파의 조화와 기름에 부치니 얼마나 맛있는가."

회양전을 부치는데 큰동생네가 다녀 갔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조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한 후 부모님을 모시고 가기 위해서입니다.

회양전을 부친 후 생선을 쪘습니다. 해딴에 추석 음식 만들기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모두 메리 추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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