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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대룡마을의 예술은 너무 건조했다

by 실비단안개 2019.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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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장안사와 대숲을 걸은 후 국수 전문점인 풍경에서 들깨국수와 해물칼굴수를 먹는 게 다음 일정이었는데, 풍경에 전화를 하니 휴무라고 했습니다. 하여 다음 일정인 대룡마을로 갔습니다.

대룡마을은 농촌과 예술이 결합한 마을로 예술가들이 마을 곳곳에 설치한 크고 작은 작품으로 동네 한 바퀴가 예술 여행이 되는 곳이라기에 선택했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청룡과 하얀 토끼상이 있었으며 밥집도 있었고 마트도 있었지만 마을 주민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진짜 시골마을이었습니다. 여기는 부산 기장군 장안읍 대룡마을입니다.

 

 

전설이 숨쉬고 예술이 피어 있는 대룡마을 그림지도입니다.

 

 

이정표를 보고 있노라니 주민인지 이웃 마을 주민인지 한 분이 지나갔습니다. 이정표는 나무로 만들어 졌으며 정성이 느껴졌습니다.

 

 

마을을 향하여 걷노라니 청용반송이 있었는데 '청용반송'글씨판이 반송에 못질을 했더군요. 여기서 마음이 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반송앞에는 정희욱의 '나의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이라는 돌작품이 있었습니다.

 

 

옆골목을 보니 기와집과 담장이 있었으며 먼 노란건물은 '성우학교'였습니다. 성우학교가 있다는 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검색을 하니 목소리 연기자인 聲優가 아닌 정신 지체 및 정서 장애아 교육 기관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사립 특수 학교였습니다.

 

 

반송을 지나면 참새방앗간이라는 커피점이 있는데 문은 열려있지 않았습니다.

 

 

이어 역시 커피점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여행객이 많이 찾는 동네임을 짐작할 수 있는 풍경들입니다.

 

 

커피점 맞은편에는 일본작가의 '스스로의 바람'이 있었습니다. 작가의 마음을 알 수 없으니 왜 스스로의 바람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어 마을방송 스피커에는 토끼가 오르고 있었으며 담장에는 벽화가 있기도 했지만 큰 감흥은 일지 않았습니다. 산만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대룡 상상 작은 도서관앞쪽에는 기장군기, 태극기와 새마을기가 펄럭였으며 천사의 날개가 있기도 했습니다.

 

 

마을회관 벽보판입니다.

좋은 글귀라 찍었습니다.

 

 

천사의 날개와 대룡마을 안내입니다.

대룡 마을의 형성 시기는 확인할 수 없으나, 마을이 속한 오리는 1681년(숙종 7) 기장현 상북면 신리방이 되었고,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을미개혁 때 기장군 상북면 오동(五洞)이 되었습니다.『경상남도 기장군 가호안』[1904]에는 상북면 대룡동에는 7호가 있고, 이 중 김씨가 4호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 개편으로 동래군 장안면 오리가 되었으며, 1973년 7월 1일 동래군이 폐지되며 양산군에 병합되어 경상남도 양산군 장안면 오리에 속하였다 1985년 10월 1일 장안면이 장안읍으로 승격되었다가, 1995년 3월 1일 부산광역시에 편입되며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오리 대룡 마을이 되었습니다. 우리 동네만큼 애환이 많은 동네였습니다.

 

대룡(大龍) 마을의 명칭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는데, 첫째는 마을 남쪽의 큰 바위가 용처럼 생겨 대룡암이라고 불렀으며, 이를 따라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둘째는 마을 뒤쪽 계곡에서 큰 용이 승천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셋째는 대룡 마을의 산세를 내룡(來龍)으로 보고, 물이 풍부해 큰 들이 있다 하여 붙여진 풍수와 관련된 명칭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 가운데 세 번째 설이 주변 마을 명칭 및 지세와 관련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마을 앞으로 전답이 있긴 했지만 공단지역이었으며 골프웨어 그린조이 공장이 있기도 했는데 부산본사랍니다.

 

 

 

대룡 상상 작은 도서관입니다. 도서관 건물 아래에는 연못이었으며, 유독 천사의 날개가 많은 마을이었습니다.

 

 

계절탓인지 마을이 무척 건조했습니다. 예술작품도 마찬가지였는데 숨쉬는 식물이 있었기에 다가가니 문이 잠겨져 있었습니다. 앞쪽에는 마을 경로당이 있었는데 마을 할머니 한 분이 오시기에 문은 언제 여느냐고 여쭈니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 건물의 난간에도 예술작품인 오리인지 기러기인지가 있었는데 정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경로당 옆의 가건물 지붕에는 도망자가 있기도 했습니다. 출근길 남성의 모습같기도 하지만 참 뜬금없는 작품처럼 보였습니다.

 

 

아트 인 오리, 무인카페, 목조주택학교 안내판이 있었습니다. 앞서 간 식구들이 되돌아 오면서 볼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괜히 미안했습니다. 이날 일정은 제가 계획했거든요.

 

 

밭에 푸성귀라도 있다면 풍경이 그나마 나았을 텐데 밭까지 텅 비다보니 마을 전체가 텅 빈듯 했습니다.

 

 

통나무건축학교랍니다.

 

 

 철근을 이용하여 만든 솟대같은데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위안이 된 시들고 있는 노란국화입니다. 체험장안에서는 개짖는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대룡마을에는 대체적으로 개짖는 소리가 많이 들렸습니다.

 

 

마치 나가는 집같은 체험장입니다. 운영이 되고 있는지 어떤지 확인할 길도 없었습니다. 빨리 마을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인물상은 곳곳에 있었는데 올케가 여자들이 다 이상하네 할 정도로 여인상들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었겠지만요.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긴 했는데 바닥에 그대로 주었습니다. 그래도 길냥이는 불만없이 그걸 먹고 있었습니다.

 

 

도로건너편의 억새에게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지역을 다녀봤지만 이 정도로 예술이 건조하고 먼 마을은 처음입니다.

제게 예술성이 없어서 이런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만.

 

 

주차장옆의 용천샘입니다. 다른때 같았으면 샘으로 달려가 그속을 보기도 했을텐데 사진만 찍고 말았습니다. 그때 탁한 실로폰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을 정자에 있는 실로폰을 올케가 쳤던 겁니다.

먼저 들렸던 아트 인 오리 무인카페로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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