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2006년 8월에 고성 옥천사를 다녀왔으니 10년만입니다.
고성박물관 관람후 점심을 먹기위해 여기저기 다니다보니 옥천사 안내표지판이 보였기에 우리 옥천사가자며 점심도 잊고 옥천사로 갔습니다.
10년전 그때, 얼라아부지가 낚시를 가면서 저를 고성에 떨어뜨려 주었기에 고성 탈박물관과 고성읍 시장 등을 둘러보곤 옥천행 버스가 있었기에 탔는데 막차의 앞차라고 했습니다. 고성읍에서 한 시간 넘게 달려 '영오'마을에 내려 주었기에 물어 옥천사로 갔습니다.
해가 있었지만 돌아갈 생각으로 갈길은 멀고도 바빴습니다. 그래도 옥천사로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식물은 다 만났으며 공룡발자국까지 봤습니다.
해가 져서 내려오는 길에는 사찰에서 내려오시는 진주분이 영오마을까지 태워 주었으며, 영오지구대를 찾아 콜을 부탁하여 배둔까지 왔습니다. 그때는 겁도 없었고 세상이 요즘처럼 험하지도 않았습니다.
영오마을로 접어드니 아~ 이 길었지하며 옛 생각이 났습니다.
당시 옥천사의 기억은 자방루와 옥천(玉泉), 극락교 정도입니다. 먼길을 걸어 옥천사에 막상 도착하니 맥이 풀려 집이 그리웠습니다.
그때는 극락교로 옥천사로 들었는데 이번엔 천왕문으로 옥천사로 들었습니다.
▲ 극락교
천왕문으로 들어 계곡위의 연등교를 건너 범종각 오른쪽으로 가면 옥천사 자방루가 있습니다.
자방루(滋芳樓)란 '꽃다운 향기가 점점 불어난다'는 말이며, 불도(佛道)를 닦는 누각이라는 뜻입니다. 전면에는 옥천사(玉泉寺), 후면 대웅전 쪽으로는 '연화옥천'이라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연화옥천(蓮華玉泉)은 연화산 옥천사를 줄인 말이며, 연화옥천 우측에 자방루 편액이 있습니다.
자방루 편액은 낙관을 탁본하여 판독한 결과 조명채(曹命采 1700-1764)로 되어 있어 영조 때 이조참판, 대사헌을 지낸 조명채가 옥천사에 왔을 때 쓴 것으로 추정합니다.
자방루는 옥천사에서 가장 큰 건물로 정면 7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단층 팔작지붕입니다. 기둥 사이를 모두 두터운 문으로 막고 오직 앞마당과 면하는 전면만을 개방하여 큰 성채를 방불케 하며 마당 또한 아주 넓으며 옥천사 대웅전을 보호하고 있는데, 자방루는 사찰부속 역할보다는 군사적 역할로 많은 군인이 모이는 회합장소요, 중심건물인 대웅전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는 건물입니다.
주련 사이사이에 있는 자방루의 문이 꼭 시골 정지문처럼 정스럽습니다. 10년전 그때는 시간에 쫒겨 겨우 겉만보고 갔었는데 10년후 시간이 여유로웠기에 여기저기를 보다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아는 이라도 기다리는지 두 분이 오랫동안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사찰의 일부이긴 하지만 자방루는 옥천사를 찾는 이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은 건물인 듯 했습니다. 자방루 마루에서 잠을 청하는 이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대웅전 쪽에서 본 자방루의 후면에 '연화옥천'이라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연화옥천(蓮華玉泉)은 연화산 옥천사를 줄인 말로 이 편액은 조선말기에 병조판서를 지낸 위당 신관호(威堂 申觀晧, 본명은 申櫶, 1810-1884)공의 글씨라고 합니다.
옥천사를 한바퀴 돌고 다시 자방루쪽으로 왔습니다.
목어입니다. 목어는 사원의 종루나 누각에 걸어놓고 아침·저녁 예불 때 치는 불구입니다. 자방루 건물 내부는 화려하게 장식했는데 이러한 건물 형식은 단순히 불교신도를 위한 설법용이나 불구(佛具)를 두기 위한 공간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임진왜란 직후 조정에서는 전략 요충지에 비상시를 대비한 군사적 목적의 사찰을 건립했는데 옥천사도 그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군사용 회합장소로 넓은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고 사찰과 주변지역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용 성채와 군사훈련을 위한 장소로 필요했을 것입니다. 임진왜란때가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사정과 비슷한데 부덕한 임금과 지혜로운 백성이 대비되는 시기이며, 임진왜란때 나라를 위해 민관군이 나서서 왜군과 싸웠는데 승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사찰의 누각은 대체로 2층 누각 밑을 통과하여 대웅전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으나 옥천사 자방루의 경우 처음 지을 당시 300여 명의 승군(僧軍)에게 군사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단층 누각으로 건립했습니다.
승병 교육 및 지휘본부라고 할 수 있는 자방루 건물 정면의 넓은 앞마당은 승군들이 훈련하던 연병장이었다고 합니다. 승군은 훈련할 때 동편과 서편으로 나뉘었으며 동편장은 통정대부, 서편장은 판사(무관직 5품종)의 벼슬을 제수받은 스님들이 지휘했는데, 이후 이 누각은 승려들에게 불경을 가르치고 초파일 같은 큰 행사 때 법회를 여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자방루 바닥에 드는 해가 좋아 자방루에 들었습니다.
그늘진 곳은 시원했으며 해가 든 쪽은 따스했습니다. 많은 편액이 있었으며, 천장 등을 이리저리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참 높고 넓었습니다.
자방루문쪽에서 밖을 봤습니다. 연화산 가을이 옥천사로 사부작사부작 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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