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숙제를 하고 놀아야 제대로 놀 수 있습니다. 고추와 대추를 장만했으며 점심까지 챙겨 먹었으니 이제 놀일만 남았습니다. 밀양은 그야말로 만추였습니다. 마지막 단풍놀이를 즐기러 가는 이들로 도로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습니다.
표충사 입구에서 '문화재구역 입장료'와 주차요금을 지불하고 표충사에 들었습니다.
표충사는 재약산 기슭에 자리 잡은 사찰로 사명대사의 호국성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표충사는 654년에 원효대사가 나라의 번영과 삼국통일을 기원하고자 명산을 찾아다니던 중, 천황산 산정에 올라 남쪽계곡 대나무 숲에서 오색구름이 일고 있는 것을 보고, 이곳에 터를 잡아 절을 세우고 사찰의 이름을 죽림사(竹林寺)라고 했습니다.
829년(신라 흥덕왕 4) 인도의 고승 황면선사(黃面禪師)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와서 이곳에 머물 때 당시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악성 피부병에 걸려 전국에서 명산과 명의를 찾던 중 이곳 죽림사의 약수를 마시고 병을 치유할 수 있었는데, 이에 흥덕왕이 감탄하여 탑을 세우고 가람을 크게 부흥시켰으며, 왕자가 마셨던 약수를 영험한 우물 약수라는 뜻의 '영정약수'라 했고, 이때부터 절 이름을 '재약산 영정사(靈井寺)'라 고쳐 부르고 크게 부흥시켰다고 합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사찰이 불에 타 소실된 것을 1600년에 혜징화상(慧澄和尙)이 중건했으며, 1679년에 실화로 화재가 발생하여 다시 소실되자 1680년에 대규모로 가람을 중건했다고 합니다.
1839년(헌종 5)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국난 극복에 앞장선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대사를 모신 표충사당(지금의 대법사 자리인 밀양시 무안면 중산리 영축산 백하암에 있던 사당)을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절의 이름을 '표충사'로 개명했으며, 표충사는 1983년 사명대사 호국 성지로 성역화되었습니다.(다음 백과)
표충사 박물관 관람후 보고 싶었던 은행나무에게로 갔습니다. 이맘때면 단풍나무의 단풍은 떨어지며 은행나무 노란단풍이 한창인데 은행나무 한 그루로도 충분히 재미있게 놀 수 있습니다. 표충로를 달리니 표충로에도 은행나무들이 있었습니다만, 정차를 할 처지가 되지 않았습니다.
표충사 은행나무는 박물관과 표충사당 사이에 있습니다.
은행나무 단풍과 열심히 놀고 있는데 둥둥타닥 북소리가 들렸습니다. 예불시간인가?
종교는 가지지 못 했지만 절에 가끔 가는데 북소리는 처음입니다. 범종각까지 뛸수 없어 카메라를 동영상으로 돌렸습니다. 정말 많은 이들이 북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범종각 아래로 모여 들었습니다.
영상상태가 좋지 않지만 북소리는 들립니다.
범종각은 팔상전과 마주하고 있으며 팔상전옆에 대광전이 있습니다. 다른이들도 북소리는 처음이랍니다. 표충사를 찾은 이 모두 북소리가 나는 쪽으로 모인 듯 했습니다.
북소리가 멎고 경내를 둘러본 후 나오니 범종각 주변은 고요했습니다.
표충사를 찾는 이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인 우화루(雨花樓)입니다.
우화루는 묘법연화경의 꽃비(우화)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표충사에서는 따끈한 행사가 진행중이었는데 대추와 기타 약재를 넣은 차를 받아 마시며 앞의 3층석탑을 찍었습니다.
3층석탑과 석등입니다.
9세기 통일신라의 양식의 단층기단의 3층석탑은 보물 46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5년 해체수리과정에서 19점의 불상(통일신라, 고려)과 함께 1491년 탑의 보수를 기록한 비석이 출토되었으며, 백자사리함도 발견되었으나 사리는 없었고 사리함은 다시 재봉안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석등은 경남 유형문화재14호로 통일신라 후기의 양식입니다.
차를 마신 후 담장아래의 은행나무 단풍을 한 번 더 보고 표충사를 나섰습니다.
'마음 나누기 > 가본 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도의 늦가을과 연육교 스카이워크(유리다리) (0) | 2017.11.27 |
---|---|
해양 드라마 세트장과 파도소리길 (0) | 2017.11.23 |
밀양 내일동 전통시장과 고추방앗간 (0) | 2017.11.15 |
밀양 영남루 은행나무 단풍 (0) | 2017.11.13 |
배내골 에코펜션의 1박2일 가을 풍경 (0) | 2017.11.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