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9일
전남 보성군 득량면까지는 집에서 196km로 승용차로 약 2시간 거리였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휴게소에서 쉬기도 하고 주유도 하느라 2시간 더 걸렸습니다. 득량면은 보성군의 면으로 인구 약 4,000명의 작은 면이지만, 70~80년대 읍내의 모습을 재현한 득량역 추억의 거리가 유명하기에 득량역으로 갔습니다. 득량역의 추억의 거리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추진한 열차역 문화디자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1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했는데 마치 드라마 세트장같았습니다.
득량(得粮)지역을 알려면 지역명의 탄생을 먼저 알아야 하는데, 득량들판과 득량만(得粮灣)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은 득량만 앞의 선소(船所)마을에서 고장난 배를 수리하고 전투로 피로한 몸을 쉬었습니다. 또한 마을 앞섬(현 득량도)에서 왜군과 전투(득량해전)를 벌이면서 선소에서 재배하는 보리를 대어 먹으며 힘을 내 싸웠다고 합니다. 결국 이 승리가 명량해전의 승리로 이어졌고 이후 병사들에게 식량을 대준 곳이라는 의미로 얻을 '득'자에 양식 '양'자를 써 득량만(得糧灣)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바다로 뾰족하게 돌출된 육지를 곶(串)이라고 하며 규모가 크면 반도가 되는데, 고흥은 남해안의 대표적인 복주머니 모양의 반도입니다. 만(灣)은 바다가 육지쪽으로 들어와 있는 형태로써 득량만은 고흥반도를 기준으로 북서쪽에 있습니다. 몇 해전 고흥을 다녀온적이 있는데 그때는 득량이 이렇게 가까운 거리란 걸 몰랐습니다.
득량만 입구는 남서쪽으로 열려져 있고 보성만 쪽으로 들어가며 연결되어 있는데, 연안이 고흥군, 보성군, 장흥군 등과 둘러싸여 있으며, 맞닿은 해안선과 경계한 연안은 일부 방조제가 축조되어 있습니다.
득량역(전남 보성군 득량면 역전길 28)입니다.
득량역은 1930년, 경전선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경전선은 경남 밀양 삼랑진역에서 광주 송정역 사이를 잇는 대한민국 남해안 횡단열차인데, 개통 당시에는 화물 등을 옮겼으나 인구감소, 산업의 발달로 점점 역할이 약해져 지금은 여객수송과 득량~보성역 퇴행열차 입환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입환은 차량의 분리, 결합, 선로교체 등의 작업을 뜻합니다. 간이역이 차츰 사라지는 시대에 득량역은 S-트레인과 무궁화호가 하루 10번 왕복하는 간이역으로 매표도 가능합니다.
득량역에 주차를 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풍경입니다. "내가 득량역에 온 것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직전 남기 유언을 패러디했는데 득량역 추억의 거리에는 이순신 장군의 어록이 패러디되어 있을 정도로 임진왜란과 뗄 수 없는 지역입니다.
득량역의 전면과 후면입니다. 우리나라의 간이역들은 마치 만화에 나올 법 한 예쁜역이지만 하나 둘 사라지고 있기에 득량역의 '시골 간이역 경관조성 사업'은 반갑고 감격스러운 사업으로 우리의 추억을 소환합니다.
맞이방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철문이 아닌 부드러운 나무문인데 나무문은 처음이지요? 들어서면 양쪽에 옛날에 사용한 것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많은 여행객들이 다녀간 흔적입니다. 포스트잇이 벽에 빼곡하게 있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떼지 않았습니다. 모두 함께 만들어 가는 추억의 공간입니다.
맞이방에 손님은 없었지만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일이었기에 티비가 켜져 있었습니다. 비록 평창 동계올림픽이 아니더라도 맞이방의 티비는 언제나 켜져 있는 듯 했지만요.
열차 시간표와 운임표입니다. 열차가 운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역무원(?)에게 다가갔습니다. 추억을 소환하러 왔는데 철길에 들어가도 되느냐고 하니, 철길은 위험하여 안되며 승강장까지는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기차가 언제쯤이면 들어 올까요 하니 곧 들어 온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오전 10시 25분 하행선입니다. 종착역은 목포였습니다.
맞이방에는 득량역 가꾸기 프로젝트의 노력들이 사진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재 탄생한 득량역은 재미, 추억, 삶이 열리는 문화공간 간이역입니다.
승강장으로 나가는데 역(장)무원 체험이 가능하도록 역(장)무원복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이럴때 아기가 있으면 좋을 텐데 저희는 늙은이 둘이라 통과했습니다.
득량역은 2015년 국토교통부 대한민국 경관대장 초우수상을 받았으며, 2016년 전라남도 친환경 디자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래에는 손글씨로 득량력 연혁이 있습니다.
빠앙~ 기차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득량역에 도착 합니다."라고 했겠지요.
할머니 한 분이 기차에서 내려 무거운짐을 머리에 이어 달라고 하셨기에 이어줍니다. 손에도 물건을 들었기에 승강장에서 맞이방으로 나가는 문, 맞이방에서 광장으로 나가는 문도 열어 드렸습니다.
기차는 다음역을 향해 떠나갔습니다.
득량역 맞은편의 산은 오봉산으로 바위가 아름다운데 그중에 거북바위가 보입니다. 마치 거북이 엉금엉금 산을 오르는 듯 하지요.
거북 바위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진다고 합니다.
체험과 놀이가 가능한 추억의 거리입니다. 득량역 승강장에서 왼편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운주당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서재입니다.
운주당 장독대는 살아 숨 쉬는 옹기, 고집스레 전통기법을 고집하는 미력옹기가 여럿 있었습니다. 득량역에는 각종 옹기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자연스럽게 연출을 했더군요.
초가정자가 있으며 거북선과 판옥선 레일바이크와 우리가 어릴때 한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입니다.
양방향으로 운행이 가능한 판옥선 레일바이크입니다.
역하면 통학길이기도 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청소년기의 풋풋한 첫사랑이 피어난 공간이 통학열차지요.
놀이시설도 체험이 가능하지만 옛신호기도 체험이 가능합니다. 완목식 신호기는 1842년 최초로 사용하였으며, 경전선 득량역은 1936년~1993년까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전기자동 신호기로 교체해서 찾아볼 수 없지만 여행객의 추억을 되살리라고 재현했다고 합니다. 체험코너에는 참가한 지역주민의 사진과 이름, 체험명, 체험방법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 누구나 철길에서 찍어 본 포즈일 겁니다. 친구와 손을 잡고. 새로웠습니다.
맞은편에는 윤동주의 서시가 옹기에 써져 있습니다.
막걸리통입니다. 예전에는 자전거로 배달을 했는데 요즘은 작은 병에 들어 있습니다. 엊그제 일들 같은데 벌써 옛추억이 되었습니다.
승강장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마을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있습니다. 주변에 역시 추억을 소환하는 것들이 있지요.
풍금 건반 퐁당퐁당 징검다리랍니다.
코스모스대가 남아 있었습니다. 가을엔 더 아름다웠을 법한 득량역입니다.
역을 빠져나와 7080추억의 거리입니다. 추억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7080년대를 이야기합니다.
많은 것들이 부족했던 시대였지만 부족함을 몰랐던 시대였으며, 바쁘게 살아가야 하는 현대다보니 쉼표같았던 그 시절이 그리워 7080을 쓰지 싶습니다. 저의 청춘기시대이기도 합니다. 옛풍경을 보며 글을 쓰다보니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추억의 거리는 드라마세트장 같았습니다. 진열장인 듯 하지만 문을 열어 영업을 하는 점방도 있습니다.
득량초등학교를 재현해 놓았는데 교실이 한 칸이었으며 책걸상이 있고 뒤에는 국민교육헌장이 걸려 있었습니다. 1968년 겨울방학을 앞두고 선생님과 친구들과 난로가에 옹기종기 앉아 국민교육헌장을 외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만고에 쓸데없는 짓을 했지요.
미쓰리가 있는 행운다방입니다. 영업중이긴 했는데 이른시간이라 그런지 문이 잠겨 있었기에 코팅 된 창문 사이로 보니 행운다방을 다녀간 이들이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고 옛날 잡지도 있었습니다. 아메리카노가 아닌 원두커피라는 말이 어울리는 역전다방입니다.
조금 더 걸으면 득량이발관이 있습니다. 떨어진 코팅지 사이로 카메라를 들이미니 이발사가 손님의 머리를 만지고 있었습니다만 문을 열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반세기 넘게 영업중인 이발소라고 합니다.
순정만화,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입니다. 중학교 다닐때 학교앞에는 만화가게가 있었는데 단골이었습니다. 만화 그리는 걸 좋아 했거든요. 그것도 순정만화 주인공을.
비료, 퇴비, 농약, 종자 등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농약사도 7080년대에 머문 듯 했습니다.
우리들의 그 시절이 지금 생각하면 유치했듯이 좀은 유치한 듯 하지만 추억을 충분히 소환할 수 있는 득량역 추억의 거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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