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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야기/진해 풍경

벚꽃詩길과 이순신길/중앙시장에는 진해가 다 있다

by 실비단안개 2017.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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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1일

진해 중앙시장을 돌다 주차장쪽으로 가니 진해 중앙시장 안내도가 있었으며, 그래피티길, 벚꽃詩길, 이순신길이 중앙시장내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해시민으로 중앙시장에 가끔 다녔지만 벚꽃詩길과 이순신길이 있다는 건 안내도를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찾아 봐야지. 걸어 봐야지.


진해 중앙시장은 앞에서 소개를 했지만 한 번 더 소개를 합니다.

중앙시장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벚꽃로60번길 25[화천동 60-1]로 지하에는 어시장이 있기도 합니다.

중앙시장은 8·15 해방 후 귀향 동포와 6·25 전쟁의 피난민들이 주택 겸 점포의 형태로 시장을 형성한데서 시작되었습니다.

1946년 4월 8일 사설 시장으로 개설되었고, 1958년「시장법」에 의해 공설 시장으로 개설되었습니다. 1979년 1월 26일 민영 시장 허가를 얻어 현대화 신축 공사를 하였고, 1980년 12월 13일 대지 면적 대지 6,668㎡에 지하 1층 지상 4층의 주상복합 상가를 준공하였으며, 1981년 1월 12일 번영 시장 개설을 허가받았습니다.
2013년 현재 상가 규모는 1층에 중앙 상가 아파트[10동, 6,555㎡]를 포함한 279개의 점포, 지하 어시장에 86개의 좌판 등 총 365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2003년에는 공용 주차장[87면], 2005년에는 아케이드 공사, 2006년에는 지하 어시장 리모델링 공사, 2009년에는 고객종합 문화센터 공사, 2012년에는 중앙 시장 만남의 광장 공사 등을 완료하여 시민들에게 다양하고도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현대식 상설시장입니다.

또 중앙 시장은 전통 시장의 활성화를 위하여 1999년에 전국 최초로 전통 시장 상품권을 자체 발행하여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피티길, 벚꽃詩길, 이순신길은 중앙시장 아케이드내에 있으니 각 동을 찾아야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각동은 상점 간판 귀퉁이에 작게 쓰여져 있었기에 상인들에게 물어물어 겨우 찾았습니다.




그래피티길은 여러 번 봤습니다. 그저 낙서겠거니 하며 지나쳤는데 그 길이 그래피티길이었습니다.



그래피티는 락카 스프레이 페인트 등등을 이용해 공공 장소의 벽에 무단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글자 및 기타 흔적을 남기는 문화의 한 종류로, 내려진 셔터에 마치 낙서를 해 놓은 듯 합니다. 상점의 출입구는 반대편에 있습니다.



장나래와 벚나래가 소개하는 벚꽃詩길과 이순신길을 드디어 찾았습니다.



내려진 셔터에 분홍 벚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뭔가가 보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봄이 가장 먼저 오는 곳이 진해며 4월이면 진해는 벚꽃천지가 되는 지역입니다.



4월에

            시. 황선하


4월에

4월에

진해로 오시오.

작은새마냥

훨훨

마진고개를 넘어

당신의

지순한 사랑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내 고장 진해로 오시오.


안내도에서 시인이 황선하임을 확인하였기에 벚꽃詩길을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선생님은 키가 컸으며 눈매가 깊은 미남이었습니다.

4월에 앞에서니 마치 선생님이 앞에 서 계시는 듯 했습니다.

생전에 황선하 선생님은 흑백다방에서 커피를 마신 후 분분히 떨어지는 벚꽃잎 아래 앉아 막걸리를 마시면서 나직하게 이 시를 읊조렸다고 합니다.



내려진 셔터에 시 한 구절씩이 쓰여 있었습니다. 화들짝 핀 벚꽃과 분분히 떨어지는 벚꽃잎과.



푸념같은 시도 있었습니다. 중앙 장나래길 / 시월드 등쌀에 / 장바구니 옆에 끼고 울먹울먹~

이때가 명절을 앞둔 때라 피식 웃었습니다.



사이사이에 벚꽃이 유명한 진해 관광지 사진과 안내글도 있었습니다. 중앙시장에 가면 진해가 다 있는 듯 합니다.



벚꽃詩길을 빠져나가니 이순신길이 이어졌습니다.



넘실대는 파도와 거북선입니다. 이순신 장군하면 당연히 거북선이지요.



그런데 여기도 이순신 장군상이 서울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상과 비슷합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동상 1호가 진해 북원로타리에 있는데 진해가 왜 이럴까요.



이순신길에는 진해의 중요 유적과 임진왜란 진해의 3대 해전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 100년 넘은 진해우체국, 영업은 멈추어도 시계는 간다



주변을 보기 위해 사진을 찍었더니 해전과 유적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아래 설명과 링크를 참고하면 됩니다.


- 자세히 보기 : 합포해전지를 정의해준 창원시 땡큐~/진해 3대 해전지 소개비


진해의 중요유적으로 안골왜성, 안중근의사 유묵, 중완구입니다.

- 웅천 안골왜성과 안골포 굴강 3월 풍경


臨敵先進 爲將義務(보물 제 569-26호)

역시 안중근 의사 유묵 '임전선진 위장의무(臨敵先進 爲將義務·적을 만나면 먼저 나서는 것이 장수된 자의 의무)'는 안중근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만주의 하얼빈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여순감옥에서 1910년 3월 26일 사망하기 직전까지 옥중에서 쓴 글씨 중 하나로 이 유묵은 1910년 3월에 쓴 것으로 추정하며, 보물  제569-26호입니다.

글씨 왼쪽에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라는 낙관과 왼손바닥으로 찍은 장인이 있습니다.


중완구 (보물 제 859호)
완구(碗口)는 지금의 박격포와 같은 화포로 조선시대 초기인 세종 때는 총통완구뿐이었으나 중기에 접어들면서 대완구, 중완구, 소완구 및 소소완구 등으로 발전되었으며 돌로 만든 단석이나 비격진천뢰를 발사하였습니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의 중완구는 1978년 3월 2일 통영의 어부 문동일씨가 통영시 산양면 미남리 달아 마을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발견하여 매장 문화재로 신고, 1978년 10월 26일 국고에 귀속된 후 해군 사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청동으로 만들어졌으나 오랫동안 바다 밑에 있었기 때문인지 부식이 심하여 명문을 판독할 수 없으나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중완구(보물 제 858호)와 형태나 크기가 같은 점으로 미루어 1575년(선조 8년)부터 1605년(선조38년) 사이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해저에서 인양되어 임진왜란 때 우리 수군이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참고 : 우리고장 문화유적. 진해시)



진해 중앙시장은 시장의 역할만 하는 게 아니고 진해의 역사와 문화, 예술이 함께하는 공간이었습니다.

혹 진해 중앙시장을 찾는다면 골목안의 벚꽃詩길과 이순신길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장바구니 끼고 시 한 구절 읊는 일도 재밌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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