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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고성 옥천사 10월 초 풍경

by 실비단안개 2016.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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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

옥천사는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북평리연화산(蓮花山)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이다. 670년(문무왕 10)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1208년(희종 4)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수선사(修禪社)의 법석(法席)을 물려주려 하자 그 뜻을 뿌리치고 이곳으로 들어와서 자취를 감추었던 혜심(慧諶)이 중창하였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1639년(인조 17)에 학명(學明)과 의오(義悟)가 중창하였으며, 1883년(고종 20)에 용성(龍城)이 중건하였다. 1919년에는 영호(暎湖)가 이 절의 강사로 있으면서 세진교(洗塵橋)를 놓은 것을 비롯하여 두 차례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앞에 자방루(滋芳樓), 좌측에 심검당(尋劍堂), 우측에 적묵당(寂默堂)이 있으며, 그 밖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6호로 지정된 명부전과 금당(金堂)·팔상전(八相殿)·나한전·산신각·독성각(獨聖閣)·칠성각·객실 등이 있다. 건물 하나하나가 큰 규모를 보이고 있고, 가람의 지붕이 마치 연꽃무늬처럼 배열되어 있어 규모면에서 본사인 쌍계사를 능가하고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495호로 지정된 임자명반자(壬子銘飯子)를 비롯하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인 자방루,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0호인 반종(飯鐘),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인 대웅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9호인 고성 옥천사 소장품 등이 있다. 임자명반자는 고려시대에 동으로 만든 것이고, 자방루는 지은 지 300년이 넘는 우아한 건물로서 이 절의 품위를 한층 더 높이고 있다. 이 밖에도 큰 법고(法鼓)와 자방루 앞뜰에 하얀 화강암으로 다듬어 세운 청담(靑潭)의 사리탑이 있다. 이 절은 청담이 처음 출가한 사찰이기도 하며, 고려 말의 요승 신돈(辛旽)이 노비로 살았던 절이기도 하다. 절의 일원이 경상남도 기념물 제140호로 지정되어 있다. 부속 암자로는 백련암(白蓮庵)·청련암(靑蓮庵)·연대암(蓮臺庵) 등이 있고, 절 안에는 약수가 있다. 대웅전과 팔상전 사이에 있는 이 약수는 수질이 다소 변질되어서 조금만 많이 마셔도 설사를 일으키게 되는데, 변비 증세가 있는 사람은 단 한 번의 복용으로 효력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또, 절 주변에는 송이버섯과 산딸기 등의 특산물이 많이 자생한다.[이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영오마을에서 옥천사로 가는 길엔 돌탑이 있으며 누군가 마음먹고 음식점을 차렸는데 지금은 휴업인 듯 하지만 풍경이 좋은 그런 음식점도 있으며, 한참 걸어서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내습니다. 일주문 또한 옥천사와 멀리 있습니다.



옥천사 가람배치도입니다. 전각이 다른 사찰에 비해 많은 편이었습니다.

ⓒ가 사천왕문인데 10년전 그때와는 달리 사천왕문으로 옥천사에 들었습니다.



전통사찰은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사찰 300m내에 주차를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옥천사도 여기 성흥사와 마찬가지로 사찰 입구에 주차가 가능했습니다. 주차장이 좀 멀면 걷는 재미가 있을텐데 주차장이 코앞이다보니 걷기 좋은 길을 차로 이동을 했습니다.



천왕문을 들어 조금 걸으니 비각이 있었는데 별다른 설명이 없었으며 비각앞에 하마비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부터 누구든 이 앞을 지날 때에는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니 여기서 부터 걸어 옥천사로 들어야 했나 봅니다. 벽돌담장이 나름대로 멋을 냈습니다.



10월 초지만 가을이라기에는 아직은 어슬픈 계곡을 건너 옥천사로 갔습니다.



범종각에도 목어가 있었습니다.



옥천사에서 가장 웅장한 건물인 자방루(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입니다. 자방루가 워낙 웅장하여 아주 조심스레 걸어 앞의 안내표지판을 읽었습니다.




호국사찰인 옥천사는 고성 독립운동 근거지이기도 했습니다. 국가 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입니다. 일제강점기때 많은 독립군들이 눈을 피해 깊은 사찰에서 활동을 했는데, 옥천사도 옥천사 승려와 함께 지역주민이 함께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자방루의 호위를 받고 있는 옥천사 대웅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입니다. 대웅전 마당에는 연등을 다는 듯 한 철재들이 있었는데 보기에 좋은 풍경은 아니었습니다.



옥천사의 가람은 모두 한글 안내표지가 있으며, 여름도 아니고 단풍이 붉지 않다보니 가을맛이 나지 않는 10월 초엔 가을을 느끼기에는 다소 부족했지만 대웅전 뒤의 늙은 감나무를 보면 가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웅전지붕입니다.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대웅전 처마와 단청과 뒤의 감나무가 세월을 말해 주는 듯 했습니다.



감나무 아래 옹벽담 아래 꽃무릇이 지고 있었습니다. 가을이 진행중입니다.



옥천사라는 이름은 대웅전 좌측에 끊임없이 솟아나는 달고 맛있는 샘이 있다는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는데 그 샘입니다. 대웅전과 팔상전 사이에 있는 이 약수는 수질이 다소 변질되어서 조금만 많이 마셔도 설사를 일으키게 되는데, 변비 증세가 있는 사람은 단 한 번의 복용으로 효력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샘은 단정했습니다.



옥천사 가람의 지붕이 마치 연꽃무늬처럼 배열되어 있어 규모면에서 본사인 쌍계사를 능가한다고 했지만, 많은 전각이 오히려 혼란스러웠습니다.



자방루앞쪽에 청담스님의 사리탑이 있는데 아주 약간 보이는데요, 20세기 들어서는 광복 이후 교단 정화와 불법 중흥을 위해 헌신한 청담대종사가 1927년에 첫 승려 생활을 한 곳으로 유명한 옥천사는 매년 음력 9월 27일에는 이곳에서 이 절을 개창한 의상대사와 청담대종사의 열반제가 거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노스님과 얼라아부지가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기에 혼자 두리번 거리며 여기저기를 기웃거렸습니다.

노스님과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달게 나누었느냐고 물으니, 우리나 스님이나 모두 이 세상에 세를 살다 떠난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요. 아주 잠시. 얼라아부지가 이맘때면 비염으로 휴지를 코에 달고 삽니다.

 


사찰의 물건들을 판매하는 곳 뒷쪽인데 마치 사자같은 개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순한지 짖지도 않았고.

앞쪽의 감나무에서 홍시가 떨어졌기에 주워 먹다가 노스님이 생각나서 가져다 드리니 됐으니 얼른 가 보라고 했습니다.



극락교를 건너 옥천사를 나왔습니다. 10월 초인데 남부지방이다보니 가을이 더디게 옵니다. 어쩌면 요망스럽기까지한 붉은 단풍때보다 더 여유로와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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